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비야의 파키스탄 리포트 3일째]
산사태 때문에 목적지에 가지 못하고 피해지역의 상황을 둘러보다
주검이 산을 이루지만 난민촌 사람들은 신의 가호에 감사드리더라
하지만 고급 저택에서의 하룻밤은 긴장의 연속이었다. 한밤중 갑작스런 여진으로 모두들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인도네시아 등에서 겪었던 일이지만 언제나 여진은 무섭다. 이렇게 튼튼한 집이 무너지기야 하겠냐마는, 만에 하나 무너졌다 하면 뼈도 못 추릴 거다. 게다가 밤새 우르릉 쾅쾅 천둥 벼락이 어찌나 치는지. 저렇게 비가 오는데 내일 우리가 가야 할 산길인들 무사할까, 걱정이 되어 잠을 이룰 수 없었다.
비 맞은 채로 쌓여 있는 구호물품
다음날 아침 일찍 두 대의 소형 버스에 약품과 텐트 등 이동진료소 장비를 싣고 길을 나섰다. 산길로 접어들자 멀리 눈을 이고 있는 잘생긴 산이 먼저 손짓한다. 다음에는 긴급구호가 아니라 저 산에 오르러 파키스탄에 와야지. 가까이로 눈을 돌리니 길 양옆으로는 벼가 누렇게 익고, 옥수수도 알알이 여물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흙으로 만든 집은 하나같이 바스러져 있었다. 거인이 모래로 만든 집을 짓뭉개버린 것 같았다. 집안 살림들은 그대로 널브러져 있는데, 그 앞마당에 텐트나 얼기설기 비바람이나 겨우 막을 수 있을 움막이 지어져 있다. 어제 같은 정도의 여진에도 무너져버릴 아슬아슬한 거처에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이다.
중간쯤 가니 우려한 대로 산이 무너져서 길이 막혀 있었다. 군인들이 길을 뚫고 있다고 해서 일단 한두 시간은 기다려보기로 했다. 차에서 내려 둘러보니 머리 위에 돌들이 떨어지기 직전으로 걸려 있었고 사람들은 그 구간을 100m 달리기로 뛰어다녔다. 안 되겠다 싶었다. 무리를 하면 산골로 들어갈 수야 있겠지만 오늘 안으로 다시 나올 수 있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우장도 침낭도 준비하지 않는 상태에서 돌발상황이 생기는 건 좋지 않다. 게다가 아직은 활동 초기인데. 일단 오늘 산을 넘어간다는 계획을 취소하고, 오리엔테이션 차원에서 이번 지진에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발라코트와 무자파라바드의 상황을 파악하기로 했다.
아, 이 냄새. 발라코트에 다다르자 쓰나미 직후 인도네시아 아체 지방에서 많이 맡았던 주검 썩는 냄새가 진동을 한다. 사람들은 마스크를 두 개, 세 개를 하고서도 인상을 찌푸리며 다닌다. 한때는 아주 좋은 전경이었을 몇 층짜리 건물이 모두 빈대떡처럼 폭삭 내려앉았다. 이 건물더미 안에는 아직도 치우지 못한 주검들이 수없이 있단다.
길거리에는 각국에서 온 구호물품, 특히 각종 옷들이 비에 맞은 채로 산더미처럼 쌓여 있거나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행인들이 눈길 한 번 주지 않는 저 구호품들. 왜일까? 도시의 80%가 무너져 사람이 모두 떠난 곳에 주먹구구식으로 물자 배분을 했기 때문이다. 또 이곳 사람들은 남이 입던 옷은 여러 가지 이유로 입지 않는다는 문화적 배경을 무시한 탓이리라.
600명의 아이들이 수업 받다 묻혀 버린…
도시의 길 곳곳을 막고 있는 꽃상여보다 화려한 트럭에는 각국에서 온 구호물자가 가득 실려 있었다. 각국에서 온 취재진들과 지역 및 국제 NGO들도 많이 눈에 띈다. 우리나라에서 온 의료진도 만났다. 반가웠다. 유럽 어딘가에서 온 수색견을 앞세운 구조단도 보인다. 앗, 저거 괜찮은 건가. 지난번 이란 밤시에서 어느 단체가 주검을 찾기 위해 수색견을 데리고 다닌다고 말이 많았는데. 무슬림들은 개를 불결한 동물로 보기 때문이다.
