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의 다에이도 사우디의 알테미아트도 일본의 나카타도 집으로 집으로… 세계 무대만 나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아시아 축구에 한국은 쓸쓸하다.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그는 마음씨 좋은 옆집 아저씨 같은 모습이었다. 성난 맹수 같은 눈빛으로 상대의 골문을 향해 돌진하던 깡마른 중동의 사내는 어느새 중후한 멋을 풍기는 신사로 변해 있었다. 그는 열심히 공을 따라다녔지만, 카리미와 하셰미안의 패스를 받지 못했고, 마다비키아가 측면에서 날려준 크로스를 머리 위로 허무하게 날려보냈다. 멕시코를 상대로 한 2006년 독일 월드컵 첫 경기에 나선 이란 공격수 알리 다에이(37·사바 바트리)에게서 날카롭던 옛 모습을 확인하긴 어려웠다. 이란의 주장 완장을 찬 다에이는 멕시코 공격수 오마르 브라보와 안토니오 시나가 자신의 골문을 유린하는 과정을 멋쩍게 웃으며 지켜봐야 했다. 그는 경기 내내 단 한 개의 슈팅도 하지 못했다.
‘두바이의 비극’을 만든 그가…
경기가 끝난 뒤 모하메드 빈 함맘 아시아축구연맹(AFC) 회장은 알리 다에이에게 “그는 너무 늙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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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리 다에이는 역사적인 선수이고 이란·아시아에서 전설로 통하는 선수지만 그는 이번 대회에 나오지 않는 게 좋았을 것이다. 37살의 나이는 월드컵에서 뛰기에는 너무 많다.” 그는 황선홍보다 한 살 적고, 홍명보와 동갑이며, 최진철·유상철보다 두 살 많다. 아마도 그는 자신의 두 번째 월드컵에서 조국 이란을 16강에 올려놓은 뒤 명예롭게 은퇴하고 싶었을 것이다. 함맘 회장의 지적이 틀렸다고 하긴 힘들겠지만, 148번의 A매치에 나서 109골을 넣은 아시아의 ‘살아 있는 레전드’에게 그렇게 야박하게 말할 수는 없는 법이다.
알리 다에이는 아시아 축구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들어왔을 중동의 대표 스트라이커다. 골문 앞에서 보여주는 그의 작은 몸놀림 하나하나가 한국민들에게 ‘공포’ 그 자체였다. 1990년대 중반 이후 한국 축구를 발전시킨 원동력은 일본에 대한 경쟁심이라기보다는 이란에 대한 열등감이라고 보는 게 옳다. 조 본프레레 감독을 퇴장시킨 뒤 대한축구협회가 아드보카트를 위해 제일 먼저 홈으로 불러들인 스파링 파트너가 이란이었다는 것은 단순한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1993년 오만전을 통해 A매치에 데뷔한 다에이는 1996년 아시안컵 대회를 통해 한국민들에게 씻을 수 없는 치욕을 남기며 자신의 이름을 각인시켰다. 한국 축구 60년 역사에서 ‘비극’이란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참패는 딱 두 번밖에 없다. 하나는 1994년 미국 월드컵을 앞둔 아시아 지역 예선전에서 미우라 가즈요시를 앞세운 일본 대표팀에 0-1로 패한 카타르 ‘도하의 비극’이고, 다른 하나는 아랍에미리트 두바이에서 열린 11회 1996년 아시안컵 축구대회 8강에서 이란에 당한 2-6 참패를 일컫는 ‘두바이의 비극’이다. 그 경기에서 다에이는 노장 김주성-김판근-신홍기-이영진, 앞으로 한국 축구 10년을 짊어지게 될 홍명보-황선홍-유상철-서정원-고정운 등 젊은 피를 앞세운 아시아 호랑이에게 1어시스트, 4골을 퍼부으며 초토화시켰다. 그 충격으로 축협의 정몽준 1인 체제에 첫 균열이 생겼고, 한국 축구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나타나 쓴소리를 퍼부었던 박종환 감독은 다시는 대표팀 지휘봉을 잡을 수 없게 된다.
