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팀장부터 막내 사원까지 마케팅팀 구성원들의 사도마조히즘 관계도… 지배적 사디스트인 최 차장, 마조히스트 위치에서 벗어나려는 김소림씨…
▣ 안인용 기자 nico@hani.co.kr
서울의 한 컴퓨터 회사 마케팅팀은 6명으로 구성돼 있다. 김진수(가명·42) 팀장과 최지민(가명·여·37) 차장, 고민아(가명·여·35) 차장, 박정환(가명·32) 대리, 홍정수(가명·31)씨, 김소림(가명·여·28)씨 등 6명으로 구성된 이 팀은 늘상 내부 갈등이 있는 편이다. 일터에서 사도마조히즘이 어떻게 작용하는지 알아보기 위해 이 팀의 하루를 재구성했다.
사디스트 최 차장, 고 차장에겐 의존적
“자, 오늘 회의 시작합시다.”(김진수 팀장)
오전 9시30분. 김 팀장이 주재하는 회의로 하루를 시작한다. 이 회의에서 현재 추진하고 있는 프로젝트의 진행 상황 점검 등이 이뤄진다. 보통 팀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사람이 회의를 이끌어가지만 마케팅팀은 그렇지 않다. 김 팀장은 다른 회사를 다니다가 이 회사에 경력사원으로 온 지 이제 1년 남짓 됐다. 김 팀장은 이 회사에 무리 없이 다니고는 있지만 이미 꾸려져 있던 팀에 들어와 팀장을 맡고 있기 때문에 실질적인 힘은 없다. 게다가 김 팀장 자체가 팀원들을 몰아치거나 채찍질하는 성격이 아니다.
“일을 이렇게 처리하면 어떻게 합니까? 왜 정환씨는 확인을 제대로 안 해서 꼭 클레임이 들어오게 해요?”(최지민 차장)
프로젝트를 점검하고 상황에 따라 팀원에게 명령을 내리며 안건마다 토나 의견을 다는 사람은 김 팀장이 아니라 최 차장이다. 최 차장은 매사에 목소리가 큰 편이다. 때로는 작은 일에도 팀원에게 화를 내거나 잔소리를 한다. 프로젝트를 시작하거나 상부에 보고를 올릴 때도 김 팀장이 최 차장에게 의견을 구하는 경우가 많다. 팀원이 실수를 해도 김 팀장은 먼저 최 차장을 찾는다.
“최 차장님, 나가서 커피 한 잔?”(고민아 차장)
오전 10시. 아침 회의가 끝나고 오전 업무가 시작됐다. 마케팅팀은 세부적인 일들을 2~3명씩 맡아 처리하는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최 차장과 손발을 맞추는 사람은 고 차장과 박 대리다. 최 차장과 고 차장은 입사 1년 선후배다. 입사 초기부터 지금까지 10여 년 동안 최 차장과 고 차장은 한 부서에서 함께 일해왔다. 고 차장은 꼼꼼하게 일을 처리하는 사람으로 정평이 나 있다. 그래서 고 차장이 업무 능력에서는 최 차장보다 낫다는 평가다. 언제나 붙어다니는 이 둘 사이에서 최 차장은 거꾸로 고 차장에게 의존하는 편이다. 가족 문제 등 사적으로 힘든 일이 많은 최 차장은 고 차장에게 조언을 구하는 일이 잦다. 팀원들은 무섭게 명령을 하던 최 차장이 고 차장 앞에서는 순한 양으로 돌변한다고 말한다.
“그게 아니라… 예, 다시 한 번 확인하겠습니다. 죄송합니다.”(박정환 대리)
오전 10시30분. 고 차장 손에 이끌려 커피를 마시고 온 최 차장은 자리에 앉자마자 박 대리를 불러세운다. 일을 할 때마다 최 차장에게 혼나는 사람은 항상 낮은 자세인 박 대리다. 박 대리는 무슨 일이든 자책하는 스타일이다. 능력이 없는 것도 아닌데 최 차장이 시키는 일이라면 뭐든 한다. 후배들도 “박 대리님은 왜 항상 미안하다고만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 “최 차장의 모든 스트레스는 항상 박 대리님을 향한 것 같다”고 한다. 박 대리는 최 차장에게 매번 혼이 나면서도 작은 일부터 큰 일까지 보고는 절대 빠뜨리지 않는다.
