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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헌이면서, 위헌이 아니기도 한…”

등록 2004-09-02 00:00 수정 2020-05-03 04:23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이 오랫동안 갈등 빚어온 ‘한정위헌’

▣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헌법재판소와 대법원은 이른바 ‘한정위헌’을 둘러싸고 오랫동안 갈등을 빚었다. 한정위헌은 일반적인 위헌결정과는 달리 법률조항은 그대로 살려두면서 ‘…라고 해석하는 한 위헌’이라고 결정하는 것이다. 이는 법 조항의 위헌 여부만 따지는 것에 그치지 않고 법률에 대한 해석까지 들어간 것이기 때문에, 법률에 대한 해석을 사법부(법원)의 고유권한으로 인식하고 있는 대법원의 반발을 샀다.

한정위헌을 둘러싼 갈등이 가장 크게 불거진 것은 지난 1996년 전 국회의원 이아무개씨의 양도소득세 과세기준 사건이다. 대법원은 과세기준을 실거래가로 인정해 이씨에게 8억여원의 양도소득세를 부과한 세무서 처분을 적법하다고 판결했으나, 헌재는 “실거래가 기준이 납세자에게 불리할 경우에는 재산권 침해에 해당돼 위헌”이라고 한정위헌 결정을 내렸다. 이씨는 대법원이 “법률에 대한 해석은 법원의 헌법상 고유권한”이라며 헌재의 결정을 따르지 않자 헌법소원을 냈고, 헌재는 이를 받아들여 대법원의 판결을 취소했다. 두 기관의 갈등은 ‘눈치 빠른’ 해당 세무서가 이씨에게 세금을 돌려줘서 가까스로 봉합됐다.

이 사건을 계기로 헌재와 대법원의 위상과 권한을 둘러싼 논쟁이 불붙었다. 논쟁의 발단은 한정위헌에 대한 이견이었지만, 점차 두 기관의 위상을 둘러싼 힘겨루기로 번졌다. 헌재는 “헌재가 제 구실을 다하려면 독일처럼 4심제로 가는 게 맞다”고 주장하는 반면, 대법원은 법적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반발한다. 대법원 관계자는 “헌재가 법원의 판결까지 심사대상으로 한다면 헌재의 잘못된 결정을 구제받을 길이 없기 때문에 불합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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