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반전반핵 양키고홈’은 끝났는가

등록 2006-04-27 00:00 수정 2020-05-03 04:24

80년대 운동권과 2000년대 학번들이 토론해본 김세진·이재호와 미국… “반미 담론을 지겨워하는 학생들이 많지만 현실이 변한 것은 아니다”

▣ 사회·정리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세대가 바뀐 듯한 착각이 들기도 했다. 김세진·이재호 열사 20주기를 맞아 83·85학번과 02·05학번 대담을 위해 섭외를 할 때만 해도 이런 식으로 대화가 진행될 것으론 예상하지 못했다. 80년대 선배 세대들이 학생시절 했을 법한 말은 2000년대 후배 세대 입에서 오히려 많이 나왔다. 1986년 서울대 총학생회장을 지낸 김지용(43)씨와 당시 분신 현장에서 시위에 참여했던 선주성(41)씨, 이들과 20년 터울인 대학 후배 황인환(24)·임우섭(21)씨가 4월13일 한겨레신문사 4층 회의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이들이 예정시간을 훌쩍 넘겨 ‘미국과 우리’를 주제로 2시간 반가량 벌인 토론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그때, 반미는 무조건 좌경이고 친북

-사회: 우선 자기 소개부터 해보자.

=임우섭(이하 임): 정치학과 05학번이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났다. 외교관이 꿈이었고, 기왕 외교관이 된다면 주미대사 정도는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대학에 와서 현대사 공부를 하면서 그동안 내가 왜곡된 대미 인식을 갖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일들을 접하면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봐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주변 친구나 선후배들에게 대추리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얘기를 하면 ‘지금은 80년대가 아니다. 현실적인 얘기를 하라’는 반응도 있다. 하지만 세상 바뀐 거 별로 없다고 생각한다.

=황인환(이하 황): 대기과학과 02학번으로 자연대 학생회장을 맡고 있다. 김세진·이재호 열사 추모제 준비위원회 일도 하고 있다. 그들이 외쳤던 ‘반전반핵 양키고홈’이라는 구호는 여전히 의미가 크다고 본다. 한-미 FTA만 보더라도 협상이 이뤄지기 전부터 스크린쿼터 축소와 소고기 수입 재개 등 양보를 하는 굴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선주성(이하 선): 독문과 85학번이고, 김세진·이재호 열사 분신 당시 2학년 과대표로 분신현장에 있었다. 그때 우리의 구호는 ‘미제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반대’였다. 그때는 우리 사회의 모순구조를 설명하는 데 자본주의 체제론이나 계급론으로 설명하지 못했던 의문이 ‘미국’이란 고리를 통해 풀렸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면 대단히 돌출적인 구호였다.

=김지용(이하 김): 국제경제학과 83학번으로 86년 당시 총학생회장이었다. 당시 총학생회장 출마의 변을 담은 대자보 한 장을 붙이자마자 그날 저녁 9시 뉴스를 통해 내가 수배됐다는 소식을 들었다. ‘미국을 반대한다’는 내용을 썼기 때문이다. 반미는 무조건 좌경이고, 이는 친북이란 게 당시 인식이었다. 처음에는 그렇게 심각할 줄 몰랐는데, 사회적 반향이 컸다. 당시만 해도 학생들의 미국에 대한 감정은 민주주의를 확산시켜야 할 미국이 독재를 비호하니까 싫다는 정도가 고작이었다.

-사회: 자연스럽게 미국 얘기가 나왔다. 선배 세대가 80년대의 ‘미국’에 대한 인식을 먼저 들려주면 어떤가.

=선: 그 전에 후배들에게 김세진·이재호 열사의 분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고 싶다.

=임: 전방입소 거부와 반전반핵을 주장한 것으로 안다. 그 외침은 지금도 유효하다. 한-미 FTA 문제도 그렇고, 미군기지 이전이나 이라크 파병 문제 등을 보면 사회 분위기가 많이 바뀌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현실은 별반 변한 게 없다고 생각한다. 동국대 강정구 교수 사태에 대해 일부 언론에선 사설을 통해 강 교수가 제정신인지 묻고 반국가적이라고 규정했다. 그 이유가 ‘은인의 나라’ 미국을 ‘원수’라고 했고, 한국전쟁을 ‘통일전쟁’이라고 했다는 게다. 통일전쟁이란 표현은 논외로 하더라도 미국을 ‘원수’라고 했다고 반국가적이라고 하는 건 심하다.

