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청소년 동성애 염려증’을 치료하는 처방전
자신의 성적 정체성을 찾는 과정에서 죄의식이나 느끼게 하지 말아야
▣ 한채윤/ 한국성적소수자문화인권센터 대표
청소년과 동성애자. 분명 한국 사회에서 좀처럼 양립하기 어려운 두 개의 민감한 단어다. 전자는 국가와 민족의 밝은 미래를 위해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할 대상이고, 후자는 역시 같은 명분을 위해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할 대상이었다. 그러니 이 둘이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 얼마나 좋으랴. 하지만 이미 두 단어는 아예 하나의 대명사로 조합돼 쓰이고 있다. 청소년 동성애자, 청소년 이반, 팬픽 이반 등 자칭이든 타칭이든 존재를 개념화하는 여러 용어들이 사용되고 있고 이들을 위한 온라인상의 크고 작은 커뮤니티의 수도 정확히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다. 응당 분리돼야 할 것들이 이리도 붙어 있으니 이런 현실을 불편해하고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다. 동성애자의 인권은 존중하지만 아직 미성숙한 청소년들이 실수하지 않도록 적어도 성인이 되기 전까지는 동성애 관련 각종 매체물과의 접촉을 막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옛말도 이럴 때 꼭 등장한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청소년 동성애에 대한 이러한 염려증에는 과연 정당한 근거가 있을까.
<로미오와 줄리엣>도 유해 도서?
청소년기는 아직 성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은 때이므로 호기심을 자극받거나 막연한 동경심이 생기면 올바른 정체성 형성에 혼란을 겪게 된다는 지적이 가장 많다. 즉, 이성애자로 자랄 수 있는 아이마저 동성애자로 바꿔버릴 위험이 있다는 뜻이다. 이런 시각은 동성애를 ‘성인 전용’의 그 무엇으로 전제해놓은 편견이 강력하게 작동하고 있기도 하지만, 청소년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문제다. 이 논리대로 청소년이면서 동시에 동성애자일 수 없다면 청소년이면서 동시에 이성애자일 수도 없어야 한다. 그렇다면 과연 대한민국의 청소년은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무성애자로 사는 것 외엔 선택지가 없는 셈이다. 또 한편으론 사회적 소수자로서 동성애자의 인권은 당연히 존중해야 하지만, 사회는 청소년들의 인권도 그에 못지않게 보호해야 하므로 자칫 동성애에 대한 환상을 심어줄 수 있는 인터넷이나 영화, 잡지 등의 매체물과의 접촉에 제한을 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다시 말해, 아무리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선천적 동성애자들은 괜찮지만 단지 즐기거나 호기심에 동성애를 선택하는 것은 잘못이므로, 청소년들이 그런 선택을 하지 않도록 동성애를 ‘지나치게’ 미화하는 것은 제한해야 한다는 논리다. 짐짓 점잖은 지적을 하는 듯 보이지만 이 역시 그 속내를 보면 편견이 보인다. 선천적으로 동성애자로 태어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후천적으로 동성애자가 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동성애가 정상으로 보이게 해선 안 된다는 논리를 장애인으로 대치시켜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장애인 편의시설이 장애인이 겪는 어려움을 감소시키고, <오체불만족>과 같은 감동을 주는 멋진 장애인의 이야기는 청소년들로 하여금 정상과 비정상의 구별을 약화시켜 장애인이 되어도 좋겠구나라는 생각을 일으킬 우려가 있으므로, 장애인을 긍정적으로 묘사하는 드라마나 책을 출간하거나 장애인 편의시설을 확충하자는 캠페인 등을 하지 못하도록 막아야 한다는 말과 다를 바 없기 때문이다. 또 어떤 이들은 야오이나 팬픽 때문에 청소년들 사이에 동성애가 유행한다는 분석을 내놓기도 한다. ‘야오이’란 일본 만화의 한 장르로 꽃미남 스타일의 두 남성이 나누는 사랑과 섹스를 테마로 하는 작품들을 말한다. ‘팬픽’은 말 그대로 팬들이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를 주인공으로 설정해 쓰는 소설로 주인공끼리 동성애 관계로 설정되는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자신의 우상을 따라하는 모방 심리로 동성애에 빠지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런 공식이 성립한다면 10대의 어린 나이로 무모한 사랑에 빠져 마침내 자살로 끝을 내는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소설 작품들도 청소년 유해 도서 목록에 올라야 한다. 지나치게 낭만적이고 강렬한 감동을 주는 이 작품으로 인해 아직 성 정체성이 분명치 않은 청소년들이 자신도 그런 낭만적인 사랑을 하고 싶다는 동경과 호기심을 느껴 좀더 신중하게 고민하지 않고 무작정 이성애자로 자신을 규정지을지 모르지 않는가. 하지만, 과연 이런 분석은 타당한가. 이성애 대 동성애, 정상 대 비정상, 선천적 대 후천적, 성인 대 청소년 등으로 계속 이분화하고 우열순위를 매기는 사고의 틀 내에서는 진정으로 차별을 제거하고 인권을 존중하는 결론을 얻을 수 없다.
“동성애=동성 간 성행위”로만 인식해서야…
청소년에게 동성애는 위험하다고 쉽게 말하지만,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어떤 것을 보고 이제 동성애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을까. 동성끼리 서로 힘들 때 힘이 돼주고 다정하게 대하는 것? 동성끼리 “사랑한다”고 말하는 것? 동성끼리 손 잡는 것? 동성끼리 포옹하는 것? 동성끼리 키스하는 것? 이 모든 것을 단지 동성 간이라는 이유로 금지해야 하는 걸까? 이는 결국 이성애만을 권장하고 강요하는 것과 전혀 다르지 않다. 청소년기는 자아 정체성을 찾는 시기라고 가르치면서 사실은 아예 선택할 기회조차 주지 않는 것이다. 동성애 혐오가 강력할수록 이성애를 자발적으로 선택할 수도 없는 구조다.
성적 지향과 성적 행동은 반드시 일치하는 것이 아니며 성적 경험이 그 사람의 성적 지향을 결정짓거나 변화시키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는 “동성애=동성 간 성행위”로만 인식하고, 청소년 동성애자라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인다. 성적 지향이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느끼는 감정적, 낭만적, 육체적인 끌림을 말하는 것으로 한 사람의 평생을 걸쳐서 발전하는 것이고, 그러하기에 사람마다 자신의 성적 지향을 깨닫는 시기도 다르다. 즉, 청소년기만이 성 정체성을 찾는 유일한 시기여서 이때에 실수를 해 자신의 성적 지향을 잘못 정체화시키면 절대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아니다. 현대 사회의 구조에서 자신이 누구인지 탐구하고 검증하고 의심을 품고 실험하는 시도가 청소년기에 주로 일어나기 때문일 뿐이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청소년을 보호하는 것은 이런 과정에서 죄의식이나 수치심, 비난 등으로 좌절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정보와 지식이 판단을 내리는 데 도움닫기가 되어야 한다. 주체적으로 자신을 표현할 권리와 책임, 그리고 자유를 인정해주는 것으로 청소년들에게 진정한 힘이 돼주어야 한다. 자신의 성적 지향은 오로지 자신만이 판단할 수 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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