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뒤에야 드러난 보모 가정의 폭력, 홀부모 엄마에겐 청천벽력
아동폭력은 시설보단 가정에 많고 4명 이하 가정보육은 신고의무 없어
▣ 길윤형 기자charisma@hani.co.kr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딸 하나(3)를 경기 안산의 한 가정집에 맡겼던 김연경(가명·36·경기 시흥시 정왕동)씨는 11월7일 새벽 1시 반께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아이를 맡았던 보모 정아무개(30)씨였다. “아이가 잠을 자다가 토하기에 소화제를 먹였는데, 계속 아프다고 방에서 굴렀다. 상처가 났고 손발이 차가워졌다. 그래서 병원으로 옮겼는데 죽었다.”
“거짓말 한다” 안 보이는 곳 구타
청천벽력 같은 말이었다. 급히 병원으로 달려왔으나, 아이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온몸에 시퍼렇게 멍이 나 있었다. “왜 피멍이 들었냐”고 다그치자 보모 정씨는 “놀다가 넘어졌다”고 했다. 거세게 몰아치자 정씨는 “아니야, 이건 아니야”라며 얼굴을 감싸며 눈물을 흘렸다. 김씨는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아이의 사인은 외상성 쇼크사였다. 부검서에는 “광범위하게 맞아 모세혈관이 터졌고, 이 때문에 피하출혈이 심해져 쇼크사 했음”이라고 쓰여 있다.
경찰 조사 결과 아이는 보모 정씨의 남편인 유아무개(36)씨에게 전날인 6일 밤 심하게 맞은 것으로 확인됐다. 유씨는 반월공단의 한 회사에 다니는 회사원이다. 일요일이라 하루 종일 집에 있던 유씨는 밤 9시께 술을 마시고는 자고 있던 하나를 흔들어 깨웠다. 다짜고짜 아이의 무릎을 꿇린 뒤, 양손을 수평으로 들라고 하고는 테이프로 감은 47cm짜리 대나무 회초리로 발바닥 15대, 무릎과 허벅지를 15대씩 때렸다고 한다. 경찰이 아이가 숨진 직후에 찍은 사진을 보면 양쪽 허벅지와 발바닥이 심하게 멍들어 있다. 이마에는 맞아 생긴 상처가 뚜렸했고 얼굴에도 군데군데 상처가 나 있었다. 유씨는 아이 머리를 몇 대 쥐어박았는데 아이가 문 모서리에 머리를 찧어 난 상처라고 했다. 아이는 또래보다 왜소한 체구였다.
유씨는 하나가 소변을 제대로 못 보고 거짓말을 자주 하고 징징대서 스트레스를 받아 일을 저질렀다고 했다. 유씨가 ‘증언’한 하나의 거짓말은 옷걸이에 걸어놓은 유씨의 옷이 떨어져 있는데 “네가 그랬니?”라고 물으면 “아니다”라고 하는 정도였다. 경찰 조사에서 유씨는 지난 10월에도 하나가 거짓말을 하기에 한 차례 회초리로 때린 적이 있을 뿐이라며 상습 폭력은 부인했으나, 정씨는 평소 아이들이 말을 잘 안 들으면 회초리로 상처가 잘 안 보이는 발바닥 등을 때려왔다고 시인했다. 정씨와 유씨 부부는 숨진 하나 외에도 다른 3명의 아이를 맡아 기르고 있었다. 부부 사이에는 초등학교 5학년, 2학년 남매가 있고, 15평짜리 집은 남편 유씨 소유로 돼 있다. 좁은 아파트에 어른 2명과 아이 6명이 기거한 셈이다. 남편 유씨는 영유아 상해치사 혐의로 구속 수감됐고, 정씨는 상습 폭력 등 영유아 보호법 위반으로 불구속 입건됐다. 초등학생 남매를 고려한 ‘선처’였다.