지배와 피지배 관계로 보아야 할까

=선: 후배 의견을 먼저 물은 이유는 개인적으로 80년대에 주장했던 내용에 대해 지금은 동의하지 않는 부분도 있기 때문이다. 생각은 달라질 수 있어도 치열하게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 본받아야 하는 삶의 자세로서 김세진·이재호 열사를 받아들인다. 다만 당시 상황인식이 정말 올바른 것이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다. 현실이 바뀌지 않았다고 했는데, 그에 대해서도 생각이 다르다. 전체적으로 미국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피해를 본 게 많은지 혜택을 본 게 많은지 되묻고 싶다. 1945년 이후 세계 질서가 사회주의권과 자본주의권으로 재편되는 과정에서 우리 선택은 아니었지만, 점령이든 분할지배든 간에 미국 영향권으로 들어갔다. 우리 입장에선 결과적으로 혜택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황: 한-미 FTA 협상이 이뤄지기 전부터 소고기 수입 재개니 스크린 쿼터 축소니 양보안을 내놨다. 쌀 문제도 그렇고, 우리가 협상에서 쥐고 있어야 할 무기인데 모두 포기했다. 평택 미군기지 이전 비용 문제도 그렇고, 미국의 대북 압박도 지속되는 등의 현실을 볼 필요가 있다.

=선: 한-미 FTA 협상에 앞서 미국이 양보를 하라고, 협상 카드 다 꺼내놓으라고 압력을 행사했다고 보진 않는다. 문제가 있었다면 정부 협상력의 미숙함 때문이 아닐까?

-사회: ‘반전반핵 양키고홈’이란 구호가 당시 상황에서 적절했는가 하는 의문이 나왔는데.

=김: 그 말을 하기 전에 한마디 하자. 엄밀히 말해 협상은 주고받아야 한다. 우리가 (미국과) 협상할 때 유력한 카드가 있는지 묻고 싶다. 현재 세계는 미국이 자기 구도로 재편해가는 과정이다. 80년대와 지금이 많이 다르다고 하는 건 무리가 있다. 나보다 힘센 애가 나를 때릴 게 뻔한데,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외교당국자들도 미국을 엄청 짝사랑하거나, 미국의 우산 밑에 있는 것이 낫다는 시각을 유지하고 있다. 미국에 대해 20년 전 외쳤던 구호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선: 미국에 대한 인식은 단순히 80년대식으로 종속, 지배와 피지배 관계로 보면 우리가 갖고 있는 생존의 문제, 민족 문제 해결에 실마리가 없다고 본다. 당위적으로 말해선 아무런 해결책이 나오지 못한다. 대등한 관계에서 협상하고 싶어도 힘이나 카드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측면이 있다. 국가와 국가 사이에서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선 필요하다면 비참하게 얘기해 ‘구걸’이라도 할 수밖에 없지 않나.

-임: 미선이·효순이가 죽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다. 하지만 안톤 오노가 김동성의 금메달을 뺏어갔을 때만큼 많은 사람들이 분노했던가? 금메달 300개를 뺏겨도 좋다. 어린 학생 두 명이 목숨을 잃었는데 재판도 제대로 못하는 게 현실이다. 먹고사는 문제가 아니라 사느냐 죽느냐의 문제다. 시대가 바뀌었다고 말하기 전에 우리가 현실을 제대로 보고 있는가 묻고 싶다.

냉전시대의 짝사랑은 계속된다

=김: 당시 상황이 무척 어려웠다. 반미를 말하면 곧바로 수배·구속으로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때문에 85년 미 문화원 점거농성 때조차 독재정권을 지원하는 미국에 반대한다는 정도의 주장만 내놨다. 하지만 자주·민주·통일 가운데 ‘민주’만 따로 떼어내서는 민주화도 어렵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자주와 민주와 통일을 함께 가져가야 한다는 판단이 내려졌고, 그 중심으로 반미 구호가 전면에 부각된 것이다. 그때 힘들었던 건 우리 주장을 전달할 수 있는 매체가 없었다는 점이다. 그래서 수유리 4·19 묘역에서 몇 시간 동안 머리를 맞대고 투쟁위원회 이름을 ‘전방입소 훈련 전면 거부 및 미제 군사기지화 결사저지를 위한 특별위원회’라고 거창하게 지었다. 신문에 위원회 이름만 나오더라도 우리가 하고 싶은 얘기는 다 나오는 거라고 생각했다. (웃음)

-사회: 한-미 관계가 20년 전에 비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고 했는데, 그 이유는 뭐라고 보나?

