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일조선인 인권을 보장하는 어떤 규정도 마련 못해…유엔헌장 정신에 따라 문제 해결할 의무 있어
▣ 배지원/ 우토로국제대책회의 사무국장
올해는 한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한 지 40년이 되는 해다. 광복 60년이 되는 해이자 을사늑약 10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하다. 일본이 역사 교과서를 왜곡하고 노골적으로 독도가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통에 ‘2005년 한·일 우정의 해’는 사실상 물건너갔고, 오히려 한국 사회는 한·일간의 역사를 되짚어보고 시시비비를 가리고 매듭을 짓기 위한 실천에 더욱 매진하는 듯하다. 바람직한 일이다.
한국 정부도 책임 피할 수 없어
무엇보다 ‘실질적인 파문’은 오랫동안 저항했던 정부와 외교통상부의 패소로 1965년 한-일협정 관련 문서가 공개된 일일 것이다. 우리는 한-일협정이 한·일간의 역사적 인식차를 좁히지 못한 상태에서 각자의 경제적 이익과 정권 차원의 고려, 국제 정세에 의해 전격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한-일협정 내용과 그 과정을 보면 오늘날 한·일간의 갈등은 이미 예견된 것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데 국교를 정상화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상식적으로 생각하건대, 이전의 비정상적인 것들을 정리·청산하고 국가 대 국가의 공식적 외교 관계를 튼다는 의미일 것이다. 일본이 ‘기본 관계에 관한 조약’(기본조약)의 표현을 꺼리고 ‘공동선언’이나 ‘우호조약’ 정도의 수준을 주장했던 것을 보면 일본은 애초부터 국교 정상화 과정에서 그들의 비정상적인 과거 행태를 정리할 의사가 없었다. 한-일협정 어느 조항을 보아도 전쟁 책임과 일제 강점 역사의 청산 의무를 명기한 곳은 없다.
‘청구권 문제 해결과 경제협력에 관한 협정’으로 일본 정부의 보상은 다 끝났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지만, 아무리 읽어봐도 청구권이나 경제협력이 무엇 때문에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한 협정의 목적이 애매하고, 청구권과 경제협력이 무턱대고 나란히 병기돼 있는 모습도 기이하기만 하다. 재일 한국인의 법적 지위 조항도 이미 동포들이 험난한 투쟁으로 쟁취한 생활보호와 건강보험 적용 등이 마치 한국 정부의 요청으로 보장해주게 된 것 마냥 생색이 대단하다. 언젠가는 곪아터질 문제들이 40년간 여러 정치적 이해와 냉전적 국제질서 속에서 간신히 덮여져왔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한국 정부는 기본조약 체결 뒤 1971년 ‘대일민간청구권신고법’과 1974년 ‘동보상법’을 제정했으나 여기에 수많은 일제 피해자를 누락시켰다. B급·C급 전범 피해자, 강제 노동과 강제 징용 피해자, 일본군 위안부, 재일 조선인, 사할린 잔류 동포, 피폭자 등등. 한-일협정에 임하는 일본 정부의 자세는 앞서도 언급했지만, 한국 정부 역시 책임을 면할 수 없는 분명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일협정 관련 문서의 공개에 따른 여러 대책이 강구 중인 것으로 보도됐는데, 정부 내에서 실질적인 진전이 있는지에는 여전히 의문이다. 더구나 이들 피해자 중 재일동포나 사할린 잔류자는 한-일협정 대상에서 아예 빠져 있어 이에 대한 한국 정부의 대책이 무엇인지 묻고 싶다.
