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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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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릭이 만든 반전드라마

등록 2005-12-20 00:00 수정 2020-05-03 04:24

애국주의 광풍 속에서 명쾌한 과학 토론 이루어진 ‘생물학연구정보센터’ 사이트…“줄기세포 5쌍이 같다”는 등의 논문 오류 지적하며 ‘PD수첩…’ 방영을 견인

▣ 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연예인들이 알아맞히는 것보다 드라마틱한 진실게임이 펼쳐졌다. 지난 12월16일 황우석 교수와 미즈메디병원 노성일 이사장은 잇따라 기자회견을 열어 논문의 진위에 관해 서로 다른 주장을 폈다. 이 순간 생명과학 전문 사이트 ‘브릭’(bric.postech.ac.kr)의 ‘소리마당’에는 격렬한 폭로전의 속내를 꿰뚫는 질문이 속속 올라왔다. 예컨대 황 교수가 초기 단계에서 동결 보존한 5개 줄기세포를 재검증하려고 해동해 배양하는 과정에 있다고 하자 브릭에는 “해동에 실패해서 세포가 죽었다고 하면 진실을 못 밝히게 되는 것인가”라는 ‘비전문가’의 글이 올라왔다.

비전문가의 생명과학 학습장

이런 의문을 풀어주는 댓글이 올라오는 데는 10여 분이 걸리지 않았다. 한 ‘전문가’가 밝힌 해법은 “논문에 있는 줄기세포의 ‘기형종’(Teratoma)의 조직 사진을 찍고 남은 조직 절편을 긁어서 사용하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것조차 없다면 사진에 실었던 슬라이드의 염색된 세포 조직을 긁어서 할 수 있다는 말도 있었다. 한마디로 진실을 규명할 단서는 있게 마련이라는 말이었다. 주로 실험실 용어로 범벅이 된 줄기세포 연구 책임자의 알 듯 모를 듯한 발언도 브릭을 통하면 명쾌한 답이 보였다.

이렇듯 황우석 파문을 통해 브릭은 생명과학 비전문가들의 즐겨찾기 목록에 올랐다. 젊은 연구자들을 위한 ‘생물학연구정보센터’는 지난 1996년에 개설된 뒤, 최대의 방문객을 맞이한 것이다. 황 교수 파문이 진행되는 동안 브릭이 생명과학에 관한 의문을 해소하는 창구로서만 머물지 않았다. 문화방송이 지난 15일 밤 10시에 “<pd>은 왜 재검증을 요구했는가”라는 특집 방송을 할 수 있었던 것도 따지고 보면 브릭의 위력에서 비롯됐다. 그동안 브릭이 시시각각 진실을 밝히면서 ‘반전 드라마’를 주도했던 것이다.


온 국민의 생명과학 학습장 구실을 한 브릭. 이 사이트는 황 교수팀의 줄기세포 진위 논란이 ‘애국주의’ 물결에 휩싸여 갈피를 잡지 못할 때 진실의 조타수 구실을 했다. 국외 체류 중인 한 연구자가 지난 12월5일 “올해 <사이언스> 논문의 부속자료로 실린 줄기세포 사진 5쌍이 같은 사진으로 보인다”고 밝힌 것이다. 곧바로 게시글은 폭발적인 조회 수를 기록하면서 각종 인터넷 사이트 토론방 목록에 올랐다. 이를 계기로 논문을 파고든 브릭 회원들은 급기야 올해 <사이언스> 논문에 실린 사진들이 2000년 미즈메디병원에서 만든 수정란 줄기세포와 동일하다는 의혹을 제기하기에 이르렀다.
그동안 브릭 회원들의 관심사가 황 교수팀의 논문 안에만 머물렀던 것은 아니다. 내로라 하는 전문가도 사실 확인을 소홀히 해 곤혹을 치러야 했다. 예컨대 인간유전체기능사업단 유향숙 단장은 줄기세포주의 특성에 대한 오해로 따가운 시선을 받았다. 유 단장은 한 방송과 줄기세포 DNA 검증에 대한 인터뷰를 하면서 “체세포와 줄기세포 DNA를 직접 비교하더라도 100% 똑같다고 확신할 수 없다”면서 “(줄기세포의) DNA가 분화 성장하는 과정에서 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이 발언은 DNA 지문 재검증의 한계를 지적하는 것으로 들리기 십상이었다. 브릭 회원들이 가만히 있을 리 없었다. 전문가의 반박글이 올라오자마자 이를 거드는 댓글이 잇따라 달렸다. 줄기세포주로 확립된 상태에서는 분화를 억제하면서 증식만 유도하기 때문이었다. 지난 16일에는 황 교수의 기자회견을 앞두고 “동결 보존한 줄기세포를 다시 배양한다는 것은 지금 만들고 있다는 말과 다를 게 없다”거나 “줄기세포 샘플이 망가졌다는 말은 줄기세포 실험실을 모르기 때문에 나왔다”는 말이 올라오기도 했다.
만일 황 교수 논문의 진실성을 따지고 싶다면 지금이라도 브릭에 가면 된다. 심지어 황 교수의 예고된 발언까지 파악할 수 있다.</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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