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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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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 68.7% 여성할당제 찬성

등록 2006-03-10 00:00 수정 2020-05-02 04:24

성인 남성 700명 의식 여론조사…가부장 책임 벗고 싶지만 권한 포기하긴 싫어 40대 후반 남성들이 여성의 사회활동에 가장 폐쇄적이지만 눈물도 많이 흘린다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아내의 사회활동을 기꺼이 밀어주겠지만 귀가는 일찍 해줬으면…. 여성 할당제를 적극 찬성하나 내 상사가 여자인 건 피하고 싶다. 아들 딸 구별하지 않지만 명절 땐 그래도 ‘친가’에 가야…. 집·혼수 장만은 남녀 능력껏 나누는 게 좋으나 내가 전업주부를 할 수는 없다.

남자는 약한 모습 보여선 안 되지만 40대 후반이 되니까 자꾸 눈물이….

여성 상사 선호 불과 3.2%

2006년 대한민국 남성들의 의식은 다분히 ‘이중적’이다. 가부장적인 책임과 부담에서 벗어나고 싶으면서도 권한과 혜택은 포기하고 싶지 않다. <한겨레21>이 가정과 직장, 사회에서의 남녀 ‘역할’에 대해 남성들이 어떤 생각과 태도를 갖고 있는지 조사해보니, 40대 후반(45∼49살) 남성들이 다른 세대에 견줘 유독 ‘몸 따로 마음 따로’인 경향이 컸다. 집 안에서는 부양 압력이, 집 밖에서는 퇴출 압력이 극심한 세대라서일까? 40대 후반 남자 여섯 명 중 한 명은 최근 한 달 이내에 “힘들거나 슬퍼서” 눈물을 흘린 일이 있다. 하지만 여성과 함께 그 짐을 나눠지는 것(아내의 사회활동 등)은 가능한 한 만류하겠다는 답변이 전 세대를 통틀어 가장 많았다.

이번 조사는 <한겨레21>이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플러스의 도움을 받아 전국 20살 이상 69살 미만 성인 남성 700명에게 2월25∼27일에 전화면접을 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표본 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7%). 질문은 가정생활, 여성의 사회활동, 남성 중심의 제도·관습에 대한 견해 등 성역할 의식과 실생활에서의 태도를 알아보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남성들의 68.7%가 공공기관과 기업의 여성할당제에 찬성했고, 자식을 하나만 둔다면 아들 딸 전혀 상관없다고 여기는 남성들도 56.9%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혼할 때 남자는 집을 장만하고 여자는 혼수를 마련하는 관행에 대해서도 “경제 사정에 따라 여유 있는 쪽이 많이 부담”(67.2%)하거나 “공평하게 반씩 부담”(22.6%)하는 게 좋다고 응답해, “관행대로 구별해 부담”(10.2%)해야 한다는 쪽을 크게 눌렀다. 시대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실생활에 들어가면 ‘미묘한’ 지점들이 발견된다. “여성의 직장생활은 가정생활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 70.2%의 남성이 동의한다고 답변했다(매우 동의 18.9%, 동의하는 편 51.3%). ‘여자라면 모름지기 바깥일을 하되 집안일도 잘 해야 한다’는 ‘슈퍼우먼 기대심리’와 닿아 있다. 여성할당제를 찬성하면서도 당장 내 직장 상사가 여성인 것에는 부정적이었다. 선호하는 직장 상사 성별을 물어보니 불과 3.2%만 여성 상사를 꼽았고 42%가 남성 상사를 꼽았다. “반드시 남성 상사이어야 한다”는 응답도 8.5%에 달했다. 여성 상사 경험치가 높은 30대 초반 남성의 66.3%는 “남성 상사든 여성 상사든 상관없다”고 답변한 반면, 경험이 없고 혹시나 ‘할당된 여성’과 경쟁 관계에 놓일 수 있는 간부급 세대인 40대 후반 남성의 경우 44.8%만이 “상관없다”고 응답했다.

40대 후반 남성의 55.2%는 “반드시 남성 상사이거나 기왕이면 남성 상사”를 선호했다. 또 절반 이상의 남성들(52.4%)은 “아내의 외도가 남편의 외도보다 더 심각한 문제”라는 견해에 동의한다고 답변했다. 지난 설 명절에 처가와 친가를 모두 방문한 비율은 57.4%였고 친가에만 간 비율은 20.2%에 그쳤지만, “여건상 한 곳만 가야 한다면 어느 곳에 가겠는가” 물었더니 “친가에 가겠다”는 응답이 83.4%로 압도적인 비율을 보였다. 다만 20대 남성은 “친가” 55.6%, “처가” 44.4%로 큰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7년전 여론조사에 비해 획기적 변화

성 상품화와 성폭력 문제와 관련해서는 ‘자기모순적 태도’가 드러났다. 세대 차이도 뚜렷했다. “회식이나 모임 뒤 2차로 룸살롱에 가는 것”에 대해서는 전체 남성의 64.6%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50.2%가 “바람직하지 않고 삼가야 한다”고 응답했고 14.4%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는 완강한 태도를 보였다.

