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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디보단 마오쩌둥이 낫지 않나?

등록 2006-03-17 00:00 수정 2020-05-03 04:24

중국·베트남·일본 특파원들이 머리를 맞대고 뒤집어본 설문조사의 의미
아시아가 공유하는 가치는 새로운 문화의 힘, ‘위험한 한반도’에 동의한다

▣ 사회 류이근 기자/ 한겨레 경제부 ryuyigeun@hani.co.kr
▣ 정리 정인환 기자/ 한겨레 국제부 inhwan@hani.co.kr

<한겨레21>이 아시아 15개국 100명의 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이번 설문조사는 ‘아시아’가 처한 정치, 사회, 문화, 경제적 현안 등에서 공통의 관심사와 이해가 뭔지를 찾고자 기획된 것이다. 그러나 대전제인 ‘아시아’가 어떤 형식으로든 하나의 묶음이 될 수 있을지에서부터 의문과 고민이 시작됐다. 그럼에도 응답자의 84%가 아시아의 공통의 가치가 있다고 응답했다. 설명은 다 달랐지만 아시아적 정체성이 뭔가가 존재한다고 동의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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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은 일본과 중국, 베트남의 한국 특파원 셋과 머리를 맞대고 그 정체성을 찾아보고 이번 설문조사의 의미를 되집어 봤다. 서남아시아와 남부아시아의 기자들이 빠진 것은, 한국에 주재 기자가 없고 다른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해서다. 그래서 이번 논의가 자칫 불교문화권이나 중화문화권에 속한 일부 나라들의 논의에 그친 것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굳이 변명할 수도 없는 처지라는 점을 먼저 밝혀둔다.

인도 동쪽이 진짜 아시아?

사회: <한겨레21>은 지령 600호를 기념해 아시아 15개국 기자를 상대로 아시아인의 공통 관심사를 주제로 설문을 벌였다. 설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부터 듣고 싶다.

부 주이 흥 <베트남통신> 지국장(이하 흥): 베트남 언론계는 서구 언론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아시아 언론사들이 긴밀한 협의를 통해 서로의 사고방식을 알아가는 게 필요하고 또 중요하다고 본다.

이치카와 하야미 <아사히신문> 지국장(이하 이치카와): 각국 기자를 상대로 한 이런 종류의 설문은 처음 본다. 설문 결과를 보니, 상식적인 답변이 나온 것 같다. 상상할 수 있는 내용들이고,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다.

쉬 바오 캉 <인민일보> 지국장(이하 쉬): 그래도 의미는 있다고 본다. 세계 경제 발전의 중심축이 아시아로 옮겨오면서 아시아는 아시아인뿐 아니라 세계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한 가지 강조하고 싶은 건 아시아인 사이에 믿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인데….

사회: ‘아시아인’이라고 했을 때 서로 공유하는 가치와 문화는 뭘까?

이치카와: 질문에 답하기 전에 ‘최악의 지도자’로 사담 후세인이 순위에 올랐는데, 개인적으로 이라크 등 중동 지역까지 아시아라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인도를 기준으로 동쪽이 우리가 말하는 아시아가 아닐까? 내가 느끼는 아시아인은 뭐랄까, 합리적이지 않고 뭔가 애매한 느낌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 사이의 관계, 사람과 사회의 관계에서 그런 ‘감성적 코드’가 있는 것 같다. 일본인이어서 그런지 불교적 느낌도 공통점으로 볼 수 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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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 응답자의 80% 이상이 공유하는 가치와 문화가 있다고 하지 않았나? 분명 뭔가 있다. 종교뿐 아니라 중동이나 서구와는 다른 뭔가가 있다. 불교나 유교를 각 나라마다 받아들인 방식이 조금씩 다르지만, 그 저변에 흐르는 공통점이 있는 것 같다.

쉬: 우선 서구식으로 아시아적 가치관이 ‘이것’이라고 통합할 필요는 없다고 본다. 동서양의 장점을 아시아가 공유하고 있다고 본다. 옛날에는 유교나 불교가 지배적이었지만, 지금은 서구의 가치관도 들어와 있다. 양쪽 문화가 충돌하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가는 과정이다. 새로운 문화의 힘이 아시아를 세계의 중심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듯하다. 새로이 창조되는 과정이기 때문에 쉽게 정의 내리기는 어려운 측면이 있다.

