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지식인 맹세론자’가 된 그 날

등록 2006-01-19 00:00 수정 2020-05-03 04:24

난 이래서 일단 네이버를 쓴다…메신저 친구들도 몰랐던 문제의 답을 찾는 놀라움…한상차림처럼 차려진 정보들 뒤로 독점에 대한 경계심과 광고 팽창의 문제도 느껴

▣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2001년, 새 과제에 착수한 나의 직장 상사는 오후 내내 컴퓨터로 1차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다. 내 책상 왼쪽에 놓인 프린터는 끊임없이 네이버가 검색한 뉴스들을 뱉어내고 있었다. 덕분에 한국언론재단 종합뉴스 데이터베이스 카인즈(Kinds)를 ‘나만의 보물’인 양 여겨왔던 새내기 직장인은 더 유용한 검색 도구를 발견하게 됐다. 제목과 함께 본문 일부가 노출되고, 책장(페이지) 넘기기와 복사(인쇄)기능이 편리하게 설정된 깔끔한 사용자 인터페이스(UI·User Interface)는 매혹적이었다. 그러나 여전히 초기화면은 야후!였던 것 같다. 아니다. 라이코스였나? 뉴스 사이트였나?

누가 내게 초고속 통신망을 줬던가

이렇게 기억이 가물한 건 당시만 해도 내 정보수집 생활의 근간이 웹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 웹생활의 근간 또한 검색이 아니었다. 1990년대 후반, 서양미술의 ‘인상주의’에 관한 보고서를 써야 했을 때, 난 제일 먼저 도서관에 갔다. 책과 논문, 잡지를 뒤적여 열심히 복사를 했다. 그러곤 컴퓨터 앞에 앉아 텔넷(Telnet) 프로그램 ‘이야기’나 ‘새롬데이타맨프로’로 PC통신에 접속해 관련 동호회에서 추가 자료를 찾고, 디렉토리별로 정리된 야후!에 들어가 ‘예술→ 미술→ 서양미술’식으로 수직 하강하여 한 움큼의 관련 사이트들을 건져냈다.

1990년대 중반, 온라인은 곧 PC통신이었다. 이메일, 동호회, 뉴스, 검색이 다 가능했다. 우정의 교환과 사랑의 집합이 가능했다. 웹이란 놈이 요술 같은 ‘링크’와 ‘이미지’로 우릴 유혹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지금도 HTTP(Hyper Text Transfer Protocol)는 그저 텔넷, FTP 등과 같은 위계를 지닌 프로토콜(Protocol·컴퓨터 간에 정보를 주고받을 때의 통신방법에 대한 규칙과 약속)의 일종으로 단순하게 여겨지고 있을지도 모른다. 누가 내게 초고속 통신망을 줬던가. 전화요금과 ‘통화 중’의 잔소리에서 해방된 웹 중독자는 라이코스에서 이메일을 ‘무료’로 얻고 다음, 프리챌에서 동호회 활동을 ‘무료’로 했다. 월회비를 요구하는 patrab@nownuri.net는 서서히 멀어졌다. 그런데 언제 웹에 정보가 그렇게 모였던 걸까. 일일 검색 횟수가 이메일 확인 횟수와 뉴스 클릭 수를 위협할 줄은 몰랐다. 하지만 2002년까지만 해도 난 양치질을 할 때 왜 손을 허리에 두는지를 인터넷에 물어봐도 되는지는 몰랐다.

2003년 어느 날 업무상 동영상의 한 장면을 캡처해야 하는데 자꾸 검은 화면만 잡혀서 신경질이 난 난 메신저의 친구들에게서도 해결책을 얻지 못해 난처해하고 있었다. 그때 옆자리 동료는 “지식인에게 물어보라"고 말했다. “그런 것도 있나요?” “한번 물어봐요.” 나는 집어넣었다. ‘동영상 캡처 검은화면’. 엔터. !. 만세. 그날부터 나와 그는 한 명의 전직으로 이별할 때까지 “우린 지식인 맹신론자예요”라고 떠들고 다녔다. 그리고 업무들이 정보를 요구할수록 네이버 이용 횟수는 증가했고, 해남 천일식당의 한상차림처럼 차려진 정보들은 항상 푸짐했다. 사전으로 정의를 파악하고, 뉴스로 최신 정보를 얻고, 지식인과 블로그로 여론을 살핀다. 2005년, 난 강력한 도서본문 검색을 사랑하고 있었다.

상대적 효용에 근거한 구글 방식도 필요

그러나 MSN 메신저에서 이유 없이 강제 로그아웃을 당하면서 느끼게 된 독점과 통제에 대한 경계심은 정보기술(IT)에 대한 맹목적인 환상을 버리라고 주문한다. 또한 샴쌍둥이인 정보와 광고의 팽창은 접근 방식에 대한 비상식량을 요구한다. 요즘 네이버 검색을 이용하면 스폰서 링크 같은 상단의 광고들로 인해 검색 결과들이 뿌옇게 보이는 게 사실이다. 지식인, 뉴스 콘텐츠가 지나치게 많아지면서 알맹이를 솎아내는 데 많은 시간을 허비하기도 한다. 그래서 난 종종 네이버 초기화면 위에 달린 구글 툴바를 이용한다. ‘많이 인용된 정보가 좋은 정보’라는 상대적 효용에 근거해 정보 순위를 매기는 구글의 방식이 가끔 필요하다. 때론 ‘첫눈’(1noon) 베타 서비스에 들어가 ‘한겨레21’을 넣어보면서 새 검색엔진이 잘 만들어지고 있는지 구경해보기도 한다. 디지털 지식의 팽창과 함께 흥망성쇠를 거듭하는 IT 업계의 전쟁은, ‘사용자’로 대변되는 ‘인간’의 책상머리 행동 양식을 둘러싼 ‘이해’력의 대결이다. 내겐 너무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