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괴력 예측하기 힘든 ‘쓰나미’… ‘잘못된 경보’의 경제적 손실까지 생각해야 하는 주변국 상황도 변수
▣ 김동광/ 고려대 강사·과학저술가
지구 표면은 두께가 수십km에서 수백km에 달하는 거대한 판으로 덮여 있다. 이 판들은 모두 10여개에 달하며, 각기 다른 방향으로 매년 수cm 정도의 느린 속도로 이동한다. 판들이 마주치면 한쪽 판이 다른 쪽 판 아래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현상이 일어나며, 이때 지진이 일어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번에 해저 지진이 일어난 인도네시아 해역은 지각판들이 서로 교차해서 활발한 화산활동이 벌어지고 지진이 빈번하게 일어나는 ‘환태평양 화산대’(Ring of Fire)에 인접해 있기 때문에 큰 규모의 지진이 일어나기 쉬운 곳이었다.
미국에서 일본까지, 제트기보다 더 빠르게!
지진이 일어난 과정을 살펴보면, 진앙지는 수마트라섬 인근 해저이다. 이곳에서는 두개의 지각판, 즉 오스트레일리아판과 유라시아판이 수마트라섬의 남동쪽 해안에서 충돌을 일으켰고, 그 결과 해저에서 길이 약 1천km의 단층(斷層)이 발생한 것으로 추측된다. 이 단층으로 해저 지층은 순간적으로 약 10m가량 들어올려졌고, 이 과정에서 수억t의 바닷물이 한꺼번에 솟아오르면서 거대한 해일인 ‘쓰나미’(津波·Tsunami: 지진 해일)를 발생시켰다. 이 거대한 파동은 심해에서는 매우 빠른 속도로 이동해서 최고 시속 500km로 진행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육지에 가까워지면서 속도가 줄어들어 시간당 약 45km 정도로 느려졌다. 그렇지만 파동이 길이 방향으로 압축되면서 파고가 높아지게 된다. 이번에 동남아시아 인근 해안을 강타한 해일은 높이가 무려 60m에 달했다.
이번 해일로 피해를 입은 지역은 진앙에 가까운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 타이는 물론이고 버마, 스리랑카, 인도, 그리고 수천km 떨어져 있는 동아프리카의 소말리아까지 포괄하고 있다. 쓰나미라 불리는 지진 해일이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까닭은 육지에서 일어난 지진과 달리 진앙지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까지 엄청난 피해를 입히기 때문이다. 역사상 가장 큰 지진 중 하나로 꼽히는 1960년의 칠레 해안 인근에서 발생한 지진은 무려 1만6천km나 떨어진 일본에서까지 138명의 희생자를 낳았다.
그것은 쓰나미의 특성 때문이다. 쓰나미는 일반적인 파도가 바람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과 달리 지진, 화산분출, 운석 충돌과 같은 갑작스러운 충격에 의해 발생해서 거대한 해일을 이룬다. 그리고 이 해일은 수백에서 수천km를 이동해 해안지대를 초토화시킬 수 있다. 수심이 깊은 태평양의 경우에는 최고 시속 800km로 이동할 수 있다. 가령 미국 해안에서 쓰나미가 발생했다면 그 충격이 도쿄에까지 전달되는 속도는 제트여객기보다 빠르다. 더구나 쓰나미는 파동의 특성 때문에 태평양을 가로질러도 에너지가 거의 손실되지 않는다. 몇해 전에 상영된 영화 <딥 임팩트>는 혜성이 지구와 충돌해서 뉴욕이 거대한 해일에 휩쓸리는 참상을 생생하게 묘사한 장면으로 유명하다.
아직까지 공식적으로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이번 지진과 해일로 인한 피해는 사망자만 10만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되고 실종자와 부상자는 아직 어느 정도인지 규모조차 가늠하지 못할 정도의 대참사를 기록하고 있다. 이처럼 천문학적 피해가 발생하게 된 직접적인 원인은 우선 이번 지진이 진도 9.0을 넘는 정도의 대지진이어서 지난 수십년 동안 가장 큰 규모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발생한 에너지는 지난 1995년에 발생했던 고베 대지진(진도 6.9)의 약 1600배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 지질조사 연구소는 이번 지진으로 수마트라섬이 수십m가량 이동했다는 관측결과를 내놓아서 이번 지진이 가져온 충격이 어느 정도였는지 잘 보여준다.
