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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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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에서 인정받는 카이스트로”

등록 2005-01-19 00:00 수정 2020-05-03 04:24

[인터뷰 | 카이스트 로버트 로플린 총장]

<font color="darkblue">경쟁력 없는 학과의 재조정 불가피… 의대·법대는 수요자를 행복하게 하는 프로그램 </font>

▣ 대전=김수병 기자 hellios@hani.co.kr

한국 과학기술계의 ‘히딩크’로 불리는 카이스트 로버트 로플린 총장. 그는 2004년 7월14일 총장으로 취임해 카이스트 시스템 전체에 혁명적인 변화를 예감케 했다. 카이스트 안팎에서는 이미 지난해 5월28일 이사회(이사장: 임관 삼성종합기술원 회장)에서 제12대 총장으로 선임되면서부터 선진 외국의 경영 시스템을 카이스트에 도입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돌았다. 대학 경영의 쇄신을 통한 글로벌화가 피할 수 없는 흐름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걸맞게 그는 필마단기로 카이스트 개혁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로플린 총장이 취임 뒤 5개월 만인 지난해 12월14일 비전 제안서를 통해 발표한 개혁안은 ‘사립화’라는 한마디로 단정하기는 어렵다. 이미 취임 뒤 3개월 무렵부터 ‘한국은 더 이상 이공계를 중시하지 말라’는 식으로 운을 띄우고 ‘시장 수요를 충족하는 대학’을 모토로 개혁안을 업그레이드하고 있는 중이다. 그의 개혁안이 카이스트 구성원들의 거센 반발에 휩싸이는 가운데 지난 1월10일 카이스트 본관 집무실에서 로플린 총장을 만났다. 그가 생각하는 카이스트의 비전을 들어보았다.

<font color="darkblue">대학과 대학원 분리, 다른 비즈니스 모델 적용 </font>

요즘 입술이 부르틀 정도로 업무에 매달리는 듯하다.

하루 일과에 큰 변화는 없다. 미국 생활 그대로 새벽 서너시에 일어나 이메일을 확인하고 커피 한잔으로 아침을 대신한다. 주간에는 주로 사람들을 만나고 서울에 다녀오기도 한다. 저녁에는 한국어 공부를 한 뒤 9시쯤 잠든다. 주말에는 주로 갑천변에서 자전거를 즐긴다. 입술이 부르튼 것은 예산 문제로 연일 회의를 하다 보니까 업무에 스트레스를 받아 신경세포가 예민해져서 그렇다.

재정 자립화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예산 문제를 풀어나가는 게 쉽지 않은 것인가.

예산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은 늘 어렵다. 심지어 가정에서 부인과 풀어가는 것은 만만치 않은 일이다. 카이스트 문제의 핵심은 예산이다. 예산을 통해 다른 문제를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사람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지급하느냐에 따라 행동이 달라질 수 있다. 나는 학생들이 능력을 인정받는 국제인으로 성장하기를 기대하며, 카이스트가 세계적인 대학으로 발전하는 데 기여하고 싶다. 이것을 풀어가는 핵심은 예산을 확보해 제대로 활용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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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nt color="663300"> 로플린 총장의 개혁안은 학교의 재정 자립도를 높이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정부 지원금만으로는 재정 자립에 한계가 있기에 교수들의 연구 프로젝트를 늘리고 학생들의 등록금을 올리려고 한다. 학부모가 돈을 부담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학부 과정에 의대와 법대 예비반을 신설하려는 것이다. 수익모델의 다변화로 카이스트의 자율성을 보장받고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발상이다. </font>

카이스트 비전 제안서는 자립화를 목표로 삼아 사립화라는 수단을 제시하고 있다. 카이스트의 사립화는 무엇을 뜻하는 것인가.

사립화는 시장에서 인정받는 것을 뜻한다. 핵심은 오너십(Ownership)과 고객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는 것이다. <한겨레21>이라는 잡지만 해도 누가 살 것인지가 중요하지 않은가. 대학도 마찬가지다. 우선 학부모와 학생이 만족할 만한 콘텐츠를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만 학부모와 학생이 중심이 되어 대학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 나는 정부라는 울타리에서는 장기적 비전이 있는 대학 모델을 만들기 힘들다고 생각한다. 물론, 대학원은 사정이 다르다. 사립대학인 연세대나 고려대 등의 대학원도 정부의 보조를 받고 있다. 사립화라는 말도 다시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수혜자였던 학부모들이 카이스트의 비전을 주도한다는 것인가.

학부모들의 구실은 미국과 유럽 등지의 해외 모델을 검토해서 방안을 마련하려고 한다. 일단 대학과 대학원을 분리해 다른 비즈니스 모델을 적용하려고 한다. 현재는 대학생이 대학원에 진학해 산업현장으로 이어지는 단일한 경로를 밟는다. 내가 구상하는 방식은 대학과 대학원을 ‘분리’(split)해서 재정 부담을 다르게 하는 것이다. 예컨대 대학은 일반 종합대학처럼 학부모가 만드는 시스템이고, 대학원은 연구 중심 대학 모델을 유지해 정부가 수요자가 되는 것이다.