사회: ‘세계화’ 시대다. 국가·인종 간 장벽이 없어지고 있는데 아시아라는 지역적 테두리가 의미가 있을까?

쉬: 세계화를 말하지만 가치관을 공유하는 시기는 아직 오지 않은 것 같다. 한국을 보자. 한국적 가치관은 유교나 불교에 바탕을 둔 것도 아닌 듯하고, 그렇다고 서양의 가치관을 본뜬 것도 아니다. 한국 나름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한류’를 만들어냈다. 그럼, 한류의 정체는 뭐냐? 누구도 쉽게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아시아 여러 나라에서 호평을 받고 있다.

중국 위협론, 과장인가 실제인가

사회: 얘기를 듣다 보니 ‘아시아’가 아니라 ‘동아시아’를 말하는 것 같다. 아시안게임에는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 서남아시아와 중동 그리고 중앙아시아도 참가하는데…. 도대체 ‘아시아인’의 정의는 뭔가?

이치카와: 민족적으로 나눈 아시아와 정치적으로 나눈 아시아가 있는 것 같다. 아세안 회의 등을 할 때 말하는 아시아는 정치적 구분이다. 이라크와 쿠웨이트 등을 부르는 대신 러시아도 부른다. 지역적 이해관계를 지녔기 때문이다. 반면에 누가 아시아인이냐고 묻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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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아시아인이라고 말하면 누구든 그렇다고 할 텐데. (웃음) 일본은 100여 년 전부터 ‘탈아입구’을 강조했다. 전쟁도 ‘대동아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벌였고, 아시아는 일본이 이끌어야 할 대상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정작 일본인은 아시아인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시절이 있었다. 아시아를 말하면 서로 편하고 친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지만, 아직도 ‘100% 그렇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시아’라는 개념 자체가 너무 어렵다.

흥: 중국·한국·일본·베트남은 유교문화권이다. 지리적으로 보면 조금 떨어져 있지만 싱가포르도 유교문화권이다. 그래서 이들 나라는 거의 비슷한 문화를 공유한다. 지리적으로만 보면 러시아도 아시아에 속하지만 아시아 나라는 아니다. 아시아 대륙에 있는 이스라엘이나 유럽과의 경계에 있는 터키는 월드컵을 하면 유럽에서 예선을 치른다. 아시아라는 개념이 지리적인 것은 아니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결국 삶의 문화를 공유하는 것일 텐데, 동아시아는 유교 문화, 남아시아는 불교 문화, 중동은 이슬람 문화권이다. 서구와는 분명 다른 공통점이 있지만 이를 하나로 묶기도 쉽지 않다.

쉬: 아시아는 종합체다. 동아시아든, 서아시아든, 남아시아든 모두 종합체다. 민족의 다양성과 지역의 종합성, 종교의 다원성을 가지기 때문에 아시아는 종합체라고 본다. 지리적으로 보면 통일적이지 않고, 정치적으로 이렇게 붙이기도 하고 저렇게 나누기도 한 산물이다.

사회: 아시아라는 지역 공동체의 안정과 평화를 해치는 외부 요인으로 미국을 많이 꼽았다.

이치카와: 그리고 중국이겠지. (웃음) 앞으로는 미-중 양국 관계가 정치적이든 경제적이든 아시아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지대한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본다.

쉬: 유일 강대국이 세계를 좌우하는 건 정상이 아니다. 세계는 다극화해야 안정된다. 서로 견제하면서 발전할 수 있다. 중국 정부도 많이 얘기했는데, 앞으로 경제가 아무리 발전해도 미국처럼 패권을 잡지 않겠다고 설명했다. 중국 위협론은 중국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본다.

일본 상임이사국 진출과 역사청산

사회: 아시아에서 가장 위험한 분쟁지역으로 한반도가 꼽혔다. 그런데 정작 한국 기자들 사이에선 그 비율이 상대적으로 낮게 나왔다.