왜 그처럼 많은 인명피해가 발생했는가
피해가 커진 또 다른 이유는 인도양이 그동안 지진해일이 자주 발생하지 않은 지역이었고 지진과 쓰나미로 집중적인 피해를 입은 지역이 경제적으로 낙후한 나라들이 많았기 때문에 충분한 예측과 경보 시스템을 갖추지 못했다는 점이다.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실제로 쓰나미가 발생한 뒤 해안에까지 도달하는 데 상당한 시간적 여유가 있었지만, 지진해일의 발생을 관측하고 피해 예상 지역에 효과적으로 경보를 발령하는 일련의 조치들이 전혀 이루어지지 못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뉴욕타임스>의 보도에 따르면, 지진해일이 스리랑카를 비롯해 여러 지역의 해안을 덮칠 때까지도 주민이나 관광객들은 물론 해당 국가의 관계 부처들도 전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고 한다. 호눌룰루에 있는 ‘태평양 쓰나미 경보센터’ 소장 찰스 매크리리 박사는 지진이 발생한 이후 지진해일이 해안에 도착하기까지 어느 정도의 시간이 있었다고 말한다. “많은 시간은 아니었지만, 최소한 마다가스카르나 아프리카 해안에서는 어떤 조치가 취해질 수 있었다면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는 약간의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이번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인도양 지역에는 쓰나미의 발생을 감지하고 그에 따른 피해를 예상할 수 있는 아무런 관측 시스템도 없었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전혀 경보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이것은 간신히 참사를 피한 여행객들의 증언을 통해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고기잡이를 하던 어민들, 그리고 수영이나 휴식을 즐기던 수많은 관광객들은 순식간에 밀어닥친 고층건물만 한 파도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잦은 해일 피해를 당했던 하와이나 일본과 같은 태평양 연안지역들에는 지진으로 인한 쓰나미 발생을 알아내고, 그 규모와 해안 도달 시간을 예측하고, 해당 국가나 지역에 통보해서 주민들이 대피할 수 있는 체계적인 시스템이 갖추어져 있다. 그러나 태평양을 제외한 다른 해역에서는 아직 쓰나미에 대한 관측과 경보를 위한 체계적인 국가간 시스템 구축을 위한 논의조차 충분히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다. 가령 태평양의 경우에는 오랫동안 지진 발생과 그로 인한 쓰나미 생성에 대한 데이터들이 축적되었고, 이런 자료를 토대로 지진이 일어났을 때 자료를 분석해서 쓰나미가 발생할 가능성을 예측하는 컴퓨터 모형들이 구축돼 있다. 따라서 지진이 일어나면 짧은 시간 동안 분석과 예측, 그리고 경보의 체계적인 과정이 진행될 수 있다. 그러나 인도양의 경우에는 아무런 모형도 없다. 따라서 경보를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시스템도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다.
쓰나미 경보 중 4분의 3이 잘못
이번 참사에 대한 보도에서 눈에 띄는 제목 가운데 하나가 “천재(天災)가 아닌 인재(人災)”라는 주장이다. 앞서 인용한 매크리리 박사의 말에서 잘 나타나듯이 충분한 관측과 경보체계를 갖추었다면 많은 인명피해를 줄일 수 있었으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실제로 방재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기로 유명한 일본은 웬만한 지진으로는 인명피해가 거의 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해서 철저한 대비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잘 입증해준다.
