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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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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의 신문+ TV +백과사전…

등록 2006-01-19 00:00 수정 2020-05-03 04:24

왜 쓰냐고 물어보면 대답할 수 없을 정도로 습관이 돼 버린 ‘네이버 문화’
세상의 모든 것을 알려주는, 의제 설정까지 독점하는 ‘포털 권력’ 탄생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언제부터 네이버 썼어?” “기억 안 나는데.” “왜 네이버 써?” “모르겠는데.”

십중팔구는 “모른다”고 답했다. 그러고 보면, 나도 네이버를 컴퓨터의 첫 화면으로 설정해놓고 쓰지만, ‘언제부터’ ‘왜’ 쓰기 시작했는지를 바로 설명하지는 못한다. ‘모른다’는 말은 무섭다. 코카콜라를 즐겨 마시는 사람도 왜 꼭 코카콜라를 마시는지 잘 ‘모른다’. 어느새 네티즌 열 명 중 예닐곱 명이 ‘묻지마’ 할 만큼 네이버는 한국인의 습관이 됐다.

지식검색으로 마음까지 위로받다

네이버는 21세기의 스포츠신문이자 일간지이자 텔레비전이자 백과사전이다. 네이버는 문희준의 소식을 꼬박꼬박 전해준다. 시간을 내서 <연예가 중계>를 보지는 못하지만, 컴퓨터를 켜면 문희준의 소식을 보게 된다. 그가 네이버 첫 화면의 단골손님이기 때문이다. 네이버가 아니었다면 문희준이 12월에 입대할 것이라는 소식, 입대날에 수천 명의 팬들이 몰려든 사실, 훈련소를 마치고 운전병 교육을 받고 있다는 소식을 어찌 알았겠는가? (물론 네이버가 만든 뉴스가 아니라 네이버에 오른 언론사의 뉴스였지만.) 문희준뿐 아니라 심은하, 원빈 등 안 보이는 스타 얘기도 네이버에 가면 보인다. 이렇게 연예인 속보가 속속 뜨는데 누가 스포츠신문을 사보겠는가? 뉴스도 마찬가지다. 귀찮게 신문사, 방송사 사이트 찾아다니지 않아도 뉴스검색 하나면 그만이다. 일 때문에 놓친 황우석 교수의 기자회견도 동영상과 활자로 다시 볼 수 있다. 짧은 영어가 문제인가? ‘네이버 사전’이 있다. 내가 알아야 할 모든 것은 네이버에서 배웠다.

경기도 일산에 사는 권은주(29)씨는 궁금한 일이 생길 때마다 지식검색을 활용한다. 지난해 결혼한 권씨는 예식장을 알아볼 때도, 신혼집의 도배지를 고를 때도 네이버를 참고했다. 그는 “임신을 하고 병원을 한 번 옮겼는데, 가장 중요한 제보자가 네이버였다”고 말했다. 원래 다니던 산부인과에 대한 인터넷 평판이 좋지 않아 다른 병원으로 옮겼다는 것이다. 지식검색은 ‘정신적인 위안’까지 주었다. 병원에서 초음파 검사를 했는데 태아의 심장에서 작은 점이 발견됐다. 의사는 “별일 아니다”라고 했지만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네이버 지식iN에 질문을 올렸고, 같은 경험을 가진 산모들이 “괜찮다”는 답글을 올렸다.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 그는 산후조리원은 물론 겨울 여행지까지 지식검색을 통해 알아보았다. 민경배 경희사이버대학교 교수는 “소비자들의 경험담이 생산자들의 정보보다 신뢰도가 클 수밖에 없다”며 “지식검색은 소비자의 목소리로 맞춤형 정보를 제공한다”고 분석했다. 민 교수도 가끔 네이버의 위력을 절감한다. 그는 “학생들이 수업 중에 ‘네이버에서 봤다’며 ‘교수님이 잘못 알고 계신데요’라고 말하는 때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엔 교과서, 교수보다 네이버가 더 권위가 있다”며 웃었다. 이처럼 어떤 젊은이들에게 모든 길은 네이버로 통한다.

