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파국까지 아낌없이 황교수에게 ‘올인’하고 ‘딴 소리’ 내는 언론 맹공
정치적 속셈 때문에 오보와 왜곡을 서슴지 않던 그들이 거짓말을 ‘배양’했다</font>
▣ 길윤형 기자charisma@hani.co.kr
석양이 진 뒤에야 날아오르는 미네르바의 부엉이처럼 어리석은 ‘사후 객담’이지만, 여론 형성을 통해 ‘황우석’이라는 신화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되짚어보면 왠지 모르게 미약한 현기증이 느껴진다. 한국언론재단에서 운영하는 뉴스검색 사이트 ‘카인즈’(www.kinds.or.kr)에서 검색해보니, 황우석이라는 이름이 신문지상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것은 1993년 11월10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날 <한겨레>는 사회면 톱으로 “서울대 수의과대학 황우석 교수 등 연구팀이 축협 한우개량사업소와 함께 체외수정을 통해 시험관 송아지를 생산했다”는 사실을 감격에 찬 어조로 전하고 있다. 1999년 복제소 `영롱이’가 태어났고, 그 뒤 6~7년 동안 황 교수는 ‘뛰어난 수의대 교수’에서 ‘난치병 치료 전도사’로 변신에 성공했다. 언론은 영롱이 이후 황 교수를 일주일에 한 번꼴로 지면에 소개했는데, 그때마다 기사는 ‘국내 최초’ ‘세계 최초’ ‘세계 최고의 과학잡지 <사이언스>도 인정한’ 등의 형용어구로 눈부셨다.
지난 11월12일(미국 시간) 제럴드 섀튼 미국 피츠버그대학 교수의 ‘결별 선언’으로 시작된 ‘황우석 한 달’의 기록에서도 그와 같은 현기증이 느껴진다. 섀튼의 문제제기, 문화방송 〈PD수첩〉 보도(11월22일), 황 교수의 사과(11월24일), 〈PD수첩〉의 취재 윤리에 대한 <ytn>의 비판(12월4일) 등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지며 황 교수는 기사회생하는 듯 보였다. 그러나 반전은 남아 있었다. 12월15일 2005년 <사이언스> 논문의 “황우석 줄기세포는 가짜”라는 노성일 미즈메디병원 이사장의 고백으로 황 교수는 다시 사면초가에 몰려 있다.
PD의 ‘PD 계열’ 운동권 전력까지 들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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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이 파국에 이를 때까지 황 교수에게 아낌없이 ‘올인’한 곳은 단연 <조선일보>였다. <조선일보>는 섀튼의 결별 선언으로 논란이 처음 시작된 11월14일 1면과 3·4면 두 면을 털어 ‘황우석 구하기’를 시작했다. 이후 <조선일보>는 11월15일 1면에서 (나중에 거짓임이 들통난) 황 교수의 “윤리지침 지켰다”를 시작으로 “줄기세포 국제 공동연구 결코 낙관할 상황 아니야”(11월30일 1면), “너무 힘들어서 다 접고 싶었다”(12월6일 1면), “파문 때 황 교수 혼자 시골 이장처럼 뛰어”(12월7일 2면) 등을 쏟아내며 황 교수의 확성기임을 자임했다.
하이라이트는 12월6일치였다. “줄기세포 공개하기로. 황우석팀, 복제 과정까지 재연 방침”(1면 머리기사)으로 포문을 연 <조선일보>는 “브레이크 없는 PD 저널리즘. 결론 정해놓고 ‘짜맞추기 제작’ 관행” “MBC는 지금, ‘곧 망할 것 같은 위기감’ 침통”(3면), “황 교수 휘청하는 사이… ‘세계 첫 논문’ 日에 선수 뺏겨”(4면), “‘MBC 처벌하라’ 네티즌 격앙”(8면) 등을 쏟아냈다. 8면 상자기사로 실린 “MBC의 사과 이후 주가 희비. iMBC는 쭉, YTN은 휘파람”에서는 문화방송의 취재 윤리 위반 사과 보도 이후 두 회사의 주가 추이가 엇갈렸다는 작은 ‘팩트’ 하나까지 놓치지 않는 ‘장인’의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문화방송의 PD가 대학 때 PD(민중민주) 계열에서 활동했다는 꼼꼼한 ‘팩트’ 수집 능력은 돋보였지만, “황 교수 휘청하는 사이…”는 오보임이 확인됐는데도 정정보도를 싣지 않았다.
