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난의 표적이 된 이회택 기술위원장 인터뷰… 새 지도자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성적을 내야
김창금 기자/ 한겨레 스포츠부 kimck@hani.co.kr

이회택(58)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장은 요즘 가장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기술위원회가 중심이 된 대표팀 사령탑 영입 작업이 실패하면서 1차적인 비난의 표적이 됐기 때문이다. 이 위원장은 지난 6월5일 과의 인터뷰에서 “브뤼노 메추 감독 영입 작업의 실패에 책임을 통감한다”며 “그러나 축구협회의 행정이 공개화, 투명화쪽으로 가는 과정에서 생긴 문제”라고 설명했다. 이 위원장은 또 “한국 축구는 2002년 한-일 월드컵 이후 4강의 달콤한 꿈에서 벗어나야 할 시점”이라며 “위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축구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이 서로 비난만 하지 말고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 기술위원장은 “기술위원회의 문은 열려 있다”며 “많이 듣고 배우고 실천하는 기술위원회를 만들겠다”고 강조했다. 1970년대 한국 대표팀 최고의 스트라이커로 한 시대를 풍미했고, 지난해까지 현역 프로팀 감독을 역임한 이 위원장은 어눌하지만 꾸밈없는 말투로 인터뷰에 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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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컵 4강이 모든 문제의 중심
-지난 5월12일 기술위원장에 취임한 뒤 바람 잘 날이 없었던 것 같다. 어떻게 보냈나?
=프로팀 감독이 아주 힘들다고 생각했는데, 기술위원장 자리는 더 힘든 것 같다. (웃음) 아무래도 대표팀 사령탑 문제가 가장 어려웠다. 매끄럽게 일을 처리하지 못해 축구팬들의 걱정을 자아내고, 감독 영입을 차후로 미루게 된 점에 대해 머리 숙여 사죄한다.
-기술위원회에서 우선 영입 대상자로 선정한 브뤼노 메추(아랍에미리트 알 아인 감독)가 한국에 오지 않는 이유는 돈 때문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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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팀 사령탑이 된다는 것은 한편으로는 도전해볼 만한 일이지만, 부담도 많이 되는 게 사실이다. 한국은 지난번 월드컵에서 4강에 올랐기 때문에 2006년 독일 월드컵에서 여간 잘하지 않으면 빛을 볼 수가 없다. 성적이 나쁠 경우에는 얼마나 여론의 뭇매를 맞겠는가? 이런 배경 때문에 한국에 오려고 하는 감독들은 열번, 백번을 심사숙고할 것으로 생각된다. 메추 감독의 경우 한국으로 올 때의 위험부담과 다른 클럽팀에서 제시한 연봉 액수를 감안해 좀더 받았으면 한 것 같다.
-그렇다면 돈과 별개로 월드컵 4강이라는 직전 대회 성적도 부담스러워했을 것이라는 얘기인데?
=월드컵 4강이 모든 문제의 중심에 놓여 있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2002년 월드컵 때 한국이 4강에 들어간 것을 두고 4강 실력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사실 축구인의 한 사람으로서 이런 분위기가 가장 안타깝다. 당시 우리 선수들은 프로 소속팀의 양해 아래 오랜 기간 합숙훈련을 했고, 유럽 전지훈련 등으로 팀의 리듬과 사이클을 6월 월드컵에 맞췄다. 선수들은 최고의 컨디션이었는데 아마 100% 이상이었을 것이다. 반면 유럽과 남미 선수들은 시즌이 끝난 뒤 쉬지도 못했다. 한국과 일본이 7∼8월 우기를 피하기 위해 5월31일 첫 경기가 열리는 등 대회가 일찍 시작되면서 다른 나라 팀들은 최악의 컨디션으로 뛸 수밖에 없었다. 국민들의 열광적인 붉은 물결 응원도 큰 영향을 미쳤다.
-월드컵 4강의 신화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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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을 바로 알아야 한다. 국민들도 언론도 좀더 차분하게 우리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잣대를 어디에 댈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예를 들어 다음 월드컵에서 4강을 얘기하기보다는 본선 진출을 당장의 목표로 두고 얘기하고, 더 나아가 16강과 8강 진출을 모색하는 식으로 발상을 바꾸어야 한다.
