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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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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과 이혼 다음은 행복할까

등록 2005-11-08 00:00 수정 2020-05-02 04:24

미혼 기자가 본 서울가정법원의 협의이혼·재판이혼 풍경
‘스스로 결정한’ 민원업무와 재산싸움은 현대인의 축복인가

▣ 김수현 기자 groove@hani.co.kr

10월19일 오전 9시. 1층 가정법원 민원종합실을 가로질러 법원 직원들이 출근하고 있다. 싸늘한 공기가 코끝에 느껴지는 이른 아침부터 한 부부가 서류대에 매달려 있다. 법원에서 우려한다는 충동 이혼? 하지만 이혼신고서 석 장을 작성하는 데엔 충동을 넘는 인내가 필요하다. 9시 반이 넘은 시각에도 그들은 여전히 인적이 드문 홀에서 고개를 숙인 채 서류 작성에 몰두하고 있었다.

협의이혼, 엄마도 못말려

결혼 생활을 경험하지 못한 미혼 기자에게 이혼은 상상 불가의 ‘불편한 세계’다. 그러나 미혼자에게도 불편함은 존재한다. 자식을 고통스럽게 하는 부모의 다툼과 일요일 밤 같이 뜯어먹는 통닭 한 마리가 공존하는 우리 집. “여우 같은 기지배들이 괜찮은 남자 다 채갔어”라는 말에 흔들리지 않다가도 문득 불완전한 내 일과 사랑에 헛헛해지는 이 나이. 동창생의 첫 이혼 소식에 머리가 지끈해진 게 얼마 전이다. 아무튼 “남의 불행으로 나의 불편함을 위로하라”는 식의 오묘한 세상살이법을 재현하고 싶진 않다. 개인사의 불편을 공적으로 다루는 가정법원. 그곳은 한국 남녀들의 결혼과 이혼의 현주소를 보여줄까.

서울 서초동 서울가정법원. 가정법원이 따로 없는 지방에선 지방법원이 가사재판을 담당하니, 지지고 볶는 일에서조차 대도시 사람들은 혜택을 누리는 셈이다. 1층 안내데스크 벽에 걸린 단면도가 법정동 5개 층의 1, 2층 민원실을 제외한 나머지 공간에 존재하는 두 개의 세상을 보여준다. 상담실·접수실 등이 있는 4층은 은행창구 풍경 같은 ‘협의이혼’의 세계, 법정과 조사실 등으로 채워진 3, 5층은 야구장의 공수 격돌이 우스운 ‘조정·소송 이혼’의 세계다.

10월24일 오후 2시, 481호 협의이혼 접수실 앞. 전화벨이 울린다. “응, 법원. …됐어. …됐어. 내가 알아서 처리할게, 엄마.” 전화를 끊은 젊은 여성의 손엔 이혼 관련 서류가 쥐어져 있다. 협의이혼은 가족도 침해할 수 없는 개인 고유의 권한이다. 그는 의자에 앉아 남편을 기다린다. 접수와 확인, 혹은 사전상담. 반드시 함께 출석해야 하는 이 절차는 마지막 ‘부부 동반’ 행사다.

접수실 안에선 한 중년부부가 서류를 제출하고 있다. “1주일 뒤에 오실래요, 상담받고 처리하실래요” 직원이 묻자 여자는 “28일에 상담이 가능하냐”고 묻는다. “오전 10시요, 11시요?” 머뭇거리는 부부에게 “10시에 하면 오후 시간이랑 떠서 많이 기다리니 11시로 하라”고 제안하는 직원. 부부는 시간을 정한 뒤 떠났다. 1시간가량 걸리는 협의이혼 사전상담을 오전에 마치면 시범실시 중인 일주일의 숙려 기간을 거칠 필요 없이 상담 당일 오후에 협의이혼 의사확인을 받을 수 있다. 전문의와 상담전문가로 구성된 상담위원들이 하루 10건씩 상담을 하지만 맘을 돌리는 부부는 “아주 가끔 있다”는 게 접수실 직원의 말이다.

