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두근두근 가슴 안고 항상 줄타기

등록 2005-05-11 00:00 수정 2020-05-03 04:24

‘무리한 요구’를 거절할 수 없는 한 세무사의 자기고백… 신고 때만 되면 가짜 영수증 수집작전

회계사와 세무사의 수적 증가로 인한 과당경쟁으로 ‘오래된 분’들이 어려움을 많이 느끼는 것 같다. 옛날엔 가만히 앉아 있어도 고객이 찾아왔다. 하지만 요새는 거래처 한곳 늘리기가 쉽지 않다. 기장료도 옛날보다 많이 내려갔다. 과거엔 기장료가 20만~30만원으로 사무실 직원들의 월급과 거의 맞먹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10만~15만원으로 내려갔다. 특히 개인 고객은 10만원 받기도 어렵다. 그 사이 직원들 월급은 7~8배가량 뛰었다.

여기는 하루에 다섯끼를 먹습니까?

과당경쟁으로 고객들이 ‘무리한 요구’를 해오더라도 물리치기도 힘들어졌다. 세무대리인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입장이니 ‘갑을 관계’에서 을의 입장이 될 수밖에 없다. 거래처를 유지하기 위해 과연 어디까지 고객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느냐가 큰 고민거리다.

법인세나 소득세 등을 신고할 때 실제 경비가 아닌데도 경비로 처리하는 관행(?)은 모든 세무대리인 사무실에서 이뤄지고 있다고 해도 무방하다. 이때 그 금액이 크면 각서를 받고 경비 처리를 해주기도 한다. 다른 사무실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인데, 세무사가 “각서를 못 받으면 일할 수 없다”고 해서 거래처가 다른 사무실로 옮겨갔다.

탈세로 세금 줄이는 것은 다 ‘짜고 치는 고스톱’이다. 세무서도 잘 알고 있다.
대리인들은 신고 때가 되면 고객들에게 가짜 영수증을 포함해 가능한 한 많은 영수증을 모아오라고 한다. 흔히 밥집 영수증 5천원짜리 200장을 모아서 100만원씩 경비 처리를 해준다. 영수증이 없는 것보다 실제 지출한 게 아닌 영수증(가짜 영수증)이라도 있는 편이 훨씬 낫다. 한 세무대리인의 고객이 세무조사를 맞았다. 업체에서 식당 영수증이 하도 많이 나와, 세무서에서 “여기는 하루에 다섯끼를 먹습니까? 이게 말이 됩니까?”라고 추궁했다. 하지만 가짜 영수증이라도 있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또 다른 곳에선 가짜 식대를 1천만원어치 끊었다가 세무조사에서 탄로가 난 경우도 있다. 그러나 (탈루소득) 200만~300만원에서 적당히 국세청과 ‘타협’해서 넘어갔다. 우스개 같은 소리지만 거래처가 세무조사를 받고 나면, 우리끼리 반성 아닌 ‘반성’을 한다. “식당 영수증이 너무 많았나 보네. 접대비로 할걸.”

아무리 간이 영수증을 많이 모아도 한계가 있다. 그래서 크게 경비를 조절할 때는 급여를 조정한다. 급여 신고를 애초에 적게 하는 것이다. 해당 직원들도 은행 대출을 받는 경우가 아니면 대체로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마저도 최근 국민연금관리공단이나 건강보험공단 등과 세무서의 정보교환 속도(?)가 빨라져 힘들어지고 있다. 그래서 직원 급여를 실제와 다르게 신고하려면 애초에 각종 공단에도 똑같이 신고해야 편하다.

자영업자의 경우 거의 거짓말, 각종 요령이 판친다고 보면 된다. 어떤 분들은 솔직하게 신고하지만, 대부분은 한사코 탈세를 하려 한다. 법인은 좀 다르겠지만, 개인은 세무조사를 안 받으면 ‘장땡’이고, 걸리면 ‘까짓것, 가산세 조금 더 부담한다’는 기분으로 세금을 줄여서 신고하는 사람들이 많다.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 세무대리인인 세무사는 가슴이 두근두근할 때도 있다. 경력이 얼마 안 돼서 그런지 모르지만, 고객을 계속 붙잡기 위해 고객의 뜻대로 신고하기 일쑤다. 한편으로 이 정도 요령(?)쯤은 누구나 하는 것이고, 세무조사 받을 만큼은 아니라는 생각으로 위안을 삼기도 한다. 업종별로 국세청 신고 소득률의 기준은 다 다르다. 그래서 일단 상위나 하위는 배제하고 평균에서 왔다갔다 하게 맞추려고 한다. 매출로 봤을 때는 비록 카드 비율이 높아지긴 했지만 여전히 현금매출은 상당히 누락된다.

