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농지 헐값에 빼앗길 위기에 처한 서산시 농사꾼 김동복씨의 하소연
주택보급률 100% 넘는데도 강제로 개발해 막대한 이익 챙기도록 만드는 법
▣ 서신=글 길윤형 기자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김동복(70·충남 서산시 석림동)씨는 농사꾼이다. 고된 노동으로 단련된 그의 손마디는 무쇠처럼 단단해 보였다. 김씨는 “13살 때부터 농사를 지으며 고향 땅을 일궈왔다”고 말했다. 그 세월이 벌서 57년이다. 그는 “삶은 팍팍했지만, 평생을 후회 없이 살았다”며 웃었다. 이제는 힘에 부쳐 500평밖에 일구지 못하는 그의 땅에서, 해마다 쌀 15가마가 난다.
서산시와 충남도가 반대하는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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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가 ‘택지개발촉진법’(택촉법)이라는 단어를 처음 들은 것은 지난해 5월이다. “마을이 개발된다”는 소식에 100가구 조금 넘는 농촌 마을이 들썩이기 시작했다. 한달쯤 지나, 마을회관에서 주민 설명회가 열리니 참석하라는 통지를 받았다. 그는 “그때만 해도 무슨 혜택이 있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고 말했다. ‘서산 석림2 택지개발예정지구’라는 이름이 붙은 대한주택공사의 택지개발 사업은 그렇게 첫발을 뗐다. 주공은 이 땅 23만7천㎡(7만2천평)에 2010년까지 1700가구(5270명)가 들어갈 수 있는 아파트 단지를 만들 계획이다.
“설명을 듣고 보니 순 도둑놈 장난이더라고.” 김씨가 말했다. 좋은 얘기는 많았지만 한마디로 줄이면 ‘땅을 팔라’는 것이었다. “땅 보상을 해주고 이주자 택지를 사라고 하는데, 쥐꼬리만 한 보상금을 주고 나보고 어디로 가라는 건지.” 주민들과 한마디 상의도 없이 이뤄진 그것은 한마디로 ‘아닌 밤중에 홍두깨’였다.
김씨는 “이럴 수는 없다”며 치를 떨었다. 그러나 ‘법’이 그렇게 돼 있다는데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다행히 서산시·충남도가 나서 주민들의 편을 들어주었다. 서산시가 만든 ‘서산 석림2 택지개발예정지구 지정 관련 자료’를 보면, 2004년 8월 현재 서산시의 주택보급률은 97.9%인 것으로 나타난다. 앞으로 26개 단지 1만4121가구가 추가로 지어지면, 주택보급률은 124%까지 올라간다. 서산시 관계자는 “우리 시는 주택 과잉 공급을 걱정해야 하는 마당인데, 멀쩡한 농지를 왜 갈아엎으려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서산시와 충남도는 지난해 8·9월에 이번 택지개발 사업에 반대한다는 공문을 각각 주공쪽에 보냈지만, 사업을 가로막을 수는 없었다. 주공 대전·충남지역본부는 “이 사업은 국민임대 100만호 건설을 위한 것”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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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다시 갈피를 잃었다. “신문을 보니까 택지개발로 건설업자들이 해먹는 돈이 해마다 수조원이라고 하더라고. 화병이 나서 참을 수가 있어야지.” 다시 한번 용기를 낸 김씨와 주민들은 택지개발예정지구 지정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지난 3월 서울행정법원에 냈다. 이곳 말고도 평택·인천·수원 등 4곳에서 택촉법의 횡포에 맞선 행정소송이 진행 중이다.
평범한 농사꾼을 법정까지 찾게 한 택지개발로, ‘건설오적’들은 어떻게 배를 불리고 있는가. 돈을 빼먹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논밭이 택지로 파헤쳐져 아파트가 들어서는 과정에서 건설자본이 떼돈을 버는 것을 택촉법이 탄탄하게 보장하기 때문이다. 박창수 토지정의시민연대 정책위원은 “택촉법으로 우리나라의 고질적인 주택난이 사라진 공은 인정하지만, 법은 이미 애초 입법 취지에서 벗어나 건설자본의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고 말했다.
