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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불감증’을 씹어라

등록 2005-08-31 00:00 수정 2020-05-03 04:24

가공식품의 문제점을 앞장서 지적하는 ‘다음을 지키는 사람들’
어린이가 주로 먹는 과자의 첨가물에 대해 이렇게 관대할 수 있을까

▣ 김소희 기자 sohee@hani.co.kr

50년 전 미국의 내과의사 프랜시스 포텐거는 고양이를 2개 조로 나누어 ‘먹을거리 영향’ 실험을 했다. 한쪽 고양이에게는 정상적인 사료를 먹였고, 다른 쪽에는 영양적으로 결함이 있는 사료를 먹였다. 정상적인 사료를 먹고 자란 고양이는 2대, 3대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결함 있는 사료를 먹고 자란 고양이들은 2대째부터 이상 징후를 보였다. 발육이 뒤떨어지고 질병 발생이 잦았다. 3대에 이르자 신체적·정신적 장애가 나타났다. 몸을 잘 가누지 못하거나 중심을 못 잡아 높은 곳에서 떨어졌고, 다른 고양이에게 적대감을 갖거나 주인을 공격했다. 더 큰 문제는 4대에서 나타났다. 생식에 지장이 생겨버렸다. 이 세대에서는 태어난 새끼 고양이 수가 부족해 아예 실험을 계속할 수 없게 됐다.

어른 식품에선 금지, 아이 과자에선 허용?

다음 세대를 ‘포텐거의 고양이’처럼 되도록 둘 수 없다는 생각을 가진 엄마들이었다. 1999년 6명의 엄마가 첫 모임을 연 ‘다음을 지키는 엄마들의 모임’은 그 뒤 ‘다음을 지키는 사람들’로 확대돼 현재 900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2002년 타르계 색소 적색2호 등과 합성 착색료의 문제를 제기했다. 빙과류나 캔디류를 녹여 실과 천의 염색을 한 실험은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이들은 아이들 과자에 적색2호 사용을 중지하고 각종 첨가물을 포장지에 적어 팔 것을 요구했다. 굳이 사용해야 한다면 소비자의 선택에 맡기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2003년 생산·판매의 활성화를 이유로 오히려 당국은 식품첨가물의 표시기준을 완화했다. 그전까지 적색2호와 황색4·5호 등의 색소와 일부 첨가물들은 사용 여부를 적게 돼 있었는데, 황색4호만 사용 여부를 밝히고 나머지는 용도만 뭉뚱그려 적는 쪽으로 바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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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 개정된 식품위생법상 식품 등의 표시기준은 과거에 견주면 대폭 강화됐다(2006년 9월까지 유예기간). 합성감미료·합성착색료·합성보존료·산화방지제·표백제·합성살균제·발색제·향미증진제는 첨가물 이름과 용도를 둘 다 적고 산도조절제·영양강화제·유화제·증점제·합성착향료·피막제·향미증진제·효소제제는 첨가물의 간략한 명칭이나 주 용도 둘 중 하나를 적도록 하고 있다. 용도도 많지만 각 용도에 속하는 수십 가지 첨가물들은 난해한 화학명칭들이다. 류정옥 분과장은 “첨가물 이름과 용도를 밝혀도 허가 기준치를 정하지 않거나 사용량을 밝히지 않으면 반쪽짜리 표시다”라고 말했다.

식약청의 타르계 색소 현황을 보면, 적색2호를 포함해 모두 9종이 식품첨가물로 허용돼 있다. 영·유아용 제품과 면류, 단무지, 김치 등 ‘국민 다소비’ 식품을 포함한 47개 품목에는 사용이 금지되지만 과자류에는 제한 없이 허용하고 있다. 가장 문제가 되는 대목이다. 어른들이 많이 먹는 식품에는 금지하면서 유아를 포함한 어린이가 주 소비자인 과자에는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식약청은 “적색2호는 미국에서는 발암성에 대한 안전성을 확인할 수 없다는 이유로 사용을 금지하고 있으나 세계보건기구(WHO)나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이를 발암성 물질로 분류하고 있지 않고, 대부분의 국가에서도 사용이 허용돼 있다”면서 “일일 섭취 허용량이 ㎏당 0.5mg이므로 시중 과자류에서 문제될 것은 없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류정옥씨는 “알록달록한 과자를 만들겠다는 업체의 편의를 봐주는 것으로 가공식품에 대한 불감증을 드러내는 얘기”라고 비판했다. 그는 “직수입된 콜라에는 카페인 함유 여부가 표기돼 있는데 우리나라에서 판매되는 똑같은 콜라에는 왜 표기가 돼 있지 않겠나”라고 덧붙였다.

“내 아이에게만 먹인다고 해결될 일 아니다”

박명숙 국장은 ‘넘쳐나는 과자 더미’에서 아이를 지키는 어려움을 토로했다. 9살 된 큰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고구마 간식을 싸갔다가 짝에게 “넌 왜 그렇게 맛없는 걸 싸왔니?”라고 타박받았다. 자연식에 익숙한 아이는 “넌 왜 그렇게 영양가 없는 걸 싸왔니?”라고 반박했으나, 아무도 자신과 간식을 나눠먹지 않아 속상해했다고 한다. 박 국장은 “내 아이에게만 좋은 걸 골라 먹인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라며 “가공식품의 범람은 소비자가 ‘함께’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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