하나 엄마 김연경씨는 지난 2003년 초 하나가 젖먹이일 때 남편과 별거하고 그 뒤 이혼했다. 줄곧 아이를 혼자 길렀다. 경기 시화지구 시흥관광호텔 근처 번화가의 한 노래방 ‘실장’(영업총괄 매니저)인 김씨는 새벽 5∼6시까지 일주일 내내 휴일 없이 근무하는 여건상 아이를 제대로 돌볼 수 없었다고 한다. 김씨의 거주지는 인근 정왕동의 작은 원룸이다. 올 초까지 어떻게든 아이를 ‘끼고’ 살아보려고 집에 보모를 두고 지냈지만, 갑자기 보모가 그만두면서 급한 김에 이곳저곳 수소문하다 생활광고지에 실린 “내 아이 같이 잘 돌봐드립니다”라는 광고를 보고 정씨를 알게 됐다. 집도 방문하고 남편 유씨와도 몇 차례 대화를 한 뒤 믿고 맡겼다. 한 달 양육비는 80만원으로 옷값과 병원비 등은 별도였다. 특별히 보육료를 아낀 것도 아니고 초등학생인 언니와 오빠도 있는 집이라 혼자 아이를 기르는 것보다 더 나은 환경이리라 여겼다.
김씨는 매주 일요일 낮에 아이를 보러 왔다. 아이가 아토피성 피부염이 있어 몸에 이상이 없는지 옷을 벗겨 확인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이가 학대받고 있다는 사실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간혹 아이 몸에 상처나 멍이 있었으나 보모 정미정이 “놀다가 넘어졌다”고 해서 그대로 믿었다. 발바닥이나 머리 안까지는 샅샅이 보지 않았다. 보모 정씨와도 자주 통화했고 아이와는 매일 통화를 했다. “오늘은 뭐 하고 놀았니? 밥은 잘 먹고? 몇 밤 자고 갈게” 같은 내용이었다.
정씨 부부의 집에 아침 8시부터 밤 9시까지 2살 된 아들을 맡겼던 김아무개(31)씨도 충격과 분노가 크다. 안산의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김씨는 부부가 맞벌이라 한 동네에 사는 정씨 부부를 피붙이처럼 믿고 아이를 맡겼다. 야근이 늦어지는 날에는 일주일에 한 차례 정도 정씨의 집에서 재우기도 했다. 한 달에 40만원을 보육료로 냈고, 가끔 유씨를 만나 “잘 봐달라”며 술도 샀다. 김씨는 하나의 사망 소식을 듣고도 처음에는 유씨가 저지른 일인지 몰랐다고 한다. 다음날 혹시나 해서 아이 몸을 살펴보니 이곳저곳 구타 당한 흔적이 있어 추가로 경찰에 신고했다. 아빠 김씨가 경찰에 보내온 사진에는 대나무 회초리로 허벅지를 때린 흔적이 선명하다. 김씨는 아이가 밤에 갑자기 일어나 엉엉 운다거나, 사람 눈치를 심하게 본다거나, 주변에서 손을 치켜들면 기겁을 하는 등 평소 하지 않던 행동을 하기에 부모랑 낮에 떨어져 있어 저러나 걱정만 했던 차였다. 이번 일을 겪고 정신과 검사를 받기 위해 신청을 해놓았다고 한다.
부모 69.2% “폭력 행위 했다”
아동폭력은 시설보다는 가정에서 훨씬 더 많이 일어난다. 여성부가 지난 2월 발표한 ‘2004 전국 가정폭력 실태조사 분석 보고서’(전국 부모 3천597명, 아동 1천47명 조사)를 보면, 조사에 응한 부모의 69.2%가 한 번이라도 폭력으로 간주할 수 있는 행위를 아이에게 했다고 응답했다. 신체적 폭력을 가한 가구는 51.9%, 심한 폭력을 행사한 가구도 9.1%로 나타났다. 아동의 52.4%도 폭력으로 느껴지는 행위를 부모한테서 받았다고 응답했다. 하나가 숨진 다음날인 8일 인천에서는 “말을 안 듣고 똥오줌을 못 가린다”는 이유로 친아버지가 4살 된 딸을 때려 뇌진탕으로 숨지게 한 일이 발생했다. 경찰 조사에 따르면 친아버지 김아무개(32)씨는 지난 4월 아내와 이혼한 뒤 술만 먹으면 딸을 폭행해왔고, 이날 밤에도 소주 3병을 마신 상태에서 아이를 때린 것으로 나타났다. 자고 있던 딸을 깨운 뒤 얼굴을 손으로 수차례 때려 아이가 화장실 바닥에 넘어졌는데, 그 뒤 아이는 영영 못 일어났다.
