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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종 감독’은 왜 안 되나

등록 2004-06-10 00:00 수정 2020-05-03 04:23

외국 감독에 뒤지지 않는다는 주장 확산… 축구협회는 여전히 외국인 영입
0순위로

김창금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kimck@hani.co.kr

‘토종’ 감독이 뭐가 부족해서?

한국축구 대표팀을 맡을 외국인 감독 선임 작업이 꼬이자 토종 대표팀 감독 중용론이 급부상하고 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외국인 감독 영입보다는 국내에서 쓸 만한 감독을 물색해 대표팀을 이끌도록 하는 게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세계적인 명장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의 부진과 사퇴, 브뤼노 메추 감독의 영입 실패는 토종 감독 대망론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조윤환 전북 현대 감독은 “한국의 지도자들도 그동안 많이 성장해왔다”며 “현재 정신적으로 흩뜨려져 있는 대표팀 내 상황을 고려할 때 꼭 외국인 감독을 고집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현실적으로 새 외국인 감독이 왔을 경우 한국팀을 파악하는 데 최소 6개월의 기본적인 시간이 필요하고, 풍부한 지도 노하우를 갖고 있다고 할지라도 2002년 한-일 월드컵 직전처럼 선수를 무기한 차출해서 훈련할 수도 없다. 반면 한국의 지도자들은 한국의 축구 문화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선수 개개인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는 장점이 있다. 2002년 월드컵과 거스 히딩크 감독의 용병술을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국내 지도자들의 눈높이도 꽤 올라간 것이 사실이다.

상황론 못지않게 외국인 감독한테 언제까지 의존할 수 없다는 국내 축구인들의 자존심도 토종 대표팀 감독론을 부추기고 있다. 정종덕 건국대 명예감독은 “히딩크 감독이 뛰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역대 어느 국내 감독도 히딩크 감독이 받은 만큼의 지원을 받지 못했다”며 “그 정도 지원만 받게 된다면 국내 감독도 너끈히 큰 일을 해낼 수 있다고 본다”고 말한다. 실제 히딩크 감독은 1년 넘게 선수들을 데리고 있었고 수석코치, 피지컬코치, 비디오기사를 직접 데리고 왔다. 심지어 얀 룰푸스라는 개인 비서 격의 대변인도 두었다. 국내 지도자를 대표팀 감독으로 앉힐 경우 외국인 감독에 들어가는 돈의 10분의 1이면 해결된다는 비용의 우위도 토종 감독론의 배경이다.

히딩크 감독 이전의 국내 축구 감독에 대한 기억도 축구팬들의 향수를 자극한다. 히딩크 감독 이전에 대표팀을 맡았던 허정무 감독은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서 역대 최고 성적인 1승1무1패로 가능성을 보였다. 허 감독이 발굴한 이영표, 박지성, 송종국, 이천수 등은 2002년 월드컵의 주역이었다. 그렇지만 올림픽 조 리그 탈락으로 정당한 평가를 받지 못했고, 이어 열린 아시안컵대회 정상 도전에 실패하면서 지휘봉을 내줘야만 했다.

그러나 당장 토종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을 맡기는 쉬워 보이지 않는다. 대표팀 감독을 선임하는 축구협회 기술위원회는 여전히 외국인 감독 영입을 0순위에 놓고 있다. 이회택 기술위원장은 “국내에도 지도자는 있지만, 축구팬들의 눈높이를 맞추려면 외국인 감독을 뽑을 수밖에 없다”고 주저없이 말한다. 국내 지도자들의 수준이 유럽 등 세계 축구의 흐름을 주도하는 지역의 지도자 수준에는 못 미친다는 주장도 있다.

축구 지도자라면 한번쯤 꿈꿔보는 게 대표팀 감독이다. 이런 맥락에서 지난 5월6일 김진국 전 기술위원장이 10명의 대표팀 사령탑 후보를 발표했을 때 단 한명의 국내 지도자도 올리지 않은 것에 대해 축구 지도자들은 큰 소외감을 느꼈다. 축구협회가 국내 지도자들한테 대표팀 감독이 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하는 것도 축구 발전을 위해서는 좋다. 국내 지도자들은 대표팀 감독을 맡고 싶다는 꿈을 먹고 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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