4개 지구에서 4901억원 벌어들인 토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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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78.2%였던 전국 주택보급률은 1985년 68.9%로 떨어졌지만, 택촉법(1981년 시행)의 성과가 가시화되기 시작하는 90년대 초부터 치솟아 1990년에는 72.4%, 불과 10년 뒤인 2000년에는 96.2%로 높아졌다. 2004년 현재 주택보급률은 102.2%로 이미 100%를 넘었고, 같은 시점의 미분양 주택 수도 6만9133호를 기록해 2003년에 견줘 80.7%나 늘었다. 이 때문에 건교부나 건설자본의 주장과 달리 무조건적인 공급 확대 정책이 주택 가격에 오히려 나쁜 영향을 준다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그래프 참조).
택촉법에 의한 택지개발은 어떤 과정을 거쳐 진행될까. 토공·주공·지방자치단체 개발공사 등은 개발하고 싶은 땅을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해달라고 건설교통부 장관에게 건의한다. 건교부 장관은 해당 지자체장과 협의해야 하지만, 서산시의 경우처럼 그 의견을 따를 필요는 없다. 지구 지정이 되고 나면 모든 게 끝이다. 땅 주인의 재산권은 모두 정지되고, 토공·주공 등은 땅을 강제수용할 수 있다.
토공·주공 등은 평당 수십만원에 땅을 사들인 뒤, 아파트를 지을 수 있는 택지로 바꾸는 ‘택지조성 공사’를 한다. 이들은 평당 100만~200만원에 공사를 마친 뒤, 평당 200만~300만원을 받고 땅을 건설회사에 팔아치운다. 땅 한평을 팔아 남기는 이윤은 어림잡아 100만원 안팎이다. 건설회사는 이 땅에 아파트를 짓고 분양한다. 아파트값(분양가)에서 택지비가 차지하는 비중을 분석하면, 평당 400만~800만원꼴이다. 200만~300만원에 사들인 땅을 2~3배로 부풀려 팔아먹는 셈이다. 건교부는 이번 정기국회 때 국민주택 규모(전용면적 25.8평) 이하의 주택에는 ‘원가연동제’, 그 이상의 주택에는 ‘채권입찰제’를 도입해 분양가를 낮추고 개발이익을 환수할 계획이지만, 아파트값이 크게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다.
이런 사실은 구체적인 수치로도 증명된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은 토공이 2000년 이후에 개발한 용인 죽전·용인 동백·파주 교하·남양주 호평 등 수도권 4개 택지개발지구의 추정 이익을 지난해 3~5월에 분석·발표했다. 경실련 자료를 보면, 토공은 이들 4개 지구(총면적 70만248평)에서 평당 54만원을 주고 땅을 수용한 것으로 나타난다. 땅을 택지로 바꾸는 데 든 조성원가는 평당 244만원. 토공은 이 땅을 건설업체에 평당 314만원에 팔아 한평에 70만원, 4개 지구 전체에서 4901억원을 벌어들였다. 택지개발이 있을 때마다 불거지는 토공·주공의 땅장사 논란은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아직 끝이 아니다. 건설회사는 이 땅에 아파트를 지어 평당 653만원에 분양(전체 분양면적 132만7463평)했다. 분양된 택지가 70여만평이니, 전체 분양 면적을 택지 면적으로 나누면 택지 한평에 아파트 1.91평을 지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아파트 분양가는 업체가 땅을 사들이는 데 쓴 돈인 ‘토지비’, 건물을 짓는 데 쓴 돈인 ‘건축비’, 업체 이윤 등을 더해 정해진다. 분양가에서 건교부가 정한 표준건축비 240만원(업체 적정이윤 포함)과 광고비 등 기타 비용 40만원을 빼고 1.91을 곱하면 토지비가 남는다. 평당 702만원. 건설회사들은 314만원에 택지 한평을 사들여 아파트를 지은 뒤 702만원에 팔아, 평당 388만원, 4개 지구 전체에서 2조8497억원이라는 천문학적인 돈을 남긴 셈이다. 경실련은 2000년부터 택촉법으로 만들어진 수도권 28개 택지개발지구의 111개(전체 177개) 사업을 분석한 결과, 민간 건설업체가 4조7342억원을 남겼다고 추정했다(그래픽 참조).
