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믿는 예수는 총칼의 힘으로 적을 섬멸하지만, 내가 믿는 예수는 선으로 악을 이겼다
▣ 지강유철/ 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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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표권은 자기들이 행사하지만 그 결과에 대한 책임은 전 지구촌이 고스란히 떠안아야 하는 미국 대통령 선거다 보니 절로 촉각이 곤두섰다. 개표 과정을 수시로 체크하면서는, 이회창 후보의 당선이 현실로 나타나는가 싶던 2002년 한국 대선 전날만큼이나 침통했다. 중요한 것은 부시 당선이 왜 그렇게 곤혹스럽냐는 것일 텐데, 케리가 그 이유는 아니었다. 미국의 복음주의 크리스천들의 68%가 부시를 선택했다는 점을 나는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거짓을 용납하지 않는 나의 예수
그렇지 않아도 걸핏하면 성조기 들고 시청 앞으로 몰려나와 “미국을 대적하면 기독교 신앙을 배반하는 것”이라고 억지를 써대는 보수 기독교인들로 인해 절망하던 나는, 납득할 수 없는 신앙의 기준을 내세워 부시를 선택한 미국의 보수 기독교인들로 인해 참담하였다.
부시가 예수를 믿는다면 나도 예수를 믿는다. 부시를 지지한 기독교인들이 매 주일 교회에 나간다면 나도 마찬가지다. 부시가 ‘가족과 신앙의 깊은 가치’를 지지한다면 나도 그러하다. 그러나 부시가 믿는 예수는 내가 믿는 예수가 아니다. 그가 읽는 성서도 내 성서와는 너무도 다르다. 부시가 믿는 예수는 안보 독트린을 내세워 깡패처럼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에 선제공격을 명령하는지 모르나, 내가 믿는 예수는 자신을 원수로 여기는 자들을 위해 죽었다. 부시가 믿는 예수는 총칼의 힘으로 적을 섬멸하고, 혐오스런 고문으로 적들의 양심을 굴복시키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믿는 예수는 선으로 악을 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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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시가 믿는 예수는 동성애나 낙태 때문에 사람들을 정죄하여 교회 밖으로 내쫓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믿는 예수는 술주정뱅이나 매춘여성이나 매국노, 심지어는 당시의 에이즈와 다름없었던 나환자들과 아픔과 슬픔을 함께 나누다 종교 기득권의 미움을 받고 죽임을 당했다.
부시가 믿는 예수는 없는 대량살상무기를 내세워 이라크를 침공하고, 그게 거짓으로 드러나자 민주화를 위한 불가피한 조처였다고 둘러대는 것을 묵인해주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믿는 예수는 거짓을 절대 용납치 못한다. 부시의 예수는 “미국 대통령이 하겠다면 그렇게 하는 것이 세계 평화”라는 오만불손한 망언에 너그러운지 모르겠으나, 내가 믿는 예수는 교만을 가장 못 견딘다. 부시가 믿는 예수는 대통령을 만들기 위해 미국이든 세계든 닥치는 대로 분열과 대립을 조장하는 일을 눈감아주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믿는 예수는 십자가에서 하나님과 우리, 그리고 이념과 민족과 혈통으로 분열됐던 우주를 통합하셨다.
부시가 믿는 예수는 기도와 전도 잘하고 교회만 빠지지 않으면 안심하고 천국 갈 수 있다고 가르치는지 모르겠으나, 내가 믿는 예수는 최후의 심판 때 낯모르는 사람들이 배고프고 목마르고 헐벗고 옥에 갇혔을 때 어떻게 했는지를 기준으로 천국과 지옥 갈 사람들을 나눌 것이다.
보수 기독교인들의 위선이여
부시로 인해 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사지로 내몰릴까를 생각하면, 그리고 부시를 등에 업고 이 땅의 보수 기독교인들이 또 얼마나 더 개혁의 훼방꾼 노릇을 할까를 생각하면 가슴이 터진다. 그러나 제국의 오만이 언제까지 계속되지는 못할 것이라 나는 믿는다. 신앙을 빙자하여 하나님을 모독하는 보수 기독교인들의 위선도 계속될 수는 없을 것이다. 부시가 아니라 하나님이 온 세상의 통치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진리와 정의의 승리를 믿는다. 우리의 움직일 수 없는 희망은 여기에서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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