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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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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부의 유별난 ‘조심성’

등록 2005-05-18 00:00 수정 2020-05-02 04:24

우토로 문제가 전후 배상 문제로 진전될까 전전긍긍… 대책도 서지 않은 ‘땅 매입’에만 관심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노무현 대통령은 일본 연립여당 간사장들을 향해 ‘과거사에 대해 사과만 하지 말고 걸맞은 실천을 보여달라’고 했는데, 정작 외교통상부가 우토로 문제에 접근할 땐 ‘인도적 지원’이나 ‘주거권’ 같은 이야기만 하고 있어요. 일본 정부의 역사적 죄과를 상기시키려는 행동이 보이지 않아요. 사정이 이렇다면 대통령과 외교통상부의 코드가 안 맞는 거 아닙니까?”

시민단체가 앞에 서고 정부는 뒷짐?

수년 전부터 우토로 문제를 지켜본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현재 한국 정부의 대응을 이렇게 꼬집었다. 그는 “우토로 문제는 사할린 강제징용이나 피폭자 문제처럼 일본의 전후배상과 관련돼 있다”며 “한국 정부가 이 문제를 시민단체에 맡기고 뒷짐을 진다면 일본의 과거사 책임 회피로 인한 재외동포의 비극은 계속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우토로 문제는 한국이 아닌 일본의 시민단체에 의해 의제화됐다. 한국의 시민단체가 우토로 문제에 적극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것도 최근의 일이다. 일본인들은 우토로를 알고 있지만, 정작 한국인들은 잘 모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서일본식산과 주민들과의 10여년의 재판이 끝나고 나서 한국 정부도 우토로 문제에 뛰어들기 시작했다. 나종일 주일대사가 지난해 11월 교토부를 방문한 데 이어 정화태 오사카 총영사는 우지시를 찾아가 우토로 문제의 해결을 위한 협조를 당부했다. 일제강점하 강제동원피해 진상규명위원회도 4월 말 우토로를 방문해 현장조사를 벌였고, 국회의원들도 이즈음 방문해 우토로 문제에 대한 한국의 의지를 과시했다. 오사카 총영사관은 최근 땅 소유주인 이노우에 마사미를 만나 주민들과의 협상을 지원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 시민단체와 우토로 주변의 ‘일꾼’들은 한국 정부의 대표격인 외교통상부를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 배지원 우토로 국제대책위 사무국장은 “주민들의 실리와 과거사 문제를 모두 챙기는 한국 정부의 ‘시나리오’가 없다”며 “주무부서인 오사카 총영사관이 주민들의 땅 매입 협상을 중계하는 데 급급한 실정”이라고 비판했다.

<한겨레21>이 입수한 외교통상부의 우토로 한인촌 실태조사 보고서를 보면, 우토로 문제가 자칫 전후배상 문제로 확대될까봐 조심해하는 한국 정부의 분위기가 읽힌다. 우토로 문제 해결의 역사적 관점은 결여돼 있고, ‘땅 매입’이라는 실리적 해결에만 치우쳐 있다. 또한 될 수 있으면 정부는 뒤로 숨고, 시민단체가 앞에 나서주길 바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지난 2월 작성된 이 보고서는 “우토로 문제를 전후배상 차원에서 다루는 것은 합리적 문제 해결을 어렵게 할 수 있는바, 재일동포의 거주권 및 생활권 보장 등 인도적 측면에서 문제 제기(해야 한다)”고 적고 있다. 또한 “토지 문제 진행과정에서 재일동포에 의해 주민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채 토지소유권이 개인 및 민간회사(서일본식산)로 넘어가고 그 과정에서 토지매매 차익을 챙긴 것으로 의심돼, 일본 정부에만 모든 의무 부담을 요구하기 어려운 실정”이라고 밝혔다.

일본 정부 참여 유도하는 대책도 없다

외교부의 이런 인식 속에서 나온 대안은 ‘주민들의 땅 매입을 통한 해결’이다. 이는 일본 정부가 말하는 ‘주민 직접매입 원칙’과 크게 다를 바 없다.

주오사카 대사관이 4월20일 작성한 보고서를 보면, “생활보호 대상인 17가구를 우토로 안에 살 수 있도록 하는 게 관건”이며 “나머지 가구는 택지 재개발 때 수익자 부담의 원칙에 따라 토지·주택 구입 방안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이 보고서는 생활보호 대상자의 땅 매입을 위해 △일본 중앙·지방 정부의 재정 참여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과 재일동포 사회, 한국 기업체 등이 참가하는 모금운동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한국 정부도 상징적인 의미에서 재외동포 지원사업 예산 지원을 추진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보고서는 일본 정부의 ‘재정 참여’를 유도하는 아무런 대책도 제시하지 않고 있다. 이와 관련한 한국 정부의 뚜렷한 활동도 없는 게 사실이다. 이 때문에 한국 정부는 직접 일본 정부에 문제 해결을 촉구할 의사가 없다는 해석도 나온다. 시민단체가 추진하기로 한 민간 모금운동이 일본 정부를 압박할 때까지 기다리자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일본 외무성 관계자는 2월16일 <아사히신문> 오사카판과의 인터뷰에서 “우토로 문제는 민사 사건이므로 소유주와 주민이 해결해야 할 문제고 지방자치단체에 조언할 입장에 있지 않다”고 밝히고 있다.

한국 정부의 소극적 자세와는 달리 시민단체들은 우토로 문제를 통해 일본의 과거사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토로 국제대책위원회가 최근 내놓은 ‘기억의 공간’으로서의 역사마을 조성안도 이런 관점과 맞닿아 있다.