사람에 따라 엇갈리는 지배와 종속
“김소림씨, 학교 다닐 때 뭐 배웠어? 한글 못 읽어?”(홍정수씨)
낮 12시. 점심시간이다. 주중에는 점심시간에 운동을 하러 나가는 김 팀장을 제외한 5명은 함께 점심식사를 한다. 점심식사를 할 때는 홍정수씨가 말이 많아진다. 홍씨는 막내인 김소림씨와 함께 프로젝트 홍보를 맡고 있다. 2년 동안 팀에서 막내였던 홍씨는 김씨가 입사한 지난해 10월부터 팀내 ‘넘버 5’가 됐다. 김씨가 아직 업무에 익숙지 않아 궁금한 것을 물어보거나 자잘한 실수를 하면 사무실이나 식사 자리에서 놀리듯이 큰소리로 면박을 준다. 김씨가 얼굴을 붉히면 “그랬다고 화난 거야? 그냥 한 말이잖아” 하면서 다시 한 번 비웃는다.
“선배님, 저 그렇게 바보 아니거든요?”(김소림씨)
오후 4시. 점심시간이 끝나고 오후 업무가 한창이다. 홍정수씨는 옆자리 김씨가 홍보대행사와 통화하는 것을 보고 또 한마디 한다. 김씨는 처음 몇 개월은 홍씨의 이러한 행동을 그냥 넘겼지만 최근에는 참지 않는다. 김씨는 팀내 막내이기는 하지만 상사들에게 열등감은 전혀 없다. 오히려 김씨는 팀내 직장 선배들이 자신에게 창의적인 아이디어 면에서 기대고 있다는 점을 알고 있다. 지난 몇 번의 회의에서 김씨의 아이디어는 김 팀장과 최 차장에게 좋은 인상을 주었다. 김씨는 홍씨의 말에 대차게 쏘아붙이고는 조용히 앉아 있다.
김 팀장은 사디즘과 마조히즘 성향 모두 약한 사람이다. 그러나 팀 전체로 볼 때 팀장이라는 위치 때문에 사내 위계질서에 따라 어느 정도 사디스트의 역할이 주어진다. 그러나 실질적인 팀장 역할은 최 차장이 맡고 있기에 김 팀장은 최 차장에게 기대고 있는 종속적 사디스트 위치에 있다. 지배성이 강한 최 차장은 김 팀장에게는 지배적 마조히스트, 팀원들에게는 사디스트의 역할을 한다.
김씨가 막내에서 벗어나면…
최 차장은 특히 박 대리에게는 더욱더 지배적이다. 박 대리는 부하직원이라는 위치와 열등감이 많은 성향으로 인해 종속적 마조히스트가 됐다. 그러나 최 차장과 고 차장의 관계에서는 최 차장이 종속적 사디스트다. 팀내 상하지위를 떠나 정신적 의존도로만 볼 때는 오히려 종속적 마조히스트에 가깝다. 직위는 낮지만 고 차장이 거꾸로 최 차장에게 지배적 마조히스트 내지 지배적 사디스트 역할을 하고 있다.
홍정수씨와 김소림씨의 관계에서는 홍씨가 사디스트다. 홍씨는 김씨에게 굴욕적인 언어로 일종의 가학 행위를 즐겨한다. 그러나 김씨는 사디스트적 성향이 강한 사람이다. 보통 막내들은 군말 없이 마조히스트의 역할을 해내지만, 김씨는 마조히스트적 위치에서 벗어나려 하고 있다. 김씨가 막내인 한동안은 이 둘의 관계가 가끔씩 덜컥거리는 데 그치겠지만, 김씨가 막내 자리에서 벗어나면 이 둘은 더 자주 부딪치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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