그렇지만 지진이나 쓰나미와 같은 자연 재해의 예측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호놀룰루에 사무실을 두고 있는 “국제 쓰나미 정보센터” 소장 로라 S. L. 콩 박사는 <뉴욕타임스>와 한 인터뷰에서 쓰나미의 예측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현재 그것(쓰나미 예측)은 부정확한 과학(inexact science)입니다.” 왜냐하면 쓰나미의 발생 과정에는 매우 많은 요소들이 포함되어 있고, 관측과 분석결과가 곧바로 경보로 발령되기 어려운 여러 가지 복잡한 과정들이 포함되기 때문이다. 그러면 우선 예측이 어려운 이유를 살펴보자. 콩 박사는 실제로 쓰나미에 대한 정확한 예측은 매우 제한적이라고 말한다. 즉, 쓰나미가 발생하는지 여부, 그리고 어느 장소에 도착하는지는 어느 정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다. 그러나 파도의 높이가 수십m가 될지 몇cm에 불과할지는 알 수 없다. 쓰나미의 파괴력은 정확한 예측이 어렵다는 말이다. 그것은 해저 지형의 구조, 쓰나미가 도달하는 해안의 형태 등 많은 요소들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과학자들은 지진의 진도와 그로 인해 발생하는 쓰나미의 위력 사이에는 직접적인 상관관계가 없다고 한다. 더구나 해저에서 지진이 일어났다고 해서 반드시 쓰나미가 발생하는 것도 아니다. 또한 쓰나미의 관측이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쓰나미가 거대한 파도를 이루고 진앙지에서 피해 해안까지 시속 수백km의 속도로 진행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깊은 바다에서는 쓰나미의 파고(波高)가 수cm에 불과하다. 가령 대양에서 배에 타고 있는 사람들은 느끼지도 못할 정도이다. 그러다가 대륙붕의 얕은 바다에 도달하면 엄청난 높이가 된다. 따라서 쓰나미의 발생과 그 도달 장소는 어느 정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지만, 파괴력에 대한 정확한 예상은 매우 힘들다는 것이다. 실제로 1960년대 이후 하와이에서 두 차례의 쓰나미 경보가 이루어졌고, 그에 따라 대대적인 주민 소개령이 내려졌지만 경보는 잘못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미국 해양대기국은 하와이에서 한번 잘못된 경보가 내려질 때 빚어지는 생산성 손실은 무려 6800만달러에 달한다고 분석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분석에 따르면 1948년 이후 이루어진 쓰나미 경보 중 4분의 3이 잘못으로 밝혀졌다고 한다.
분석이 바로 경보로 이어지기 힘든 사회적 요인이 거기에 있다. 특히 인도양처럼 100년에 한두번 거대한 쓰나미가 일어나는 지역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대격변, 위험과 대응>이라는 책을 펴낸 리처드 포스너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한다. “100년에 한번 쓰나미가 일어나서 4만명이 목숨을 잃는다면, 1년에 400명이 죽는 셈입니다. 그렇지만 인도양의 저개발 국가들에는 그보다 더 많은 피해를 일으키는 화급한 문제들이 산적해 있습니다.”
과학적인 장비 구축의 문제를 넘어…
따라서 쓰나미의 발생을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의 부재도 문제지만, 아직까지 정확한 예측이 불가능한 분석 결과가 곧바로 경보로 연결되기 힘든 인도양 연안국가들의 사회경제적 상황도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셈이다. 이미 일부 언론 보도에서는 경보가 내렸는데도 해당 국가들이 관광지의 경제적 손실을 우려해서 경고를 무시하지 않았는가 하는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아직 정확한 피해 규모도 밝혀지지 않았지만, 이번 지진해일 참사는 자연재해에 대한 우리의 대응이 얼마나 빈약한지 잘 보여주었다. 그리고 쓰나미에 대한 분석과 경보가 단순히 과학적인 장비를 갖추었는지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다. 지진이나 쓰나미에 대한 올바른 대응은 분석에서 경보로 이어지는 시스템을 구축하고, 경보를 충분히 받아들일 만한 사회문화적 체계의 구축까지 요구한다. 아무리 좋은 예보 시스템을 갖추어도 정책결정자들이 행여 불확실한 경보로 인해 발생할 경제적 손실을 우려해서 머뭇거리다가 때를 놓친다면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단지 첨단기기만이 아니라 위험을 인식하고 그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려는 ‘사회적 의지’까지를 포함한 포괄적인 위험 인지 시스템인 셈이다.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이승환, ‘구미 사태’ 후 공연 요청 줄이어…“7월까지 ‘헤븐’ 투어”
[단독] 입법조사처 ‘한덕수, 총리 직무로 탄핵하면 151명이 정족수’
[단독] ‘총선 전 계엄’ 윤석열 발언 당일 신원식, 김용현 불러 대책 논의
대만 전자산업노조 “삼성 반도체 경쟁력 부족은 근로시간 아닌 기업무능 탓”
‘내란 비선’ 노상원 수첩에 정치인·언론인 ‘사살’ 표현 있었다
[단독] 윤석열, 3월 말 “조만간 계엄”…국방장관·국정원장·경호처장에 밝혀
이승환 “‘정치 언행 않겠다’ 서약 거부, 구미 공연 취소 통보 진짜 이유”
윤석열 쪽 “엄연한 대통령인데, 밀폐 공간에서 수사 받으라니”
[속보] 헌재 “윤석열 통보서 받은 걸로 간주…27일 탄핵심판 개시”
세계서 가장 높이나는 새, ‘줄기러기’가 한국에 오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