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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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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영화의 천국, 타이

등록 2005-07-21 00:00 수정 2020-05-03 04:24

엔터테인먼트로서의 공포를 즐겨 찾는 타이 사람들
귀신과 함께 사는 전통 불교문화가 그 배경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타이는 공포영화의 천국이다. 세계 영화시장에서도 성공을 거둔 <디아이> <낭낙> 등도 모두 타이 영화다.

최근 한국에서 개봉한 타이 영화 <셔터>는 사진에 찍힌 귀신이 원한을 갚는 내용이다. 불교의 권선징악을 주제로 디지털 시대에 유행하는 공포 놀이인 ‘심령사진’을 소재로 삼았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제낀 <셔터>

타이의 공포영화가 <셔터>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할 정도로 이 영화는 매끈하게 잘 빠졌다. 1999년 공포영화 <낭낙>이 그해 개봉된 <타이타닉>을 누른 데 이어, 지난해 개봉한 <셔터>는 110만바트의 수입을 올리며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인 <투머로우>(105만바트), <트로이>(73만바트)를 제친 놀라운 기록이다. 역대 박스오피스에서도 2003년 개봉된 <옹박>의 99만바트를 넘어 7위의 성적을 거뒀다. 최근 할리우드는 이 영화를 리메이크하기로 했다.

타이의 공포산업은 영화에만 그치지 않는다. 대중지와 방송도 엔터테인먼트로서의 공포를 즐겨 찾는다. 타이의 오피니언 리더는 영자지인 <네이션>과 <방콕포스트>를 읽지만, 발행 부수는 <타이라스> <마티초온> 등 타이어 일간지가 더 많다. 타이어 일간지는 옐로 저널리즘에 가깝다. 1면은 난자당한 주검, 살인 사건의 피의자 사진과 초자연적인 귀신 이야기 등 공포심을 자극하는 내용으로 심심찮게 채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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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사람들이 공포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타이는 일상적으로 공포가 충만한 문화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국민의 95%가 불교도인 타이의 공포 콘텐츠는 권선징악, 윤회사상 등 불교 문화의 테두리 안에서 존재한다. 프라니 사쿨피빠따나 푸껫대 교수는 “귀신은 타이 사람들 일상 속에 함께 산다”며 “타이 귀신은 모두 악령만은 아니다”라고 말한다.

타이의 모든 집 앞에는 영혼이 깃드는 집인 ‘산프라품’이 있다. 귀신은 혼자 혹은 떼를 이뤄 이곳에 깃들어 집과 땅을 수호한다. 자유롭게 떠돌며 때론 사람에 빙의하는 ‘피크라수’, 아기를 낳다가 숨진 귀신인 ‘피프라이’, 역병 귀신인 ‘피호우’도 전통적인 타이 귀신이다.

귀신을 불행의 전조로 받아들이지 않아

타이에선 귀신을 봤다는 사람도 많고, 보진 않았지만 믿는다는 사람도 많다. 사람들은 귀신 이야기를 즐긴다. 가지각색의 귀신 이야기가 차고 넘친다. 쓰나미 이전부터 푸껫의 리조트들이 각자 하나씩 귀신 이야기를 가지고 있었을 정도다. 푸껫 라자바트대학교의 미나 위테후다 마소삿(21)은 “아마도 학생들의 70~80%는 귀신을 믿을 것”이라면서 “나도 지난해 기숙사에서 하얀 옷을 입은 귀신들이 빙 둘러앉아 과자를 먹고 있는 장면을 봤다”고 웃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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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 사람들은 귀신을 불행의 전조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귀신에게 원한 살 일을 하지 않았다면, 음식을 들고 절에 찾아가 간단한 불공을 드리고 훌훌 털어버린다. 고속도로처럼 인명 사고가 많은 곳엔 숨진 영혼들이 깃들 사당을 마련해준다.

타이는 공포가 놀이가 되고 상업화된 나라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성장한 타이 공포영화는 세계 영화시장에서 승승장구하며 달러를 짭짤히 챙겼다. 한편 타이 정부는 푸껫주에서 떠도는 귀신 이야기 때문에 관광객이 떨어질까봐 노심초사하고 있으니,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문제의 사진은 조작된 것”

‘쓰나미 귀신 증후군’에 기름 부은 심령사진의 주인공 폰팁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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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나미 피해 지역 주민들 사이에서만 유행하던 ‘쓰나미 귀신 증후군’에 기름을 부은 건 폰팁 로잔아수난(50) 박사의 심령사진이었다. 삼성 휴대전화에 찍힌 이 사진에는 폰팁 박사 어깨 뒤로 정체를 알 수 없는 두명의 얼굴이 홀연히 등장한다.
하지만 그는 7월12일 방콕의 법의학 연구소에서 기자를 만나자마자 “문제의 심령사진은 수정된 것이 분명하다”고 주장했다. 폰팁 박사는 쓰나미 발생 직후 사고 현장에 달려가 40일 동안 자원봉사자들을 지휘하며 주검 확인 작업을 벌였다. 법무부 직속 타이 법의학 연구소의 대표를 맡고 있으며, 방송 패널로 자주 출연해 사람들로부터 인기가 높다.
심령사진은 어떻게 찍힌 것인가.