당기순이익 정하고 시작하는 ‘거꾸로 작업’

대부분의 자영업자들과 소규모 법인들은 탈세를 한다. 탈세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은 일하는 순서만 봐도 그렇다. 먼저 당기순이익을 업종 평균과 지난해 당기순이익을 기준으로 해서 정해놓는다. 이 당기순이익을 기준으로 세무대리인은 고객에게 ‘매출이 얼마이니 세금이 어느 정도 나올 것’이라고 얘기해준다. 대개는 이를 수용한다. 그렇지 않고 ‘내지 못하겠다’고 하면, 다시 당기순이익을 정해 세금을 줄여준다. 원래 한해 동안의 거래를 정리했더니 당기순이익이 얼마가 나오더라가 아니라, 일을 거꾸로 하는 셈이다.

지난 3월31일 법인세를 마감하기에 앞서 고객에게 “1천만원의 세금을 내야 한다”고 일렀다. 그런데 고객이 갑자기 마감날 도저히 다 못 내겠다고 했다. 그래서 부랴부랴 200만원을 줄여서 신고서를 다시 작성했다.

세무대리인의 윤리?! 세무대리인들은 빨리 개업해서 이익을 내는 게 목표다. 그나마 습관적으로 업계에서 보통 용인해주는 정도를 지키려 한다. ‘매뉴얼’(원칙)대로 하면 고객이 다 떠난다. 또 고객을 유치할 때 세금을 깎아줄 것처럼 얘기해놓고서, 실제로 안 깎아줬다면 누가 남겠나? 바로 이게 문제다.

세무조사 받는 것은 어느 세무사나 싫어한다. 그러면서도 세금이 좀 많이 나올 것 같으면 약간씩 경비를 더 집어넣어 준다. 어떤 곳에서는 (가짜) 일용직 장부까지 만들어주기도 한다. 어차피 내가 만들어주는 것이나 그쪽에서 만들어오는 것이나 같다는 것이다. 그러나 겉 내용은 같을지 몰라도 실질은 완전히 다르다. 대리인이 그런 문서까지 만들어주는 것은 탈세를 적극적으로 도와주는 꼴이 된다. 물론 탈세 지침을 내려주면서 실제 작업만 하지 않는다고 해서 그 책임을 면할 수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어느 정도는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항상 줄타기를 하는 것 같다. 그래서 세무사들끼리 서로 물어본다. 다른 곳은 어떻게 신고하는지 궁금해서 묻는 것이다. 아무래도 최근 개업한 세무대리인들이 좀더 성실히 신고하는 측면이 있다. 반면 오래된 분들은 좀더 대담(?)하게 팍팍 소득을 줄여서 신고하기도 한다.

자영업자나 소규모 법인들의 탈세는 직장인과 비교하면 어마어마한 것이다. 그런데 이분들은 직장인과 비교하는 게 아니라, 옆 가게와 비교하려 든다. 어떤 고객은 처음에 세금 “100만원을 낼 수 있다”고 하다가, 나중에 “옆 가게에선 50만원밖에 안 냈다. 자녀가 유학 중인데 어떻게 안 되겠냐”고 우는 소리를 한다. 하여튼 납세자들은 엄청나게 세금을 안 내려 한다. 그래서 다른 곳에서 적게 내게 해준다며 옮기는 경우도 있다. 비교하는 기준 자체가 이렇기 때문에 다들 100% 성실신고를 하지 않으면서도, 다른 곳과 비교해 ‘이만하면 나도 성실한 납부자겠지’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짙다.

우리야 정직하게 하는 게 좋지만…

이런 것들이 쉽게 고쳐지지 않는 이유는 근본적으로 업체의 매출이 잡히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규모별로 다르겠지만 내가 아는 꽤 잘되는 큰 고깃집의 카드 사용 비율이 30%가 조금 넘을 정도다. 이런 것들 때문에 탈세 문화가 빨리 바뀌기는 어려울 것 같다.

대리인 처지에서는 있는 그대로 신고하자는 고객이 가장 좋다. 하지만 고객 가운데 이런 분들은 5~10%밖에 안 된다. 세무대리인으로서 원칙대로 하는 것이 일하기에 편하다. 그래야 마음도 편하고 스스로도 더 떳떳해질 것 같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