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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를 겸직할 생각 있습니까

등록 2005-07-27 00:00 수정 2020-05-03 04:24

변호사 출신 보좌관이 겸직하는 국회의원들에게 주는 고언
직무성실의 의무나 공익성을 저해하는 영리활동을 금지하라

▣ 강문대/ 단병호 의원 보좌관·변호사 lawpeace@hanmail.net

현행 법률상 현직 국회의원이 변호사, 의사, 기업체 대표, 학원 원장 등을 겸하는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것을 쉽사리 납득할 수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아니, 이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는 국민이 얼마나 될까? 변호사인 나도 그 사실을 몰랐다. 그러다 법정에서 변론을 하는 한 국회의원 변호사를 보고 난 뒤에야 현직 국회의원이 변호사를 겸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알았다. 당시 그는 선거법 위반으로 재판을 받는 중이었는데 의정 활동을 이유로 재판에 참가하지 않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다른 사람의 재판을 하러 변호사 배지를 단 채 법정에 출입하고 있었다. 당시 나는 속으로 참 배짱이 좋은 사람이구나 생각하면서 그 변호사의 변론을 지켜봤다. 그 일로 나는 국회의원이 변호사를 겸할 수 있다는 것을 인상적으로 알 수 있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선거운동 때 이 땅의 민주주의 발전과 지역개발을 위해 자신의 한 몸을 초개와 같이 버리겠다고 다짐하던 의원들이 당선 뒤 여전히 자신의 ‘생업’에 종사할 수 있다는 사실을 국민들이 알기는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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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원도 겸직이 금지돼 있는데…

국회의원들이 겸직을 하고 있는 이 현실이 우리 법 체계상 타당하다고 할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면, 매우 부조화스럽고 부당한 것이다. 국회의원은 한명 한명이 헌법기관이다. 그에 따라 국회의원은 불체포 특권과 면책 특권을 비롯한 수많은 특권을 누리고 있고, 아울러 청렴의 의무와 양심에 따라 직무를 수행할 의무를 부여받고 있다. 또한 우리 헌법은 ‘의회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의회주의라는 것은 국민의 대표자인 의회가 국민의 의사를 반영해 민주주의와 법치 원리를 실현해나가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의회를 구성하는 국회의원은 국민의 의사를 반영하기 위해 직무를 성실히 수행해나가야 한다. 국회의원에게 6명이나 되는 보좌 인력이 지원되고, 한달에 800만원가량의 세비가 지원되는 것은 다른 일에 신경쓰지 말고 그런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라는 의미임이 분명하다. 일반 공무원이나 회사의 이사에게 법이 성실 의무를 부여하고 있는 것에 비춰보면, 국회의원에게는 그보다 더 강한 성실 의무가 부여된다고 할 것이다. 이런 상황을 놓고 볼 때, 국회의원이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행위를 아무런 제한 없이 할 수 있다는 것은 그 정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다른 업무를 겸하면서 국회의원의 활동을 성실히 할 것을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일반 공무원들의 경우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업무에 종사하지 못하게 되어 있는데, 이 점만을 놓고 보면 국회의원의 직무 성실 의무가 공무원들의 그것에 미치지 못한다고 자인하는 셈이다.

이에 대해 일부 국회의원들이 겸직을 제한하는 것은 직업 선택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국회의원의 위와 같은 지위와 의무를 고려하면 설득력이 없다. 국회의원에게 겸직을 허용하는 것이 공공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주장하기도 하는 모양인데, 이것은 국회의원의 직무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서는 나올 수 없는 주장이다. 국회의원의 직무를 충실히 하는 것만큼 더 공익적인 것이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세비만으로는 의정활동을 할 수 없어 겸직을 하고 있다는 주장은 정말 옆에서 듣기에도 민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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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법리적 측면을 떠나 실제 국회의원이 의원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면서 영리 목적의 활동을 하는 것이 가능한지를 한번 보자. 변호사도 해보고 국회의원을 곁에서 보좌하고 있는 나의 경험에 비춰보면 그 답은 명백하다. 의원들이 의정 활동을 제대로 하면서 변호사 활동을 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변호사 업무는 연속성이 강하기 때문에 시간 나는 대로 관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런데 국회 회기는 짝수 달마다 있는데, 짝수 달은 회기 중이라서 자리를 비울 수 없다. 홀수 달은 짝수 달을 준비해야 할 뿐 아니라 대외활동과 당 활동이 집중되기 때문에 여전히 바쁘다. 내가 모시고 있는 단병호 의원의 경우 홀수 달에는 평생 안 보던 법전을 뒤지면서 공부하랴, 노동 현장 쫓아다니랴 정신이 없다. 지역구 의원의 경우에는 지역구 관리까지 해야 되기 때문에 더 바쁠 것이 틀림없다. 그나마 이것은 상반기에 해당하는 얘기고 정기국회가 시작되는 9월 이후에는 매일매일이 회기 중이다. 거기에다 9월 중순 이후에 시작되는 국정감사까지 고려하면 하반기는 한마디로 ‘대목’의 연속이다.

