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사관학교부터 오뚜기부대까지 남자들과 경쟁하는 여군의 세계 속으로
훈련 과정에서 남녀 차이 없고 부대에선 자상하고 합리적인 리더십 발휘
▣ 박수진 인턴기자 lenne21@freechal.com
나는 제복이 싫었다. 적지 않은 이들이 제복에서 매력을 느끼고, 심지어 섹슈얼한 긴장을 느낀다지만 내게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5년 전 겨울, 대학 동기가 상병 진급휴가를 나왔다. 그는 나를 끌고 다짜고짜 길거리로 나섰다. 영하의 날씨에 30분을 헤매며 그가 찾아낸 것은 다름 아닌 세탁소. 거기서 그는 군복에 붙은 계급장을 바꿔달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다. “내가 작대기 두개 달고 거리를 다닐 수는 없잖아.” 어이가 없었다. 작대기 두개든 세개든 그게 뭐라고. 멀쩡했던 녀석에게 그렇게 위계의식, 서열의식을 심어준 군복이, 군대라는 조직이 싫었다.
“힘든 훈련? 행복했습니다!”
그런 나에게 <한겨레21> 기획회의에서 질문 하나가 던져졌다. “여자도 군대에 가는 것에 대해 박수진씨는 어떻게 생각하나?” 아, 곤란했다. 군 가산점 문제 등 각종 이슈만 터지면 욕설과 함께 ‘그럼 여자 니네도 군대 가라’는 주장이 융단폭격처럼 퍼부어졌으나, 상종할 가치가 없다 여겼다. 군대 보낼 아들이 있는 아줌마도 아닌 20대 중반 여성인 내가 굳이 ‘군대 가는 문제’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도, 의지도 없었다. 어쨌든 질문은 주어졌고 여러 고민들이 머리 속을 헤집었다. 여자가 군대 가면 뭐가 좋을까. 병영문화에는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 전 사회가 군사주의에 휩쓸리는 것은 아닐까…. 쉽게 답이 나오지 않았다. 그래, 우선 제복 입은 언니들을 만나보는 거야. 언니들에게 물어보자.
7월22일 경북 영천 육군 3사관학교(학교장 김주원) 연병장. 학사사관 45기, 여군사관 50기 임관식이 열렸다. 3사관학교는 학사학위를 가진 남녀 사관후보생들을 선발해 16주간 교육한 뒤 장교를 배출한다. 이들은 다시 병과학교로 가서 최소 8∼10주간 집중교육을 받은 뒤 진짜 장교로 야전에 배치된다. 오후 1시50분. 푸른 제복을 입은 883명의 신임 장교가 대각선 모양으로 줄지어 입장하며 연병장을 꽉 채웠다. 제복 바지의 물결 속에서 146명 여군의 펄럭이는 치마가 돋보였다. 35도를 웃도는 기온에도 머리카락 하나 흐트러짐이 없었다.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 구령과 함께 고개를 숙이는 동작에 ‘각’이 잡혔다.
이날 만난 ‘언니들’은 ‘군인’에 대한 꿈이 각별했다. 박민영(26) 소위는 대학(상명대 경영학과) 내내 군인이 되려고 준비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직업이 다르잖아요. 전 군인의 역동적인 모습에 반했어요.” 이날 여사관후보생 중 1등을 해 국방부장관상을 받은 김정애(25) 소위는 군대를 ‘금녀의 집’으로 보는 사회의 편견을 부수고 싶었다고 한다. 그러나 오고 싶다고 다 올 수 있는 곳은 아니다. 4수 끝에 어렵게 입교했다는 이들만 3명이었다. 윤보영·진신희·유명선 소위는 “힘들지 않았냐”는 질문에 “어렵게 합격한 만큼 훈련받을 때는 오히려 행복했습니다”라고 답했다. 군인 특유의 ‘~합니다’ ‘∼합니까’ 말투 뒤에 까르르 웃음이 터져나왔다. 이들은 인터뷰 도중 상관이 지나가자 말을 끊고 “충성” 하며 경례를 했다. 절도 있는 손길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훈련 내용을 묻자 표정이 대뜸 밝아진다. 힘든 훈련 과정을 이겨냈다는 자랑스러움 때문인 듯했다. 매일 아침 1.5km 뜀걸음(‘구보’의 순우리말)을 한다. 5시에 일과가 끝나면 또 뛴다. 첫주 2km로 시작해 훈련 막바지에는 6km로 늘었다. 훈련 2주차에는 산악 생존기술훈련을 한다. 20kg의 완전군장을 하고 산에서 1주일간 생활하는 것이다. 인간이 가장 공포를 느낀다는 11m 높이에서 뛰어내리는 산악 레펠도 거침없이 해내야 한다.
