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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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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한 과자, 심심한 과자!

등록 2005-08-31 00:00 수정 2020-05-03 04:24

식품첨가물을 최소한으로 줄인 ‘대안 과자’의 야심찬 실험
최근 관심 끄는 유기농 과자도 설탕과 기름 등을 꼼꼼히 살펴야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식품 첨가물 없이 과자를 만들 순 없을까?

대규모 제과업체가 소비자의 곱지 않은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첨가물 사용에 집착하는 이유는 간편하게 원하는 맛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또 경쟁업체를 이기기 위해서 좀더 자극적인 맛을 내고 먹음직스러운 모양을 만드려는 욕심도 작용한다.

“이 많은 감자 일일이 깎아야 돼요”

광주광역시의 풍전나이스 제과 공장. 이곳에서는 친환경 전문 식품업체인 (주)산들촌의 의뢰를 받아 식품 첨가물 없는 ‘대안 과자’를 생산한다. 지난 6월부터 감자와 옥수수, 새우를 원료로 한 과자를 내놓고 있다. 평소엔 롯데제과에 납품하는 콘칩과 자체 브랜드로 노래방 새우깡을 만들다가, 한달에 세 차례 대안 과자를 만든다.

취재진이 찾은 지난 8월24일, 20여명의 종업원은 ‘우리 아이 착한 감자’라는 과자의 반죽 작업을 하고 있었다.

“이 많은 감자를 일일이 깎아야 돼요. 어떤 거는 섞어서 도려내야 하고…. 게다가 감자 품질이 들쑥날쑥해서 모양이 잘 안 나와요.”

생감자를 150도 온도의 중숙기에 넣고 있는 종업원들의 볼멘소리가 터져나왔다. 일반 과자보다 훨씬 손이 많이 가기 때문이다. 반죽 과정에 들어가는 감자만 해도 그렇다. 일반 과자의 경우 수입산 감자를 쓴다. 일일이 깎을 필요도, 썩은 걸 도려낼 필요도 없다. 가로·세로 30cm의 비눗갑 형태의 냉동 감자를 통째로 집어넣으면 된다. 품질도 규격화돼 중숙기를 통과한 감자는 동일한 찰기와 색깔의 반죽이 되어 나온다.

‘우리 아이 착한 감자’의 중숙기에는 생감자와 함께 우리 밀가루, 강원도산 메옥수수 가루가 들어간다. 50kg이 들어가는 중숙기에 바가지 절반 정도의 분량의 설탕이 섞였다. 이 외에 식품 첨가물은 일체 들어가지 않았다. 박현기 풍전나이스 제과 사장이 ‘비교 설명’했다.

“일반 과자를 만들 땐 중조(탄산수소나트륨), 중탄산암모늄, 명반, 소명반 같은 것들이 다 들어가요. 맛을 내기 위해 설탕뿐만 아니라 ‘미원’이나 ‘다시다’도 넣지요.”

이 과정에서 일반 과자에 주로 들어가는 식품 첨가물은 팽창제다. 팽창제는 반죽이 적당히 부풀어올라 모양을 잘 낼 수 있게 해준다. 건빵을 보면 알 수 있다. 건빵을 구울 때 웬만해선 그렇게 ‘예쁘게’ 부푼 모양이 나오지 않는다. 팽창제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어릴 적 국자에 ‘달고나’를 만들어 먹을 때 넣었던 소다가 바로 팽창제다. 팽창제는 이처럼 먹을거리가 아닌 화학물이다.

모양 내는 것이 가장 어려운 작업

중숙기에 쪄진 감자는 컨베이어밸트로 이동해 화장지처럼 얇게 펴져 롤 형태로 감긴다. 이것을 15시간 정도 숙성시키고 건조와 2차 숙성 과정을 거쳐 유탕 처리된다. 유탕 처리는 160~170도의 고온에서 튀겨내는, 스낵이나 라면에서 피할 수 없는 관문이다. 튀김 기름으로는 식물성 유지인 팜유가 사용된다. 오일팜이라는 식물의 열매에서 빼낸 기름이다.

다 튀긴 감자는 일반 감자 과자에 비해 쪼글쪼글하고 싱겁기 그지없다. 일반 감자 과자는 여기에 맛을 더 내기 위해 화학조미료나 감미료가 쳐진다. 박 사장은 “요즈음 감미료나 조미료는 전문 향료업체에서 완제품을 구입한다”고 말했다.

정정훈 산들촌 사장과 박현기 풍전나이스 사장은 1년 가까운 연구 끝에 이런 ‘식품 첨가물 없는 과자’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지난해 10월에 정 사장이 찾아와서 식품첨가물 없는 과자를 실험해보자고 그랬죠. 처음엔 그럴 능력도 실력도 없다고 일언지하에 거절했어요. 24년 동안 과자를 만들었지만, 첨가물을 안 넣고 과자를 만든 적은 한번도 없었거든요.”

