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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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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락 직전의 KNCC

등록 2004-11-25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darkblue"> 1970~80년대를 빛낸 진보성과 역동성 상실한 채 보수적 교권에 밀려</font>

▣ 이승균/ 기자 seunglee@newsnjoy.co.kr

지난 1970∼80년대 민주화와 인권 그리고 통일의 기수로 사회 변화를 이끌어왔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이제 서울시청 앞 광장을 가득 메운 애국 기독교인들에게 그 역할을 내어주고 만 것일까.

KNCC가 11월15일 80주년 총회에서 발표한 시국선언문은 상징성만 남고 정체성은 사라진 KNCC의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줬다. 임시 실행위원회까지 구성하는 진통을 겪은 끝에 간신히 내놓은 3쪽짜리 시국선언문은 △국보법 △이라크 파병 △평화통일 △사립학교법 등 첨예한 현안을 다루면서도 회원 교단의 정서를 자극하지 않기 위해 문구를 짜깁기한 티가 역력했다.

국보법에 대해서는 “(우리는) 30년 동안 지속적으로 폐지를 주장해왔다”면서 “정권유지 수단으로 악용된 제반 법은 철폐돼야 한다”라고 과거형과 일반론을 뒤섞은 어정쩡한 표현을 썼고, 사학법을 두고는 “교육 현장의 부정과 부패는 사라져야 한다. 그러나 사학의 설립 취지는 존중돼야 한다”는 식으로 핵심을 피해갔다.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도 “이라크에 대한 협조는 파병이 아니라 평화재건으로 대체돼야 한다”는 제목 아래 뚜렷한 찬반 표명 없이 “이라크의 평화적 재건을 돕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밝히는 데 그쳤다. 심지어 남북 관계를 다룬 내용 어디에서도 ‘통일’이라는 표현이 나오지 않았다.

KNCC가 특유의 진보성과 역동성을 상실한 원인은 무엇일까.

대표적인 이유로 실제 운영비의 절반도 안 되는 교단 회비로 근근이 유지하는 자본의 영세성, 교단 입장과 정서를 대변하는 이들의 지도부 진출, 막강한 리더십을 지녔던 ‘종로5가 목사들’의 급격한 정치권 흡수 등을 꼽을 수 있다.

KNCC는 199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독일 등 기독교 선진국에서 유입됐던 수천만달러에 달하는 지원금을 바탕으로 인권과 민주화, 통일 운동을 전개해왔다. 해외 지원금은 KNCC가 보수적 교단의 정서와 입김에 상관없이 독자적인 정체성과 고유의 운동성을 유지할 수 있었던 든든한 배경이었다. 그러나 군부정권의 몰락과 문민정부의 등장이라는 정치적 지각변동 속에서 해외 지원금 중단 사태에 처하게 됐다. 그 뒤 KNCC는 운영비의 상당 부분을 회원인 보수교단과 교회의 후원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보수교회 자본에 예속된 것은 과거와 같은 정체성을 더 이상 유지할 수 없는 구조적 한계를 뜻한다.

KNCC를 유지해온 주요 리더십은 지난 김대중 정권 출범과 함께 여권에 흡수되거나 외곽 단체로 빠져나갔다. KNCC 회원 교단 중 가장 진보적인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소속 9명의 재야인사들이 한꺼번에 국민의 정부 통일정책 자문위원으로 위촉된 것이 대표적이다. 핵심 요직을 얻지 못한 주요 인사들은 앞다투어 정권의 외곽조직을 만드는 등 정권과의 거리를 유지하는 데 실패했다. 리더십을 독점하다시피 했던 이들이 빠져나간 공백은 지금까지 채워지지 않고 있다.

재야 운동권이 떠난 이후 KNCC를 실질적으로 대표하는 백도웅 총무는 순수 목회자 출신으로, 과거와는 다른 색깔의 리더십을 지니고 있다. 또 KNCC의 정책 결정 기관인 실행위원회에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중심인 기독교대한하나님의성회(기하성) 출신 등 과거 KNCC의 성격과 역할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인사들이 상당수 포진해 있는 실정이다.

KNCC는 자본을 등에 업은 보수적 교권에 밀려 진보성과 역동성이라는 양 날개를 스스로 접을지, 바닥을 친 심정으로 치열한 자기 반성을 거쳐 재비상을 할지 기로에 놓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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