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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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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이모와 성룡의 용쟁호투

등록 2006-03-17 00:00 수정 2020-05-03 04:24

대중문화 예술인 분야 1·2위, 스포츠 스타는 이치로와 야오밍 공동 1위
한류스타로는 <겨울연가>의 남녀 주인공인 배용준과 최지우가 1위 차지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중국은 문화 강국, 일본은 스포츠 선진국? 아시아 기자들은 그렇게 생각한다. <한겨레21>은 아시아 기자들을 대상으로 ‘아시아를 대표하는 대중문화 예술인’ ’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포츠 스타’를 물었다. ‘아시아에서 가장 인기 있는 한류 스타가 누구인지’도 조사했다. ‘대략’ 대중문화는 중국이 강했고, 스포츠는 일본이 셌다. 한국은 양쪽에서 선전했지만, 아직은 최정상에 서지는 못했다. 또 하나, 아시아는 하나가 아니었다. 기자들의 취향은 동아시아권과 서남아시아권으로 확연하게 나뉘었다.

중국은 문화, 일본은 스포츠?

아시아 대중문화예술 대표 ‘선수’로는 중국의 장이모 감독(11%)이 뽑혔다. 장이모 감독은 1988년 베를린영화제에서 <붉은 수수밭>이 작품상을 받으면서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그는 중국의 현실에 천착한 영화적 경향을 공유했던 중국 제5세대 감독의 대표주자로 꼽혔다. 장이모 감독은 <귀주 이야기>로 베니스영화제, <인생>으로 칸영화제에서 상을 받으며 명장의 반열에 올라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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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의 붉은 색채의 영상은 전형적인 오리엔탈리즘의 반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다른 제5세대 감독들처럼 1980년대 중국 정부와 불편한 관계였던 장이모는 2000년대 들어 중국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으며 중화형 블록버스터 <영웅>과 <연인>을 만들었다. 두 영화로 중국 영화 흥행 기록을 스스로 경신하며 중국의 국민감독으로 떠올랐다. 장이모는 어쩌면 가장 중국적이면서 가장 오리엔탈리즘적인 감독이다. 그런 장이모의 1위는 아시아의 내면에 공존하는 아시아적 가치에 대한 고수과 세계적인 것에 대한 선망이라는 이중의 콤플렉스를 드러낸다.

중국 감독에 이어 중화권 배우들이 2, 3위를 석권했다. 홍콩 배우 성룡은 8%의 지지로 2위를 차지해, 홍콩 영화는 죽었지만 홍콩 배우는 죽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성룡은 방글라데시 등 서남아시아 기자를 제외한 통계에서는 장이모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다. 중국 여배우 장쯔이는 짧은 경력에도 3위(6%)를 차지했다. <게이샤의 추억>을 통해 할리우드까지 진출한 장쯔이의 거침없는 성장세를 보여주는 결과였다. 대만 출신으로 미국에서 활동하는 리안 감독은 서남아시아 기자들에게는 전혀 지지를 받지 못했으나 동아시아 기자들의 집중적인 지지를 받으며 공동 4위(5%)를 기록했다. 일본인으로는 ‘재패니메이션’의 개척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공동 8위(4%), <라쇼몽>의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이 10위(4%)를 차지했다. 분야별로는 배우(48%)와 감독(37%)이 가수(13%)를 압도했다. 감독은 장이모, 배우는 성룡, 가수는 보아가 1위였다. 보아는 4%(10명)의 지지로 7위를 차지해 한국인 중 가장 높은 순위에 올랐다. 이어서 배용준이 4%(9명)로 9위, 비가 2%로 14위를 차지했다.

서남아시아 기자들의 몰표를 받은 발리우드 배우들의 선전도 돋보였다. 발리우드의 여왕 아이시와라 라이는 공동 4위(5%·12명), 발리우드의 전설 아미탑 바흐찬은 6위(5%·11명)를 차지했다. 라이는 <신부와 편견>을 비롯해 30여 편의 영화에 출연한 여배우다. 라이는 2005년 칸영화제 개막식에서 사회를 맡을 만큼 명성이 높다. 아미탑 바흐찬은 라이에게 미래의 시아버지다. 라이는 아미탑 바흐찬의 아들인 아비섹 바흐찬과 결혼을 약속한 사이다. 예순을 넘긴 아미탑 바흐찬은 영화계뿐 아니라 정계와 재계에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인도 영화의 전설이다. 인도의 리얼리스트 감독, 사트야지트 레이는 14위(2%)로 서남아시아 영화감독 중에 가장 높은 순위를 기록했다.

