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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원들은 감원폭풍 앞의 촛불 신세

등록 2004-12-02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darkblue">대형화·겸업화·외국 자본의 대거 진출 속에서 대규모 수익, 대규모 명퇴</font>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미국계 투자펀드인 론스타가 대주주인 외환은행에는 지난 6월 특수영업팀이라는 부서가 새로 생겼다. 카드판촉·주택담보대출 영업·연체채권 회수 업무를 담당하는 팀이다. 지금까지 이 팀에 발령받은 직원은 240여명. 이들은 부서별 희망퇴직 우선 대상자로 통보됐던 사람들이다.

감원으로 매각가치 높이려는 론스타

은행쪽은 지난 9월 “다른 은행에 비해 985명이 잉여인력”이라며 인력 감축 필요성을 노조에 제시했고, 진통 끝에 지난 10월 480여명이 희망퇴직을 신청해 이미 회사를 떠났다. 그러나 특수영업팀에 배치된 직원들의 고용 문제를 놓고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다. 특수영업팀 직원들은 이 부서를 사실상 정리해고의 전 단계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 팀에 느닷없이 발령받은 30대 중반의 ㅂ씨는 “회사쪽이 정상적인 영업으로는 도저히 채울 수 없을 정도로 과도한 카드 판촉과 모기지론 할당량을 부과하면서 알아서 회사를 떠나라고 압박하고 있다”며 “발령 이후 두달여 동안 가족에게 알리지도 못한 채 양복 입고 출근해 거리를 배회하거나 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보낸 사람도 많았다”고 말했다. 이 팀에 발령받은 직원 중 40여명은 하나둘씩 회사를 떠났고, 남은 201명은 노조와 함께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려 대응에 나섰다. 201명에는 지점장급 40여명, 중간 책임자급 130여명, 일반 행원 30여명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진다.

외환은행노조는 “은행이 올 상반기에 사상 최대의 이익을 냈는데도 대주주인 론스타가 은행을 팔아먹기 좋게 만들기 위해 일방적인 인원 감축을 강행하고 있다”며 “회사쪽은 1인당 생산성 등 어떤 면에서도 잉여인력의 존재를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외환은행은 외환위기 이전에 임직원이 8천명을 웃돌았으나 그동안 3천명 남짓이 정리해고나 희망퇴직 형태로 나가고 남은 인원은 5600여명이다. 그러나 감원 태풍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노조 관계자는 “회사쪽이, 특수영업팀으로 발령받은 사람들 문제가 해결되면 남은 직원들의 고용은 보장해주겠다는 식으로 회유 공작을 펴고 있다”며 “감원 바람으로 술렁이는 직원들의 고용 불안감을 적극 활용해 특수영업팀 발령자들을 정리해고하겠다는 의도”라고 말했다. 이처럼 론스타 등 국내 은행업에 진출한 외국 투기자본은 매각가치를 높이기 위해 당장 눈에 드러날 수 있는 인력 감축을 과감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은행권 재편이 어느 정도 마무리되고 은행마다 올해 사상 최대의 수익을 내고 있지만, 은행 종사자들은 대규모 명퇴 등 혹독한 감원 한파로 잔뜩 움츠려 있다. 일반은행만 보면, 은행 임직원 수는 1997년 말 11만3994명에서 올 6월 말 6만8118명으로 40%나 줄었다. 우리 사회의 최대 이슈 중 하나인 일자리 창출과 관련해 이른바 ‘괜찮은 일자리’(decent job)가 대거 사라졌는데, 그 중 상당 부분은 은행권이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후 5대 퇴출은행을 포함해 올 5월 말까지 9만여명의 은행원들이 실직했다. 또 은행권 비정규직은 1997년 17.5%에서 지난해 말 30.8%로 대폭 증가했다. 잘려나간 정규직 가운데 은행에 재취업한 부류는 비정규직 ‘은행 텔러’(창구담당 직원)로 바뀐 사람들이 대다수이고, 명예퇴직금으로 자영업에 뛰어든 전직 은행원들은 내수 부진으로 자영업이 몰락하면서 두번 죽고 있다.

