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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원가에 ‘절대반지’가 떴다?

등록 2005-07-13 00:00 수정 2020-05-02 04:24

90년대 말 이후 커져온 논술 시장, 통합형 논술 시행되면 ‘빅뱅’
강사료 천정부지로 오르고 학원 수강생 연령대 더욱 하락할 듯

▣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박수진 인턴기자 lenne21@freechal.com

서울 목동 ㅁ학원은 아이들의 학교 성적을 책임지는 내신 전문 학원이다. 이 학원 ‘연합반’은 일주일에 4번 수업을 진행하는데, 얼마 전부터 일주일에 1번씩 언어·수리·영어 등 세 과목에 대한 논술 강의를 시작했다. 아영(17·서울 관악고1)이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서 저녁을 먹은 뒤 오후 6시20분까지 학원에 간다. 밤 11시10분까지 꼬박 수업이 이어진다.

교사가 인솔하는 서울 ‘원정 과외’

“언어 논술 시간에 ‘은둔형 인간’에 대한 수업을 했어요. 은둔형 인간이 나타나게 된 데에는 사회적인 배경이 있다고 생각해요. 변화가 심한 사회에 살다 보니까 적응하는 게 쉽지 않았던 것이죠.” 아영이는 수업 시간에 배운 가장 인상 깊었던 주제라며, ‘은둔형 인간’에 대한 나름의 생각을 또박또박 말한다.

“수업 시간이 매우 활기차요. 지난 시간에 제시된 키워드로 다음 시간에 그룹토론을 하는데요. 저쪽 그룹에서 하는 얘기가 내 생각이랑 다르면 그룹 사이에 ‘크로스 토의’가 일어나기도 해요.” 아영이의 말을 듣고 있던 지혜(17·명덕여고 1)도 한마디 거들었다.

국어 논술은 틀이 잡혔지만, 수학·영어 논술은 아직 서투른 편이다. 영어 시간에는 지문을 해석한 뒤, 그에 대한 토론을 벌이고, 수리 논술 때는 어려운 문제를 30분 동안 고심해 풀다가 강사가 나와 풀이를 해준다. 강사가 칠판에다 문제를 풀어주는 모습이 보통 수학 수업 시간과 비슷하다. 문혜영 목동 ㅁ학원장은 “언어 논술 수업은 많이 세련됐지만, 영어 논술과 수리 논술은 아직 개척 대상”이라고 말했다.

1990년대 말 이후 이른바 명문 대학 입시에서 논술 비중이 커지면서, 논술 시장의 비중도 덩달아 확장돼왔다. 한국교육개발원이 집계한 한해 사교육비 지출액은 2003년 현재 13조6천억원, 한국산업연구원 기준으로는 29조4천억원(1999년 기준)에 이른다. 논술 시장의 규모를 정확히 추정할 수는 없지만, 업계 선도업체인 메가스터디의 매출액은 2002년 203억원, 2003년 459억원, 2004년 502억원으로 해마다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그 배경에는 ‘족집게’로 소문난 ‘스타’ 강사들이 있었다. 1세대 스타는 지난 2001년 9월 과로로 숨을 거둔 조진만(사망 당시 32살) 전 메가스터디 부사장이다. 평범한 논술 강사로 활동하던 그는 1996년 입시에서 연세대·서강대·한양대·이화여대 등 4개 대학의 논술 문제 6개를 거의 그대로 맞춰 학원가의 ‘스타’가 됐다. 이후 교육방송 언어영역 강사로 인기를 모은 전직 고등학교 교사 출신 이만기(44) ‘이만기의 국어나라’ 대표, 이석록(47) 대치메가스터디 원장 등이 그 빈자리를 메웠다.

이 밖에 △힘찬국어전문학원 △박학천논술연구소 △김동아국어학원 △언어의빛학원 △엘리트청솔학원 △조동기국어논술전문학원 △무지개논술아카데미 △바칼로레아아카데미 등도 강남 학부모들의 입소문을 타며 논술 전문 학원으로 명성을 쌓고 있다. 신영 정일학원 평가이사는 “지금까지 논술 시장은 ‘우수 대학 진학을 희망하는 고3’이라는 수요자층의 한계로 시장 규모가 제한돼 있었지만, 통합형 논술 시행 이후 시장 규모가 급속히 확대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가장 큰 변화는 연령대의 하락이다. 그동안에도 강남권에서는 고등학교 1·2학년뿐 아니라 중학교 논술 학원도 일반적이었지만, 올해 초 대학들이 ‘본고사형 논술’ ‘통합형 논술’ 등을 강조하면서 초등학교 논술학원이 본격 등장하기 시작했다.

<한겨레21> 취재진이 7월6일 찾은 서울 강남구 청담동 ㅈ학원에서는 ‘통합형 논술’ 도입 이후의 입시전략에 대해 초등학교 학부모들을 상대로 간담회를 열고 있었다. 이 모임에 참여한 한 학부모는 “명문대 입시에서 논술의 중요성이 점점 커질 것”이라며 “지금 따라잡지 않으면 영영 뒤처질 것 같아 나와봤다”고 말했다.