재정 자립화에 관한 해외 모델로 생각하는 대학은 어떤 곳인가.

지금 생각하는 모델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많은 사람을 가르치는 것을 목적으로 여기는 미국의 버클리와 UC캘리포니아와 같은 주립대학을, 다른 하나는 소수 정예를 가르치는 소규모 사립 공과대학을 꼽을 수 있다. 이 두 가지를 모두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아직 결정을 내릴 단계는 아니다. 다만, 교수들은 여전히 엘리티즘을 주장하고 있다. 개인적인 생각은 정부의 지원을 받는다면 많은 사람을 가르치는 데 쓰여야 한다는 것이다. 정부 지원은 세금으로 하는 것인데, 국민이라면 누구나 자신이 혜택을 받기를 원한다. 극소수에게 가면 납세자의 관심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font color="darkblue">카이스트 특별법은 시대에 뒤떨어졌다 </font>

<font color="663300"> 그동안 로플린 총장의 사립화는 학생 수를 2만명으로 늘리는 학부 중심 대학으로 변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학과 대학원의 분리를 명확히 하는 쪽으로 방향을 부분적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였다. 학내 구성원들이 정부가 지원하는 연구 중심 이공계 대학이라는 태생적 존재의 의미를 부정하는 반발이 워낙 거셌기 때문일 것이다. 그의 비전 제안서는 아직까지 ‘화두’로 존재하며 실행까지는 갈 길이 멀다.</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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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립화 과정에서 정부의 지원 방안이 어떤 식으로 이뤄져야 하는지 불확실한 것 같다.

바람직한 정부의 지원 방식은 한국인들이 결정할 문제다. 이상적인 안은 장학금을 직접 지급하는 방식이다. 대학은 장학금의 구매력을 높이도록 관리하면 된다. 현재도 장학금 지급 방식은 정부가 학교에 주는 식이다. 이로 인해 학생들을 고르는 선택권이 대학에 있다. 이런 절차에서는 대학이 ‘바이어’(buyer)이고 학생은 ‘셀러’(seller)가 된다. 나는 이 시스템을 바꾸고 싶다. 구매력이 높은 상품을 제시하는 대학으로 만들고 싶은 것이다.

정말로 카이스트가 구매력이 있는 대학으로 경쟁력을 가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무엇보다 시장에 대한 민감성이 중요하다. 예컨대 졸업생들이 얼마나 수입을 올리는지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시장에서 통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 카이스트가 지역적으로 서울에서 떨어져 있고 학맥 중심의 커넥션에서 비켜나 있는 것을 알고 있다. 지금 서울로 올라갈 수도 없는 일이다. 카이스트는 서울대가 갖지 못한 프로그램과 서비스를 제시해야 한다. 이를 위한 비즈니스 모델이 반드시 필요하다. 당연히 경쟁력 없는 학과의 재조정도 불가피하다. 지금 카이스트는 시장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요건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

경쟁력 없는 학과 재조정은 연구 중심 대학이라는 설립 근거에 반하는 것이 될 수도 있지 않은가.

교육의 일반적인 목표는 수요자의 요구를 충족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어떤 것은 키우거나 줄이는 것도 필요하다. 의대나 법대는 기본적으로 수요자를 행복하게 하는 프로그램이다. 물론 수요자 충족 원칙을 대학원에까지 적용하는 것은 아니다. 대학원은 연구를 중심에 놓게 될 것이다. 한 가지 염두에 둬야 할 것은 카이스트를 설립한 근거가 된 특별법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사실이다. 당시 한국은 제3세계였지만 지금은 제2세계에서 제1세계를 지향하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걸맞게 지금의 경제 수준에 부응해 연구 중심 대학의 의미도 바뀌어야 한다.

<font color="darkblue">최종결과 때까지 토론하면서 조정할 것 </font>

<font color="663300">로플린 총장의 카이스트는 시장에서 인정받는 대학을 지향하고 있다. 철저히 학부모와 학생에게 평가받는 것이다. 그는 교수와 학생의 관계도 시장 논리에 의해 한국적인 주종 관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이런 그의 발상은 강력한 전염 효과를 낳고 있다. 노무현 대통령도 ‘대학은 산업’이라고 발언하고 있을 정도다. 이런 발상은 대학의 공공성을 훼손한다는 지적에도 대학 경영 리더십으로 평가받으며 갈수록 힘을 발휘하고 있다.</font>

정부 당사자와 구성원들의 토론은 원만하게 이뤄지고 있는가.

정부 관리와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다. 사안에 따라 우호적이기도 하고 비우호적이기도 하다. 하나하나 따져보면서 대안을 마련할 것이다. 일반적으로 총장들은 토론을 좋아하지 않는 경향이 있지만 나는 토론이 학교 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학내 구성원들이 다른 안을 만들면 재토론할 것이다. 내가 원하지 않는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것은 선거와 마찬가지니까 승복할 수밖에 없다. 내 생각에 반대하는 의견이 많은 것은 잘 알고 있지만 전부 부정적이지는 않다. 최종 결과가 나올 때까지 토론하면서 안을 조정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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