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획-불임수술-방사’로 이어지는 TNR 프로그램은 도시 생태계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
▣ 남종영 기자 fandg@hani.co.kr> fandg@hani.co.kr
유럽과 미국에서는 이미 고양이와 비둘기의 과밀화가 사회 문제가 됐다. 최근 미국 위스콘신주는 배회 고양이의 사냥을 허용하는 법률 제정 문제를 두고 격렬한 논란을 벌이고 있다. 미국 전역에서 동물보호단체들이 몰려와 밤새 시위를 하는 동안 72개 카운티의 주민 대표들은 지난 4월11일 찬반 투표를 벌였다. 배회 고양이를 동물보호 대상에서 제외하는 이 방안에 찬성 6830표, 반대 5201표가 나왔다. 곧이어 주 의회를 통해 입법절차를 밟게 될 전망이지만, 짐 도일 주지사는 거부권을 행사하겠다고 밝히고 있다.
불임 수술 받으면 교미음 내지 않고 온순해져
고양이와 비둘기 문제는 결국 이들의 생태계에 인간이 개입하는 것이 정당한지, 개입한다면 어디까지가 적절한지가 논란의 핵심이다. 대다수 동물보호단체들은 인위적인 안락사나 도살 처분을 반대하지만, 불임수술을 통한 개체수 관리는 어쩔 수 없다는 입장이다. 조희경 동물자유연대 대표는 “고양이와 비둘기의 과밀화로 인한 피해가 크면 클수록 인간은 동물을 미워하게 된다”며 “개체수 관리는 도시 생태계에서 인간과 동물이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타협점”이라고 설명한다.
고양이의 개체수 관리에는 흔히 TNR(Trap-Neuter-Return)이라 불리는 ‘포획-중성화(불임수술)-방사’ 프로그램이 대표적이다. 포획된 배회 고양이들은 불임수술을 거친 뒤 원래 살던 곳으로 돌려보낸다. 암컷은 난소를 제거하고, 수컷은 정관을 자르거나 거세한다. ‘중성’이라는 새 성을 부여받은 배회 고양이는 그 표식으로 왼쪽 귀 끝이 잘린다. 이것은 배회 고양이를 관리하는 나라들의 ‘국제적 표준’이기도 하다. 중성화된 고양이는 공격성이 현저히 줄어들고 특유의 교미음도 내지 않는다.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는 것을 빼고는 인간을 불편하게 하지 않는다. TNR는 1970년대 영국과 덴마크에서 시작돼 현재는 상당수 유럽 국가와 일본에서 시행되고 있다.
국제동물보호단체인 세계동물보호협회(WSPA)도 2001년 내놓은 배회 고양이 관리지침에서 TNR 프로그램을 권장하고 있다. 이론적으로 한쌍의 고양이 가족이 6년 동안 자그마치 42만 마리의 고양이를 생산할 수 있으며, 고양이들은 자기 영역의 보금자리와 먹이가 한계상황에 이를 때까지 번식하기 때문에 불임 시술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집 고양이 또한 낮에는 주인과 함께 있지만, 밤에는 밖을 나도는 ‘이중생활’을 하기 때문에 불임수술을 해야 한다. 아무리 동물을 사랑한다 해도 고양이의 개체수 관리는 인간과 고양이 모두에게 재앙을 막기 위해 불가피한 선택이다.
미국인도주의협회(HSUS)는 TTVARM 프로그램에서 좀더 구체적인 대응요령을 제시한다. 배회 고양이를 포획(trap)하면, 검사(test)와 예방접종(vaccinate), 불임수술(alter)을 한 뒤 방사(release)하고 지속적으로 관찰(monitor)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밖에 △고양이 덫 근처에는 표식을 해둬야 하며 △고양이에게 영구적인 신원확인 수단을 부착하고 △야생동물보호구역에서는 고양이 집단을 부양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한다.
완벽한 TNR 프로그램은 아니지만 경기 과천시도 2002년부터 배회 고양이의 불임수술 사업을 벌이고 있다. 2002년 시범사업으로 3개월 이상의 배회 고양이 40마리가 불임수술을 받았고, 2003년 411마리, 2004년 478마리에 이어 올해는 이미 100마리가 중성화됐다. 과천시 지역경제과 김인왕씨는 “배회 고양이의 울음소리에 대한 민원이 들어올 때마다 해당 지역에서 고양이를 잡아 불임수술을 시켰다”며 “체계적인 실태조사에 따른 개체수 관리정책이라기보다는 민원해소 차원에서 진행된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관악산과 청계산으로 둘러싸여 고양이가 살기에 천혜의 조건이었던 과천에서 고양이가 줄어든 것은 피부에 와 닿을 정도다. 김씨는 “일단 하루에 한건 이상 들어오던 ‘고양이 민원’이 한달에 한건 정도로 줄었다”며 “정확하지는 않지만 2002년 2천~3천 마리였던 고양이 수가 절반으로 줄어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사업은 과천시에서 성과를 거두자 지난해부터 경기도의 6개 지자체로 확대됐다.