대부분 전문직, 이해관계 떠날 수 있나

그렇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의원의 업무를 제대로 수행하면서 다른 영리 행위를 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만약 실제로 영리 활동 목적의 다른 직을 겸직하면서 의원 활동을 하는 의원이 있다면, 의정 활동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든지 아니면 영리 활동 목적의 직무를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있든지 둘 중 하나다. 이것은 국민에게나 의뢰인에게나 국회의원에게나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그런데 국회의원이라고 해서 모두 자신이 이전에 해왔던 업무를 겸직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자(이런 자가 국회에 진출하는 경우가 드물기는 하지만, 쩝)가 겸직을 하는 것은 꿈도 못 꿀 일이고, 교수들도 대부분 휴직을 하는 실정이다. 그리하여 겸직을 하는 의원은 대부분 의사나 변호사 같은 전문직이거나 기업체 대표나 학교법인의 이사장 같은 관리직에 종사하는 자들이다. 이 둘의 공통점은 그들이 모두 자영업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자영업의 겸직은 직무 성실성의 문제 외에 직무 공정성의 문제도 야기한다. 지금 현업에 종사하는 변호사나 의사가 국회 법사위나 보건복지위에서 직업적 이해관계를 완전히 떠날 수 있을지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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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에게 제기되는 위와 같은 문제점은 보좌관에게도 마찬가지로 적용되기 때문에 보좌관이 변호사를 겸직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 나는 불만이 전혀 없다. 오히려 그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내가 처음 보좌관을 할 때 변호사 업무를 겸직할 수 있는지를 대한변호사협회에 질의했지만, 둘 다 겸하겠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한 것은 아니었다. 보좌관을 하겠다고 결심한 순간부터 국회 일에 전념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변호사를 겸직할 생각은 조금도 없었다. 단지 기존 사무실과의 관계를 어떻게 정리해야 하는지를 묻기 위해서 그런 질의를 했을 뿐이다. 변호사법에 변호사가 상시 근무를 필요로 하는 공무원의 직을 겸할 수 없도록 규정돼 있는 것은, 변호사를 찾는 의뢰인을 위해서나 공무원에게 공무를 맡기는 국가를 위해서나 바람직한 것이다.

생활 정치인을 꿈꾸십니까

‘일개’ 보좌관도 국회에 들어오면서 변호사 업무에 연연해하지 않고 국회 업무에 전념할 각오를 다졌는데, 국회의원은 더 말할 나위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법 체계상 어울리지도 않고 공무원들과의 형평성에도 부합하지 않으며 괜히 직무 성실성과 공정성에 대한 오해만 낳는 영리활동 허용을 계속 유지해야 할 이유가 없다. 물론, 생활 정치인을 꿈꾸며 국민들의 일상생활 현장 속에 있기를 원하는 의원들에게는 이것이 다소 부당하게 느껴지겠지만, 대부분의 국민들이 전문직 자영업자가 아닌 지금 상황에서는 어쩔 수 없다. 국민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노동자와 농민들이 의석의 다수를 차지하는 때가 되면 국회의원의 공장노동자, 경작농민의 겸직은 당연히 권장되고 허용될 것이다. 혹 지금이라도 노동자와 농민을 겸직할 의향은 없으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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