사우디, 선수 해외 진출 금지시켜
다에이는 말 그대로 이란 축구의 선구자였다. 그는 1993년 카타르 도하에서 있었던 미국 월드컵 아시아 최종 예선에서 이란의 탈락에도 득점왕과 MVP로 선정됐고, 1997~1998 시즌 독일 분데스리가 아르미니아 빌레펠트로 이적하며 현재의 이란 스타플레이어들이 독일 무대에서 활약하는 기초를 만들었다. 빌레펠트에서 1년간 활약한 뒤 독일 최고의 팀인 바이에른 뮌헨에서 뛴 최초의 이란 선수가 됐으며, 헤르타 베를린 소속이던 1999~2000 시즌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으로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에서 득점을 올렸고, 이탈리아 명문 AC밀란을 예선에서 탈락시킨 주인공이었다. A매치에서 100골을 돌파한 유일한 축구선수는 ‘축구황제’ 펠레가 아닌 이란의 알리 다에이다. 이란의 분데스리가 트리오 ‘헬리콥터’ 하셰미안(30·하노버96), 2002~2003 시즌 분데스리가 어시스트왕 마다비키아(29·함부르크SV), ‘중동의 마라도나’ 알리 카리미(28·바이에른 뮌헨)가 버틴 이란이 이번 대회에서 보여준 무기력한 모습은 아시아인들이 받아들이는 이번 대회 가장 큰 이변이다.
이란의 몰락만큼 극적이었던 것은 사우디아라비아의 몰락이었다. 다 잡았던 경기를 무승부(2-2)로 마무리한 튀니지전까지만 해도 사우디아라비아에 기회가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들은 득점 기계 첸코가 버틴 우크라이나에 0-4의 허무한 패배를 당하며 지긋지긋한 유럽 징크스를 벗어나지 못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월드컵 데뷔 무대인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벨기에·모로코를 차례로 격파하며 16강에 진출해 아시아 돌풍을 일으켰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미국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스웨덴(16강전)에 연패한 뒤 사우디아라비아는 이번 우크라이나전까지 유럽팀을 상대로 7전7패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수립했다. 1998년 프랑스 대회에서는 개최국 프랑스에 0-4로 졌고, 2002년 한-일 월드컵 때는 첫 상대인 아일랜드에 0-3으로 패한 뒤, 운명의 그날인 2002년 6월1일 독일에 0-8의 치욕을 당했다. 그들은 2골을 넣는 동안 무려 25골을 내줬다. 이번 대회에서도 지난 아시아 지역 최종 예선전에서 한국팀을 연파할 때 보여줬던 알테미아트(30·알힐랄)의 신기에 가까운 움직임은 볼 수 없었다.
사우디아라비아팀의 부진에 대해 전문가들은 “자국 리그 출신들로만 대표팀이 구성돼 큰 경기에 약한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박종환 대구FC 감독은 “사우디아라비아는 홈이나 중동 지역을 떠나면 제 기량의 60%밖에 발휘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사우디아라비아는 자국 리그 육성을 위해 선수들의 해외 진출을 법으로 막고 있다. 이제 그런 고립 정책을 버려야 할 때가 됐다는 의견도 적지 않지만, 사우디아라비아 축구협회는 아직 요지부동이다.
일본, 경기력만은 가장 훌륭
일본은 크로아티아(0-0)와 오스트레일리아(1-3)와의 시합에서 경기력으로만 따지면 아시아에서 가장 훌륭한 전력을 보여줬다. 그들은 유럽식 축구를 구사하는 두 나라와의 미드필더 싸움에서 밀리지 않았지만, 골 결정력 부족과 막판 체력 저하로 실망스런 성적표를 안은 채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브라질 전 1-4패배는 그냥 접어두자. 이제는 돌아와 평범한 선수가 되어버린 듯한 나카타 히데토시(29·볼턴 원더러스)를 바라보는 한국 축구팬의 마음은 안타깝다 못해 허전하다.
한국을 제외한 아시아 3개국의 지금까지 월드컵 성적을 꼽아보면 이란(2번 출전) 1승2무6패, 사우디아라비아(4번 출전) 2승2무9패, 일본(2번 출전) 2승2무6패 등 모두 5승6무21패다. 한국팀이 아시아의 마지막 자존심을 지켜줄 수 있을지, 30억 아시아인의 이목이 ‘태극전사’들에게 집중돼 있다.(마지막 문장은 스위스전 결과에 따라 변경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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