사람과 동물의 아름다운 유대를 위하여
하지만 불임수술 사업을 벌인다고 해도 배회 고양이를 ‘보이지 않을 정도로’ 줄이지는 못한다. 길 잃은 고양이가 거듭 생겨나고, 본능 때문에 집 고양이들의 한밤의 ‘외도’도 계속되기 때문이다. 되레 TNR 프로그램에서 중요한 건 주민들이 자신을 둘러싼 도시 생태계를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마련해주는 데 있다. 귀 끝에 중성 표식을 하고 돌아다니는 고양이를 보면서, 그 부자연스러움이 인간의 과소비와 무책임으로 인한 결과임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더욱이 중성화한 고양이는 성격이 온순해져 사람을 잘 따른다. 실제로 개인적으로 집 근처의 배회 고양이를 불임 시술시킨 뒤 먹이를 주는 사람들도 있다. 배회 고양이들은 일정 시간 일정 장소에 놓이는 먹이를 보고 찾아들고, 인간과 교감을 나누게 된다. 광주의 동물보호 시민모임인 ‘사람과 동물의 아름다운 유대’는 최근 체계적인 TNR 프로그램을 위해 기금을 모으고 있다. 연구회에서 활동하는 고진규(49)씨는 “해당 지역에 대한 고양이 개체수와 서식 특성을 조사하는 게 우선”이라며 “실태조사가 끝나면 주민들과 함께 지역 내 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면서 지속적인 모니터를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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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만명이 사는 스위스 바젤시에서는 1988년 인구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인 2만 마리가 비둘기일 정도로 ‘비둘기 천국’이었다. 공공 화단의 식물을 쪼아먹어 1982년 이로 인한 피해만 4800만원에 이르렀다. 배설물로 인한 환경 훼손은 비둘기 퇴치회사의 번영을 이끌어 1988년 퇴치회사의 매출은 1억5천만원 정도였다.
바젤시는 1960년대부터 덫이나 총포로 비둘기를 사냥해 도살했지만, 개체수는 줄어들지 않았다. 1978년 비둘기 모이 주기를 금지하는 법안 제정을 시도했으나 동물보호론자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1988년 바젤시 건강위생국과 바젤대학, 바젤동물보호협회가 공동 추진한 바젤시의 ‘비둘기 규제 프로그램’은 실패에 대한 반성에서 비롯했다. 특히 과거의 인위적 도살 처분은 효과가 없었다는 점에 주목했다. 영역을 구분짓고 사는 비둘기는 해당 영역의 빈 공간이 생기면 곧바로 번식해 해당 마리 수를 채운다는 것을 발견했다. 예를 들어 3년 동안 9천 마리의 비둘기를 도살했지만, 비둘기는 1300마리밖에 줄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은 인위적 도살 처분을 최대한 줄이고, 비둘기의 서식처와 먹이 공급원을 차단해 개체수를 관리하기로 했다
먼저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것은 동물 학대”라는 팸플릿을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언론매체를 통해 캠페인을 전개했다. 사람들은 비둘기가 사랑스러워서 모이를 던져주지만, 이것은 되레 비둘기들의 주체적인 먹이활동을 줄여 병에 잘 걸리는 ‘비만 비둘기’를 양산하기 때문이다. 모이주기는 지정된 3곳의 장소에서만 허가됐다. 또 학교·교회·대학 등 공공 건물의 지붕에 비둘기집을 만들어 비둘기들을 이곳으로 유인했다. 일주일에 한번씩 둥지를 청소하고 비둘기를 모니터했다. 비둘기 알은 나오는 즉시 제거됐다.
이런 프로그램 끝에 13개 비둘기 집단의 평균 개체수는 1988년 1400마리에서 1992년 708마리로 줄었고, 전체 비둘기 수는 2만 마리에서 1만 마리가 됐다. 이제 바젤에서 비둘기에게 모이를 주는 사람은 없고, 모이 금지 간판도 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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