애초 연구원의 난자 채취 등 윤리 문제에서 논문의 진위 여부로 논란이 옮아가자 등장한 것은 ‘전가의 보도’ <사이언스>였다. <조선일보>는 12월1일치 4면에서 “사이언스, ‘줄기세포 복제 문제 없다’”를 시작으로, “사이언스 주필 ‘황 교수 연구결과 유효’”(12월2일 4면), “사이언스 11개 복제 재차 인정”(12월3일 4면), “줄기세포 진위 의혹 근거 없어”(12월7일 2면) 등 거의 지면이 빌 때마다 <사이언스>를 들먹이며 황 교수를 옹호했다.
진위 여부엔 <사이언스>가 전가의 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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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의 움직임은 더 이해하기 힘들다. <중앙일보>는 12월3일 3면에 과학 전문기자를 등장시켜 <사이언스>가 샘플의 직접 검증은 안 했다고 보도한 뒤, 나흘 뒤인 12월7일에는 케네디 <사이언스> 편집장을 1면 머리기사에 등장시켜 “MBC 주장 맞는 것 하나도 없다”라는 기사를 뽑아냈다. 그동안 “줄기세포 국제 네트워크 차질. 동료 교수 의욕 꺾어 연구실 들어가기 겁난다”(11월25일 5면) 등 이 문제를 국익의 관점에서 접근해온 <동아일보>도 12월5일 1면 톱으로 문화방송 취재진이 김선종 연구원에게 “황 교수 죽이러 여기 왔다”고 협박했다고 보도했고, 이어 4·5면에서 강성근 서울대 수의대 교수의 목소리를 그대로 담아 “<pd>의 데이터는 취약한 오류투성이”라고 비난했다.
전문가들은 ‘황우석 사태’에 대한 언론의 접근 태도가 △황우석 입만 바라보기 △논점 흩뜨리기 △네티즌 입맛 맞추기 등으로 흘러 올바른 여론을 가로막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더 심각한 것은 언론이 나서 사실 규명을 방해했다는 지적이다. 김기식 참여연대 사무처장은 12월13일 ‘황우석 신드롬과 <pd>’이라는 주제의 토론회에서 “언론은 진실 추구라는 본연의 임무보다 어떻게 하면 이 사태를 조기에 수습할 것인가에 더 치중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보수 언론들의 공세가 누그러지기 시작한 것은 12월8일부터 서울대 소장학자들과 인터넷 사이트 ‘생물학연구정보센터’(BRIC) 등을 중심으로 “사진·DNA 지문 등이 조작됐을 것”이란 의혹이 꼬리를 물면서다. <조선일보>는 ‘꼬리 무는 의혹… 서울대가 규명 나섰다”(12월12일 3면)로, <중앙일보>는 ‘황 교수 서울대에 조사 요청. 풀어야 할 의혹들’(같은 날 4면) 등으로 황 교수와의 이별에 대비한 보험을 들었다. 늘 그렇듯 분위가 파악에 한발 늦은 <동아일보>는 같은 날 “황 교수팀, 공식자료 내 4대 의혹 반박. ‘줄기세포 생성 과정 기록- 사진 있다”(4면)를 보도하며 ‘황 교수 살리기’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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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괴물’을 만들었는가
이별은 극적이었다. <조선일보>는 12월14일 34면에 양상훈 정치부장의 칼럼에서 “황우석은 과학자여야 합니다”라고 외쳤다. “사실이 생명인 과학자의 거짓은 선전·선동이 직업인 정치인의 거짓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일 것입니다. (중략) 교수님은 국민과 여론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습니다만 그 뒤에는 스스로를 납득시키지 못하고 고개를 젓는 과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머잖아 노성일 이사장의 고백이 있었고, 조·중·동은 황 교수로부터 차갑게 돌아섰다.
이번 싸움으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것은 아마도 애국주의에 대한 호소와 정치적 속셈 탓에 진실 추구의 사명을 저버린 조·중·동을 포함한 언론 전체일 것이다. 언론은 이 사건에 비판적 감시자로서 역할을 거의 수행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그 역할을 담당하려던 유일한 다른 언론에 맹공을 퍼부었다.
12년 전 ‘황우석’이 신문지상에 이름을 처음 걸친 이후, 황 교수는 언론에 자신의 연구성과를 확대 과장했고, 언론이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썼다. 정부가 섣부른 지원으로 그 과정에 기름을 부은 사이 애국주의로 무장한 황우석은 신성불가침의 신화가 되어갔다. 그렇게 만들어진 ‘황우석 신화’는 우리 사회 전체를 위기에 빠뜨린 괴물로 돌변했다. 상황을 이 지경으로 만든 것은 누구인가. 시도 때도 없이 국가경쟁력·2만달러·애국심 등을 목놓아 외치던 그들이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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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뉴스’고비마다 ‘헛발질’</font>
<연합뉴스>는 우리나라에 단 하나밖에 없는 국가 기간 통신사다. 외국의 주요 언론사는 주로 <연합뉴스>를 통해 우리나라의 사정을 파악한다. ‘황우석 교수’ 사태를 바라본 통신사의 보도 태도는 어땠을까.