명동 은행회관 9층에는 전직금융인취업센터가 있다. 외환위기 이후 조기 퇴직한 실직 은행원들의 재취업을 돕는 곳이다. 9월 말 현재 센터에 구직을 등록한 전직 은행원은 5천여명. 센터쪽은 “5개 퇴출은행 직원들은 주로 예금보험공사와 자산관리공사 등에 재취업해 부실채권 정리기금이나 채권 추심을 담당하는 일에 종사하고 있다”며 “은행권의 상시적 구조조정이 지속되면서 조흥·외환은행 등에서 명퇴해 나온 사람들의 구직 등록이 계속 들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조흥은행도 대학살 예고

금융산업노조 김기준 정치위원장은 “외환위기 이전에는 은행 노동자들 스스로 다른 업종 종사자에 비해 고용도 보장받고 고임금을 받는 안락한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했지만, 은행마다 합병을 통한 대형화와 주주가치 경영에 나서면서 주주들의 요구에 따라 인력 감축이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금융업은 제조업과 달리 재고가 없는데다 판매될 때 비로소 생산되는 특성을 갖는다. 따라서 대형화에 따른 규모의 경제효과를 생산량 증가보다 인력 감축 등 비용 절감에서 찾게 마련이다.

강정원 행장이 새로 취임한 국민은행도 조만간 대규모 인력 감축이 이뤄질 것이라는 소문이 돌면서 뒤숭숭하다. 은행권에서는 국민은행이 올해와 내년 초에 계약이 끝나는 1500여명의 계약직원을 재계약하지 않는 형태로 정리하고 정규직에 대해서도 대규모 희망퇴직을 실시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민은행은 지난 2001년 주택은행과 통합한 뒤 매년 500여명에 가까운 인력을 명예퇴직으로 감축해왔지만, 주주들은 김정태 행장 시절에 합병 효과를 높이기 위한 인력 감축을 제대로 못했다고 지적해왔다. 인천대 이찬근 교수(경제학)는 “은행 대형화는 고객기반·지역기반·영업기반에서 어떤 차별성도 없는 시중은행들끼리의 단순 합병이 대부분이었다”며 “이에 따라 통합 시너지 효과가 원천적으로 없을 뿐 아니라 서로 다른 은행간의 조직문화 충돌로 인해 경제적 효과도 상쇄되고 말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다 보니 은행들이 중복 점포를 정리하고 사람 자르는 일에만 매달려온 것이다.

신한금융지주와의 통합이 기정사실화된 조흥은행 직원들도 고용불안을 느끼고 있기는 마찬가지다. 조흥은행의 김아무개 과장(서울 ㅅ지점)은 “현재 신한은행과 전산시스템을 통합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데, 지난해 신한은행과의 통합 관련 합의서에 인력 감축을 안 하겠다고 명시했음에도 직원들 모두 강압적이든 자발적 희망퇴직 형태든 인력 감축이 불가피하게 진행될 것으로 보고 불안해한다”고 말했다. 이전의 은행 통합 사례가 모두 그래왔듯 통합 이후 중복 점포 등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인력 감축이 뒤따를 것이라는 얘기다.

은행원들이 대거 명예퇴직하던 1998년 당시 은행원들의 일상을 그려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던 ‘눈물의 비디오’의 주인공인 제일은행도 뉴브리지캐피탈이 손 털고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요즘 또다시 감원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제일은행노조 관계자는 “은행 매각협상이 알려지면서 누구한테 팔릴 것인지, 새로운 대주주가 들어서면 무엇이 어떻게 바뀔지 걱정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며 “직원들 누구나 새로운 자본이 들어오면 추가 감원은 불보듯 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고 말했다. 제일은행은 2000년 뉴브리지캐피탈이 인수하기 직전 매각가치를 극대화하려는 정부의 압박에 의해 수천명이 회사를 떠났다. 외환위기 이전 8천명에 이르던 임직원은 현재 4100명으로 줄었다. 사실 제일은행 직원들은 2002년 하나은행과의 합병 논의가 성사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무산됐는가 하면 지난해에도 홍콩상하이은행(HSBC)과 매각협상이 진행됐던 터라 은행 대주주가 바뀌는 것이 이제 지겨울 정도다. 은행권에서는 한국씨티은행도 합병 작업이 완전히 마무리되면 인력 감축 문제에 직면할 것으로 보고 있다.