하지만 정 사장은 들볶다시피 박 사장에 매달렸고, 결국은 기존 생산라인을 한달에 며칠씩 빌리는 것으로 하고 ‘과자 실험’에 들어갔다. 처음 실험 목표는 ‘식품 첨가물 없는 감자깡 만들기’였다. 종업원들은 불가능한 일이라며 사장을 보고 미쳤다고 했다. 역시 모양을 내는 게 가장 어려웠다. 팽창제 없이 중숙기를 거쳐 나온 감자 반죽은 끊어지기 일쑤였다. 유기농 감자 2t씩을 10여 차례 중숙기에 넣길 반복했다. 가열 온도와 시간, 수분 함량을 바꾸기를 반복하고, 수십t을 버린 끝에 시제품을 완성했다. 8달 만에 나온 감자깡. 쪼글쪼글했지만 그런대로 봐줄 만했다.

착한 감자의 자매 격인 ‘우리 아이 착한 새우’도 마찬가지였다. 기존 새우깡에서 가끔씩 섞여 있는 납작한 모양의 딱딱한 불량품만 나왔다. 그러던 어느 날, 새우 껍질을 넣어보니 새우깡의 뼈대가 섰다. 정 사장은 “새우 껍질에 들어 있는 키토산 성분이 부풀어 팽창제 역할을 한 것 같다”고 말했다. 돈과 시간을 바친다면 첨가물 없는 과자를 만들기란 어렵지 않았다.

지방산과 설탕 문제는 피할 수 없다

물론 이런 과자들도 공장식 가공식품에서 피할 수 없는 몇 가지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 바로 지방산과 설탕 문제다.

스낵을 만들기 위해서는 유탕 처리가 필수적인데, 친환경업체조차 비싼 현미유 대신 값이 싼 팜유를 쓸 수밖에 없다. 팜유는 불포화지방산으로 고온으로 가열하면 일부가 트랜스지방산으로 바뀐다. 트랜스지방산은 자연계에 존재하지 않는 물질로, 비만은 물론 암과 심장병의 원인이라는 학계의 보고가 있다.

“현미유나 유자씨 기름 등 식물성 액체 기름은 트랜스지방산이 거의 생성되지 않아요. 제품 값을 높이더라도 이 기름을 쓰고 싶은데, 그러려면 자체 기름 탱크가 필요해요. 전용 공장이 없는 상황에서 남의 공장에 기름 탱크를 설치할 수도 없고….”

과자라면 피할 수 없는 설탕의 문제도 여전하다. 과자로 인한 설탕의 과다 섭취는 인체의 혈당 조절 시스템을 혼란에 빠뜨려 성인병을 일으킨다. 정 사장은 “일부 제품에는 조청에 설탕을 혼합하고 당 비중을 0.3%로 낮추고 있다”며 “자체 생산라인이 완성되면 조청을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분류를 높은 온도에 튀겨냈을 때 생기는 아크릴아미드도 피할 수 없다. 발암물질로 알려진 아크릴아미드는 우리나라에서도 지난 2002년 감자 칩과 패스트푸드점의 프렌치프라이에서 발견됐다. 도료에나 사용되는 화학물질이 유탕 처리 과정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대안 과자도 가공식품인 이상 어쩔 수 없이 가공식품의 굴레를 갖고 있다. 대안 과자라기보다는 기존 과자의 ‘대체 과자’ ‘덜 나쁜 과자’라는 표현이 그래서 정확한지도 모른다.

현재 이런 대안 과자의 시장 규모는 연간 200억원대로 추정된다. 기성품 형태의 스낵뿐만 아니라 누룽지·강정·한과 등을 포함한 수치다. 유기농 매장에서만 팔리기 때문에 아직 유기농 식품 이용자들만 먹는 정도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유기농 매장의 과자도 문제가 많다고 지적한다.

실제로 유기농 매장에서 잘 팔리는 일부 우리밀 과자는 튀길 때 쓰는 기름으로 쇼트닝을 사용한다. 쇼트닝은 화학작용으로 굳혀서 만든 경화유(고체기름)로 트랜스지방산 덩어리다. 일부 백화점 매장에서는 비싼 해외 유기농 과자도 팔고 있다. 하지만 유럽이나 미국조차도 가공식품의 유기농 인증제도가 없기 때문에 진짜 유기농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한 친환경업체 관계자는 “먼 곳에서 온 가공식품인 터라 보존료 사용 여부에 대한 의심을 지울 수 없고 유통기간이 길기 때문에 그리 신선하지 않다”며 “유기농이더라도 해외산은 꺼림칙하다”고 말했다.

