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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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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토확장, 지금이 찬스다”

등록 2005-03-23 00:00 수정 2020-05-03 04:24

과거사 반성 모두 무효화시킨 일본 우익의 총공격… 왜 그들은 독도문제를 이슈화하는가

▣ 임을출 기자 chul@hani.co.kr

오늘날의 뒤틀어진 한-일 관계는 예고된 재앙이었다.

정부의 한 핵심 관계자는 “지난 수년간 일본의 우경화에 주목하면서도 한눈을 잠시 팔았던 것도 사실”이라며 “우리가 먼저 허를 찔린 꼴이 돼버렸다”고 씁쓸해했다. 사실 정부는 지난해 2월부터 따로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일본의 심상치 않은 동향들을 관찰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일본이 전후 세대로 재편되면서 정치인, 지도층이 과거보다 식민지 시대에 대한 부채 의식이 줄어들고 반성, 사죄 의식도 사라졌다”면서 “우경화, 보통국가화가 진행되고 국수주의적 경향까지 나타났다”고 지적했다.

구조적 우향우… 정부 ‘주권수호’ 차원서 접근

정부는 일본 지도층의 시대착오적 언행이 계속되고, 고이즈미 총리의 신사참배, 여기에다 교과서, 독도 문제까지 생겨 자제해달라고 요청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진다. 정부는 지난 2년간의 한-일 관계를 원점에서 다시 평가했다. 특히 지난 10여년간 일본 지도자들이 털어놓은 과거사 반성이나 사죄 발언들은 이제 모두 무효화된 것이나 다름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40년간 유지해온 정부의 ‘조용한 외교’의 기본 틀이 깨지는 순간인 셈이다. 정부가 일본 시마네현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 하루 만에 일본에 대한 이른바 ‘신독트린’을 발표하고 독도 영유권 수호를 위한 조처를 취해나가기로 하는 등 4가지 원칙과 5가지 대응 방향을 내놓고, “독도 및 과거사 관련 일련의 행태를 과거 식민지 침탈과 궤를 같이하는 엄중한 사안으로 보고 단호하게 대처해나갈 것”이라고 밝힌 대목도 사안의 심각성을 잘 보여준다.

전문가들의 우려도 정부의 인식과 다르지 않다. 일본이 구조적으로 ‘우향우’로 기울고 있고, 이런 경향이 점차 고착화되고 있어 단호하면서도 치밀하게 대응하지 못하면 나중에 더 큰 화를 입을 수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경고다.

정부는 ‘신독트린’를 발표하고 독도와 교과서 왜곡, 일제 식민지 피해자 배상 문제 등에 대한 후속 조치에 착수했다. 정부는 우선 독도 문제와 관련해 일본의 영유권 주장에는 과거 식민지 침탈을 정당화하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엄중한 사안이라는 점에서 주권 수호 차원으로 접근한다는 원칙을 재확인하고, 우선 역사적인 자료 확충과 국제법적 논리 확보 등 종합적인 대책 마련에 나선 것으로 알려진다. 하지만 이 정도의 조처로 일본 우경화를 막기에는 턱없이 미약하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정부 관계자는 “이번 독도 사태는 우리에게 지금까지와는 근본적으로 다른 국가 생존전략을 짤 때라는 강력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지금 일본뿐 아니라 미국과도 전통적인 동맹의 재조정기에 들어가 있고, 중국과는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있는 동북공정 뇌관이 도사리고 있는데다, 북핵 문제 등 냉전 이후 최대의 외교적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게 정부 내 일부 핵심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이들은 심하게는 적과 친구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차가운 이해관계와 복잡한 주변 질서가 재편성되고 있기 때문에 이 틈바구니에서 살아남으려면 과감한 외교 목표 설정과 이를 실천하기 위한 특단의 조처 등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한다. 또 국민 역량를 재결집하기 위한 비상한 조처도 필요하다는 내부 목소리도 있다. “‘한국의 단결된 모습은 한달만 지나면 모두 사라져버릴 것’이라는 외국 언론들의 냉소적인 시각도 불식시킬 필요가 있다.”

“센카쿠 열도와 북방영토도 찾아라”

일본은 뒤늦게 3월17일 마치무라 노부다카 일본 외상을 통해 “한국 국민의 정서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고,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다뤄야 할) 역사적 이슈들이 있지만 우리는 과거에 발목잡혀서는 안 된다”고 한발 물러서는 자세를 보였다. 그러나 일본의 우경화는 이미 고이즈미 정부도 제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는 점에서 방심은 금물로 보인다. 시마네현은 그동안 약 20차례 영유권 확립을 촉구하고 정부 차원의 담당기구 설치와 다케시마의 날 제정 등 북방 4개 섬 문제에 버금가는 대우를 요구해왔으나 일본 정부는 애써 외면했다. 이에 우파들이 중심이 돼 2002년 의원연맹을 결성하고 독자적 조례안을 내놓기에 이른 것이다. 시마네 출신의 아오키 미키오 자민당 참의원 의원회장을 비롯해 영토 확장의 야심을 불태우는 우파 정치인들이 배후에서 거들고 있는 셈이다.