발리우드 배우들의 선전 돋보여

한류 스타로는 역시 배용준이 뽑혔다. 배용준은 24%의 지지로 2위인 최지우(13%)를 따돌리고 1위를 차지했다. <겨울연가>의 남녀 주인공이 1, 2위를 차지해 일본과 중국을 거쳐 동남아를 지나 서남아까지 휩쓸고 있는 ‘윈터 소나타’의 위력을 다시 한 번 증명했다. 보아와 비, 대표적인 한류 가수들이 3위(8%)와 4위(5%)를 차지했다. 보아는 ‘아시아를 대표하는 대중문화 예술인’ 조사에서는 한국인 중 1위였지만, 한류 스타로는 3위에 그쳤다. 배용준이 보아를 앞선 조사는 ‘드라마 한류’가 ‘가요 한류’보다 거세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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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에서는 다양한 대답이 나왔지만, 서남아시아에서는 응답자 전원이 최지우를 뽑았다. 역시 <겨울연가>의 위력으로 짐작된다. 이런 현상은 아직 한류가 동아시아를 넘어 아시아 전체로 확산되지 못한 현실을 방증한다.

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포츠 스타로는 스즈키 이치로(일본)와 야오밍(중국)이 18%로 공동 선두를 기록했다. 이치로는 메이저리그 시애틀 마리노스 소속으로 메이저리그(MLB) 한 시즌 최다 안타 기록을 가지고 있다. 야오밍은 226cm의 신장에 유연한 몸놀림으로 미국 프로농구(NBA) 휴스턴 로케츠의 주전 센터로 활약하고 있다. 나카다 히데토시가 7위(4%), 마쓰이 히데키가 10위(3%), 아라카와 시즈카가 11위(2%)를 차지해 일본 선수들의 활약이 돋보였다. 나카다는 잉글랜드에서 뛰는 축구 선수, 마쓰이는 뉴욕 양키스 소속의 타자이다. 아라카와는 토리노올림픽에서 아시아 국적 선수로는 처음으로 여자피겨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따냈다. 스포츠 강국, 중국 선수로는 오직 야오밍만이 10위에 드는 이변이 연출됐다. 한국인으로는 프리미어리그(EPL)에서 뛰고 있는 박지성 선수가 공동 6위(9%)로 유일하게 10위 안에 들었다. 이 밖에 박찬호가 13위(2%·4명), 박세리가 14위(2%·3명)를 기록했다. 동아시아 기자들의 응답만 놓고 보면 박지성은 3위를 차지했다. MLB의 이치로, NBA의 야오밍, EPL의 박지성, 동아시아 기자들이 1~3위로 꼽은 선수들은 모두 서구에서 뛰고 있는 선수들이다. 아시아 선수가 아시아 대표선수가 되기 위해서는 서구에서 뛰어야 하는 역설이 성립한다. 이처럼 스포츠에서 서구 중심성은 더욱 강하다. 한편 아시아인으로는 최초로 세계 랭킹 10위권에 진입했던 타이의 테니스 스타 파라돈 스리차판이 한 표도 얻지 못하는 이변도 연출됐다.

서남아시아는 크리켓 스타 일색

스포츠에서 아시아는 동서로 분할됐다. 동아시아 기자들이 아시아 스타로 야구·축구·농구 선수들을 꼽은 반면 서남아시아 기자들은 크리켓·테니스 선수들에게 몰표를 던졌다. 서남아시아 기자들의 지지에 힘입어 인도 여자 테니스의 샛별 사니아 미르자가 3위(10%)에 올랐다. 미르자는 인도 선수 최초로 2005년 US오픈 16강에 올랐다. 미르자는 지난해 <타임>이 발표한 ‘2005 아시아의 영웅’ 20인에 박지성과 함께 뽑혔다. 미르자를 제외하면 크리켓 스타 일색이었다. 서남아시아에서 크리켓이 ‘유일한’ 인기 스포츠임을 증명했다. 스리랑카의 크리켓 노장 영웅 사나스 자야수리야와 방글라데시의 젊은 스타 무함마드 아시라풀(22)이 공동 4위(9%)를 차지했다. 파키스탄의 인자맘 울하크가 7위(4%·7명), 인도의 연수입 500만달러의 사나이 텐둘커가 8위(4%·6명)로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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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리랑카, 방글라데시, 파키스탄, 인도의 크리켓 스타가 각각 1명씩 무려 4명이 10위 안에 올랐다. 종목별 분류에서도 크리켓 선수를 꼽은 횟수는 30회로, 야구(18), 축구(14), 농구(11), 테니스(10)를 제치고 단연 1위를 차지했다. 그러면 아시아를 대표하는 스포츠는 크리켓인가? 설문은 그렇게 말한다. 아시아는 넓고 취향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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