재일조선인 문제, 추가 협정 필요
한-일협정을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청구권과 경제협력 협정의 제2조 2항을 보면, “본 조는 1947년 8월15일부터 협정 서명일까지 일본에 거주한 일이 있는 사람의 재산, 권리, 이익에 대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되어 있다. 2항에 해당되는 사람은 실질적으로 주로 재일동포인데, 이들에 대해서는 2조, 즉 양 체약국 및 국민의 재산, 권리, 이익과 그 국민간의 청구권에 관한 문제가 완전히 최종적으로 해결됐다는 규정이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다. 청구권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는 말이다. 따라서 재일 조선인 문제는 한·일간에 추가 협정이 필요한 부분이다. 만약 일본 정부의 해석이 다르다면 협정에서 규정하는 것처럼 제3의 기관을 통해 중재를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버려진 마을 우토로’. 우토로를 지키는 일본인 시민단체가 우토로 사진집에 붙인 제목이다. 조국이 버리고 일본이 버린 마을 우토로는 한-일협정의 이러한 문제점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교토 군용 비행장 건설에 조선인 노동자를 반강제적으로 동원했던 일본 정부와 군수기업이 하루아침에 자취를 감춘 뒤부터 지금까지 일본 정부는 이 마을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적이 없다고 한다. 주민이 몇명이고,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한번도 들여다본 적이 없다. 왜냐하면 외국인이기 때문에 일본이 행정적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일제의 식민지 강점과 2차 세계대전의 침략국가로서의 책임은커녕 국제법이 정하는 최소한의 인도적 양심도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조국의 반쪽 한국은 어떠했는가. 최근 우토로 주민들은 ‘이제 조국이 나설 때가 되었다’고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에 호소하고 있는데, 그 조국 한국은 일본 못지않은 냉담자였다. 오히려 역대 정권, 특히 군사정권하에서 재일동포 사회는 감시와 이용의 대상이었고, 일본인으로 동화돼야 하는 존재였다. 이것은 국가가 외교보호권을 포기한 것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한국 정부는 한-일협정 체결 당시 일본 정부와 일본 기업으로부터 자국민의 권리 구제를 소홀히 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만일 우토로에 일본 공권력에 의한 강제 퇴거가 집행돼 1세들이 거리로 내쫓기게 된다면 한국 정부는 한-일협정의 동포 누락 문제를 포함해 자국민 보호 의무의 방기와 일본과의 외교 협상 실패라는 강한 비판을 면할 수 없다.
한-일 기본조약 제4조에서 이런 구절이 눈에 띤다. ‘양국 상호간의 관계는 유엔 헌장의 원칙을 지침으로 한다.’ ‘양국의 상호 복지와 공통의 이익을 증진함에 있어 유엔의 원칙에 합당하게 협력한다.’ 우토로 문제에 한해 본다면, 일본 정부는 ‘거주권 침해’의 국제인권조약을 위반해 유엔으로부터 개선 권고를 받은 바 있다. 또 유엔 인권위에서는 일본 사회의 소수자들에 대한 사회적 차별과 배제의 문제점도 여러 차례 지적했다. 우토로 문제는 한·일간의 문제이면서 이미 국제적 문제다. 더구나 일본 정부는 올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진출을 최대의 외교 목표로 삼고 있기 때문에, 한국 정부는 일본의 자격과 양심에 지속적인 의문부호를 던져야 할 것이다. ‘자국의 전쟁을 위해 동원한 사람들이 생존권의 위기에 처해진 것을 알고도 수수방관하는 나라, 60여년간 갈고닦은 생활 터전과 공동체가 파괴되는 것에 대해 구제할 방법이 없다고 말하는 나라가 도대체 국제 사회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라고 말이다.
한-일간 역사의 골을 메워줄 소중한 첫걸음
결론적으로 우토로 문제의 1차적 책임은 일본에 있으나, 양국 정부 모두에게 책임이 있고 적어도 기본조약에서 정하는 것처럼 유엔헌장 정신에 따라 문제를 해결해야 할 의무가 있다. 우토로 문제 해결 과정에서 한·일 양국 정부는 외교적 협의를 통해 토지 매입 과정부터 역사 마을 조성 단계까지 주민과의 진실한 대화를 통해 각각 분명한 역할과 책임을 다해야 한다. 양국 정부와 시민사회가 ‘결자해지’의 자세로 우토로 동포들의 역사와 인권을 바로 세우는 데 합심해 노력한다면, 오히려 우토로 문제는 깊이 파인 한·일간 역사의 골을 메워주는 소중한 첫걸음이 될 수 있다. 우토로가 지금은 초라하고 불안에 잠 못 이루지만 언젠가는 역사적 상징성이 보존되고 평화와 인권의 메시지가 깊은 향기를 내뿜는 그런 마을이 될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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