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친노동자 정책 기대를 버렸음!”

등록 2004-10-21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darkblue">노무현 정부는 정말로 분배 위주의 노동정책을 펴고 있는지 검증해보면…</font>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2003년 2월 노무현 정부가 출범하고 철도·화물연대 등 대형 파업이 잇따르자 일부 보수언론은 ‘친노(親勞) 정권 등장에 따른 노동자들의 기대감 상승으로 파업이 급증하고 있다’고 연일 보도했다. 그러면서 ‘공권력 투입’을 주문하기 시작했다. 당시 파업에 대한 정부의 대처 방식은 ‘대화와 타협을 통한 사회통합적 노사 관계’ 구축이라는 노무현 정부 노동정책의 현실적 가능성과 의지를 시험하는 잣대가 되었다. 노무현 정부는 공권력의 투입 없이 전향적으로 파업 사태를 해결했고, 이 때문에 재계·국제자본·보수언론으로부터 ‘친노동자적 포퓰리즘’의 경향을 보이고 있다거나 ‘분배’에만 치중한다는 집중 포화를 받았다. 그렇다면 과연 노무현 정부는 친노동자적 분배 위주의 노동정책을 펴고 있는가?

현 정부 들어 분배 더 악화

사실 노무현 정부가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던져줬다고 꼽을 만한 선물은 전혀 없다. 당장 공무원노조의 경우 “노동3권은 다 줄 수 없고 1.5권만 주겠다”는 김대중 정부 시절의 방침을 고수하고 있고, 이에 따라 공무원노조의 거센 반발을 사고 있다. 또 기업도시·경제자유구역 등 노동권을 제한하는 경제정책을 추진하면서 노동계의 격렬한 저항에 직면해 있다. 특히 정부가 내놓은 비정규직보호 법안에 대해 노동계는 “노무현 정부에 대해 노동자들이 갖고 있던 일말의 기대마저 꺾어놓은 노동법 개악”으로 규정하고 11월 총파업을 선언한 상태다. 노무현 정부에 더 이상 기대할 게 없다는 것이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소장은 “참여정부가 그동안 노동자들에게 분배 측면에서 던져준 것이 하나도 없다”며 “정권 초기 화물연대 파업을 원만하게 해결한 것도 분규에 대한 대처 방식일 뿐이지 이것이 무슨 친노동자적 분배로 이어진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애초 노무현 정부가 노동자들에게 줄 선물 보따리를 준비하고 있었는지도 의심될 뿐 아니라, “노사간 힘의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는 원칙만 천명했지 실제로 친노동자적 정책을 쓴 사례는 한번도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비록 노무현 대통령이 대기업 노조를 비판하고 있지만 이것은 제스처일 뿐이고 구체적인 사안에서는 친노동자적 정책을 펴고 있다”고 주장한다. 노무현 대통령이 여론의 눈치를 살피면서 줄타기하고 있다는 것인데, 과연 물질적 측면이든 노사 관계의 법·제도적 측면이든 노동자 편향적인 정책을 쓴 적이 있을까?

노무현 정부가 출범한 2003년과 그 이전인 2002년의 생산성과 실질임금을 비교해보자. 김유선 소장에 따르면 2002년 실질노동생산성 증가율(전체 임금노동자 기준)은 10.7%였고, 실질임금 증가율은 8.3%(명목임금 증가율 11.0%)였다. 반면 2003년 노동생산성 증가율은 8.4%였고, 실질임금 증가율은 5.5%(명목임금 상승률 9.0%)로 나타났다. 실질임금 증가율과 견줘볼 때 2002년에 노동생산성 증가율이 2.4%포인트 더 높았는데, 2003년에는 2.9%포인트로 그 격차가 더 벌어졌다. 즉, 노동자들이 받는 실질임금 증가폭이 노동생산성 증가폭보다 더 떨어진 것인데, 이는 노무현 정부가 친노동자 분배정책을 펴고 있다는 주장과 달리 오히려 현 정부 들어서 분배가 더 악화됐음을 보여주고 있다.

정부 노동정책마다 총파업 대응

생산된 부가가치 가운데 노동자들이 차지하는 몫을 뜻하는 노동소득분배율은 어떨까? 노동소득분배율은 지난 1996년 63.4%로 정점을 기록한 뒤 2002년 58.2%로 크게 떨어졌고, 2003년 59.7%로 약간 상승했다. 김 소장은 “현 정부 들어 노동소득분배율이 다소 상승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경기침체로 자영업자와 무급가족종사자들이 몰락하고 이들이 임금노동자로 바뀌면서 취업자 중 임금노동자 비중이 2002년 64%에서 2003년 65.1%로 높아진 데 따른 것”이라며 “참여정부의 분배정책으로 노동소득분배율이 올라간 증거는 없다”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 이주희 연구위원은 “개별 노동자들 사이에 노무현 정권도 과거 정권에 비해 노동정책에서 별반 달라진 게 없다고 느끼는 것 같다”며 “노동정책이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이라는 큰 틀 속에서 이뤄지면서 한계를 보이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오히려 정부 출범 초기에 일부 노동운동 내부에서 제기됐던 ‘노무현 정부 적극 활용론’은 이제 오간 데 없고 정부가 내놓은 노동정책마다 총파업으로 대응하는 형국이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