확성기에서는 주검을 찾은 가족은 그냥 집에 데려가지 말고 반드시 재난본부에 알릴 것을 호소하고 있었다. 일가친척이 다 죽은 집에서는 주검 수습이 쉽지 않을 거다. 바로 눈앞의 무너진 건물더미에서 마스크를 하고 일렬로 서 있던 군인들이 무엇인가를 꺼내고 있다. 들것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 주변에는 가족처럼 보이는 여인이 벌써부터 오열을 하고 취재진도 앵글을 고정하고 있었다.
학교 건물. 아무것도 남지 않은 학교 터, 600여 명의 아이들이 수업을 받다가 고스란히 묻혀버렸다는 그곳에는 국기 게양대만 남아 있었다. 파란 하늘에 펄럭이는 초록색 파키스탄기가 어찌나 처연하던지.
아시아의 알프스라는 별명의 무자파라바드. 높은 산과 구불구불한 강이 잘 어울려 무척 아름다웠을 이곳도 도시 전체가 폐허가 되었다. 여기는 발라코트와는 달리 공설운동장에 대형 난민촌이 형성돼 있었다. 난민촌에서도 아이들은 예의 호기심을 감추지 못하고 우리를 졸졸 따라다닌다. 신발도 제대로 신지 못하고 옷도 허름하다. 한 아이를 따라 들어가본 텐트에는 변변한 이불이나 끓여먹을 부엌 도구 하나 없다. 그 집 남자 어른에게 난민촌에서 지내기가 어떠냐고 물었더니 두 손바닥으로 하늘로 받치면서, “알 함둘렐라”(신의 가호에 감사드립니다)라고 말했다.
무서운 지진에 가족들 몸만이라도 빠져나온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언제나 그랬다. 긴급구호 현장에 처음 온 사람들은 재난민들이 갑자기 닥친 불행에 울고불고 할 거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그들은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 모르거나, 살아남은 사람들은 나름대로 살길을 찾아가며 잘 버티고 있다. 언론에서는 재난을 당한 사람들이 실의에 빠져 울부짖는 모습을 영상에 담으려 하지만 막상 현장에 와서 실망하거나 곤란해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재난이 와도 라마단은 지킨다
해가 기울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먹을 것을 준비해놓고, 각자 시계를 살피면서 5시45분이 되기를 카운트다운하면서 기다렸다. 해가 완전히 지고 나자 모두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말린 대추를 먹었다. 지금이 해뜰 때부터 해질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는 무슬림의 금식월, 라마단 기간인 것이다. 우리와 같이 다니는 운전사, 통역, KBDO 직원 모두 라마단을 철저히 지켜 음식은 물론, 물이나 음료수 심지어는 침도 삼키지 않는다. 이렇게 오후 5시쯤이 되면 모든 사람들의 입술이 하얗게 말라들어가 애처롭기까지 하지만 해만 지면 매일 무슨 축제나 되는 양 준비한 빵이며 과일을 옆사람들과 사이좋게 나눠먹었다. 그러고는 그 아슬아슬한 낭떠러지 길을 밤새 달려 만세라로 돌아왔다. 우리 운전사의 고백으로는 잠깐 졸다가 차가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칠 뻔했다며 졸음을 쫓기 위해 마구 깨문 손을 보여주었다.
집에 오니, 샤워를 할 수 있는 뜨거운 물이 준비돼 있었다. 모두 샤워를 하고 한국에서 가져간 햇반에 김치와 미역국을 곁들여 먹고 파키스탄식 밀크티까지 한 잔씩 마시고 나니, 새로운 힘이 솟는 것 같았다. 밤이 되니 천둥과 벼락이 치면서 또 비가 오기 시작한다. 내일은 꼭 산골 마을에 들어가 진료를 해야 하는데. 내일은 꼭 자보리에 갈 수 있기를. 인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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