부모가 끼고 산다고, 혹은 시설에 맡겨진다고 해답이 있는 게 아니다. 정씨 부부처럼 4명 이하의 아이들을 돌보는 가정보육 시설은 신고 의무가 없어, 지자체나 보육당국의 관리감독에서도 자유롭다.
하나 엄마 김연경씨의 처지에서 경기 시흥시에 “24시간 아이 맡길 곳”을 문의했다. 세 군데의 연락처를 얻었다. 한 곳은 24시간 보육을 더 이상 하지 않는다고 했다. 다른 한 곳은 15명의 아이를 밤새 할머니 한 분이 돌봐주신다고 했고, 나머지 한 곳은 24시간 보육 경험이 없는 곳이었다. 생계와 양육을 동시에 해결해야 하는 한부모 엄마, 비정규직 여성 노동자, 아동폭력, 저소득층 문제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이 사건에서 과연 국가나 공동체가 자유로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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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상상도 하지 못한 채 돈 모으기까지 길어야 1년 이라고만 생각
하나 엄마 김연경씨는 <한겨레21>과의 전화 통화에서 “다 내 잘못이다”라고 흐느꼈다. 김씨는 “너무 힘들어서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면서 꽉 잠긴 목소리로 심경을 얘기했다.
아이 장례는 치렀는지.
= 시골 외할아버지 집 근처에 (재를) 뿌렸다.
정씨에게 맡기기 전 충분히 알아봤나.
= 집에도 가보고 그 집 남편과도 여러 번 얘기했다. ‘내 아이처럼 잘 돌봐주겠다’고 해서 믿었다. 경험도 많아 보였고 그 집에도 초등학교 다니는 아이들이 있어 내가 혼자 데리고 있는 것보다 여러모로 나을 것 같았다. 정말 잘하려고, (아이한테) 더 좋은 환경을 주려고 그랬던 건데…. 다 내 잘못이다.
엄마 잘못이 아니다.
= 내 잘못이다. 어쨌든 내가 거기에 맡긴 거니까. 아이 하나 보고 살아왔는데 이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하다. 혼자 돈 벌어 아이 키우는 죄가 이렇게 큰지 몰랐다.
계속 맡겨두려고 했나.
= 길어야 1년 정도 생각했다. 당장 아이를 혼자 놔둘 수 없고 (내가 밤샘 근무를 하는 바람에) 잠자는 시간도 아이와 달라서 여기저기 알아보고 (집에서) 좀 멀어도 괜찮은 곳에 일부러 맡긴 건데. 어떻게든 돈을 모은 뒤에 안정적인 환경을 만들어서 데려와 같이 살려고 했는데. 이렇게 가버릴지 몰랐다.
아이가 평소 폭력에 노출됐는지는 몰랐나.
= 꿈도 꾸지 못했다. 상상도 못하겠다.
김씨는 아이가 죽던 날 낮에도 아이를 찾아가 “(보모) 말씀 잘 듣고 밥 잘 먹어라”란 말을 했다고 한다.
김씨가 일하는 ㅅ노래방 사장은 “(하나는) 지극히 평범한 아이였던 것으로 알고 있다”면서 “김씨와 몇 년 전부터 알고 지냈는데 일도 야무지게 잘하고 표정도 밝아서 육아 문제로 어려움을 겪는지는 전혀 몰랐다”고 안타까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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