=김: 월드컵 때 터키팀에 대해 ‘친구 나라’라고 불렀는데, 그 이유가 한국전쟁 때 파병을 했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많이 웃었다. 미국에 대한 ‘애정’이라는 것도 ‘유사시’ 우리를 보호해줄 것이란 건데, 이는 북한과의 적대관계가 전제돼 있는 생각이다. 냉전논리다. 미군이 철수하면 북한에 먹힌다는 의식이 남아 있는 한 미국에 대한 짝사랑은 계속될 것이다.

=황: 우리 사회 구조가 그대로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양한 생각이 있겠지만, 기본적으로 미군이 지금까지도 주둔하고 있는 근거가 뭔가? 전쟁 위험성 아닌가. 다른 한편으로 미국은 계속 북을 압박하고 위협하고 있다. 이름은 바뀌었지만 수구적인 세력이 여전히 정치권을 주도하고 미국과 결탁해 있다. 미군기지 이전 문제와 한-미 FTA도 그렇고 피해자는 항상 정해져 있다. 노무현 정부가 동북아 균형자론이니 자주국방이니 하는 얘기를 했지만, ‘정치’를 잘한다는 생각밖에 안 든다. 반미 정서가 높으니 그런 쪽으로 정치공세를 한 것이라고 본다.

=임: 우리 사회에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북한을 보는 시각과 미국을 보는 시각이 전반적으로 크게 바뀌지 않는 탓도 있다고 본다.

=김: 글쎄…. 일부 수구세력을 빼곤 많이 바뀌었다고 본다. 예전엔 북한과 체육경기를 해 지면 매국노 취급을 받지 않았나. 북-미 대결이 있으면 당연히 미국을 응원했고. 요즘은 정서적으로 정반대가 아닌가.

=임: 우리 사회를 이끌어가는 주도세력은 바뀌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냉전적 역사인식이 횡행하는 단적인 예가 지금도 많다. 이라크 파병할 때도 미국이 은인인데 안 갈 수 있느냐는 얘기까지 나왔다. ‘은인’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북에 의한 적화통일을 막아줬다는 거 아니냐. 냉전적 역사의식은 여전히 살아 있다. 미국은 혈맹이자 방패로, 떼려야 뗄 수 없는 우방이므로 짝사랑이 계속되고 있는 거다.

=선: 기본적으로 짝사랑을 하는 수구세력도 있겠고, 그에 따라 득을 보는 세력이 있기도 할 텐데.

미국을 너무 배척하려는 생각도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다고 본다. 다른 측면에서 한-미 관계와 관련해 노무현 정권이 어떤 현실적 벽에 부딪힌 건 아닌지 하는 생각도 든다. 정치는 현실이고, 파병에서부터 FTA 문제까지 정책 결정을 내릴 때 고려해야 할 사항도 많을 것이다. 이런 것들이 지금 겉으로 보이는 현실로 나타나고 있는 게 아닐까 한다.

그들이 던진 고민의 핵심은 바뀌지 않아

-사회: 김세진·이재호 열사 20주기다. 지금 시점에서 미국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임: 지난 20년 동안 많은 게 변했다고 생각한다. 학생사회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미국 문화에 대단히 익숙해졌고, 반미 담론을 지겨워하다 못해 싫어하는 학생들도 많다. 사회가 바뀌어서 고민이 필요 없어진 것인지, 문제 자체가 없어진 것인지 아니면 누구도 고민을 던져주지 않는 게 문제인지 모르겠다. 반미가 중요한 게 아니라 고민의 기회를 가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김세진·이재호 열사가 던져놓은 고민의 핵심은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다.

=선: 예전에 가졌던 생각과 바뀐 것도 있고, 동의할 수 있는 생각도 있다. 막연하게 미국이 좋다거나 싫다거나 하는 건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반미든 친미든 미국에 대한 구체적이고 명확한 인식이 필요하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