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nt color="darkblue">매 맞기 전에 노조가 먼저 칼집 꺼낸 KBS… “인력 감축 없는 시스템 개혁” 표방 </font>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한국방송(KBS)이 내부 개혁 시스템으로 전격 도입한 팀제의 대원칙은 ‘인건비 총액은 그대로, 일하는 조직으로 재편’이다. KBS는 기존 ‘41개 실국, 32개 주간, 208개 부’가 헤쳐 모여 98개팀으로 재편됐다. 물론 팀제 자체가 그다지 새로울 건 없다. 외환위기 이후 기업마다 직급·직책을 폐지하고 조직을 팀제로 바꾼 사례는 더 이상 화젯거리가 아니다.
“노조가 먼저 제안, 회사가 수용”
그러나 ‘공기업’ KBS의 팀제는 공적 소유권과 독점적 시장구조로 인한 비효율성을 그대로 갖고 있는 조직에서 시도되는 것이란 점에서 충분히 주목할 만하다. 공기업 특유의 관료적 구조 속에서, 고임금에 일자리가 보장되는 ‘노는 조직’으로 불리던 KBS에 본격적으로 효율과 경쟁이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KBS는 내부에서조차 “여의도 사옥 대형 기둥마다 그 뒤에 수십명의 간부들이 숨어서 정년까지 먹고살고 있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상위직이 비대하게 많은 기형적 구조를 띠고 있다.
KBS의 조직개편은 다른 공기업 구조조정 사례와 달리 노동조합이 환영하고 있다는 점에서 이례적이다. 엄밀히 말하면 노조가 오히려 팀제 개편을 주도하면서, 정연주 사장과 일정한 파트너십을 형성해 개혁을 이끄는 주체로 등장했다. 전국언론노조 KBS본부 이훈희 정책실장은 “팀제는 일 중심으로의 전환이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노조가 먼저 제안했고, 이를 회사쪽이 수용한 것”이라며 “내부에서 두려워하면서 주저하는 흐름이 있었으나 고비 때마다 노조가 견인해갔다”고 말했다. 감사원 특감 결과 발표라는 외부 압력이 있긴 했지만 매를 맞기 전에 내부적으로 노조가 먼저 개혁의 칼집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는 얘기다.
공기업은 경쟁시스템이 부재하고 외부의 경영감시 체제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기 때문에 경영효율성 향상에 대한 내부 유인이 적다. 따라서 경영진도 효율을 꾀하려는 동기가 미약하고 노사가 ‘담합’할 가능성이 존재하며, 이것이 방만한 경영으로 이어지곤 했다. KBS 역시 국민 세금에 준하는 수신료로 운영되고 있지만 국민 또는 시청자의 이해를 대변하는 통로가 제한됐고, 국회 및 방송위원회의 감독을 받지만 예산편성 등 경영은 외부 간섭을 받지 않고 독자적으로 결정해왔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간혹 감사원을 동원해 방만한 경영을 대중적으로 폭로함으로써 구조조정을 정치적으로 압박해왔다. 이훈희 실장은 “바깥에서 이번 팀제를 감사원 특감 이후 노조와 정 사장이 코드를 맞춰 위기를 모면하기 위해 급조한 것이라고 의혹을 제기하고 있지만 그 전부터 노사 모두 개혁에 대한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KBS 조직개편이 이처럼 ‘노사 합의’라는 형태를 띠고 비교적 조용하게 이뤄진 배경에는 기본 설계도가 “인력 감축 없는 시스템 개혁”을 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직은 대폭 축소됐지만 퇴출당하는 사람은 없이 단지 ‘일하는 조직’으로 전환된 것뿐이다. 이 실장은 “(정년 보장으로 인해) 퇴출 구조가 없다는 건 노조에서도 고민하고 있는 점”이라며 “그러나 공영방송으로서 공익성을 강화하려면 오히려 ‘일하는’ 인력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혁명적 변화의 길에 들어선 건가
KBS는 이번 조처로 혁명적 변화의 길에 들어선 것일까? 겉으로 보면 KBS 노사 모두 급격한 변화보다는 개혁의 연착륙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하루아침에 국·실장 직책과 직책수당을 한꺼번에 잃고 팀장·팀원이 된 기존 간부들의 정서적 연착륙을 유도하기 위해 이들은 기준급을 인상해주는 방식으로 직책수당의 절반을 보전해주기로 했다. 또 평직원(팀원)으로 강등된 간부들에게는 1인당 20만원씩 시간외수당을 지급하기로 했다. 물론 이번 팀제가 부장·국장을 팀장으로 이름만 바꿔 달게 한 겉치레 변화는 아니다. 선배가 부서원(팀원)으로 내려앉고 후배가 팀장으로 치고 올라서는 발탁인사도 꽤 단행됐다.
인력 감축 대신 내부 혁신을 내건 KBS 개혁의 시동은 걸렸다. 지금은 정치 권력의 KBS 장악보다는 ‘좋은 직장 KBS’라는 말 뒤에 숨은 ‘놀고먹는 공기업 방송사’라는 대중적 비판이 더 무서운 때다. 따라서 개혁 드라이브의 속도와 성패 여부도 KBS 노사 ‘내부’의 의지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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