최민희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사무총장은 “<연합뉴스>는 ‘황우석 사태’의 중요 순간마다 황우석 신드롬에 편승해 잘못된 의제 설정에 앞장섰다”며 “<연합뉴스>의 잘못은 단순한 <연합뉴스>의 잘못이 아닌 제대로 된 의제 설정 기능을 잃은 우리 언론 모두의 문제”라고 말했다.
<연합뉴스>의 실수는 크게 세 가지로 구분된다. 첫째, 11월14일 제럴드 섀튼 미국 피츠버그대 교수가 윤리 문제를 제기하며 황 교수와 일방적인 결별 선언을 한 뒤다. <연합뉴스>는 11월22일 송고된 ‘배아 줄기세포 연구 중단 없이 가야 한다’라는 보도에서 ‘많은 과학자들’의 의견을 빌려 “배아 줄기세포 연구 분야가 각국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윤리적 문제로 황 교수팀을 단죄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기사에서 <연합뉴스>는 “2005년 현재 줄기세포의 시장규모는 20억달러에 불과하지만 세계 줄기세포 시장은 연평균 시장성장률(CAGR)이 18.5%에 달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적었다. 국가 경쟁력을 앞세워 황 교수의 윤리 논란에 물타기를 한 셈이다.
두 번째는 “DNA 검사 ‘오류 논란’… 낯선 일 아니다. 진실 밝힐 DNA 검사가 오히려 사건을 미궁에 빠뜨린 경우도”(12월4일), “황 교수팀, 후속 연구가 곧 검증”(12월5일) 등의 보도를 통해 줄기세포 재현만이 올바른 해결책이 아니란 주장을 편 점이다. 이는 앞으로의 연구 성과로 그동안의 잘못을 덮을 수 있다는 황 교수의 잘못된 생각을 정당화하는 구실을 했다.
황 교수의 논문 조작이 어느 정도 드러난 뒤에는 황우석 연구팀의 안규리 교수 등의 말을 빌려 “황 교수팀, 줄기세포주 30~100개 외부에 제공” 등의 내용을 중계하며 장밋빛 추측을 남발했다. 또 12월15일 노성일 미즈메디 병원 이사장이 황 교수의 2005년 <사이언스> 논문 조작 가능성을 내비친 뒤에는 “정부 망연자실 긴급 대책회의 수습방안 논의” “정부, 황우석 연구 얼마나 지원했나”(12월16일) 등의 기사로 황 교수를 검증하지 못한 정부에 비난의 화살을 돌렸다.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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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말초적’인 과학 보도</font>
‘황우석 사태’가 지금과 같은 ‘파국’으로 마무리된 것은 언론이 제대로 된 검증과 비판 기능을 수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많다.
<미디어오늘>은 12월7일치에 보도한 ‘황우석 보도에 과학기자 역할 미흡’이라는 기사에서 <조선일보> <중앙일보> <한겨레> 등 과학 전문기자를 두고 있는 주요 5개 언론사가 지난 10월1일부터 12월6일까지 보도한 황 교수 관련 기사를 분석한 결과, “기자들이 대체로 황 교수에 우호적인 성향이 강했으며, (다른 사회부 기자들에 견줘) 취재원 선별에서도 큰 차이가 없었다”고 적었다(표 참조).
<조선일보>는 이 기간 동안 31개의 기사를 열정적으로 쏟아냈지만, 대부분인 29개가 황 교수팀의 말을 그대로 옮겨 적은 단순사실 보도였고 심층분석 보도는 2개에 불과했다. <한겨레>는 13개 보도 가운데 1개를 뺀 12개가 단순사실 보도였다. 이에 견줘 32개의 기사를 보도한 <경향신문>은 6개의 심층분석 기사를 써 상대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한국과학기자협회는 지난 11월30일 열린 ‘2005 과학 언론인의 밤’에서 “그동안의 과학 보도는 본질적인 문제보다 대중의 눈길을 사로잡는 말초적인 이슈를 캐내는 데 급급했다”며 “그 결과 피해가 국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고 반성했다. 또 △인간배아 복제 줄기세포 등의 연구 성과는 한국 사회 발전에 미치는 영향이 막대하다는 인식 아래 신중하게 보도한다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발명에 관한 취재 보도는 이해당사자의 발언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과학기술 연구에 대한 취재 보도는 철저한 사실확인을 토대로 해 왜곡·과장되게 전달되지 않도록 주의한다는 등의 내용을 뼈대로 한 ‘과학보도 윤리선언’을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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