1886년 매약으로 탄생해 1910년까지 건강음료와 약품 사이에서 줄타기… 1910년대 청량음료로 변신한 뒤 건강의 적으로 떠오른 역사의 아이러니
▣ 김덕호 한국기술교육대학 교수·역사학 전공
전세계적으로 건강과 이른바 웰빙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지구상 최고의 브랜드 파워를 자랑하는 코카콜라가 최근에 상당한 이미지 손상을 입고 있다. 벨기에 파동과 지난달에 있었던 인도 파동이 원인을 제공했기 때문이다.
‘정신분열증적’ 초기 광고
1999년 벨기에 브뤼셀에서 코카콜라를 마신 학생들이 두통과 복통 등을 호소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러나 코카콜라 본사와 벨기에의 코카콜라 보틀링사는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다. 이 와중에 새로 들어선 벨기에 정부는 코카콜라사의 출시 제품 판매를 모두 금지했고, 이는 이웃 국가들로까지 번져 역사상 최대 규모의 코카콜라 리콜사태가 전개됐다. 사태가 이렇게 진전됐지만 코카콜라사의 대변인은 “몸이 아플 수 있겠지만 유해한 것은 아니다”고 발표해 소비자들을 더욱 분노케 했다.
결국 코카콜라사 최고책임자인 아이베스터는 벨기에 정부의 압력에 못 이겨 공식 사과를 했다. 그는 이를 우연히 일어난 정치적 사건으로 이해했고 다시는 이런 사태가 발생하지 않을 거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불과 7년 뒤에 인도에서 유사한 사건이 재발했다.
이번에는 코카콜라사와 펩시콜라를 만드는 펩시코가 다 관련됐다. 반향은 엄청났다. 문제는 더 근본적인 데에 있었다. 인도는 농민들이 살충제를 과도하게 사용하여 지하수 오염이 심각한 상태에 있었다. 환경단체는 바로 이 문제에 대해 여론을 환기시키려고 했던 것이며, 다국적 기업에 반감을 갖고 있던 정치가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 민족주의에 호소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코카콜라사와 펩시코는 자기들의 제품이 안전하다는 메시지만 발표했다.
이 사태들은 코카콜라사가 변화하는 시대 상황과 지역의 문제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거나 발빠르게 대처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환경과 생태, 건강과 먹을거리는 전세계적으로 초미의 관심사가 되었는데도, 코카콜라사는 이런 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예방 조치를 하지 않은 것 같다. 심지어 코카콜라가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는 건강음료로 널리 광고됐다는 점을 떠올리면 역사의 아이러니까지 느끼게 된다.
코카콜라는 1886년 5월 미국의 대표적 남부 도시인 애틀랜타에서 탄생했다. 코카콜라는 처음엔 ‘매약’(patent medicine)으로 출발했던 음료이다. 그러나 코카콜라의 정체성은 이 시기부터 1900년대까지도 청량음료와 약품 사이에서 줄사다리를 타고 있었다. 때문에 어떤 학자는 초기 코카콜라 광고가 ‘정신분열증적 광고’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초기 광고를 분석한 결과를 단순화해본다면, 코카콜라는 두 가지 목표를 겨냥했던 것으로 보인다.
약품에 세금 부과하자 식품으로 주장
코카콜라를 만든 조지프 S. 펨버턴은 1887년 지역 신문에 광고를 실었다. ‘두뇌 강장제(brain tonic)이며 지적인 탄산수 매장 음료’라는 이 광고의 선전문구를 보면, 코카콜라가 매약인 동시에 청량음료로 광고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889년에 새로 코카콜라의 주인이 된 아사 캔들러는 두통과 위장장애까지 해소할 수 있는 의약품적인 성격을 강조하고 싶어했다. 가령 1891년의 신문에서는 코카콜라가 ‘놀라운 신경 강장제(nerve tonic)이며, 두통을 낫게 하고 소화를 돕는다’는 광고가 실렸다. 1890년대 약사들에게 발송된 안내책자에는 코카콜라가 두통뿐 아니라 피로, 불면증, 신경통까지도 낫게 할 수 있다는 설명이 실려 있었다. 또 1897년의 한 신문광고에는 코카콜라는 두통을 낫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과도한 정신적 혹은 육체적 노동으로 인해 지친 심신을 새롭게 만들어’주는 ‘건강 음료’(The Health Drink)로 소개되고 있다. 그는 코카콜라를, 한국의 ‘박카스’가 그러했던 것처럼, 미국인들의 피로회복과 건강을 책임지는 음료로서 자리매김하고자 했다.
다음해인 1898년 미국과 스페인 사이에 전쟁이 벌어지면서 미 의회는 모든 약품에 세금을 부과할 것을 결정했다. 따라서 조지아주 세무당국은 광고를 보고 코카콜라를 약품으로 분류해 세금을 징수했다. 그러나 전쟁이 끝나자 코카콜라사는 코카콜라가 약품이 아닌 음료라고 주장하면서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고 1902년에 승소했다. 정작 놀라운 점은 이 회사가 세금 문제 때문에 코카콜라가 약품이 아닌 식품이라고 주장해놓고도, 적어도 1910년대 초까지도 두통을 치유하고 빠른 피로회복을 보장하는 강장제로 계속 선전했다는 사실이다.
코카콜라사가 지속적으로 내건 슬로건 중 하나는 코카콜라를 ‘이상적인 두뇌 강장제’로 알리는 일이었다. 1891년부터 1911년까지의 광고를 살펴보면 코카콜라는 학생과 사무실 근무자, 전문 직업인을 포함한 화이트칼라 계층을 겨냥하고 있었다. 즉, 코카콜라사는 머리를 많이 써서 신경이 날카로워지거나 정신적 스트레스를 받기 쉬운 정신노동자 집단을 주 고객층으로 삼았다.
하지만 코카콜라가 청량음료라는 선전을 포기한 것은 아니었다. 다만 갈증해소와 피로회복을 동시에 겨냥한 광고들이 주류를 이뤘다. 예를 들어 1909∼1910년의 광고 카피는 ‘피로를 회복시키고 갈증을 해소해준다’는 식으로 코카콜라의 용도를 이중적으로 열거하면서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고자 했다.
가장 성공적인 ‘리포지셔닝’이었으나…
그러나 1910년대가 지나면서 상황이 급변하기 시작했다. 1906년에 통과된 ‘순정식약품법’(Pure Food and Drug Act) 때문이었다. 1909년 순정식품국 요원의 코카콜라 원액 압수로 촉발된 연방정부 대 코카콜라의 재판은 1911년에 시작해 1918년에 끝났다. 지루하고도 고통스러운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의약품적 성능을 강조하는 광고가 사라지면서, 이젠 청량음료의 즐거움을 강조하는 광고가 대세를 이루게 되었다. 물론 이런 근본적 변화의 이면에는 코카콜라사가 재판을 의식해서뿐만 아니라 시대적 변화를 읽고 능동적으로 대응한 면도 무시할 수 없다. 아무튼 이후 코카콜라는 목마름이라는 더 보편적인 정서에 호소하게 되었다.
이렇게 코카콜라는 가장 인상적이고도 성공적인 상품 ‘리포지셔닝’(repositioning)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렇듯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건강을 지켜줄 수 있다고 선전하던 코카콜라사가 한 세기 만에 또다시 건강이라는 암초를 만나 곤경에 빠져 있는 것을 보면서 역설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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