2006년 이후에는 국내 감독으로
-대표팀 감독 후보를 계약도 하기 전에 미리 발표하는 등 영입 작업이 프로답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고 있는데.
=상황이 그럴 수밖에 없었다. 10명의 후보를 발표한 뒤 4명으로 압축했고, 일주일간 기술위원들로 구성된 검증단이 현지에서 면접까지 하고 왔다. 그것을 비밀로 하기에는 어려운 점이 있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새로운 감독이 계약서에 사인을 하기 전까지는 모든 것을 비공개로 처리할 것이다.
-애초 움베르투 코엘류 감독을 무리하게 경질하면서 기술위원회가 제 발등을 찍은 것은 아닌가?
=코엘류 감독이 결정적으로 물러나게 된 배경은 몰디브와 비겼기 때문이다. 지난해 아시안컵 예선 오만과의 경기에서 진 것은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몰디브와의 경기는 2006년 월드컵 예선이다. 경기를 하다 보면 약체한테 질 수도 비길 수도 있다. 그러나 월드컵 2차 예선에서 확실하게 팀 색깔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최종 예선에서도 어려워질 수 있다. 더욱이 140위인 약체 몰디브와의 경기는 선수들의 정신력만 다잡아도 이길 수 있는 경기였다. 그 정도도 못하는 감독을 왜 두겠는가?

-코엘류 감독은 훈련 시간이 72시간에 불과했다고 했다. 또 대표팀보다는 올림픽팀에 더 지원을 많이 한다는 불만을 털어놓았는데.
=대표팀과 대표팀 경기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특수하게 국민들의 관심이 올림픽에 많이 있다. 올림픽에서 메달이라도 딴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또 좋은 성적을 낼 가능성도 있지 않은가. 아시안컵은 아시아 축구의 최강자를 가리는 대회이고 대외적으로 아시아 축구의 대표를 가리는 자리다. 앞으로 우리의 시각도 바뀌어야 한다. 그러나 당장은 올림픽에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코엘류 감독이 불만을 표시했지만 2002년 월드컵 때와는 다르다. 당시는 정부까지 나서 지원을 했다. 그러나 지금은 과거와 달리 프로팀에서 선수를 뽑아오기도 힘들다. 상황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새로운 지도자들은 바뀐 상황에서도 성적을 내야 하는 처지다.
-국내 감독을 대표팀 사령탑 후보로 올릴 생각은 없는가?
=국내 감독도 후보는 있다. 그러나 역시 지난 월드컵 4강 성적이 걸림돌이다. 4강은 아니더라도 만족할 만한 성적을 내기 위해서는 아직까지는 유능한 외국인 지도자가 낫다는 게 내 판단이다. 또 국내 감독이 맡을 경우 성적이 조금만 나빠도 여론에 의해 흔들릴 가능성이 외국인 감독보다 훨씬 크다. 그러나 2006년 독일 월드컵 이후에는 국내 감독이 맡도록 하자는 게 현 기술위원회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외풍에 영향 안 받는 기술위 만들겠다
-기술위원회의 큰 사업은 대표팀 관리와 지원뿐 아니라 한국 축구의 미래를 구상해야 한다. 비전을 말해달라.
=당장 사무실부터 마련해야 한다. (웃음) 한국 축구의 기술 발전을 위해 100년 대계는 아닐지라도 20년 대계, 30년 대계는 만들 것이다. 이미 다른 나라의 기술위원회가 어떤 식으로 운용되는지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다. 때에 따라서는 기술위원회 아래 소위원회를 두어 전문적인 영역에서 깊이 있는 토론을 할 것이다. 축구협회도 기술위원회를 많이 도와주어야 한다.
-이회택 위원장이 이끄는 기술위원회가 기존 기술위원회와 다른 게 있다면.
=크게 차이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책임감과 주관을 갖고 어떤 외풍에도 영향받지 않는 독립적인 기술위원회를 만들 것이다. 누구라도 기술위원장한테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기술위원장을 그만둘 것이다. 말 그대로 한국 축구의 기술 발전을 위해서 긍지를 갖고 최선을 다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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