논술 시장 확대가 가져올 또 다른 변화는 학원의 ‘담’이 사라지게 된다는 점이다. 3~4년 전부터 서울 공립학교와 지방 명문 고등학교는 학생들에게 돈을 걷어 유명 학원 강사를 초빙해오는 게 관행이 됐다. 수능이 끝나면 교사가 학생들을 인솔해 서울로 원정 과외를 오기도 한다. 좋은 말로 표현한다면 교육의 ‘아웃소싱’이고, 나쁘게 말한다면 ‘책임 방기’다. 한달 정도 장기 계약을 할 경우, 국어·영어·수학·사회·과학 등 주요 교과목 강사 3~5명이 팀을 꾸려 아이들을 지도한다. 여건이 어려운 지방 고등학교는 아이들에게 1~2만원씩 푼돈을 걷어 1회 초청 강연을 하는 경우가 많다. 한 유명 논술 강사는 “나는 한번 움직이는 데 50만원이지만, 다른 강사 ㅂ씨는 250만원이라는 얘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김형국 포항여고 교사는 “통합형 논술에 교사들의 준비가 안 돼 있는 게 사실”이라며 “평소에 특별히 하는 것 없이 수능이 끝난 뒤 선생님들이 반 2~3개 모아서 강의를 하는 게 고작”이라고 말했다.

검증된 스타 강사 월1천만원 호가

강남 학원가는 7월 말부터 시작되는 주요 대학의 수시 1학기 응시를 위한 전쟁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강남 한 학원의 7~8월 달력을 확인해보니, “학생들을 맡기고 싶다”는 고등학교의 예약 신청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 이 학원은 7월19일부터 4일 동안은 아주대, 7월26일부터 4일 동안은 한양대, 8월1일부터 4일 동안은 홍익대, 8월5일부터 4일 동안은 경희대 지원생들을 상대로 맞춤형 강의를 할 예정이다.

‘사실상 본고사’로 평가되는 논술과 심층면접의 부담은 오롯이 학생들 몫이다. 또 시험에 대비하려면 소규모 토론과 일대일 수업이 필수적이기 때문에 내신이나 수능시험 대비 강좌보다 몇배나 비쌀 수밖에 없다. 논술의 특성상 유능한 강사의 첨삭 지도를 한번 거치면 아이들의 논술 실력이 확 달라지는 경우도 흔해, 부르는 게 값인 경우도 많다. 유명 논술강사 ㄱ씨는 “통합형 논술의 도입으로 논술 강의의 수요는 늘어나는 데 견줘, 검증된 강사의 수는 제한돼 있다”며 “강의료 폭등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대치동이나 목동 학원가의 논술 학원비는 월 40만~50만원 선이다. 논술의 특성상 1주일에 한번씩 4~5시간 정도 수업이 이뤄진다. 반면 소규모 과외방 등의 가격은 비공식적인 만큼 액수도 정해진 것이 없다. 시간당 최소 10만원에서 많게는 20만원까지 올라간다. 이철호 전교조 참교육연구소 부소장은 “한달 학원 수강료가 서울 변두리는 30만~70만원, 강남·목동은 100만원이 넘는다”고 말했다. 실력이 검증된 스타 강사에게 받는 과외의 경우 월 500만원에서 1천만원을 호가한다. 강신창 에듀토피아 중앙교육 논술실장은 “논술 강의에 대한 평가는 주관적인데다 계량이 힘들어 적정 가격을 산정하기가 쉽지 않다”며 “수강료는 말 그대로 그때그때 다르다”고 말했다.



지방 학생 서울 수난기

고시원에서 먹고 잤며 논술학원 다녔지만 “그래도 옳은 선택이었다”

▣ 이혜온 인턴기자 eon2222@hanmail.net

“그때만 생각하면 지금도 서글프죠.”
2004년 11월. 안동고 3학년 학생이던 임중희(20·서울대 사회과학부1)씨는 수능 시험이 끝나자마자 서울로 올라가는 짐을 쌌다. 뒤를 돌아보고 말 것도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안동에는 학원이 없었다. 혼자 글을 써보고 고등학교 선생님께 첨삭을 받았지만 뭔가 허전했다. “수능까지는 혼자 공부하는 게 가능했지만 논술은 안 되겠더라고요. 아무래도 자극이 필요한데, 지방에서는 그런 기회가 확실히 적잖아요.”
고달픈 서울 생활이 시작됐다. 서울 역삼동 학원 옆에 딸린 고시원에서 먹고 자면서 하루에 5시간씩 두달 동안 강의를 들었다. 방은 두 발을 간신히 뻗을 수 있을 만큼 작았다. 지방 우등생들에게 박민규의 소설 <갑을 고시원 체험기>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고시원에서는 밥도 제대로 못 먹었어요. 서울애들이 부럽기도 했고요. 거울을 보니까 얼굴이 초췌하게 망가졌더라고요.” 확실히 서울에서 접하는 정보와 안동에서 주워듣던 것과는 피부에 와닿는 게 달랐다. 두달 동안 학원비와 방값으로 120만원을 썼지만 아깝지 않았다. 임씨는 “결과적으로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광주 출신인 서경국(21·서울대 사회과학부2)씨도 2003년 수능을 끝내고 서울 봉천동으로 향했다. 열흘 동안 하루 5시간씩 90만원을 냈다. 그는 “학교에서 먼저 ‘서울로 가 논술 공부를 하라’고 제안했고, 공식 결석처리가 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같은 반 학생 30명 가운데 절반이 지방 학생이었다. 서씨는 “광주와 서울은 확실히 달랐다”며 “후배들이 조언을 구하면 서슴지 않고 상경을 권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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