이런 훈련을 여군들이 남군들과 똑같은 수준으로 해냈을까. 훈육장교이자 남군인 류광현 대위는 같은 중대에 남녀가 섞여 있으므로 훈련 과정이나 내용에 남녀 차이를 둘 수 없다고 설명했다. 류 대위는 남녀의 체력 차이를 인정하면서도, 오히려 여군이 “행동이 빠르고 이해력도 높다”며 칭찬했다. 김미자 소령(진)은 남녀간 경쟁심리가 생겨 교육 성과도 좋았다고 말했다.
남성우월주의 병사들, 어떻게 다스리나
재미있는 건 남녀가 섞여 있는 중대에서 생활한 남군과 남자끼리 있는 중대의 남군이 여군에 대해 내리는 평가가 다르다는 점이다. 남사관후보생으로만 구성된 중대에서 생활한 정명훈(24) 소위는 “군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체력인데 여자는 그 부분이 부족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남녀가 섞여 있는 중대에서 생활한 목경수(25) 소위는 “(남군으로만 구성된 중대보다) 공부 분위기나 생활 분위기가 훨씬 좋았다. 우리 중대에서는 사격 1등도 여자였다”라며 여사관후보생들을 추어올렸다.
그렇다면 실제 부대에서 사병들을 이끄는 언니들은 어떤 모습일까. 때만 되면 언론을 장식하는 ‘스타성 언니들’ 말고 실제 남군 장병들과 살 부대끼며 지내는 보통 여군들을 만나고 싶어 경기도 포천 오뚜기 부대를 찾았다. 7월27일 오전 10시. 제식훈련이 한창이었다. “33번 훈련병, 경례할 때 손목이 많이 굽는다.” 중대장인 서지영(29) 대위가 꼼꼼히 지적해준다. 직접 주먹 모양을 바로잡아주기도 하고, 잘 못하는 훈련병은 열외로 불러내 시범을 보이기도 한다.
이곳 신병교육대에는 5명의 여군 간부가 있다. 경영지(24)·최윤영26)·오윤정(27) 소위는 직접 소대를 이끄는 소대장이다. 여군 장교로서 소대원들을 지휘할 때 어려움은 없을까. 경영지 소위는 “병사들이 대체로 ‘여자가 남자보다 약하다’라는 남성우월주의를 갖고 있어요. 제가 나이가 어린 탓도 있지만 명령에 토를 다는 경우가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임관한 지 1년째인 최윤영 소위는 “남소대장들과는 동질감을 느껴서인지 더 잘 따르는 것 같기도 하다”며 아직 그런 어려움을 완전히 극복하지는 못했다고 했다.
오윤정 소위는 극복기를 들려줬다.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지휘 스타일에서 세심하게 챙기는 인간적인 스타일로 바꿨습니다.” 오 소위는 특히 아픈 병사들을 많이 챙긴다. 생활지도기록부를 꼼꼼히 보고 평소에도 병사들을 세밀히 관찰한다. 남자 소대장들은 소대원들과 같이 샤워하고 잠자면서 친밀감을 키워가지만 이들에게는 그런 ‘스킨십’을 맺을 기회가 없다. 최윤영 소위는 대신 말을 많이 한다고 했다. 친밀감의 한계를 대화를 통한 소통으로 극복하는 것이다. 법대를 졸업하고 여군학교를 거쳐 3년 반 동안 군생활을 한 방송인 손선애씨를 통해서도 이런 ‘인격화된 리더십’을 엿볼 수 있다. 손씨는 “‘야, 똑바로 안 하냐’라는 고함이 아니라 ‘소대장은 너를 믿는다. 잘하자’라며 따뜻한 눈빛을 보냈다”고 말했다. 이런 방식으로 손씨가 지휘한 소대는 전투력 측정에서 1등을 차지하기도 했다. 이런 리더십의 변화는 여군들이 고군분투해가며 만들어낸 병영생활의 긍정적 변화일 것이다.