“네 머릿속엔 나쁜 생각이 가득 차 있지?” 482호 협의이혼 의사확인실 밖 복도를 울리는 한 중년 여성의 말. 못 들은 척 눈 감은 남자의 눈가엔 주름살이 패어 있다. “너, 너 잘되라고 말해주는 사람이 있는 줄 알아? 네 형제 중 너만 감옥 갈 거야.” 오후 2시40분이 되어 직원이 부부들을 대기실 안으로 불러들이자 여자는 독기 품은 말을 중단하고 남자와 함께 대기실로 들어갔다.

기혼녀들의 딱한 사연 넘치는 법정

대기실은 법정공간으로 꾸며져 있다. 예전엔 이곳을 밀폐해 의사확인 절차를 진행했지만 지금은 대기실이며, 정작 확인 절차는 왼쪽 벽 문 안의 일반 사무공간에서 진행된다. “3개월 내에 구청에 신고해야 정말 이혼이며, 한 명이 신고하기 전에 취하 신청을 내면 무효”라는 직원의 설명이 끝나면 오후 3시부터 한 팀씩 호명된다. 방 안의 판사에게 협의이혼 의사를 확인받으면 등본이 교부된다. 요즘은 판사들이 친권, 양육권 지정이나 면접교섭권, 재산분할 협의가 끝났는지 묻기에 팀당 5~15분가량의 시간이 소요된다. 물론 협의 여부에 대한 구두 확인일 뿐, 다시 처음부터 적절한 타협점을 설계할 시간은 누구에게도 없다.

대기실의 침묵을 깨는 건 앞에 놓인 텔레비전이다. 한국방송 <일요스페셜> ‘이혼’ 편이 녹화 상영 중이다. “저 때문에 엄마, 아빠가 갈라졌어요”라는 아이의 말, “이혼을 후회한다”는 코미디언 김형곤의 고백이 흘러나온다. 하지만 벼랑 끝에서 큰 결심을 한 이들은 무심한 척한다. 10월 한 달 동안 서울가정법원 협의이혼 접수건수는 총 612건이며, 이 중 등본을 받고 나온 확인건수는 총 509건이다. 의사확인실에서 10m 떨어진 가사상담실은 휴일 다음날이면 문의전화가 폭주한다.

협의이혼이 불가능한 자들이 모이는 3, 4층은 또 다른 세상이다. 그러나 여기도 다시 메이저리그 ‘드합’과 마이너리그 ‘드단’으로 양분된다. 가사재판 제1심 사건번호는 가사재판을 의미하는 ‘드’에 ‘합’ 또는 ‘단’이 붙어 사건의 종류를 표시하게 되는데, 대개 분쟁 대상 재산의 규모가 큰 사건은 판사 3인이 배석한 합의부(합)로 가고 소액재판은 판사 1인의 단독심 법정(단)에서 마무리된다. 가끔 ‘조정전치주의’에 따른 가사조정 절차에서 원만히 해결되기도 한다. 조정위원들이 법률에 없는 ‘1년 별거’ 같은 제3의 대안을 내놓기도 한다. 하지만 한 판사는 “조정·조사를 거치며 싸움에 집중한 나머지 원고와 피고는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고 말한다. 싸움이 법원에서 본격화되는 순간, 갈등은 또 다른 고점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하는 것이다. 최근엔 재판상 이혼을 청구할 수 있는 6가지 사유(표2 참조) 중 여섯 번째 ‘기타 사유’가 늘어나고 있다. 성관계 회피, 과도한 성관계 요구, 고부간의 불화, 부모에게 지나치게 의존적인 마마보이·파파걸, 과소비와 도박, 알코올·채팅 중독은 정황에 따라 여섯 번째에 포함된다.

