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육 논란이 뜨겁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침략의 정의는 다양하다”며 불을 붙인 이후, 욱일기로 장식한 대학생의 홈페이지가 뭇매를 맞더니, 야스쿠니 ‘신사’를 ‘젠틀맨’으로 이해하는 학생들에 대한 보도가 잇달았다. 곧이어 한 아이돌 가수가 ‘민주화’ 발언으로 현대사 논란을 키웠고, 5·18 민주화운동을 비하한 종합편성채널 방송과 ‘일간베스트저장소’(일베) 사이트의 역사 왜곡이 보도되면서 ‘역사교육을 도대체 어떻게 했길래?’라는 충격을 주었다.
2007년 정상화를 첫걸음 떼는 듯했으나
그런데 이런 풍경이 왠지 낯설지 않다. 데자뷔 같다.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2005년에도 역사교육 강화 여론이 뜨거웠다. 일본에서 ‘다케시마의 날’을 정하고, 역사 왜곡 ‘후소샤 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한데다, 중국에서는 ‘동북공정’이 진행 중이라는 소식이 알려졌기 때문이다. 더 가깝게는 2011년에도 역사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여론이 광범위하게 퍼져, 이주호 교육부 장관이 국립중앙박물관에서 근엄하게 ‘역사교육 강화 방안’을 발표한 적이 있다.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 것일까? 요란한 여론도 늘 그때뿐, 이제껏 역사교육 정상화가 이뤄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주기적으로 반복되는 주변국의 망언이 우리 역사교육을 이나마 유지시켜준다는 자조적 냉소마저 있는 실정이다. 이번에는 좀 다를까? 솔직히 회의적이다. 매번 여론에 밀려 형식적 대안이라도 내놓던 정부가 이번에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역사교육은 1980년대부터 꾸준히 약화돼왔다. 유신 시절, 정권 유지를 위해 국사를 ‘국책과목’으로 강조한 것에 대한 반작용이라고 할까? 6차 교육과정에서 역사는 사회교과의 한 부분이 되었고, 7차 교육과정에서는 중학교 역사 수업 시수가 1시간 줄었다.
이런 상황에서 2005년의 뜨거운 여론은 역사교육 정상화가 필요하다는 폭넓은 공감대를 확인시켜주었다. 이를 바탕으로 2007년 개정교육과정이 마련돼 역사교육 정상화의 첫걸음을 떼는 듯했다. 그러나 이명박 정부는 2007년 교육과정을 전면 부정하고 2009년 개정교육과정을 내놓아 역사교육의 틀을 완전히 어그러뜨려버렸다. 2009년 교육과정의 ‘집중이수제’와 ‘2014년 대학수학능력시험 개편안’은 문제를 더욱 악화시켰다. 5천 년 역사를 한 학기 만에 속성으로 배우는 경우가 나타났고, 수능에서 사회탐구 10과목 중 2과목만 선택하도록 바뀌면서 ‘내용이 많고 어려운’ 역사 관련 과목은 선택받지 못할 확률이 더욱 높아졌다. 지금의 역사교육 부실화 논란은 이런 배경에서 비롯된 것이다.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역사교육 부실 논란에 종지부를 찍으려면 당장 실현 가능한 단기 방안과 시간을 가지고 준비해서 추진해야 할 중·장기 과제로 나눠 함께 고민해야 한다.
교과 독립을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우선 역사교육에 대한 정치적 간섭이 없어야 한다. 정부는 역사교육이 정상화될 수 있도록 틀을 짜고 지원하는 것에서 그쳐야지, 그 내용까지 개입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야 한다. 뉴라이트 세력을 비롯해 그릇된 정치적 시각으로 역사교육을 재단하려는 시도도 차단돼야 한다. 2008년 금성출판사의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 사태나 2009년 교육과정 개정 때 불거진 ‘자유민주주의’ 논란 같은 일은 역사교육을 심각하게 퇴보시킬 뿐이다.
교사들의 교육과정 재해석이나 교재 재구성의 자율권도 널리 인정돼야 한다. 교사의 수업에 편협한 이데올로기의 잣대를 갖다대 자기검열을 강요하는 것은 역사교육을 죽이는 지름길이다. ‘교과서대로만’ 가르치는 교육이 어찌 학생들을 감동시킬 수 있을까?
물론 교사들의 반성과 쇄신도 필요하다. 국민의 관심과 요구가 이렇게 뜨거운데도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역사 수업을 제공하지 못하고 역사를 ‘지겨운 암기 과목’으로 느끼게 만든 점은 뼈저리게 반성해야 할 부분이다.
역사 과목의 수능 필수화도 많이 언급되는데, 조금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자칫하면 수능이 고교 역사 수업을 더 왜곡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뜩이나 재미없는 암기 과목으로 외면받는 역사 과목이 수능에 대비하느라 더욱 지겨운 과목으로 낙인찍힐지 모른다. 차라리 난이도를 낮춰 자격시험화하든지, 모든 대학에서 역사 과목의 내신을 반영하도록 하는 것이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당장 시행할 수 있는 대안으로 각 학교에 역사교과실을 만든다든지, 역사교과 관련 예산을 일정 비율 이상 확보한다든지, 역사 동아리를 적극 지원하는 방안을 생각해볼 수 있다. 근현대사나 민주화운동 관련 포스터나 전시자료를 만들어 각 학교에 배포하는 방안도 효과가 있을 것이다. 항일운동 사적지나 민주화운동 사적지의 방문 교육을 강화하는 것도 고려해봄직하다. 수요집회에 참여하거나 나눔의 집, 4·19 묘역 등을 방문해본다면 학생들이 역사를 보는 눈이 좀더 밝아지지 않을까?
근본적으로는 역사교과의 독립을 가장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여러 사회 과목 중 하나가 아니라 역사교과가 따로 서야 하고, 그 안에 한국사·세계사·동아시아사·분류사·시대사 등 다양한 역사 과목이 배치돼야 한다. 그러려면 교육과정 개정이 필요한데, 시행도 못해보고 폐기된 2007년 개정교육과정을 토대로 최소 10년은 꾸준히 적용해 유지될 수 있는 교육과정을 만들어야 한다. 당연히 한국사와 세계사의 통합 방안, 근현대사 교육 강화 방안, 내실 있는 역사 수업이 가능한 최소 수업 시수 등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부르르 끓다 식기, 반복되면 코미디
오랫동안 지적돼왔지만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난제, 교과서 문제도 중·장기적 계획을 갖고 개선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정에서 검정으로 바뀌며 외형이나 편집은 크게 발전했지만, 내용이 여전히 너무 많고 어렵다는 비판에서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왜 이런 비판이 반복되는지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학생들에게 의미 있는 역사 지식은 무엇이고, 이를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내러티브 형식은 무엇인지, 깊이 있는 연구와 교과서 모형 계발이 이루어져야 한다.
주기적으로 부르르 끓어 넘치다가 그 순간이 지나면 다시 예전으로 돌아가는 역사교육 논란은 부끄러운 일이다. 그것도 몇 차례나 반복된다면 이건 코미디다. 과거로부터 배우지 않는 민족은 미래가 없다고 했다. 이번만은 부끄러운 반복의 사슬을 끊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이성호 서울 배명중 교사·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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