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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뺨치는 ‘목사님의 권력’

등록 2004-11-25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darkblue">교권·금권 업고 교회 밖에서도 강한 영향력… 세습 문제와 각종 비리로 바람 잘 날 없어 </font>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교회 안의 비판을 잠재우기 위해 교회 밖의 권력을 쌓는다.”

대형 교회 목사들이 부쩍 정치적 목소리를 내는 이유가 교회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한 방어막이라는 분석이 있다. 90년대 후반부터 한국 교회는 목사 세습 문제와 각종 비리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 특히 광림교회 등 대형 교회일수록 목사 세습 문제로 시끄러웠다. 담임목사의 헌금전용 비리 문제도 잊을 만하면 불거졌다. 대부분의 대형 교회들이 한국전쟁 직후에 세워졌다. 담임목사 교체가 90년대 이후 10년 사이에 몰려 있었다. 교회 세습이 부각되는 시대 배경이다.

대형 교회와 극우화의 함수관계

한국 교회의 권한은 목사에게 집중돼 있다. 비민주적인 교회 정관과 교단 회칙이 권력을 뒷받침한다. 지강유철 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은 “흔히 교단 회칙을 교회 헌법이라고 한다”며 “교계에는 ‘예수님이 와도 교회 헌법은 못 바꾼다’는 뼈 있는 농담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대형 교회 목사의 권위는 개별 교회를 넘어 교계 전반으로 미친다. 교회를 성장시키면 금권을 얻고, 금권을 얻으면 교권이 따라오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한 목사는 “어느 모임에 갔더니 100억원 들어가는 사업을 선뜻 한 목사가 하겠다고 했다. 재벌총수도 기업돈 100억원을 마음대로 쓸 수 없는데, 대형 교회 목사는 가능하다는 이야기 아니냐”며 혀를 내둘렀다.

금권과 교권을 가진 일부 목사들이 교단을 쥐락펴락하고, 교회연합체를 움직이는 현실이다. 한 교회 관계자는 “규모가 큰 교단들도 대형 교회 몇개가 빠지면 교단 운영이 어려워진다”고 전했다. 대형 교회 목사들은 교회를 지키고, 교세를 과시하기 위해 교단의 요직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교단장 선거는 금권으로 얼룩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한 교인은 “정교분리를 외치던 시절에도, 큰 교회 목사님들은 자기 교회에 국회의원이 오면 좋아하고, 청와대를 다녀오면 기념사진을 걸어두는 행태를 보였다”고 말했다. 실제 대형 교회 목사들이 2002년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와 이회창 후보를 놓고, 누구의 방문 요청을 먼저 수락하고 기도를 해줄 것인가 하는 고민에 빠졌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교회 안에서도 사회의 서열 구조가 반복된다. 최근 서울의 한 교회에서는 100여명에게 장로 등 직분을 주면서 헌금을 요구했다. 장로는 2천만원, 안수집사는 1천만원 하는 식으로 거의 단가가 정해져 있었다. 그 교회 목사는 교회연합체 운동에 필요한 자금을 모으기 위해 직분 세일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현실이다 보니 신앙적 지도력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사회적 성공을 한 사람들로 장로 등 교회 지도자들이 채워지기 마련이다. 그들이 가진 이데올로기는 보수 편향이기 십상이다. 이처럼 사회적 기득권층이 개별 교회의 지도자가 되고, 이들에 의해 교회가 기득권층의 이해를 대변하고, 결국 기득권층이 교회를 이용하게 되는 구조인 것이다.

인맥과 교단으로 얽힌 관계는 교회 개혁을 더욱 어렵게 한다. 이른바 진보 교회의 민주 목사도 교회 개혁에서 예외는 아니다. 교회 밖의 진보가 반드시 교회 안의 진보는 아닌 것이다. 진보 목사님들도 교회 안에서는 ‘1인 독재’ 체제를 고수하기도 한다. 한 교회 개혁 운동가는 대표적인 사례를 꼽았다. “2001년 대형 교회 분규가 있었다. 유명한 민주 목사가 중재에 나섰다. 그런데 그 목사님이 이상하게 어정쩡한 태도를 보였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대형 교회에서 그 민주 목사님의 교회를 지어줬기 때문이었다.” 한기총뿐 아니라 기독교사회책임에도 세습·비리 문제로 물의를 일으킨 인사들이 참여하고 있다.

‘민주정관 갖기 운동’ 등 희망의 징후도

한국 교회는 전통적으로 보수와 진보로 나뉘어져 균형을 유지해왔다. 하지만 교권과 금권의 열세에도 도덕적 명분으로 균형추를 유지해왔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가 급격히 영향력을 잃으면서 기독교계의 보수 목소리는 더욱 커지고 있다. 62개 교단이 소속된 한기총과 8개 교단이 소속된 KNCC는 규모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 교권, 금권 열세에 영향력마저 잃은 KNCC는 갈지자 행보를 보이고 있다. 최근 한기총과 KNCC의 기구통합 논의에서도 이 행보가 되풀이됐다. KNCC의 자체 회의에서는 한기총과 기구통합 논의를 중단하자는 의견이 다수였다. 담당부서인 일치위원회는 ‘18인 위원회의 기구통합 로드맵에 얽매이지 않는다’는 안을 실행위원회에 내놓았다. 하지만 실행위의 결정은 ‘(기구통합 로드맵을) 존중하되 조정할 수 있다’로 바뀌었다. KNCC의 소속 교단이지만, KNCC의 전통을 이해하지 못하는 교단쪽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된 것이다. 반면 한기총은 한국 교회의 대표기관으로 자신감을 더해가고 있다. 한기총 관계자는 “한기총이 과거에는 교회 부흥에 힘쓰다 보니 사회 참여에 소홀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제는 KNCC가 힘을 잃어 한기총이 교회 부흥뿐 아니라 사회 참여 등 다각도의 역할을 맡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교권, 금권에 휘둘리는 가운데서도 희망을 간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박득훈 목사(교회개혁실천연대 공동대표)는 “교회 개혁이 이루어지면 사회 개혁도 따라온다”며 “최근 일고 있는 개별 교회의 민주정관 갖기 운동이 그 희망의 증거”라고 말했다. 평범한 교인들에 의한 ‘아래로부터의 개혁’이 한국 교회의 현실을 극복하는 유일한 대안이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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