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들만의 리그’ 법조계를 바꾸는 여풍의 힘… 젊은 여성 변호사들과의 즐거운 수다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강금실’이라는 이름은 하나의 대명사가 됐다.
그는 남성이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영역에서 여성의 방식으로 성공의 열매를 따낸 최초의 ‘여성’ 장관이다. 성공하기 위해 불행히도 ‘명예 남성’이 되어야 했던 ‘언니’들의 비극을 되풀이하지 않은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부위원장 출신인 강금실 변호사는 사회적 약자의 편에 서서 일하는 여성 법조인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10%의 비율, 90%의 활동력… 민변의 여풍
법조계는 ‘남성들만의 리그’였다. 하지만 법조계도 여풍이 거세다. 일단 여성 ‘쪽수’가 가파르게 늘고 있다. 1993년 사법시험 합격자 가운데 여성은 6.3%(18명)에 불과했지만 98년 13.3%(93명)로 처음 10%를 넘겼다. 그 뒤로도 증가세는 꾸준하다. 2002년 23.9%(239명), 2003년 20.9%(190명), 2004년 24.4%(246명·2차 합격자 기준)로 꾸준히 20%를 웃돌고 있다(표 참고). 2004년 7월 현재 여성 법률가는 변호사 369명, 판사 275명, 검사 106명 등 809명으로 전체의 7.7%를 차지하고 있다. 여풍은 여성으로 태어났을 뿐 아니라 여성으로 살아가는 ‘미래의 강금실’들을 키우고 있다. 민변의 젊은 여성 변호사들은 대표적이다.
“옛날엔 금실 언니 집에 모여서 자주 놀았죠.” 11월30일 정오께 서울 강남의 한 중국식당에 모인 여변(여성 변호사)들의 점심식사에서 나온 말이다. 강 전 장관을 “금실 언니”라고 부르는 이들은 민변에서 활동하는 진선미(37·법무법인 덕수), 김진(31·법률사무소 이안), 이상희(32·법무법인 한결) 변호사였다. 이들은 사법연수원 29기로 1999년 변호사 생활을 함께 시작했다. 이들은 강금실 변호사가 입각하기 전 그와 가깝게 지냈다. 현재 민변의 여성 회원은 전체 471명 중 50명. 이들의 비율은 10%를 겨우 넘지만, 활동력은 90%의 남성 못지않다. 회비만 내는 ‘페이퍼 회원’이 아니라 활동에 참여하는 ‘진성 회원’의 비중이 남성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여성복지위원회는 지난해 민변 최우수 위원회로 뽑히기도 했다.
이날 여성복지위 위원장인 진 변호사의 옆에는 가 놓여 있었다. 여성복지위 산하의 성매매방지소위원회가 성매매여성 지원단체인 ‘막달레나의 집’과 함께 11월 말에 출간한 책이다. 여성복지위에는 성매매방지소위뿐 아니라 가족법, 판례모니터링 등 5개 소위원회가 활동하고 있다. 진 변호사도 호주제 위헌소송의 변호사를 맡는 등 여성 인권 향상을 위해 열심히 뛰고 있다. 판례모니터링 소위는 달마다 남성 중심적 법 논리에 빠지는 것을 경계하기 위해 여성 활동가, 여성 학자들과 함께 워크숍도 연다.
김 변호사는 식사를 하다가 느닷없이 기자에게 “최근 해고당한 새마을호 비정규직 여성들을 변호하고 싶은데 연락할 방법이 없을까요?”라고 물었다. 비정규 여성 노동자에 대한 관심이 듬뿍 담긴 질문이다. 김 변호사는 이전에도 하나은행 성차별직군제 사건 등 여성 관련 공익소송을 맡아왔다. 그는 한국여성민우회 상담위원, 서울여성노동자회 자문변호사도 맡고 있다. 하지만 김 변호사가 처음부터 여성 문제에 큰 관심을 가진 것은 아니다. 김진 변호사는 “처음에는 여성 변호사니까 여성 인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일수록 생각이 바뀌었다. 그는 “뿌리 깊은 불평등의 피해 당사자인 여성들을 만나면서 여성 인권을 비로소 내 문제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돌이켰다.