얘기를 나누던 중 화장실에 다녀오고 싶었다. 곽봉천 정훈장교가 안내해준 곳에는 웬 병사가 바지를 둥둥 걷어붙이고 손을 씻고 있었다. “저, 여자 화장실은 없나요?”라는 질문에 곽 대위는 민망한 눈빛으로 없다고 했다. 화장실은 9∼10평쯤 돼 보였다. 입구 왼쪽에 세면대, 가운데 샤워시설, 오른쪽에 화장실이 있었다. ‘뭐, 군대니까’ 애써 위안하며 10칸 남짓 있는 화장실의 맨 끝칸으로 가서 볼일을 봤다. 나올 때는 병사 한명이 두명으로 늘어 있었다. 손을 씻는 둥 마는 둥 하고 빠져나왔다.
남성들과 화장실 함께 써도 문제없다?
소대장들에게 화장실 같은 시설 문제가 불편하지 않은지 물었다.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우리가 요구하면 군 차원에서 만들어준다. 하지만 여자 지휘관들 스스로가 개의치 않는다.”(서지영 대위) “우리는 남녀를 떠나 일단 군인이다. 굳이 화장실을 구분할 필요가 없다.”(최윤영 소위) 하지만 불편한 시설 구조에 적응하는 것만이 능사는 아닐 것이다. 여군들이 더 늘어날 수도 있고, 방문객이 올 수도 있다. 국회 국방위원회 황진하 의원(한나라당)은 “미국에서도 불과 25년 전만 해도 별도의 물적 배려가 필요하다는 등의 이유로 여성의 전투부대 근무에 제한이 많았지만 지금은 거의 제한이 없다”며 “우리도 여군 수가 점점 늘어날 것인 만큼 지금부터 기본 시설에서부터 준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숙소와 화장실 같은 시설이 여군 정착의 충분조건은 아닐지라도 필요조건이라는 얘기다.
우리나라 여군은 1950년 의용군 성격으로 출발해 각 군단과 사단에서 관리해왔다. 1989년 여군 병과가 폐지되고 보병을 비롯한 7개 병과로 전환되면서 해마다 인원이 늘어 2005년 6월 현재 여군 장교와 부사관 수는 3701명에 이르렀다. 그러나 여전히 간부 정원 대비 2.23%에 불과한 소수집단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전투 병과에 여군 수요를 늘리는 반면 우리 군 당국은 오히려 최근 여군의 보병 병과 배치를 제한하는 문제를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육사를 졸업한 경영지 소위는 “제 윗기수부터 여장교는 임관 후 첫 보직을 신병교육대로 제한했습니다”라며 전방에 가고 싶은데 못 간 것에 대한 아쉬움을 강하게 내보였다.
3사관학교부터 오뚜기 부대까지 내가 만난 ‘제복 입은 언니들’은 꿈과 기상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보통 사람들이었다. 그들의 제복을 통해 나는 권위주의나 서열주의보다는 합리적 리더십과 섬세한 배려를 보았다. ‘찌질’해 보이던 제복이 멋있어 보이기도 했다. 다만 내가 가졌던 ‘제복(군복)의 주인은 남성’이라는 편견이 언니들이 전·후방 불문하고 제약 없이 군생활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된 것 같아 미안했다. 언니들, 파이팅!