이치카와: 한반도는 53년여 동안 군사적으로 대치하고 있다. 세계에서 가장 군사적 긴장이 높은 지역이다. 한국 기자들이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그동안 아무 일도 없다 보니 마비가 된 게 아닐지. (웃음) 객관적으로 보면 가장 위험한 지역이고, 앞으로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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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 남북 화해 분위기가 있긴 해도 한반도는 냉전 시절의 대결 구도가 여전히 남아 있는 유일한 곳이다. 미국은 한반도에서 주도권을 놓지 않으려 할 것이고, 그걸 상실하는 순간 아시아에서 설 자리가 없다. 한마디로 체면이 ‘꽝’이다. 한반도는 또 아시아의 평화와 안전을 보장하는 시금석이다. 한반도가 안정되면 아시아도 안정되고, 한반도가 불안하면 전체 아시아도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사회: 일본의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반대 의견이 높게 나왔다. 과거사에 대한 반성이 없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많았는데.

이치카와: 개인적으로 일본이 상임이사국 진출을 못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아시아의 다른 나라에서 역사 문제와 연관 지어 반대한다는 건 이해하기 어렵다.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등은 과거사 문제를 제대로 처리했나? 상임이사국 확대 문제는 유엔 개혁에 관한 문제다. 역사 문제와 상관없다고 생각한다.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쉬: 각 나라가 서로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 역사에서 교훈을 얻고 앞으로 그런 길을 걷지 말자는 뜻에서 역사 문제를 얘기하는 것이지 누굴 반대하려고 그런 것은 아니다. 강대국의 압박과 착취, 무시를 아시아의 각 나라가 많이 당했다. 그런 고통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본이 과거사에 대해 정확히 해결해서 아시아 관계를 잘 꾸려나가면 더 좋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아시아에서 새로운 상임이사국이 배출되면 지역 안정을 위해 좋은 일이다.

흥: 일본이든 다른 나라든 간에 안보리 상임이사국에 진출하려면 현재와 미래가 중요하다. 과거 문제가 찬반의 타당한 이유가 아니라는 점에 동의한다. 일본의 상임이사국 진출을 반대하는 이유는 다른 것도 있을 수 있다. 이를테면 일본의 팽창주의를 경계한다거나.

사회: 화제를 바꿔보자. 아시아 최고의 지도자로 마하트마 간디가 뽑혔다. 마오쩌둥과 호찌민이 그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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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 간디도 훌륭한 지도자이지만 마오쩌둥이 낫지 않나? 내가 민족적 자긍심 때문에 이런 소리를 하는 건 아니고. (웃음) 간디-마오쩌둥-호찌민 모두 외세에 반대했다는 공통점이 있지만, 마오쩌둥은 거대한 국토와 인구를 통합했고, 내란을 물리치고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시켰다는 점에서….

민주적 가치는 나라마다 다양하다

사회: 중국 기자들은 오히려 덩샤오핑을 많이 꼽던데.

=쉬: 나라를 부강시킨 건 덩샤오핑이 맞지. 나라를 만든 건 마오쩌둥이지만.

사회: 마오쩌둥은 최악의 지도자 순위에도 올랐다. 물론 최악 중의 최악은 폴포트가 뽑혔지만.

이치카와: 폴포트-히로히토-후세인 모두 국민을 학살한 사람들이네. (웃음)

사회: 아시아에서 가장 억압적인 나라로 북한이 지목된 반면 한국은 민주적 가치가 가장 잘 구현되는 나라로 꼽혔다.

흥: 민주적 가치는 각 나라마다 다양하다. 중국식 사회주의와 베트남식 사회주의가 다르고, 북한식 사회주의는 또 다르다. 마찬가지로 중국식 민주주의와 베트남식 민주주의, 북한식 민주주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일본이든 한국이든 베트남과 비교하면 차이가 많다. 서구 사회에선 인정하지 않지만, 내 생각엔 문제점이 많더라도 민주화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베트남은 무력으로 통일을 이뤘지만, 한국과 북한은 서로 다른 체제를 그대로 받아들이고 공통점을 찾아가려는 노력을 하기 바란다.

쉬: 마찬가지 생각이다. 민주주의는 통일된 표준이 없다. 미국에는 미국식 민주주의가 있고, 각 나라마다 민주화에 대한 해석이 다르다. 표준을 가지고 얘기하면 결론이 날 수 없다.

이치카와: ‘민주적 가치가 가장 잘 구현된 나라’라는 게 존재하는지 모르겠다. 모든 게 갖춰진 나라가 하나쯤 존재하면 좋겠지만, 불행히도 없다고 본다. 그건 그렇고, 최고의 지도자에 김일성도 순위에 올라 있는데 최악의 나라가 북한이라니 이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거야? (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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