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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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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도 책임 물어야 한다

등록 2006-08-04 00:00 수정 2020-05-03 04:24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이스라엘 원조, 미제 무기가 레바논을 때려… 국익과 상관없이 밀어주는 이유는 막강한 이스라엘 단체의 로비 때문

▣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국제사회가 뒷짐만 지고 있는 사이, 레바논을 유린하고 있는 이스라엘군의 ‘막가파식’ 행태가 끝이 없다. 침공 16일째를 맞은 7월27일 현재까지 확인된 레바논 민간인 사망자만 382명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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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자와드 칼리페 레바논 보건장관의 말을 따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에 깔려 주검조차 발견하지 못하고 ‘실종’ 처리된 이들까지 계산하면 민간인 사망자는 600명을 넘어설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은 무기수출 통제법 어겼다”

“헤즈볼라 소탕에 대해 국제사회가 암묵적 지지를 보냈다.” 이스라엘군의 가자지구·레바논 침공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미국·러시아·유럽연합 등 18개 나라와 국제기구 대표단은 7월26일 이탈리아 로마에서 긴급 대책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즉각적인 군사행동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이스라엘이 헤즈볼라 소탕작전에 필요한 시간을 벌어주고 싶어한 미국의 반대에 부딪혔고, 결국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했다. 하임 라몬 이스라엘 법무장관이 “로마회의 결과는 레바논에서 헤즈볼라의 무장해제를 위한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을 지속하라고 국제사회가 허락을 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나선 것도 이 때문이다.
가자지구와 레바논을 침공한 이스라엘이 내세운 ‘작전목표’는 교전 중 무장세력에게 ‘포로’가 된 자국 병사 3명을 구출하는 것이었다. 이와 함께 시리아와 이란이 헤즈볼라 쪽에 로켓과 미사일을 공급해주고 있으며, 이 무기가 이스라엘의 민간인 목표물 공격에 이용되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 때문에 일부에선 ‘전선’이 시리아와 이란 등 중동 전역으로 넓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그런데 정작 ‘전쟁범죄’라는 비판 속에 막강한 화력을 앞세워 국제법을 비웃기라도 하듯 가자지구와 레바논을 때려대는 이스라엘군은 다름 아닌 ‘메이드 인 유에스에이’ 무기로 무장하고 있다. 지난해 8월 말 미 의회조사국(CRS)이 내놓은 보고서를 보면, 1997~2004년 이스라엘은 모두 84억달러어치의 무기를 외국에서 사들였는데, 이 가운데 84.5%에 이르는 71억달러어치가 미국산이다.
이스라엘의 가자·레바논 침공으로 발생한 민간인 희생자에 대해 미국에도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대안 통신사 는 지난 7월18일 “이스라엘군이 미국산 전투기와 전투용 헬리콥터, 미사일을 동원해 민간인 사상자를 내고 레바논 사회 기반시설을 파괴하는 것은 미국의 무기수출 통제법에 위배된다”고 지적했다.



이 통신은 스티븐 준스 샌프란시스코대 교수(정치학)의 말을 따 “미 무기수출 통제법 제4조는 외국 정부에 인도된 미국산 무기는 반드시 국내 치안이나 합법적 방어행위에만 이용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며 “레바논의 민간 사회 기반시설과 인구 밀집지역을 겨냥한 이스라엘의 공격은 합법적 방어행위를 넘어서는 것으로, 미 정부는 이스라엘로 무기를 넘겨주는 것을 금지할 법적 책임이 있다”고 전했다.
미국산 최첨단 무기로 무장한 이스라엘의 군사력은 이란·시리아·이집트·요르단·사우디아라비아 등 중동국가 대부분의 군사력을 합친 것과 맞먹는 수준으로 평가된다. 이란의 ‘핵 프로그램’으로 전세계가 법석을 떨고 있지만, 일찌감치 사실상의 ‘핵 보유국’ 지위를 확보한 이스라엘의 핵무기에 대해 따지고 드는 이들은 많지 않다. 전문가들은 이스라엘이 많게는 100기의 핵탄두를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

