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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원 투수’ 자처한 중진들

등록 2004-07-08 00:00 수정 2020-05-03 04:23

<font color="darkblue">의원 13명 ‘기획자문회의’ 구성… ‘군기반장’ 역할, 지도부에도 쓴소리 하겠다 </font>

▣ 신승근 기자 skshin@hani.co.kr

과거 야당 시절부터 ‘한가락씩 했던’ 중진들이 위기에 봉착한 열린우리당을 구하기 위해 전면에 나섰다.

임채정(전 대통령직 인수위원장), 문희상(전 청와대 비서실장), 유인태(전 청와대 정무수석) 장영달(전 국회 국방위원장), 정세균(전 민주당 정책위의장), 김한길(전 김대중 대통령 정책기획수석), 배기선(전 국회 문화관광위원장) 의원…. 열린우리당 안에서 중량감 있는 의원 12명이 지난 6월29일 ‘기획자문회의’를 구성하고 당 문제에 대한 발언을 시작한 것이다.

기획자문회의는 애초 “중진들이 나서 당을 위한 역할을 한번 해보자”는 문희상 의원의 제안에서 잉태됐다. 그러나 신기남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 체제가 출범한 뒤, 뚜렷한 역할을 찾지 못한 채 경험 없는 젊은 지도부의 당 운영 행태를 비판해온 중진들이 전면에 나선 데는 당 지도부와 이들의 이해가 맞아떨어진 측면이 강하다.

신기남 당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는 최근 잇따른 악재 속에서 당 안팎에서 지도력을 의심받는 위기 상황을 맞고 있다. 효율적인 당 운영 전략도 마련하지 못했고, 152명의 소속 의원에 대한 적절한 통제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우왕좌왕하고 있다. 결국 정치적 위기 상황에 직면한 신기남 당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로서는 이들의 경험과 연륜에 기대 현재의 위기를 돌파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자신들의 취약한 리더십을 이른바 ‘시니어들의 리더십’으로 보강하려는 것이다.

기획자문회의에 참석한 한 중진 의원은 “문희상 의원의 제안도 있었지만, 신기남 당 의장이 당 운영에 여러 어려움이 많으니 중진들의 자문이 필요하다며 협조를 요구한 것이 출범을 결심한 계기”라며 지도부의 이해가 적절히 반영된 것임을 내비쳤다.

기획자문회의는 앞으로 당내 논란에 대한 거중 조정자 역할과 함께 초선들의 군기반장, 당의 중장기적 전략 마련을 위한 사령탑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면서 위기의 늪에서 당을 건져내는 데 힘을 쏟을 것으로 보인다.

기획자문위원는 자신들의 역할을 △향후 제기되는 이슈와 어젠다 관리 △당의 중장기적 진로 설계 △당의 활성화 방안 논의 △당 지도부에 자문 △당 공식기구인 기획위원회(위원장 민병두 의원) 지도 등으로 구체화했다. 신기남 의장 등 당 지도부도 매주 화요일 오전 국회 당 의장실에서 기획자문회의 정례회의를 열고, 당 의장과 천정배 원내대표 등 지도부 가운데 1명 이상이 반드시 이 회의에 참석하기로 하는 등 적극 협력하는 모습이다. 아울러 당의 최고의결기구인 상임중앙위원회에 임채정 기획자문위원장의 참석을 허용하는 등 당에 대한 발언권을 공식 부여했다.

이들은 그동안 침묵을 깨고 의원총회에서 초선들을 향해 거침없이 쓴소리를 내뱉는 등 전과는 달라진 모습도 보이고 있다. 배기선 의원은 “모처럼 과반수 집권당이 됐기 때문에 우리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완전히 오산”이라며 “집권당은 문제를 제기하는 게 아니라 해결해야 한다”고 초선들을 질책했다. 장영달 의원도 “일본도 파병 결정 전에는 여야가 멱살을 잡고 싸웠지만, 파병이 결정된 후에는 잡음이 없었다”며 “결정되면 함께 따르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나라꼴이 된다”고 일갈했다.

이들이 위기에 빠진 당을 구해낼 수 있을지는 좀더 두고 볼 일이다. 초선 의원들 사이에 군기반장 역할을 하면서 자유로운 의사표현을 막고, 청와대의 뜻을 전달하는 통로로 자리매김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기 때문이다.

이런 우려에 대해 한 기획자문위원은 “자기들이 책임 없을 때는 개혁과 변화를 부르짖다, 지도부가 된 뒤에는 개혁을 느슨하게 하는 경향이 있다”며 “초선뿐 아니라 지도부의 이런 현상을 해소하지 않으면 정말 큰 위기가 닥칠 수 있는 만큼 지도부에도 할 말은 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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