배 사무국장은 “현재처럼 오사카 영사관이 뛰는 수준에서 일본 정부의 재정 참여는 요원한 일”이라며 “만약 우토로 문제가 일본 정부의 참여 등 일본의 사회적 합의 없이 한국 정부와 민간에 의해서만 해결된다면, 과거사 문제는 한층 꼬이고 재일 조선인은 사회적으로 더욱 고립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기억의 공간’을 만들어라

‘우토로 국제대책회의’의 역사마을 조성 방안… 아픈 과거 보존 위해 일본 정부의 결단 필수적

우토로 마을회관에는 낡은 설계도면이 한장 걸려 있다. 지난 2000년 일본의 시민단체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이 만든 우토로 마을의 재개발 방안이다. 5층짜리 공동주택에는 재일 조선인 1세와 생활보호대상자들이 들어가 살고, 마을 중앙에는 유선형 아케이드로 둘러싸인 커뮤니티센터가 생긴다. 우토로 주민들이 품어왔던 소박한 꿈이다.
우토로 국제대책회의는 최근 우토로 마을 6400평을 사들여 역사마을로 조성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마을 안에 공동주택을 지어 저소득층 주민들이 살 공간을 만들어주고 몇몇 장소를 ‘식민지 기억의 공간’으로 보존하는 것이다. 독일에 아우슈비츠가 있듯 일본에도 반성의 공간이 있어야 한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우토로 보존대상 1호는 마을 서쪽에 있는 두채의 노동자 합숙소(함바집). 이 집은 1941년 조선인 노동자 가족의 집단숙소로 지어진 이래 반세기 역사의 녹이 슬었다. 상수도관이 없어서 주민들이 여기저기 파놓은 우물들, 일본 정부의 방치로 여기저기 드러난 하수도와 도랑들도 아픈 과거를 기억할 수 있는 공간들이다. 1945년 주민들이 미군들과 대치했던 자위대 부대 근처에는 기념비가 설 만하다. 우토로 1세대들은 가장 화려했던 투쟁으로 ‘미군을 몰아냈던 일’을 꼽는다. 주민들의 ‘투쟁 회합 장소’로 이용됐던 마을회관도 보존 대상으로 꼽힌다. 또 2차대전 중 일본의 전범행위를 기록하는 박물관도 세워야 한다.
그래서 우토로 역사마을 조성에서 일본 정부의 결단과 참여는 필수적이다. 역사마을 조성이 정부 사업으로 결정되면, 땅 문제는 중앙이나 지방 정부가 사들임으로써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배지원 우토로 국제대책위원회 사무국장은 “일단 일본 정부에 역사마을 조성을 목표로 땅 매입을 추진하라고 요구하는 쪽으로 운동을 전개할 계획”이라며 “한국 정부에도 외교적 노력을 촉구하는 한편, 민간 차원에서도 모금운동을 통해 역사마을 조성기금을 모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역사마을 조성방안에 대해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리무율 총련 미나미야마시로 지부 부위원장은 “역사마을은 한-일 정부간 장기간 논의가 필요해, 정작 1세대 주민들은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날 것”이라며 “일본 정부가 받아들일 가능성도 거의 없을뿐더러, 지금은 일본 정부를 상대로 투쟁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우토로 문제는 전후배상 차원 아니다”





니시카와 히로시 우지시의회 의원(민주당)은 우토로 강제퇴거 반대운동의 일본쪽 중심인물 가운데 하나다. 니시카와 의원은 5월10일 <한겨레21> 취재진과 만나 “우지시와 시의회는 우토로 문제를 전후배상 차원이 아닌 인도적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다”고 말해 한국쪽과 미묘한 시각 차이를 드러냈다. 인구 19만명의 우지시 시의원은 모두 32명이고, 이들 가운데 3명이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우토로 문제에 어떻게 관심을 갖게 됐나.
시의원에 당선되기 전에 우지시청 수도부에서 일했다. 1988년 우토로에 상수도를 설치하면서 실상을 알게 됐다. 이때부터 ‘우토로를 지키는 모임’에서 활동하고 있다.
시의회와 시에서는 우토로를 위해 어떤 일을 하고 있나.
총련과 민단이 함께 올린 ‘우토로 문제에 대한 청원’을 지난 3월 시의회에서 만장일치로 채택했다. 청원서는 △고령자 및 생활보호대상자를 비롯한 주민 실태조사와 보호대책 강구 △일본 중앙정부에 지원 요청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우리는 이 청원안을 중의원 의장, 참의원 의장, 내각총리대신, 외무대신 등에게 전달했다. 그나마 시의회는 진보 성향인 민주당이 다수이기 때문에 우토로 문제를 적극적으로 풀어갈 수 있다.
우토로 문제의 해결방법은.
주민들이 땅을 직접 매입하는 것을 원칙으로 문제를 풀어야 한다. 주민들이 땅을 사면 우지시가 공공시설과 도로를 놓는 등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재일 조선인은 일본 전후배상의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우토로 문제도 그 차원에서 볼 수 있는데.
우지시에서 우토로를 바라보는 시각은 전후배상 차원이 아니다. 중앙정부가 전후배상 문제는 끝났다고 보기 때문에 우지시로서도 권한이 없다. 다만 인도적 차원에서 우토로를 ‘행복한 마을’로 만들고 싶다. ‘마을 만들기’ 사업(일본의 주거개선 사업)을 하면 중앙정부로부터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 민족은 다르지만 모두 우지시 주민들이다. 아픈 과거사를 생각하면서 주거권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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