지식iN 서비스는 2002년 10월에 시작됐다. 2006년 1월 기준으로 하루에 질문 3만5천 건, 답변 6만5천 건이 올라온다. 지금까지 많은 답글이 달린 질문은? ‘전화 말고 휴대폰으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1300여 개의 답글이 달렸다. 답글보다 짧은 한줄의견이 가장 많이 달린 질문은? ‘호랑이와 사자가 싸우면 어느쪽이 이길까요.’ 한줄의견만 4800여 개에 이른다. ‘넥타이를 멋지게 매는 8가지 방법’은 1300번으로 가장 많이 스크랩된 정보다. 게임원리를 활용해 답글을 달면 내공 점수를 주는 방식은 지식iN 서비스의 성공비결이었다. 현재 최고의 내공자는 22만7천 점의 내공을 쌓은 사람이다. 쌓인 내공은 마일리지 전환을 통해 주문형 비디오(VOD) 보기, 음악 듣기 서비스 등을 이용할 수 있다. 하지만 갈수록 답글의 질이 떨어진다는 비판도 있다. 예전에는 자신의 생생한 경험담을 올리는 사람이 많았다면, 요즘에는 다른 곳의 글을 ‘펌’해오는 경우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업자들의 알바글도 문제다.

블로그에서도 ‘선점’ 효과 누려

지식iN 서비스가 네이버를 업계 1위로 끌어올렸다면, 네이버 블로그는 포털 사이트 1위 자리를 굳히게 만들었다. 건축설계일을 하는 홍지학(29)씨는 네이버 블로거다. 그의 블로그에는 그가 좋아하는 음악, 건축, 축구 등에 관한 글이 올라 있다. 그가 네이버에서 블로그를 시작한 이유? 그는 “2003년 11월 블로그를 시작할 당시 블로그를 무료로 제공해주는 곳은 네이버가 유일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지식iN 검색뿐 아니라 블로그 서비스에서도 네이버는 ‘선점’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홍씨는 요즘 네이버에서 블로그를 하는 자만의 괴로움을 겪었다. 그가 블로그에 ‘우리나라 지하철 노선도가 못생겼다’는 내용의 글을 올린 것은 2004년 10월이었다. 그 글이 2006년 1월 네이버 첫 화면의 ‘요즘 뜨는 이야기’에 떴다. 하루 300명이 방문하던 블로그에 2만 명씩 몰려왔다. “사대주의 발상이다” “거기 가서 살아라” 등 ‘악플’이 숱하게 달렸다. 서울의 지하철 노선도가 도쿄 등 외국 도시에 견줘 예쁘지 않다는 내용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네이버에서 검색을 하면 네이버 블로그의 내용도 뜨게 된다”며 “그래서 다른 곳에서 블로그를 했다면 오지 않았을 익명의 방문자들도 오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익명의 방문자들 때문에 즐거움을 느낄 때도 많다”고 말했다. 네이버 블로그는 2003년 10월 서비스를 시작했다. 현재 활동 중인 블로그는 630만 개 정도에 이른다. 네이버 블로그의 정보도 네이버의 자산이 된다. 민경배 교수는 “네티즌들의 질문과 답변을 통해, 블로거들의 ‘펌질’을 통해 네이버는 거의 돈을 들이지 않고 자신의 창고에 정보를 쌓게 된다”고 지적했다. 기자들에게도 네이버 첫 화면에 기사가 뜨는 일은 즐거우면서 괴로운 일이다. ‘악플성’ 반응이 물밀듯 밀려오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이제 포털은 의제 설정 권력까지 갖게 됐다. 개똥녀 사건과 연예인 X파일 파동도 포털 사이트에 관련 소식이 오르면서 일파만파로 퍼졌다. 그래서 ‘포털권력’이라는 말까지 생겼다. 한편에서는 뉴스 가치를 공공적 가치가 아니라 클릭 횟수에 따라 매기는 현상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한국형 포털의 폐쇄성에 대한 비판도 있다. 민경배 교수는 “포털은 원래 관문이란 뜻으로 포털을 통해서 다른 곳으로 가게 하는 곳”이라며 “한국의 포털 사이트는 포털이 아니라 토털”이라고 말했다.

방송마저 네이버에 기대는 시대

심지어 방송마저 네이버에 기대는 시대다. 지난 12월 말이었다. 한국방송 <개그콘서트>의 ‘봉숭아 학당’에 나오는 개그맨 유상무가 “인터넷 검색창에 전국 1등 유상무라고 쳐봐. 이런 사진 뜬다”면서 혀를 볼에 밀어넣는 특유의 표정을 지었다. 정말 유상무는 다음날 네이버 검색어 순위 1위를 차지했다. 연예인이 화제를 모으기 위해 검색어를 활용한 대표적 사례다. 이처럼 네이버 검색어에 올라야 비로소 이름값을 인정받는 시대가 됐다. 네이버는 힘이 세다. 왜 쓰는지 모르지만 쓸 만큼. 어쩌면 물과 공기처럼? 정말 네이버 왜 쓰지? 네이버에 물어봐야 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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