땅과 돈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
한국 도시개발의 산 증인인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 말까지 우리나라 건설업자들은 땅 짚고 헤엄치는 장사를 했다”고 말했다. 땅과 돈이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 땅은 은행 이자를 끌어와 사재기했고, 선분양제로 짓지도 않은 아파트를 미리 분양해 공사비를 충당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90년 들어 토지공개념의 도입으로 땅값 오름세가 주춤해졌고, 1989년 11월 원가연동제 도입으로 업자들은 정부가 정해준 가격대로 아파트를 지어 팔아야 했다. 업체들이 줄도산했다.
외환위기 이후 두 번째 황금기가 찾아왔다. 1998년 2월, 원가연동제 폐지로 분양가가 자율화됐고, 정부와 공기업은 택촉법을 휘둘러 업체에 ‘땅’을 무한대로 공급하기 시작했다. 해마다 수백만평의 자연녹지와 그린벨트(개발제한구역)가 파헤쳐져 택지로 변하고 있지만, 건설오적들은 “아직도 집이 부족하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김씨의 소송을 맡은 황도수 변호사는 “엄격한 법 해석 없이 남용되는 현행 택촉법은 환경파괴 논란은 물론이고 개인의 재산권을 침해하는 위헌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건설오적’이 굴리는 탐욕의 수레바퀴가 멈추는 곳은 어디쯤일까. 김씨는 거친 한숨은 그칠 줄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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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헌 소송도 준비 중” |
충남 서산시 ‘석림2지구 택지개발예정지구’의 지구 지정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을 이끌고 있는 황도수 변호사(법무법인 율경)는 “택지개발촉진법(택촉법)에 의한 주택이 부동산 투기의 대상이 되는 상황에서 택촉법의 무분별한 남용은 공공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며 “소송 승리를 낙관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택촉법과 같은 위헌적인 법률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제대로 된 문제 제기가 없었던 것이 오히려 더 이상하다”며 “법을 하루빨리 개정 또는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1999년까지 헌법재판소 연구관을 지냈다.
소송에 나서게 된 계기는.
=한달 정도 법률을 검토한 뒤 지금처럼 남용되는 택촉법에는 분명 문제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한 사람의 재산권을 수용한다는 것은 (보상을 해주더라도) 그 사람에게 특별한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 행사는 엄격한 요건 아래서 행해져야 한다. 독일 같은 외국의 판례도 그렇다. 다른 토지수용법을 보면 적어도 ‘주민 2분의 1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택촉법에는 그와 같은 조항이 필요하다.
택촉법에 대한 행정소송의 그동안의 판례는 어떤가.
=경기도 호평·평내지구에 대한 택지개발예정지구 지정 취소를 구하는 행정소송이 있었지만, 1996년에 패소했다. 미금시의 주택보급률이 36%로 턱없이 부족해 저렴한 택지 공급이 절실하다는 게 재판부의 마음을 돌리지 못한 주된 이유였다. 택촉법 1조를 보면, “도시 지역의 시급한 주택난을 해소하기 위해, (택지개발에 관한) 특례를 규정한 것”이라고 쓰여 있다. 그러나 서산시 석림2지구는 주택난이 심각한 도시 지역이 아니다. 충남도에서도 인구밀도가 낮은 편이고, 이미 사업이 승인된 주택건설 사업이 다 끝나면 주택보급률이 124%까지 치솟는다. 아파트를 더 짓는 게 문제가 아니라, 미분양 사태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 아파트를 더 지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는 곳이다.
위헌소송도 준비 중인데, 어떤 부분이 문제가 되나.
=건설교통부 장관에게 주민 동의 또는 합의 절차 없이 ‘필요한 지역’을 택지개발예정지구로 지정할 수 있게 만든 택촉법 3조는 헌법 23조 3항의 비례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생각한다. 또 주민 의견 청취 절차도 형식적·의례적인 것으로 해석되면 헌법의 적법 절차 원칙에 위반돼 위헌 소지가 있다. 특히 택촉법은 1980년 신군부 쿠데타 이후 국가보위입법회의에서 졸속 제정된 법률이다. 국회에서 정상적인 심의를 거쳤으면, 이같은 법률이 애초에 제정됐을까 심히 의심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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