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개헌과 짝짓기 놀이

등록 2006-05-31 00:00 수정 2020-05-03 04:24

실현 가능성은 낮지만 정계 개편의 불쏘시개로 작용할 가능성 커… 대선 앞두고 판 흔들어야 하는 반한나라당 진영의 연합 명분으로

▣ 류이근 기자 ryuyigeun@hani.co.kr

“실현 가능성은 낮지만 정계 개편의 명분은 될 수 있다.”

5·31 지방선거 뒤 예상되는 정계 개편의 회오리와 개헌의 함수관계를 압축하면 이렇다.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말은 2007년 대선 전 헌법을 뜯어고치기 어렵다는 뜻이다. 여기에 ‘3불’이 있다. 정치권의 합의가 거의 불가능하고 시간이 물리적으로 불충분하고 밑으로부터의 요구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고건에겐 세 규합의 찬스

가장 큰 장애는 정치권의 합의 도출이 힘들다는 점이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지난 5월9일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선거가 가까운 시점에 개헌 논의를 하면 정략적으로 이용되고 블랙홀처럼 모든 문제들이 거기 빨려들어갈 수 있어 바람직하지 않다”고 밝혔다. 며칠 있다가 정동영 열린우리당 의장이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는 부자연스러운 대통령 무책임제다.

내년이 개헌을 하기에 가장 적절한 시점”이라고 개헌론에 불씨를 지폈지만, 제1야당의 대표, 그것도 대권의 가장 유력한 후보 중 한 명이 반대하면서 불이 붙기 어려운 조건에 부닥쳤다. 또 다른 유력 대권 주자인 한나라당의 이명박 서울시장은 일찌감치 개헌 불가론을 펴왔다.

시간도 넉넉하지 않다. 대선이 1년 반밖에 남지 않았다. 정치권이 하반기에 곧장 논의에 들어간다고 치더라도 시민사회의 의견을 수렴하고 국민투표에 부치려면 시간에 쫓기기 마련이다. 17대 국회 들어 김덕룡 전 한나라당 원내대표가 2005년초 정기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개헌론을 처음 공론화한 이후 지금까지 논의를 시작하지 못하면서 결국 정치권이 “실기했다”는 평이 많다.

밑으로부터 요구가 강하지 않아 동력을 얻기도 어렵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시민사회의 밑으로부터의 요구에 따른 개헌을 마지막으로 국민의 관심은 그리 크지 않았다. 줄곧 정치권 중심의 논쟁으로 등장했다가 사라지곤 했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헌법 3조)는 영토조항을 비롯해 기본권 강화 등 변화된 시대의 요구를 담아낼 수 있는 새 틀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보수나 진보 진영 양쪽 다 일부 학자 그룹과 정치인들을 중심으로 나름대로 준비를 해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국민의 절반 정도가 개헌의 필요성에 공감할 뿐 다수를 차지하지 못하고 시기적으로도 시급한 과제로 인식하지 않는 분위기다.

이런 조건에도 불구하고 개헌론을 불가능한 일로만 치부할 순 없다. 여야 정치권의 합의를 초월해 개헌으로 가는 길도 있다. 바로 노무현 대통령이 개헌을 국민투표에 부치는 방법이다. 물론 국민적 지지와 정치권의 합의가 없다면 아무리 대통령 중심제라 하더라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지난해 대통령 혼자 고집스럽게 밀고 나간 대연정의 실패가 그렇다.

어쨌든 실현 가능성 유무를 떠나 개헌이 이미 정치권의 중요한 화두로 떠올랐다. 5·31 이후 예상되는 정치권의 소용돌이 속에서 짝짓기의 명분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적지 않다. 특히 정책과 노선에 따른 헤쳐모여 방식의 정계 개편이라면 개헌의 내용에 대한 입장 차이가 곧 그 기준이 될 수도 있다. 개헌의 폭발성이 가장 큰 시나리오다.

내용 이전에 개헌의 찬반 여부에 대한 태도로 전선이 형성될 수도 있다. 집권 가능성이 높은 대권 후보들이 포진한 한나라당은 대선 전 개헌에 반대한다. 반면에 열린우리당은 최근 정동영 의장 등 당 지도부가 개헌의 불씨를 지피는 등 적극적이다. 고건 전 총리는 개헌에 소극적인 편이지만 당이 없는 현 상태에서 대선을 치를 수 없는 처지다. 따라서 개헌 등을 매개로 한 정치권의 소용돌이를 기대하고 있다. 고건 쪽 한 인사는 “고건의 입장에서 개헌은 세 규합의 ‘찬스’가 생기는 것”이라며 “개헌에서 동력을 얻지 못하면 어렵게 자기 세력을 창출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린다”고 말했다. 고건은 당장 참여정부 기간 내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의 시기를 하나로 일치시켜 정치 비용을 줄여야 한다는 최소한의 개헌 범위에 동의한다.