‘돌쇠 여선배’들이 왜 안타까운가
이상희 변호사는 인권 활동가들 사이에서 “민변 변호사들조차도 하기 싫어하는 일을 도맡아 하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그가 맡아온 소송의 이력만으로도 소문의 진실은 드러난다. ‘운동사회 성폭력 뿌리뽑기 여성 100인 위원회’ 자문 변호사, 동성애자 사이트 ‘엑스존’ 행정소송 변호인 등이 그 증거다. 요즘에는 사회보호법 폐지와 재소자 인권 문제에 집중하고 있다. 그의 ‘운동’에는 여성과 함께 소수자가 화두로 자리잡고 있다. 가장 열악한 인권을 옹호하는 그이지만, 소수 여성의 성공이 다수 여성의 고통을 가리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일침을 가했다. 이 변호사는 “아직도 성공한 여성은 너무나 부족하다”며 “다수 비정규직 여성의 고통을 빙자해 소수의 성공한 여성들을 매도할 문제는 아니다”라고 목청을 높였다. 김진 변호사도 “최근에 여성에게 자리 몇개 주는 것도 구색 맞추기일 뿐 진정한 우대는 아니다”라고 거들었다.
삼총사와 점심식사가 끝난 뒤, 해마루 법무법인을 찾아갔다. 해마루는 노무현 대통령이 한때 몸담아 유명해진 곳이다. 김수정(35), 김미경(29) 변호사가 같은 방에서 일하고 있었다. 2000년 변호사를 시작한 김수정 변호사와 2004년 새내기인 김미경 변호사는 서로 밀어주고 당겨주는 민변 ‘자매’다. 김수정 변호사는 지난 4년 동안 양심에 따른 병역거부 변호인단으로 부지런히 뛰어왔다. 그는 “내가 여성이다 보니 자연히 소수자 문제에 관심이 갔다”고 말했다. 김미경 변호사는 “앞으로 여성 인권에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병역거부 문제를 이야기하며 심각해졌던 김 변호사의 얼굴은 동기들 이야기가 나오자 밝아졌다. 그는 “우리 30기 동기생 7자매가 들어와 민변 여성위원회가 만들어졌다”고 뿌듯해했다. 그는 “일할 때도 서로 돕고, 놀 때도 같이 논다”고 자랑했다. 그가 낯선 분야의 사건을 맡아서 자료를 찾을 때, 가장 먼저 도움을 청하는 사람들은 민변 여성 동기들이다. 여성들이 남성들보다 민변 활동에 적극적인 이유에 대해 김 변호사는 “아무래도 여성이 남성보다 지연, 혈연 같은 전통적인 인맥에 약하지 않느냐”며 “민변이 여성들에게 대안적 네트워크 기능을 하기 때문에 활동도 활발한 것 같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민변 ‘언니’들에 대한 불만도 없진 않다. 김 변호사는 “선배들이 후배들에게는 ‘스타가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은 돌쇠처럼 일만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선배들의 겸손한 성격 탓도 있지만, 여성이 나서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교육의 영향도 있는 것 아니냐”라고 말했다.
뼈저리게 여자라는 것을 느낀다
여성 법조인들이 늘고 있지만, 성차별 문화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법무법인에는 사실상 ‘여성 할당’이 정해져 있다. 여성 법조인들은 “여성 변호사가 없으면 성차별하는 로펌으로 찍히니까 구색 맞추기로 뽑되, 할당을 정해놓고 한계를 넘기지 않는다”라고 한목소리로 지적했다. 심지어 입사 면접에서 “임신하면 어떻게 할 거냐”고 노골적으로 물어보는 곳도 많다고 한다. 법원과 검찰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상자기사 참고). 반면 ‘희망의 증거’도 있다. 김&장 법률사무소의 조윤선(38) 변호사는 국내 첫 유전공학 관련 소송인 ‘소성장 호르몬에 관한 특허 소송’으로 주목을 받았다. 법무법인 태평양의 황보영(40) 변호사는 일찍이 지적재산권 분야의 손꼽히는 전문가다. 이 밖에도 강율리(32), 조영희(35) 변호사 등은 금융전문 변호사로 인정받고 있다.
12월1일 저녁, 서울 인사동의 한 카페에서는 여변들의 저녁 수다가 이어졌다. 올해 초 변호사 생활을 시작한 정남순(34·환경법률센터), 임선영(34·법무법인 내일), 소라미(30·공익법무법인 공감) 변호사 등 민변의 막내들이 모였다. 소 변호사는 “남순 언니와 선영 언니가 의 민사 부분을 도맡아 집필했다”며 “성매매 피해 여성을 ‘홍길녀’로 의인화해 반응이 참 좋았다”고 자랑했다. 소 변호사의 일상은 차라리 여성 활동가에 가깝다. 그는 의정부의 기지촌 여성자활기관인 두레방, 서울의 장애여성공감 성폭력상담소, 안양의 이주여성쉼터 등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법률 자문을 펼친다.
