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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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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박정희에게 조아릴 것인가

등록 2004-04-16 00:00 수정 2020-05-03 04:23

17대 총선에 부는 ‘박근혜 신드롬’의 본질… 개혁세력은 ‘역사적 도전’ 인식해야

이번 17대 총선은 한국 정치와 민주주의의 발전에 있어서 중대한 분수령을 이룰 것이라는 의미에서 ‘중대선거’이다.

한국의 정치와 민주주의는 2002년의 ‘중대선거’였던 대통령 선거에서 노무현 신드롬이라는 드라마를 빚어내면서 이미 한 단계 확실한 도약을 이루었던 것으로 보였다. 여러 가지 의미에서 한국의 ‘주류사회’와 정치권의 ‘주류’에 속하지 않는 노무현 후보의 당선은 비단 정치 엘리트뿐 아니라 한국 사회 전반에 걸쳐서 주류 교체를 예고하는 의미심장한 사건으로 보였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선 이후 일년간 행정과 국가 운영에서 기존의 상식과 통념을 뛰어넘는 과감한 변화와 발전을 시도했으며, 이의 성과가 분명해지는 데는 좀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겠다.

박정희 시대와의 대결 국면

이 과정에서 야당연합은 대통령의 탄핵, 즉 임기 내 낙마를 시도했다. 이는 기존 ‘주류세력’의 기득권 상실에 따른 극단적 불안과 반발의 표출이다. 이러한 기득권을 고집하는 ‘수구’의 아집과 반발은 시민사회의 강력한 반발을 불러일으켜 ‘촛불집회’라는 전 시민적 운동을 불러일으켰으며, 한나라·민주당 등 기존의 의회 다수세력은 17대 총선에서 실질적으로 전멸할 것이라는 위기감에 사로잡혔다. 이 위기의 탈출책으로 한나라당은 박근혜 의원을 당대표로 선출했으며, 아울러 경실련 대표 지식인의 한 사람인 박세일 교수를 영입하는 상당히 대담한 인적 변화를 꾀했다. 이 중에서 주목되는 것은 박근혜 의원이 나름대로 상당한 영향력을 보수층과 영남권에서 행사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개혁세력은 아직도 박정희와 대결하고 있으며, 죽은 박정희의 망령은 아직도 살아서 한국 민주주의를 탄압하고 있다.

한국은 과연 언제 온전히 박정희 시대를 극복할 것인가? 17대 총선의 결과는 이에 대한 답변이 될 것이다. 한국은 현재 정치적·사회적으로 분열되어 있으며, 이 분열상은 총선 이후 그리고 헌재의 탄핵소추에 관한 결정 이후에도 한국 사회를 끊임없이 괴롭힐 것이다. 17대 총선이 2002년 대선의 진정한 완결로서 구 정치를 청산할 것이라는 전망과 희망은 이제 사라진 듯하며, 이를 상징하는 것이 박정희와 박근혜의 화려한 부활이다. 이러한 현상이 벌어진 것은 그간의 민주화운동의 역량이 박정희·전두환 세력을 몰아내고 김대중·노무현의 집권까지를 가능하게 했으나, 한국 사회의 구석구석에 잔존하고 있는 완강한 과거의 뿌리를 청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는 이제 되살아난 과거와의 대결 국면에 놓여 있다. 그러나 ‘과거’는 현재의 한국을 통제할 능력을 결코 갖고 있지 못하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의 승리는 좋았던 옛 질서로의 회귀가 아니라 극한적인 정치적·사회적 투쟁과 반목으로의 회귀를 의미한다.

개혁세력이 주도하는 현재와 미래가 불만족스럽고 불투명하더라도 과거로의 회귀가 대안은 결코 아니다. 그러나 이런 논리를 대중에게 설득하기에 앞서 개혁세력과 개혁정권은 이를 무서운 역사적 도전으로 받아들여 정말로 심각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국정운영에 임해야 할 것이다.

그들에게 한국을 이끌 능력 없다

그리하여 박근혜 신드롬을 미래를 갖지 못한 낡은 세력의 마지막 소극(笑劇)으로 보내버려야 한다. 그리고 1970년대 이래 민주화운동과 시민사회운동에서 크든 작든 간에 참여하고 헌신했던 인사들은 개인의 입신양명과 이해관계를 따라 ‘박정희의 딸’이 주도하는 세력에 머리를 조아리는 치욕적인 처신을 삼가야 한다. 이는 자신의 생애와 존재의 부정일 뿐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친구, 선배, 후배로 여겼던 사람들에 대한 모욕이며 최소한의 예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비록 그들이 이 길을 통해 ‘대권’을 이룬다 한들 이는 과연 올바른 일이 겠으며 그 ‘대권’은 과연 누구와 무엇을 위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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