따라서 느슨하게나마 개헌 찬반 여부에 대한 입장은 크게 한나라당과 반한나라당의 정치적 구도를 형성할 수 있다. 반한나라당 진영에서 갈라져 있는 큰 틈들을 메울 수 있는 수단으로 활용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이 구도는 대선을 앞두고 판을 흔들어 다시 짜야 하는 급박한 세력과 그렇지 않은 느긋한 세력의 대립이기도 하다. 물론 여기에 민주노동당은 쉽게 휩쓸릴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한나라당에 불붙을 가능성도”

한나라당 내 개헌 지지그룹들도 적지 않지만 대선 후보들이 명확한 반대 입장을 보이는 상황에서 이탈 행동을 보일 가능성은 낮다. 당론 확정 등의 과정을 통해 얼마든지 집단속을 할 수도 있다. 남경필 한나라당 의원은 “개헌이 실제 달성될 가능성은 없지만 정계 개편의 불쏘시개로 쓰일 순 있다. 옆집에서 불나면 옮겨붙듯이, 바람이 어디로 부느냐에 따라 오래된 목조건물인 한나라당으로 정계 개편의 불이 옮겨올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국민들이다. 개헌에 대한 찬반으로 정치권이 갈린다고 하더라도 반한나라당 진영 중심의 개헌 찬성론자 쪽에 얼마만 한 국민적 지지가 실릴 것인지가 관건이다. 민병두 열린우리당 의원은 “지금 개헌의 정당성이 약한 상황에서 국민들의 입장에선 ‘그건 내 문제가 아니다’라는 식의 분위기가 강하다. 따라서 개헌을 강하게 얘기하는 세력이 국민들의 확실한 지지를 얻어내긴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개헌이 대선공약의 묶음에 하나로 들어가는 방법도 가능하다. 한나라당의 입장과도 일치하는 것이어서 논란의 여지 또한 적다. 박근혜 대표 쪽의 유승민 의원이나 이명박 서울시장 쪽의 정두언 의원은 “차기 대선후보가 공약을 해 다음 정부에서 개헌을 추진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논란의 여지가 적은 만큼 현 정치구도를 뒤흔들 만한 폭발성도 그만큼 적다. 판을 다시 짜야 하는 반한나라당 진영에선 큰 의미가 없는 카드이기도 하다.



개헌의 역사, 그 빛과 그림자

독재정권 연장 위해 끊임없는 개헌 시도…6월항쟁은 민주주의의 산물로

▣ 최은주 기자flowerpig@hani.co.kr

아쉽게도 개헌은 정권 창출이나 연장의 목적으로 자주 이용돼왔다. 헌법 제정 이후 9차례 개정에서 국민의 의사가 반영된 적은 단 두 차례밖에 없었다. 헌법 개정의 역사는 ‘발췌개헌’ ‘사사오입’ ‘날치기 개헌’ ‘삼선개헌’ ‘유신헌법’ ‘4·13 호헌조치’ 등으로 얼룩져 있다.
헌법에 처음 손을 댄 이는 이승만 대통령이다. 1952년 7월1일, 그는 국회에서 대통령으로 당선될 가능성이 없게 되자 선거 방법을 간접선거에서 직접선거로 바꾸는 직선제 개헌안을 내놨다. 그리고 2년 뒤 연임을 두 번으로 제한한 헌법 규정을 고쳐 초대 대통령에 한해 연임 제한 규정을 적용하지 않는다는 ‘특정인 예외조항’을 두는 개헌안을 통과시키는 뻔뻔함을 보였다.
이승만에 이어 박정희도 정권 연장을 위해 끊임없이 개헌을 시도했다. 1969년 10월21일 경제개발을 명분으로 대통령 연임을 3기로 연장하는 개헌안을 통과시켰다. 이윽고 1972년엔 유신헌법을 만들어 사실상 정권교체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10·26으로 권좌에 앉은 전두환은 국회를 해산하고 ‘국가보위입법회의’라는 기구를 만들어 대통령 선출을 간선으로, 임기를 7년 단임으로 멋대로 고쳤다.
헌법 개정에 늘 그늘진 역사만 있는 것은 아니다. 독재정권에 대한 민중의 항쟁과 민주주의의 산물로서도 존재한다. 1960년 6월15일 의원내각제를 내용으로 하는 3차 개헌은 4·19 혁명을 통해 이승만을 몰아낸 뒤 얻어진 역사적 성과였다. 또 87년 6월항쟁은 대통령직선제와 5년 단임제를 내용으로 하는 현행 헌법을 만들어냈다.
임지봉 서강대 교수(헌법학)는 “지금까지 개헌은 정치권에서 정치적 손익계산에 의해 추진돼왔다”며 “앞으로 국민 기본권 보장 문제에 초점을 맞춰 국민이나 시민사회에서 먼저 개헌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