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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 21세기형 퓨전 사극, 장보고

등록 2004-11-26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darkblue">현대적 감각으로 무장한 50부작 … HD 카메라 촬영·컴퓨터그래픽 활용·중국 현지 풍광 등 볼거리 </font>

▣ 피소현/ 기자 plavel@hani.co.kr

초특급 스펙터클 액션 멜로 역사극. 시사회에서 한 시간짜리 요약본으로 처음 공개된 은 이런 화려한 수식어를 붙여도 될 만큼 웅장한 규모를 자랑했다. 폭발적인 인기 속에 막을 내린 후속으로 11월24일부터 시청자에게 그 실체를 드러낼 은 기획 단계부터 많은 관심을 모았고 그게 걸맞은 성과를 거둘 수 있을지 기대를 모으고 있다.

“사극의 ‘역사 강박’ 버렸다”

은 통일신라시대 동북아시아 해상권을 제패한 해상왕 장보고의 일대기를 다룬 50부작 드라마다. 사극답게 ‘영웅담’을 그리고 있지만 한국방송의 기존 정통사극과는 큰 차이점을 보인다. 장보고에 대한 역사적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내용의 대부분을 픽션으로 채워야 하는 것. 최인호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삼았지만 드라마의 내용은 소설과도 많이 다르다. 에서 장보고는 노예 검투사가 되기도 하고, 신라의 상권을 한 손에 쥔 귀족 자미 부인, 장보고와 애틋한 사랑을 나누고 훗날 신라 제일의 여각 주인이 되는 정화, 어린 시절부터 장보고의 오른팔인 정년 등 가공 인물도 대거 등장한다.

제작진은 “나 처럼 역사적 실체에 대한 강박에서 벗어나 한 인간의 성공과 사랑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사극’을 보여줄 예정”이라고 했다. 빠른 화면 전환과 긴장감 넘치는 사건 전개, 절제된 대사 등 현대적인 감각이 돋보이는 것이 의 색다른 매력 중 하나. 최첨단 HD 카메라로 촬영한 고화질의 영상과 두달여의 현지 로케로 담은 중국의 풍광, 컴퓨터그래픽(CG)으로 재현해낸 전투 장면 등 볼거리도 가득하다. 원작자인 최인호 작가는 “원작을 의식하지 말고 좀더 극적으로 가기를 원했다”며 “21세기형 퓨전 사극은 새로운 감각으로 젊은이들을 역사로 끌어들일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작업이기 때문에 드라마가 끝까지 긴장감을 유지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연출을 맡은 강일수 PD 또한 “역사 속에 감춰져 있던 장보고의 본모습을 찾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사실감 있는 영상으로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만들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대작답게 의 제작 규모는 어마어마하다. 총제작비 180억원에 완도 1만6천평 부지에 청해진 오픈 세트를 지었으며 엑스트라까지 포함해 촬영 현장 인원만 1500명에 달할 정도다. 사극이라 현대극에 비해 제작 과정이 길고 고생스러운 것은 당연하지만 중국 현지 촬영은 그 중에서도 하이라이트다. 장보고의 평로군 토벌 등의 내용을 담기 위해 제작진은 중국의 우시, 항저우, 둔황 등에서 두달여 동안 촬영을 하고 돌아왔다. 건조한 기후는 물론 심한 일교차와 모래바람, 모래 섞인 밥 등으로 제작진의 고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촬영 내용 또한 전투 장면이 많아 크고 작은 사고기 많았다.

