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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5천명 ‘축복결혼’의 아이들

등록 2006-08-18 00:00 수정 2020-05-03 04:24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 결혼의 60~70%를 차지하는 통일교 가정… 농어촌 지역에 많은 일본인 어머니들은 자녀 교육을 가장 고민해

▣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1988년 10월30일 경기도 일화 용인연수원에서 6516쌍의 대형 합동결혼식이 치러졌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통일교·이하 가정연합) 창시자인 문선명 총재 주례로 이뤄진 국제합동축복결혼이었다. 이 합동결혼식에서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 부부가 2639쌍, 일본 남성과 한국 여성이 3835쌍 등 6500여 쌍이 부부의 연을 맺었다. 1988년 한 해에만 통일교 국제축복결혼으로 일본인 여성 2500여 명이 한국에 들어온 셈이다. 이 중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 부부는 대부분 한국에, 일본 남성과 한국 여성 부부는 일본에 정착했다.

88올림픽 계기로 매년 500~1천쌍

가정연합의 축복결혼으로 맺어진 한-일 축복결혼 가정의 시작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70년대 중반과 1980년대 중반까지 수십 쌍 정도에 그쳤던 한-일 국제축복결혼은 88올림픽을 계기로 열린 6500쌍 합동결혼식 이후 매년 500~1천쌍의 한-일 국제축복결혼 부부가 생겨났다.

1988년에는 일본 남성과 한국 여성의 결혼이 더 많았지만 그 이후에는 대부분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의 결혼으로 이뤄졌다. 지금까지 한-일 국제축복결혼 가정은 1만3천여 가정이며 그중 7천여 가정이 한국에 살고 있다. 2000년 이후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의 결혼이 매년 900~1200여 건 이뤄진다는 통계청의 자료에 비춰볼 때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 결혼의 60~70%는 가정연합의 국제축복결혼이라고 볼 수 있다.

가정연합은 결혼을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라고 한다. 이에 문 총재가 주례하는 축복결혼은 가정연합의 가장 중요한 의식 중 하나다. 하나님의 참사랑을 중심으로 참된 결혼축복을 받고 가정을 출발시켜 가정연합의 이념인 인종·국가·민종·종교를 초월한 평화세계를 이룬다는 설명이다. 가정연합은 1960년대부터 40여 년간 국제축복합동결혼식을 진행해왔다. 지금까지 축복결혼으로 탄생한 부부은 전세계 5억 쌍에 가깝다. 최근에는 축복결혼의 문을 열어 통일교인이 아니어도 축복결혼을 신청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한국인 국제축복결혼 중 절반 이상의 비중을 차지하는 것이 바로 한국 남성과 일본 여성의 가정이다. 가정연합 안호열 기획국장은 “한국과 일본이 거리로도 가깝고 문화적인 면에서도 다른 나라보다 비슷한 점이 많다”며 “통일교회에서 볼 때는 한국은 종교적으로 아버지의 나라이기 때문에 한국 남성과 결혼해 한국에서 살고자 하는 일본 여성이 많다”고 말했다. 또 “가정연합은 한-일 교차결혼, 축복결혼을 통해 정치적으로 해결하기 힘든 양국 간의 이해와 포용 등을 이뤄내고자 한다”며 “가정을 꾸리고 가족으로 함께 살면 한-일 양국이 서로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7천여 명에 가까운 가정연합의 일본인 아내들은 종교라는 공통분모를 기반으로 한국에 살고 있다. 1983년 축복결혼으로 한국에 온 마쓰부시 하루미(58) 일본부인회장은 “일반 사람들에게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나라에 시집와서, 그것도 일본에서와는 전혀 다른 삶을 사는 것이 이상해 보이기도 하겠지만 여기 와 있는 일본 여성들은 종교가 있고 한국이 종교적 조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밝게 살려고 노력한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도 한국 남성과 결혼해 한국으로 오는 일본 여성들이 꾸준히 있을 거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일본 관련 뉴스에 스트레스 받아

그런 이들에게도 고민은 있다. 가장 큰 고민은 자녀 교육이다. 한국에 산 지 10년이 넘은 일본인들도 아이들의 숙제를 도와줄 만큼 한국어를 구사하기는 쉽지 않다. 한국의 교육열도 이들에게는 어려움이다. 마쓰부시 일본부인회장은 “많은 일본인 아내들이 교육에 대해 특별한 한국 어머니들의 열정을 따라가기가 힘들다고 한다”며 “특히 농어촌에 많은 가정연합의 일본인 아내들은 교육환경 때문에 아이들을 도시로 보내 교육을 받게 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김영준 가정국장은 “통일교회는 다산을 권장하고 있기에 자녀들이 보통 3~4명으로 많아 만만찮은 교육비도 문제”라고 했다.

가정연합은 가정을 꾸린 뒤 일어날 갈등이나 문제를 가능한 한 줄이기 위해 축복결혼 전에 일정 기간 교육 프로그램을 갖는다. 일본 여성들은 한 달 정도 한국에서 한국어와 한국 문화, 한국 역사, 한국 음식 등에 대해 교육을 받고 한국 남성들은 나흘 정도의 일정으로 일본을 찾아 그곳의 문화를 익힌다. 결혼 이후 국제결혼 가정의 고민 상담을 위해 국제가정지원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이 센터에서는 전국에 있는 국제결혼 가정의 상담과 지원 등을 해주고 있다. 김 가정국장은 “오랜 기간 동안 국제결혼을 진행해오고 있기 때문에 국제결혼 가정 정착을 위해 어떤 프로그램이 필요한지 잘 알고 있다”며 “결혼 전 교육과 지원 등을 통해 일본인 등 외국인 아내들이 자신감을 갖고 살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정연합은 축복결혼 가정의 자녀들을 ‘평화세대’ ‘평화의 증거’라고 부른다. 가정연합이 갖고 있는 가정과 평화라는 종교적 비전을 실현한 결실체이기 때문이다. 한-일 축복결혼 가정의 자녀들은 1만5천여 명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한-일 축복결혼의 역사가 오래되지는 않아 아직 자녀들은 미취학에서 초·중·고등학생이 가장 많다. 이 자녀들은 종교적인 부분을 제외하고는 일반 한-일 국제결혼 가정 아이들과 크게 다르지 않다. 어릴 때부터 한국과 일본을 오가며 자라나기 때문에 한국어와 일본어에 능통하고 양국을 모두 이해하면서 성장한다. 그러나 이들 역시 반은 일본인이기 때문에 일본과 관련된 뉴스가 나올 때면 주변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이나 놀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

18살 이후 국적 선택, 대부분 한국

한-일 축복결혼 가정 자녀들은 한국과 일본의 이중 국적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아이들에게도 18살 이후 한국과 일본 중 어느 나라 국적을 따를지는 일반 한-일 국제결혼 가정의 아이들처럼 ‘선택’의 문제다. 마쓰부시 일본부인회장은 “일본으로 유학을 보내기도 하지만 한-일 축복결혼 가정 대부분은 계속 한국에서 살고 싶어하기 때문에 자녀들은 일본 국적을 포기하고 군대에 간다”고 말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축복결혼 가정의 자녀들은 성인이 되면 또다시 축복결혼을 해 외국인 배우자를 맞는 경우가 많다. 안호열 기획국장은 “축복결혼 가정의 자녀라고 축복결혼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지만 많은 자녀들이 어릴 때부터 부모님과 함께 통일교회에 나가고 축복결혼을 한 부모님을 보고 자라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축복결혼을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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