사법연수원 이야기가 나오자 수다가 그칠 줄을 몰랐다. 이들은 “연수원 문화가 아직은 남성 중심적”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여성 비율이 ‘겨우’ 20%인데 이런 수준으로는 문화가 바뀌기 어렵다는 것이다. 검찰 시보 생활도 마찬가지였다. 정 변호사는 “검찰 여직원으로 오해받기 일쑤였고, 피의자가 ‘언니’라고 부르는 경우도 있었다”고 돌이켰다. 고시 공부를 하기 전, 4년 동안 직장 생활을 한 임 변호사는 “그래도 법조계는 직장에 비하면 성차별이 덜한 편”이라고 위안했다. 새내기들의 저녁 수다는 “그래도 민변의 여성 선배들 같은 역할모델이 있어서 든든하다”는 결론으로 끝났다.
‘미래의 강금실’들에게 “밥벌이도 바쁜데 짬 내기 귀찮지 않으냐”는 우문을 던지자, “즐거워서 하는 일일 뿐”이라는 현답이 돌아왔다. 참, “살수록 뼈저리게 여자라는 것을 느낀다”는 한숨 섞인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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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2년간 예비 발령자 225명 중 105명… 성적순 할당 바뀌게 해
미래의 강금실들은 법원, 검찰 안에서도 크고 있다. 사시 합격뿐 아니라 판검사 임관에서도 여성 파워가 강력하기 때문이다. 올 초 수료한 33기 사법연수원생 가운데 여성은 17.4%에 불과했지만 성적순으로 결정되는 판검사 임용에서 여성 비율은 44.6%에 이르렀다. 여성들이 연수원 성적 상위권을 휩쓸고 있기 때문이다.
양적 증가는 질적 변화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부터 법조계에는 ‘여성 최초’가 쏟아져나왔다. 지난 8월에는 김영란 판사가 여성 최초 대법관으로 임명됐고, 지난해 8월에는 전효숙 판사가 역시 여성 최초로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됐다. 남성의 철옹성이었던 검찰에도 여풍이 불고 있다. 최고참 여검사인 조희진 검사가 지난 6월 처음으로 의정부지검 형사 4부장으로 발령을 받았고, 지난 10월에는 서인선 검사가 금녀의 영역이었던 서울중앙지검 공안부에 진출했다.
성비 불균형이 해소되기도 전에 ‘여초’ 현상을 우려한 때이른 ‘자구책’이 흘러나오고 있다. 한 법조인은 “서울중앙지방법원부터 성적 우수자를 배정했는데 여성들이 최상위권을 휩쓸자 배정 방식을 바꾸었다”고 전했다. 예컨대 예전에는 서울중앙지법에 4명의 할당이 있으면 연수원 성적 1~4등을 보냈지만, 지금은 1등을 서울중앙지법, 남부지법, 동부지법 등의 순으로 보낸다는 것이다. 성적순으로 보낸 결과, 서울중앙지법에 여성판사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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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 노출 꺼리는 강금실 전 장관… 다음달 ‘다보스포럼’민간 특사로 첫 외부활동
“너무 즐거워서 죄송합니다.”
강 변호사는 출근은 하고 있지만 아직 사건은 맡지 않고 있다. 지평의 한 변호사는 “장관직을 그만두고 바로 사건을 맡으면 장관직을 등에 업고 하는 것으로 오해를 살 수가 있어 부담스러워하신다”며 “외부 활동은 일절 삼가고, 내부 의사 결정건에 관여하고, 후배 변호사들에게 사건에 관해 상담을 해준다”고 전했다.
일체의 외부접촉을 삼가고 있지만, 지난 10월 민변을 방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강 변호사는 이날 민변 집행부와 식사를 함께 하면서 회포를 풀었다. 그 뒤 민변의 여성 후배들과 따로 만나기도 했다. 모임에 참석했던 한 후배 변호사는 “짬짬이 외국 여행도 다녀오면서 즐겁게 살고 계신다”고 전했다.
장관 시절 일거수일투족이 화제에 오른 탓인지 변호사로 돌아온 뒤에는 사생활 노출을 꺼리고 있다. 지인들은 강 변호사가 11월 초 에 실린 춤추는 사진에 대해 불쾌해했다고 전했다. 법무부 장관 시절 보좌했던 측근은 “장관 퇴임 뒤에는 사생활을 보호받기를 바랐는데 자신도 모르게 사진이 실리게 돼 충격을 받으신 것 같다”고 말했다.
강금실 변호사는 이 지난 9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차기 대권주자 2위에 오르는 등 차기 대통령 후보로 여러 언론에 오르내리고 있다. 하지만 한 지인은 “정작 본인은 ‘정치인’으로 꼬리표가 붙는 것에 대해 몹시 부담스러워한다”고 전했다. 강금실 변호사는 내년 1월 ‘다보스포럼’에 대통령 민간 특사로 파견될 예정이다. 법무부 장관 퇴임 이후 최초의 공식 외부활동이 되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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