힘든 촬영인 만큼 에피소드도 많을 수밖에 없다. 중국 상단에 노예로 끌려간 장보고와 정년이 탈출했다가 다시 붙잡혀 땅에 목만 내놓고 파묻혀 있는 장면은 무려 3일에 걸쳐서 찍었다. 땅 속에 묻혀 있던 시간만 무려 6시간이었다고. 첫날은 상대배우를 먼저 찍느라 시간이 늦어 촬영을 못하고 둘쨋날은 모래바람 때문에 촬영이 중지되고 셋쨋날에야 겨우 찍을 수 있었다. 액션 장면이 많은 남자 배우들만 고생한 건 아니다. 정화 역을 맡은 수애는 낙타를 타고 가는 장면을 찍다가 갑자기 모래바람이 불었는데도 도도한 척 웃으면서 계속 연기를 해야 했다고. 장보고 역을 맡은 최수종은 “ 4년을 하고 나서 어떤 사극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중국 촬영은 정말 힘들었다”며 “의 배우들은 우리나라 배우들 중에서 가장 어려움을 잘 참고 견디는 사람들로만 골라 뽑은 것 같다”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배우들의 이러한 노력이 얼마나 빛을 발할지는 시청자의 판단에 맡겨둘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의 출연진은 일단 무사히 합격점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우선 사극 출연 경험이 풍부한 최수종과 채시라가 든든하게 두 축을 받치고 있다. 두 사람은 같은 작품에 출연하는 것이 벌써 여섯 번째라 최강의 호흡을 보여줄 것이라고 자신감을 보이고 있는 상태. 타이틀롤을 맡은 최수종은 “ 때도 쌍꺼풀 운운하며 안 어울린다고 했지만 결국 작품은 성공했다”며 “사극은 ‘마라톤’이기 때문에 나중에 결승선 테이프를 어떻게 끊는지 보여주겠다”고 여유를 보였다. 자미 부인으로 출연하는 채시라는 배역에 더없이 잘 어울린다는 평을 얻고 있다. 자미 부인은 신라의 진골 귀족으로 빼어난 미모와 지략을 겸비하고 권모술수에 능한 여장부. 목적을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비정한 여인으로, 장보고가 성장하자 그와 가장 강한 갈등축을 형성한다. “오랜만에 연기하는 맛이 나는 작품을 만났다”고 말한 채시라는 “악역이지만 여성 시청자에게 통쾌함을 안겨줄 수 있는 매력적인 인물”이라고 배역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해적에게 부모를 잃고 자미 부인 수하에 있다 장보고와 운명적인 사랑을 나누는 정화 역의 수애와, 장보고의 동료이자 연적, 라이벌인 염장 역의 송일국도 그동안 보여준 모습보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연기를 보여줄 것이라 기대를 모으고 있다. 연약한 이미지의 수애는 극의 중반부를 넘어서면서부터 당당하게 홀로 서는 여성상을 보여줄 예정이며, 병역 비리로 도중 하차한 한재석의 ‘대타’로 뒤늦게 에 합류한 송일국은 밉지 않은 악역 연기를 보여주겠다고 벼르고 있다. 이 밖에 장보고의 오른팔인 정년 역은 에서 호평을 받은 김흥수가, 장보고와 정년에게 무예를 가르쳐주고 숱한 역경 속에서도 장보고의 조력자 역할을 하는 무창 역은 이원종이, 정화의 오빠로 장보고를 괴롭히는 악역 창겸 역은 정성환이 맡았으며 박영규, 김갑수 등 탄탄한 중견 연기자들도 출연한다.

이후 사극 부활 관심

이처럼 모든 조건을 완벽하게 갖춘 듯 보이는 이지만, 흥행 면에서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제작 규모가 크고 방영 기간이 긴 사극은 성공과 실패 여부에 따라 그 파급 효과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방송사에게는 큰 부담일 수밖에 없을 터. 사극에서만큼은 한국방송이 강세를 보여왔고 최근 한국방송 드라마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기는 하지만 사실 이후 사극은 현대물에 밀려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현재 이 나쁘지 않은 성적을 보이고 있지만 은 처참하게 참패했고 시대물인 도 기대 이하의 반응을 얻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다시 사극의 인기에 불을 지필 수 있을지, 에게 주어진 또 하나의 과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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