일본 자민·민주당의 젊은 보수파 의원들은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와 한국의 독도, 러시아와의 북방 영토 문제 등에 대응하기 위해 ‘나라의 영토를 지키는 의원연맹’을 결성해 센카쿠 열도에 시찰단을 파견하는 계획을 세우는 등 자극적인 행동을 일삼아왔다. 일본의 우경화는 이처럼 구조적인 문제라는 점에서 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결국 독도 영유권 주장도 일본 우파와 이들의 주장을 거스를 능력이 없는 정부가 합작으로 기획해 저지르고 있는 국가 차원의 거사로 봐도 큰 무리가 없을 듯하다.

센카쿠 열도와 북방 영토에 이어 독도까지 독식하려는 일본의 의도는 간단치 않다. 일본의 동향을 주시해온 한 전직 고위 인사는 “일본 우파들은 독도 영유권 주장을 통해 센카쿠 열도와 북방 영토 회복에 대한 강한 의지를 당사국인 중국과 러시아뿐 아니라 국제 사회에 과시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고 지적했다. 즉, 중국과 러시아에도 영토 회복 주장이 말장난이 아니라는 걸 보여주려는 것이다. 독도 영토 분쟁을 이슈화해 국제사법재판소로 끌고 가기 위한 일본 지도부의 야욕이 마각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센카쿠섬이나 북방 영토는 일본이 양보할 수 없는 지역으로 꼽히고 있다. 특히 중국과 서로 자기 땅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센카쿠섬은 군사적으로 전략 요충지에 해당하고, 엄청난 양의 해저 자원까지 매장돼 있어 영유권 분쟁은 격화될 수밖에 없다. 중동지역에서 대부분의 석유를 수입하는 일본은 센카쿠 열도를 포함한 주변 해역의 자원 개발에 큰 관심을 쏟고 있다. 한국과 독도 분쟁을 빚고 있는 일본의 지방자치체장이 이번에는 자위대를 대동하고 중국과의 영토 분쟁 지역인 센카쿠 열도 현지 시찰을 검토하고 있다. 독도 주변에도 풍부한 어족 자원뿐 아니라 ‘제2의 석유’라고 불리는 가스 하이드레이트가 LNG 환산으로 6억t가량 묻혀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러시아와 영유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북방 영토는 쿠릴 열도 4개 섬으로 일본이 반환할 것을 요구하고 있으나 교섭은 난황을 겪고 있다. 일본은 2월7일을 ‘북방 영토의 날’로 정해놓고 있다.

일본 평화헌법 제9조도 흔들려

그간 일본 우파들은 센카쿠 열도나 북방 영토 문제 등이 의도대로 해결될 전망이 그리 크지 않다는 점에서 노심초사해왔다. 이런 때에 터진 독도 분쟁은 공교롭게도 우파들이 영토 회복 전의를 불태우는 계기로 작용하고 있다. <요미우리>는 “여전히 독도는 한국에 의해 ‘불법’으로 ‘점거’돼 있다”며 “조례 성립은 일본 국민의 여론 계발을 꾀하기 위해서라도 잘된 일이고 일본 정부가 취하는 ‘무사 안일주의’ 태도는 (일본 국민을 위해서라도) 비난을 면치 못할 일”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일본 우익들이 지금을 영토 확장의 최적기로 본다는 점에서 더 큰 우려를 낳고 있다. 미국이 중국 견제 등을 위해 자신들의 도움을 가장 필요로 하는 이때에 미해결 현안들을 해결하겠다는 속셈이다. 이들은 자기네 땅이라 우기는 섬들을 되찾으려면 더 강력한 무력 시위를 행사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품고 있다. 하지만 이를 실천하기 쉽지 않다는 게 그간 우파들의 고민이었다. 무력 행사와 전쟁 금지를 규정한 현행 헌법 제9조가 걸림돌이었다. 고이즈미 총리는 이미 자민당 창당 50주년을 맞는 올 11월까지 헌법 개정안을 마련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일본의 분위기는 크게 바꿔지고 있다. 일본은 중국의 군사적 위협과 북한 핵문제를 빌미로 자위대 역할을 확대하면서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자위대의 정식 군대 변신 절차를 착착 밟아왔다. 독도를 비롯한 주변 영토 분쟁은 되레 일본 내 헌법 개정 분위기를 고조시키고 있다. 브레이크 없는 질주를 하고 있는 일본의 우경화 세력들은 한국이 빈틈을 보이는 순간 언제든 다시 뒤통수를 칠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긴장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될 엄혹한 현실에 처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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