성과주의로 임금 차이 600만원까지

고용불안도 불안이지만, 예전에 활동적이란 말과는 거리가 먼 ‘보수적인 엘리트 샐러리맨’으로 상징됐던 은행 종사자들도 은행산업의 변화 물결을 타고 넘으면서 치열한 경쟁에 노출되고 있다. 조흥은행의 김 과장은 “직원 모두 예금 유치보다는 방카슈랑스나 투자상품 판매 실적을 올리라는 세일즈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며 “실적을 올리지 못하면 장기적으로 고용도 불안해진다는 정서가 팽배하다”고 말했다. 은행들은 저마다 카드 판촉·방카슈랑스·주가지수 연계상품·적립식 펀드 등 다양한 금융상품의 개인별 판매 목표를 설정해놓고 실적과 순위를 전국적으로 게시하고 있다. 국민은행 이아무개 과장(신용대출 부서)은 “성과급을 줄 때 과거에는 A등급한테는 회삿돈을 얹어서 120%를 주고 꼴찌도 90%는 줬는데, 지금은 실적이 나쁜 행원들의 몫을 떼서 실적이 높은 행원들한테 나눠주는 방식으로 성과주의가 들어와 임금 차이가 월 600만원까지 벌어지기도 한다”며 “안 잘리고 생존하기 위해 두툼한 책을 들고 토요일, 일요일도 없이 공부하는 동료도 많다”고 말했다. 은행이 인력 감축에 나설 때 금융 관련 자격증이 퇴직자 분류의 한 기준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대형화·겸업화·외국 자본의 대거 진출 등 은행들간의 전쟁이 벌어지는 와중에서 은행원들도 각자 전투를 치르고 있다. 은행권의 지각변동 못지않게 은행 개별 종사자들의 삶도 ‘생존’이란 단어가 지배하고 있는 양상이다.

<table width="480" cellspacing="0" cellpadding="0" border="0"><tr><td colspan="5"></td></tr><tr><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bgcolor="F6f6f6" width="4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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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칫밥 먹을려고 합쳤나?</font>


<font color="darkblue">은행권 인수·합병 뒤 내분 극심… 같은 은행 안에서 출신 따라 직급·임금 체계도 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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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권 인수·합병이 거듭되는 와중에 인력 감축과 더불어 은행 종사자들이 겪는 또 다른 문제는 ‘조직 불화’다. 이는 2년 전 하나은행에 통합된 서울은행에서 극명하게 나타나고 있다. 서울은행은 하나은행에 합병되기 직전 500여명을 희망퇴직 형태로 내보내야 했다. 그 후 통합 하나은행이 지난 3월 실시한 희망퇴직에서 총 450여명이 떠났는데, 옛 서울은행 직원이 퇴직자의 대다수(350여명)를 차지했다. 이와 관련해 서울은행노조 관계자는 “하나은행쪽이 서울은행 직원들을 차별하고 제거해야 할 대상으로 여기는 것 같다. 이제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한계에 다다랐다”며 “바깥에서는 하나은행이 내부적으로 은행을 잘 이끌어가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하지만 들여다보면 통합 이후 조직이 엉망”이라고 말했다. 간판은 하나이지만 하나은행과 서울은행은 아직도 노조를 따로 갖고 있다.
노조쪽은 또 “은행 내에 하나은행 직원은 비행기로 출장 가고 서울은행 직원은 기차 타고 간다는 말이 있을 정도”라며 “대출심사역도 하나은행 직원은 차장이라고 부르면서 수당을 주는데, 서울은행 직원은 심사역이라 부르면서 수당 지급에서 제외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서울은행 직원들이 하나은행을 우리 직장으로 생각하고 사랑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서울은행은 예전부터 단일호봉제를 채택한 반면 하나은행은 직급별 호봉제를 유지해와 직급·임금 체계가 서로 다르다. 서울은행노조는 “하나은행 직원들이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아왔는데, 자신들의 임금이 줄어들까봐 하나은행 출신들이 직급·임금 체계 통합을 한사코 거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2001년 주택은행과 통합한 뒤 다시 국민카드를 합친 국민은행 역시 국민·주택·국민카드 노조가 여태껏 한지붕 세 가족으로 살아왔다. 조직문화의 충돌을 쉽사리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세 노조 조직은 최근에야 노조 통합에 합의했다. 지난 1998년 국민은행에 합병된 장기신용은행 출신들의 경우 상당수가 합병 이후 직장 내 분위기를 견디지 못하고 국민은행을 떠난 것으로 알려진다. 조직적 열세 속에서 눈칫밥 먹다가 결국 떠나고 만 것이다. 이처럼 은행을 그저 합쳐놓을 경우 불화만 빚는 사례가 늘자 신한금융지주는 조흥은행과의 통합 작업을 서두르지 않고 직급·급여 체계 등을 먼저 해결해 기반을 닦은 뒤 합치는 길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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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d><td width="10" bgcolor="F6f6f6"></td><td width="2" background="http://img.hani.co.kr/section-image/02/bg_dotline_h.gif"></td></tr><tr><td colspan="5"></td></tr></tab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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