포장지 원재료명을 제대로 읽어라

유기농 매장의 식품들은 안전하다는 생각에 무턱대고 이런 종류의 과자에 맛을 들이는 사람들도 많다. 이런 과자들에도 설탕이 들어 있기 때문에 일부 중독성 효과가 있다. 박명숙 ‘다음을 지키는 사람들’ 국장은 “유기농 매장에서 파는 과자라고 100% 안전하다고 믿어서는 곤란하다”고 말한다. 과자를 덜 먹는 노력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유기농 매장에서 과자를 고를 땐 단것은 피하고 가공 단계가 적은 제품을 골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자신의 식품 포장지에 있는 원재료명을 꼼꼼히 살필 줄 알아야 한다. 주재료로는 수입산보다 국산 농수산물이 좋고, 튀김 기름으로는 쇼트닝보다 팜유가, 팜유보다는 현미유·유자씨 기름 등이 좋다. 당류는 안 들어간 게 좋으며,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한다면 설탕, 물엿이 과당보다 좋다.

무엇보다 과자를 사서 먹기보다는 간식 대용으로 과일을 먹거나 1차 생산물을 이용해 직접 조리하는 성의가 필요하다. 소비에서 생산으로 패턴을 바꿔야 하는 것이다. <소박한 밥상>을 지은 미국의 자연주의자 헬렌 니어링은 “되도록 날것으로, 조리할 때는 낮은 온도로, 최대한 단순하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조리와 가공 단계가 하도 많아, 음식에 무슨 성분이 들어갔는지 어떤 과정으로 만들어지는지도 모르고 먹는 가공식품 천국에서 새겨들어야 할 훈계다.



일반 과자보다 더 비싼 짝퉁?

기존 제품 흉내내며 소비자의 길들여진 입맛 따라가는 대안 과자

유기농 전문매장에 가면 대안 과자들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이들 과자는 △국산 원재료 사용 △식품 첨가물 배제 △가공식품 성분 배제 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과자들이 이런 ‘원칙’을 지키고 있는 건 아니다. 주재료를 국산을 쓰면서도 전분을 수입산을 쓴다거나, 마가린이나 정제가공 유지 같은 가공 원료를 넣는 경우도 있다.
이들 매장의 과자는 대부분 누룽지·쌀과자·유과 등 주전부리류다. 일체의 가공 원료 없이 유기농 농산물과 조청으로 단맛을 냈다면 과자류 가운데 안전한 축에 속한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런 주전부리로는 만족하지 못한다. 길 건너 슈퍼마켓에는 아이들의 혀를 유혹하는 달고 신기하고 재미있는 맛의 과자들이 가득하기 때문이다. 이아무개(39)씨는 “젖을 뗀 직후부터 일체의 과자를 먹이지 않았지만, 아이가 유치원에 다니고서부터는 더 이상 말릴 수 없다”고 말했다.
새우깡이나 콘칩과 같은 기성품 형태의 대안 과자가 개발되기 시작한 건 불과 1~2년 전이다. 대안 과자 회사들은 자체 생산설비가 없어서 중소 규모의 일반 제과업체에서 주문자상표부착(OEM) 생산을 한다. (주)우리밀의 ‘우리밀 곰돌이’ 비스킷이 인기를 끌었고, 올해 나온 산들촌의 ‘우리 아이 착한 과자’ 시리즈는 유기농 매장인 한겨레 초록마을의 인기식품 10위 안에 2개가 들어갔다.
재밌는 건 이런 과자들이 모두 일반 과자를 흉내내고 있다는 점이다. 새우깡에는 ‘우리 아이 착한 새우’가, 오징어땅콩에는 ‘오징어랑 땅콩’이, 웨하스에는 ‘꼬마친구 웨하스’가 있다. 가격이 일반 과자의 2~3배에 이르는 ‘고가 짝퉁’인 셈이다. 친환경식품업체의 한 관계자는 “소비자의 입맛이 이미 기존 과자에 길들여져 있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며 “더욱이 이런 과자업체들이 중소기업이라서 새로운 맛을 내는 신제품을 개발하긴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
현재 대안 과자의 시장 규모에 대해서 정확히 파악된 자료는 없다. 아직 시장이 형성됐다고 보기에도 이른 상태다. 초록마을 관계자는 “유기농 매장에서 팔리는 대안 과자는 연간 2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며 “전체 제과업계의 연간 매출액이 2조원임을 감안해볼 때 일반 과자의 약 1%가 대안 과자일 것”이라고 분석했다. 초록마을의 경우 과자가 전체 매출액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 정도다. 가장 잘 팔리는 상품인 유기농 쌀이 15%를 웃도는 것을 볼 때, ‘대안 과자’의 상품으로서 매력은 큰 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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