50·60대의 20∼23%가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는 쪽에 손을 들었는데, 이는 30대 후반의 7.5%와 40대 초반 6.3%의 응답 비율을 웃도는 수치다. 그러나 직장생활에서 한창 회식과 접대로 바쁜 탓인지, 40대 초반 남성의 48.8%는 “전혀” 혹은 “별로 문제 삼을 일이 아니”라고 보았다. ‘룸살롱 문화’에 대한 거부감은 20대 초반에서 두드러졌다. 네 명 중 세 명꼴인 76.3%가 “바람직하지 않다”고 답변했다. “성폭력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해 여성의 행동이나 옷차림에도 원인이 있다”는 주장에 대해 20대 남성의 47.5%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답변했다. “동의한다”는 비율은 근소하게 앞선 51.1%였다. 그러나 30대의 59%, 40대의 64.9%, 50대의 70.3%, 60대 이상의 66.5%가 “동의한다”고 답변해 연령이 높을수록 ‘피해 여성 책임론’이라는 ‘오래된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의식의 변화는 더디지만 현실의 변화는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7년 전인 1999년 한국여성단체연합이 행정자치부의 의뢰를 받아 실시한 ‘여성폭력 실태 조사’를 위한 ‘성평등 의식조사’를 보면 “결혼한 여성은 직업을 갖기보다 아이를 키우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에 42.3%의 남성이 “매우” 혹은 “대체로 그렇다”고 답변했다. 그러나 이번 <한겨레21> 조사에서 “아내가 창업이나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 한다면 어느 정도로 지원하겠느냐”고 묻자, 불과 5.1%만 “가능한 한 만류하겠다”고 답변했다. 여성의 사회생활에 대한 ‘부정적 답변’ 비율이 눈에 띄게 줄어든 셈이다. “(아내의 사회활동을) 기꺼이 최대한 밀어주겠다”(24.2%), “사정이 닿는 대로 지원하겠다”(35.6%)는 ‘긍정적 답변’ 비율은 열 명 중 여섯 명꼴인 59.8%였다.

“맞벌이 아내의 능력이 나보다 더 좋다면 전업주부로 지낼 의향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있다”라고 답변한 이들도 28.9%에 이르렀다. 아들 선호 의식도 줄었다. 당시 행자부 조사에서 “자녀를 하나만 둔다면 딸보다 아들이 좋다”고 응답한 남성들의 비율은 38.9%였다. 이번 <한겨레21> 조사에서 “가능하면 아들”이라고 답변한 비율은 30.7%였다. 20·30대의 경우는 27.5∼27.2%에 그쳤다. “가능하면 딸”이라고 답변한 이는 전체 남성의 12.4%였다. 그중 30대 초반 남성의 딸 선호 의식 비율은 16.3%였고, 40대 후반 남성도 이에 버금가는 16%였다. 관행과 실생활과의 충돌, 의식과 현실의 변화 속도 차이로 대표되는 대한민국 남성들의 ‘이중적 행보’는 남성성의 극치를 보여준 영화 <친구>와 길들여진 남성성을 깨뜨린 드라마 <불량주부>를 오가는 것으로 풀이할 만하다.

60대가 성평등 의식 가장 높다

이번 조사에서 40대 후반 남성들은 여러 질문에서 세대별 추이를 뒤흔드는 ‘예상 밖의 답변’을 내놓아 눈에 띈다. 여성의 사회생활에 대해서 50·60대보다 폐쇄적이고 “남자는 어떤 경우에도 약한 모습을 보여선 안 된다”는 인식에 대해 48.5%가 동의해 전체 평균(43%)을 웃돌고, 여성 상사에 대해서도 전 세대를 통틀어 부정적인 답변 비율이 가장 높았으나, 눈물은 제일 많았다. 전체 남성 29.7%가 “운 적이 없다”고 답변했으나 40대 후반 남성은 22.7%만 이렇게 답했다.

“최근 한 달 이내에 힘들거나 슬퍼서 울어봤다”는 40대 후반 남성은 16.4%로 20대 13.2%, 30대 7.5%, 50·60대 6.9%를 포함해 40대 초반의 8.7%보다 훨씬 많았다. 패션 등에서도 아내나 여자 가족 등에 대한 의존도가 높았다. “옷이나 화장품을 누가 고르나”라고 물었더니 40대 후반 남성의 18.5%만 “직접 고른다”고 답변했다. 20대(63.2%), 30대(37%), 50·60대(29.9∼27.9%)는 물론 40대 초반 남성(23.8%)과도 차이를 보였다.

‘성평등 의식’이 가장 높은 세대는 어느 세대일까? 20대? 50대? 아니다. 조사 결과 60대가 가장 ‘개방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60대 남성의 35.7%가 “능력 있는 아내를 대신해 전적으로 살림을 맡을 의향이 있다”고 답변했고, “아내의 창업이나 새로운 일 시작에 대해”서는 70.5%가 밀어주거나 지원하겠다고 답변했다. 연령이 높을수록 성역할 구분에 보수적일 것이라는 상식을 깨뜨린 이번 조사의 ‘또 다른 발견’이다. 무한경쟁 사회에서 더욱 고단한 은퇴 뒤 현실 탓일까? 아니면 지난 세월에 대한 반성적 성찰 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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