10월25일 369호 단독심 법정. 법률 자문이나 변호사 선임을 거치지 않고 직접 피고석·원고석에 서는 장삼이사들의 재판이 대부분을 차지한다. 지난 고통을 보상받고 싶어 무작정 위자료를 요청한 어느 여자는 결국 남편이 가진 재산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눈물을 삼키며 위자료를 포기했다. 본인 명의로 된 전세금 1200만원에 만족하기로 했다. 판사는 따로 남편에게 사건본인(자녀) 1인당 월 20만원의 양육비 지급을 명령했지만, 실업자인 그가 다음달 통장에 입금할지는 미지수다. “남편은 거의 놀고 제가 식당일 해서 돈 번 거예요.” 한 아주머니는 남편 명의로 된 집과 가게가 자신이 만든 재산임을 주장했다. 하지만 증거가 없다. 그는 예전에 일했던 식당 주인에게 증언을 얻어서라도 재산 형성 기여분을 증명해야 한다. 별거 끝에 벼르고 벼르던 이혼 소송을 낸 어느 엄마는 아들을 증인으로 세워야 한다는 판사의 말에 이혼을 포기했다. 편견 없는 미혼녀는 딱한 사연의 주인공들이 대부분 기혼‘녀’임을 실감해야 했다.

법원은 언제, 왜, 양팔을 걷어붙이나

드합의 세계로 건너가면 피도 눈물도 없다. 아니 피고도 원고도 없다. 머리를 당기고 고성을 지르는 이 대신 서류뭉치를 안은 변호사들뿐. “빌라에 대한 시가 감정이 필요합니다.” “원고 아버지가 피고를 상대로 낸 주식 반환 소송 결과를 보죠.” 재산 분할 관련 재판이 대부분이다. 물론, ‘치정류 사건’도 있다. 한 여자는 생활비를 주지 않고 인터넷 채팅에 몰두해 바람을 피웠던 남편의 간통 현장을 잡아 그를 현행범으로 넘긴 뒤 바로 이혼 소송을 걸었다. 남편도 맞고소를 했는데, 그는 “잠자리를 피하고 바람을 피운 건 여자가 먼저였다”고 주장한다. 이혼엔 동의하지만 위자료는 줄 수 없으며, 양육권은 자신이 갖길 원한다. 현재 아내는 수억원대의 위자료를 청구한 상태다. 남자는 아내가 ‘아이’를 볼모로 삼고 시부모의 재산을 노린다고 주장한다. 물론 ‘조정’은 실패했다. 그러나 이들의 격렬한 다툼 안에는 양팔을 걷어붙인 법원의 모습이 있다. 이에 반해 협의이혼은 무심하다. 이혼신고서의 정식 명칭은 ‘이혼(친권자 지정) 신고서’가 아니던가. 양육권·재산분할, 구멍이 뚫린다. 가족모델 재설정에 대한 고민이 부족한 현실이 아이들을 돌보지 못한다.

결국 법원에서의 이혼은 ‘도장 찍기’다. 고현정-정용진, 최진실-조성민, 김국진-이윤성 커플은 직접 얼굴을 맞대는 ‘협의이혼’과 청구 사유, 시간, 비용이 요구되는 ‘재판상 이혼’ 사이의 틈새, ‘즉시 조정’ 절차를 밟았다. 대리변호사를 통해 1~2시간 만에 이혼을 마무리했다. 협의이혼이든 재판이혼이든 조정이혼이든, 법원은 일단 이혼을 말리고, 법률가의 지식은 어쩔 수 없이 테크닉이 필요한 사건에 집중된다. 그리고, 제도엔 사각지대가 있다.