지난 2월2일 팡아주에 배치된 연구소팀과 자원봉사자들이 팡아시에 모여 해산식을 하는 날이었다. 밤 9시쯤 식을 마쳤는데, 한 시민이 다가와 휴대전화 카메라로 기념사진을 찍겠다고 해서 허락해줬다. 그런데 다음날 아침 9시 그가 찾아와 귀신이 찍혔다고 하면서 휴대전화 사진을 보여줬다. 그러더니 그 다음날 아침 타이에서 가장 잘 팔리는 신문 가운데 하나인 <타이라스> 1면에 그 사진이 실렸더라. 기자가 그를 따라다녔던 것이다.
사진이 찍힐 당시에 어떤 특별한 느낌이 있었나.

그런 것은 없었다. 휴대전화 사진은 조작이다. 그는 사진을 찍을 당시에는 아무 말도 않더니, 다음날 아침에서야 귀신이 찍혔다고 말했다. 뭔가 이상하지 않나.
귀신을 믿는가.

그렇다. 나는 귀신을 믿는다. 주민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푸껫, 팡아, 크라비 지역에서는 쓰나미의 원혼들이 활보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무섭지 않다. 나는 그곳에서 주검의 신원을 확인하는 등 귀신들을 위해 좋은 일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우리 팀이 처리한 주검만 2500여구다. 귀신이 나를 해칠 리 없다. 귀신은 나를 고마워할 것이다.
언론에 크게 보도됐는데.

귀신들은 타이 사람들과 친하다. 그리고 좋은 귀신들도 많다. 이런 이야기가 잘못 알려져 귀신을 무서워하는 한국이나 일본 관광객들이 발길을 끊을까봐 걱정된다.




찰칵! 그들이 잡혔다

카메라로 초자연적 존재를 찍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

‘셔터를 누르는 순간, 귀신이 살아난다.’
영화 <셔터>의 홍보 문구다. 디지털 시대의 디카족들은 귀신 찍기에도 욕심을 부린다. <셔터>는 무엇이든 기록하고 싶어하는 디카족들의 욕망을 잘 잡아내 심령사진(귀신 사진)을 소재로 삼았다.
사실 애초부터 사진과 귀신은 ‘세트’로 놀았다. 귀신이나 요정, 초자연적 현상이 찍힌 심령사진의 계보는 사진의 역사와 얼추 비슷하다.
카메라의 초창기,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들은 카메라를 ‘혼을 훔쳐가는 기계’라고 무서워했다. 사람들은 이전까지 자신의 모습을 거울을 통한 입사각과 반사각의 한계 범위 안에서만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사진은 거울을 써서는 불가능한 각도에서, 자신의 상을 만들어냈다. 다른 사람의 시선에서 본 자신의 모습은 기이했고, 한편으론 혼을 도둑맞은 기분이 들었다. 또한 다른 사람이 자신의 모습을 소유할 수 있다는 데에 박탈감을 느꼈다.
당시엔 사람의 혼을 훔치는 기계인 카메라가 사람이 아닌 다른 초자연적 존재를 찍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도 많았다. 셜록 홈스를 내세워 근대 계몽주의를 설파했던 코넌 도일은 만년에 심령사진 모으기에 심취했다. 어린이들이 그린 그림을 두고 진짜 요정의 사진이라고 주장한 사실도 당시 신문에 전한다.
심령사진은 디지털 카메라의 등장과 함께 ‘중흥’을 맞고 있다. 인터넷 동호회를 중심으로 흉가에 찾아가 사진을 찍는 고스트 셔터들이 많다. 인터넷 카페 흉가체험(http://cafe.daum.net/hyunggabest)은 1만8천여명의 회원을 거느리고 있다. 이 카페 운영자 이동욱씨는 “적게는 10여명, 많게는 200명이 전국의 흉가에 찾아가 사진을 찍는다”고 말했다.
이들에 따르면 귀신은 사진에 뿌연 안개가 찍힌 부유령, 빛의 형상인 지박령, 동그란 모양의 영체인 ORB, 인간의 형상을 지닌 영혼의 모습 등으로 나타난다고 한다. 김재운 심령연구원 원장은 “카메라 렌즈가 육안보다 순간 포착 능력이 뛰어나다”며 “보통 영혼들은 카메라를 피하지만, 굳이 기를 숨기지 않는 영혼은 사진에 나온다”고 주장했다.
제천 늘봄가든, 대구 팔공산 흉가 등이 귀신이 잘 찍히는 곳으로 꼽힌다. 극한 공포를 ‘재미’로 즐길 요량이 있다면, 카메라를 메고 찾아가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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