총 1080억 달러, 최근 군사원조 강화

사실 미국의 ‘맹목적인’ 이스라엘 지원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중동 문제 권위지인 (WRMEA)는 최신호에서 “미국이 이스라엘 건국 이듬해인 1949년부터 올해까지 이스라엘에 직접 지원한 금액은 줄잡아 1080억달러에 이른다”고 전했다. 이 잡지는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액은 한 해 평균 약 30억달러에 이르며, 이는 이스라엘 국민 1인당 약 600달러씩 지원하는 꼴”이라며 “이스라엘은 2차 대전 이후 지금까지 미국의 해외원조 최대 수혜국이며, 미 정부는 전체 해외원조 예산의 5분의 1을 이스라엘에 쏟아붓고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 내역을 구체적으로 보면, 미 의회가 공식적으로 편성하는 원조 예산 외에도 군사원조와 경제지원, ‘난민’ 지원사업 예산과 함께 국방·농업·과학·첨단기술 등의 분양에서 각종 ‘협력사업’에 편성되는 예산까지 다양하다. 이 밖에 미 정부는 이스라엘 정부의 ‘빚보증’까지 서주고 있는데, 지난 2003 회계연도만도 추경예산까지 편성해 이스라엘 정부에 90억달러 상당의 국가채무 보증을 서줬다. 또 지원되는 원조금을 몇 차례로 나눠 지급하는 다른 나라와 달리 이스라엘에 대한 원조금은 일시불로 지급해 막대한 이자 수익을 거둘 수 있는 ‘배려’도 잊지 않고 있다.
특히 최근 들어선 이스라엘 쪽 요청으로 군사 분야 지원액을 매년 늘리고 있다. 1998년 이전까지만 해도 미국의 이스라엘 지원액은 연평균 군사 분야에서 18억달러, 경제 분야에서 12억달러씩 책정됐지만, 1999년 이후 매년 경제 분야 지원은 1억2천만달러씩 줄인 반면 군사 분야는 6천만달러씩 늘려왔다. 이에 따라 2006 회계연도엔 군사 분야 지원액이 22억8천만달러에 이른 반면 경제 분야 지원액은 2억4천만달러에 그쳤다.
이쯤에서 궁금해진다. 미국이 이스라엘에 이렇듯 막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 이유는 뭘까? 석유자원 등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중동 지역에서 미국은 전략적 이해관계와 국익을 위해 이스라엘을 지원할 수밖에 없는 걸까? 존 미어셰이머 시카고대 교수와 스티븐 월트 하버드대 교수는 지난 3월 내놓은 ‘이스라엘 로비와 미국 외교정책’이란 제목의 논문에서 ‘다른 이유가 있다’고 지적한다. “미국 외교정책의 최우선 목표는 미국의 국익이어야 한다. 그럼에도 지난 수십 년 동안 미국 중동정책의 핵심은 대이스라엘 관계에 다름 아니었다. …미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일방적 지원은 이슬람권 여론의 분노를 사 미국의 안보를 위협하고 있음에도 미국과 이스라엘 지원은 ‘국내 정치적 이유’ 때문에 흔들리지 않고 이어져왔다.”
이들이 말하는 국내 정치적 이유는 다름 아닌 ‘이스라엘 로비’다. ‘미국이스라엘홍보위원회’(AIPAC·에이팩)가 대표 격인데, 이 단체는 전미총기협회(NRA)와 전미은퇴자협회(AARP)와 함께 미국 내 3대 압력단체로 꼽힌다. 미 행정부와 의회는 물론 각종 싱크탱크와 대학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에이팩의 ‘활약상’은 이 단체가 인터넷 홈페이지에 올린 ‘최근 업적’ 목록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믿는 구석’ 때문에 작전은 계속된다

“이스라엘 군사·경제원조금 25억2천만달러 확보. 90억달러 국가 채무보증 획득. 테러와의 전쟁으로 급상승하고 있는 군사비 충당을 위한 군사원조금 10억달러 인상.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지원금에 강력한 검증 절차 마련, 이란·시리아로 무기 기술이 이전되는 것을 제한하는 법령 마련. 상하 양원에서 만장일치로 이스라엘에 대한 이란의 위협을 비난하는 결의안 통과….”
레바논 수도 베이루트가 이스라엘군의 맹폭으로 잿더미로 변해가던 지난 18일과 20일 미 상원과 하원이 각각 이스라엘의 행동을 지지하는 결의안을 압도적 표차로 통과시킨 것도 놀랄 일은 아닌 것이다. 심지어 미 보수파의 기관지 격인 최근호에서 이 잡지 발행인 윌리엄 크리스톨은 이스라엘의 이웃나라 침공을 ‘우리의 전쟁’으로 규정하고, 부시 대통령에게 “예루살렘으로 날아가 이란과 맞서라”고 촉구하고 나섰다.
이스라엘 정부는 7월27일 3만여 예비 병력에 동원령을 내리고, 언제든 전선을 넓힐 수 있음을 분명히 했다. 조만간 ‘작전’을 멈추지는 않을 것이란 얘기다. 이스라엘의 군사행동을 비판하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은 미국의 거부권 행사로 지난 7월13일 일찌감치 부결됐다. 전세계적 비난 여론 속에서도 이스라엘이 일방적 행태를 되풀이할 수 있는 것은 나름대로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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