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어느 ‘레이트 어답터’의 DMB 체험기…버스 안에서 매끄러운 화면으로 뉴스를 시청할 때</font>
▣ 채윤정/ 한겨레 미디어기획부
며칠 전 퇴근 무렵이었다. 부장이 내게 오더니 검정색 신기종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웬 휴대전화?’라는 표정을 짓자 부장이 말했다. “요즘 뜨고 있는 그 위성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폰이야. 며칠 빌려줄 테니 체험해보고 보고서를 내도록.” ‘내 손안의 TV’라고 불린다는 DMB폰은 그렇게 해서 내 손안에 들어왔다. 하지만 나는 최근까지도 구닥다리 흑백 화면 휴대전화를 쓰면서 별 불편을 느끼지 못했고, ‘세로 본능’에만 충실했던 레이트 어답터(최신 기기 사용을 선도하는 ‘어얼리 어답터’의 반대 개념임) 중에서도 둘째가라면 서러울 그런 사람이었다. 텔레비전과 라디오, 휴대전화가 합체된 이 기계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아니 움직이면서까지 TV를 봐야 하는 거야?’ 텔레비전이라면 마감 뉴스와 김○○씨 드라마 <부모님 전상서> 외에는 별로 쳐다보지도 않는 나였다. 그런 나이기에 그 신식 기계의 버튼을 몇번 눌러보다가 가방 속에 처박아둔 건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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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철은 아직 서비스 안돼
늦은 퇴근 시간, 경기도 일산으로 가는 좌석버스는 만원이었다. 이리저리 부대끼며 서 있자니 졸음이 몰려왔다. 그때 버스기사가 틀어놓은 라디오에서 뉴스가 흘러나왔다. “지상파 DMB 사업자가 선정됨에 따라 새로운 미디어 환경이….” 갑자기 가방 안의 DMB폰이 생각났다. 꺼내들었다. 바로 지금 나오는 뉴스의 DMB라는 게 바로 이거라고요. 바로 이 기계라고요. 말소리를 내지 않았지만 내 입가에는 우쭐한 미소가 흘렀다. 기계를 손에 쥐어보니 일반 휴대전화보다 더 무겁지는 않았다. 크기도 손에 쥐기에 적당했고. 일단 회전창을 열어 가로 화면을 확보한 뒤, DMB 서비스 회사의 로고가 새겨진 버튼을 눌렀다. 비디오 채널, 오디오 채널, 프리미엄 채널 등 채널 정보가 떴다. 문자 방송이라는 데이터 방송은 아직 서비스 전이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므로 비디오 채널을 선택했다. 그러자 1번은 뮤직, 2번은 뉴스, 3번은 드라마인 세부 채널 안내가 떴다. 2번 뉴스를 선택했다. 드디어 뉴스 화면으로 바뀌었다. 마침 요즘 뜨는 축구스타 이동국의 얼굴이 화면을 가득 메웠다. 우즈베키스탄과 한국의 축구경기 하일라이트 장면을 보여주는 참이었다. DMB폰을 치켜들자 주위에 서 있던 남자들이 일제히 내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화면이 작아 잘 안 보일 줄 알았는데, 박지성의 집요한 돌파 장면이 생생하게 잡혔다. 아날로그 TV의 지지직 같은 기운은 없었다. 화면이 생각보다 상당히 매끄러웠다. 이때 휴대전화 벨이 울렸다. 회전창을 돌려 끄고 전화를 받으니 부장이었다. 방송과 통신의 융합을 목격한 남자들이 나를 부러운 듯 쳐다봤다.
다음날 아침 지하철에서 무료 신문을 읽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DMB폰을 다시 꺼냈다. 아침 뉴스나 챙겨볼까. 버튼을 눌렀다. 채널의 문자정보를 받고 있다는 메시지가 떴다. 하지만 이건 웬일. 수신이 안 되는 것이었다. 몇번이나 로고 버튼을 눌러봤지만 허사였다. ‘아, 위성 전파가 전달되지 않는 지역이나 지하철 근처에 중계기 설치 운운하던 게 이것 때문이었구나.’ 지하철 밖으로 나오니 그때서야 방송이 시작됐다. “아니, 출퇴근 때 지하철 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이래서야 되겠어”라는 생각을 잠깐 했다.
나른한 오후, 업무 효율 팍팍
며칠 동안 사용해보니 이제 DMB폰이 휴대전화보다 익숙하다. 거래처에 가기 전 택시 안에서 못 본 뉴스도 챙기고, 약속에 늦는 친구를 기다릴 동안 엠넷에 출현한 ‘김깜빡’과 ‘안어벙’을 보며 웃는다. 하지만 올해 목표로 두고 있는 일본어 마스터를 위한 외국어 교육 프로그램이나 직장에서 오래 버틸 수 있는 전략을 알려주는 생생 정보들은 아직 서비스 전이라 아쉽다. 앞으로 전문 채널들이 많이 생긴다니 두고 볼 일이지만. 부르르~. 몸이 떨린다. 김○○의 유명한 드라마 <청춘의 덫>이 시작될 때 진동하도록 프로그램 예약을 해놨다. 스트레스 쌓이는 데 잘됐다. 부장은 아시려나. 내 손안의 TV가 이리도 나른한 오후, 업무 효율을 팍팍 높이고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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