여군 관련 주요 일지
1950년 9월 여자의용군 교육대로 창설(1기 491명 수료)
1953년 8월 여군간부후보생 1기 13명 임관
1959년 육본 인사참모부 여군처 설치
1969년 최초 공수요원 탄생(8명)
1970년 12월 여군단으로 독립
1984년 5월 중사 이상 결혼 허용
1988년 1월 기혼 여군 출산 허용
1989년 여군병과 폐지, 보병 등 7개 병과로 전환
1990년 인사참모부 여군처로 재개편
1993년 12월 사단 신병교육대 소대장 보직(15명)
1997년 공사 여생도 입교, 육군 훈련소 연대장 탄생
1998년 육사 여생도 입교
1999년 해사 여생도 입교
2001∼2002년 공사·육사·해사 여군장교 최초 임관
2002년 1월 최초의 여성 장성 탄생
2002년 9월 공군 전투기 조종사 탄생
2002년 10월 육군여군학교 해체, 3사관학교와 부사관학교로 양성통합교육
2002년 11월 국방부 여군발전단 창설
2003년 5월 해군 전투함 승선
* 자료: <여성의 안보 참여>(독고순, 한국국방연구원, 2005), <국방여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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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녀가 함께 생활한다면 군은 더욱 소중한 경험이 될 수 있어
방송인 손선애(32). 아침 시간에 텔레비전을 틀면 탄력 있는 목소리로 시사 문제를 짚어내는 그를 만날 수 있다. 표정뿐만 아니라 자세에서 절도가 뿜어져나오는 그는 육군 헌병대 중위 출신이다. 법학을 전공한 그는 1995년 대학 졸업을 앞두고 당시 여군학교에 지원해 96년부터 99년까지 복무했다.
손씨는 매우 특별해 보이는 군 복무 이력을 “특별하지 않다”고 했다. 헌법 제39조1항을 상기시키면서 “나로서는 당연한 의무였다”고 말했다. 자신을 ‘경험주의자’라고 말하는 그는 “군 생활로 잃을 것과 얻을 것을 따져보니 얻을 게 더 많다는 확신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손씨는 “저, 군대 갔다와서 사람 됐습니다”라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사람’은 ‘남성화된 여성’이 아니다. 새치름한데다 가리는 것, 따지는 것이 많았던 그가 군에 가서 배운 첫째는 ‘감사하는 마음’이다. “친구를 마음대로 만날 수 있는 것, 따뜻한 물을 마음껏 쓸 수 있는 것, 이런 사소한 것들이 얼마나 감사한지 깨달았지요.” 두 번째는 ‘인간에 대한 이해’다. 전국 곳곳에서 온 ‘팔도 사나이들’과 부대끼며 ‘내가 만나는 사람들은 얼마나 협소한 부류였나’ 새삼 느꼈다고 한다. 원양어선을 타다 온 한 병사의 손을 잡고 병원에 다녀온 일도 있었다. 철모를 때 ‘음경 확대 수술’을 한 게 곪아서 사단이 났기 때문이다. 이런 경험들은 방송 일을 하는 데 훌륭한 밑천이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군 경험을 ‘강추’한다.
“제게 군 복무 시간은 선물이었죠. 군 조직이 물론 고쳐야 할 문제들은 많지만, 그저 끌려가는 곳으로만 여기는 게 안타까워요. 가고 싶어도 못 가는 사람이 있는 걸 꼭 알아줬으면 해요.” 훈련 도중에 ‘죽고 싶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고, 머리 굵은 ‘아이들’(병사를 그는 이렇게 표현했다)을 이끌면서 “내가 미쳤지, 지금 뭐하는 거냐”는 고민이 없었던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의 손선애를 뒷받침해주는 자신감,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 같은 것들은 그때 길러졌다고 자부한다.
“‘어쩔 수 없이 가는 곳’으로 방치하지 말고, 사람 향기 나는 곳으로 가꿨으면 좋겠어요. 무엇보다 한 성만 몰려 있는 기형적 구조를 바꿨으면 합니다. 남녀가 함께 훈련받고 생활한다면 해결할 수 있는 게 많지 않을까요?”
개인의 경험 차원에서도, 병영 문화의 개선 차원에서도 여자가 군복 입은 모습을 그는 자주 떠올려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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