그래서 이혼에 대한 의문은 ‘결혼에 대한 의문’이라는 개인적 차원으로 귀결되고 만다. 인류학자 헬렌 피셔는 <제1의 성>에서 “거의 모든 전통사회에서 낭만적인 열정은, 적어도 첫 번째 결혼에서만은, 두 사람이 인연을 맺는 명분으로 적절하지 못한 것으로 치부됐다”고 서술했다.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하는 습관은 산업사회 시대에 와서야 퍼지게 됐단다. ‘스스로 결정하라.’ 이 명제가 주는 피로감은 현대인의 축복인 걸까. 아무튼 행복의 시작을 위해 결혼하는데 결혼의 다음이 불행하다면, 불행의 끝을 위해 이혼을 하는데 이혼의 다음이 불행하다면 이건 꽤나 부조리하다. 기대감을, 갈등을 안고 질주하다가 갑자기 당혹스럽게 만나는 종점, 결혼식, 이혼 절차. ‘성장’은 더 이상 없고 구정물로 깨끗하게 세수해야 하는 나이에 도달한 나는 난감하다.



그 판사의 매너가 돋보였다

‘송달’ 찬찬히 설명해주고 방청석 아이 배려

판사를 직접 만난 적이 없다면 권위적일 거라 추측하는 게 일반인의 통념일 것이다. 법정 관찰이 처음인 기자도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서울가정법원 단독심 법정에 앉아 수십 건의 업무를 세련된 은행원처럼 처리하는 판사에게서 온정적인 태도들을 발견했을 때 일부 선입견을 수정했다.
점퍼를 걸친 아주머니에겐 ‘송달’ 같은 초보적인 법률 용어도 낯설다. 판사는 설명한다. “송장이 송달이 안 됐네요. 송달은 편지예요, 편지. 피고 남편분이 직접 수령한 게 증명돼야 재판을 시작할 수 있어요. 같이 사는 따님이 받으셨으니 남편분에게 전달했다는 확인서를 따님에게 받아오세요. 인감증명서하고요.” 상황을 이해한 아주머니는 30초 뒤 법정을 떠났다. 또 다른 재판. 피고 남편 쪽 변호사가 “원고 아내가 아이들을 서울에서 지방으로 데려가는 바람에 학교에 다니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원고석에 직접 선 엄마는 “보내고 있다”고 받아치고 변호사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으려면 아빠에게 돌아와야 한다”고 역설했다. 판사는 사실 확인을 위한 조사 명령을 내리며 “꼭 서울에서 학교를 다녀야 하는 건 아니잖냐”며 ‘정치적으로 올바른’ 한마디를 보탰다.
때론 면접교섭권의 필요성을 설명하기도 했다. ‘아이를 만나게 해달라. 2주에 1박2일은 권리다’라는 아내 쪽 요구에 ‘재판 중 절대불가’를 고집하는 남편 쪽 대리 변호사. 판사는 ‘2주에 하루, 당일 면접’을 중재했다. 남편 쪽 변호사가 ‘아이들이 면접을 거부한다’고 계속 주장하자 판사는 “주입시키지 않는 한 애들이 엄마를 안 보고 싶어하겠어요”라고 말한다. 그리고 변호사 뒤 방청석에 앉아 있는 아빠를 따로 불러내 직접 눈을 맞추어 “최소한의 면접교섭권은 엄마와 아이에게 필요하다”며 찬찬히 설득했다. 교복 차림의 아이를 방청석에서 발견하곤 “애기가 있는 사건이네. 먼저 할까”라며 재판 순서를 조정하고자 애쓰기도 했다.
‘재판상 이혼’은 민법에서 정의되지만 ‘이혼 재판’은 민사소송법 이전에 가사소송법을 따른다. 당사자의 주장에 대한 법리적 해석을 중심에 둔 민사재판과 달리 가사재판은 법원의 적극적인 개입이 동반되며 판사는 상대적으로 높은 강도의 ‘감정 노동’에 시달리게 된다. 가정법원의 한 판사는 “5년 이상 이혼 재판만 하는 게 쉽지 않다”며 “정신과 전문의가 다른 정신과 전문의에게 상담을 받듯 내부적으로 고충을 털어놓으며 ‘리프레시’를 한다”고 말한다. 이혼 가속의 시대는 합리적인 가족관과 부모 역할에 대한 이해, 소송 관계자들에 대한 배려 등과 같은 ‘판사의 매너’를 다각도에서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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