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의 대북정책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012년 이전까지 북한의 두 차례 핵실험에 대해 국제사회는 어김없이 유엔 결의를 통해 제재를 했다. 중국도 유엔 결의에 동참했다. 그러나 중국은 국제사회가 북한을 제재하는 사이에 북-중 경제협력을 강화했다. 유엔 대북 제재에 구멍이 뚫린 것이다. 대북 제재는 효과가 없었다. 중국이 북한과 경제협력을 지속한 것이 결정적 이유다.
북한의 3차 핵실험 이후 중국이 북한에 대한 제재 조처를 시행할 경우 대북 제재는 실효성을 거두게 될 것이다. 이는 북핵 문제와 북-중 관계, 미-중 관계가 새로운 국면으로 전개된다는 것을 뜻한다. 북핵 문제로 실효성 있는 제재를 가해서 본격적으로 북한의 목을 죄는 국면이 되는 것이다. 대북 제재에 뚫렸던 구멍은 북-중 관계로 이동할 것이다. 북한 제재에 협력함으로써 미-중 관계는 돈독해질 것이다. 중국과 일본의 센카쿠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 분쟁에서 미국이 중국의 입장을 무시하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후진타오 체제 출범 맞물린 2차 핵위기와 흡사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한다고 예고했을 때 중국은 요란했다. 정작 북한이 3차 핵실험을 하자 중국은 오히려 차분해졌다. 태풍 전야인지, 상황을 안정시키려는 절차에 돌입한 것인지 아직은 알 수가 없다.
2002년 시작된 이른바 2차 북핵 위기는 후진타오 체제 출범과 맞물렸다. 3차 핵실험이 시진핑 체제의 출범과 맞물리는 것과 흡사하다. 2002년 10월 미국 국무부는 북한이 농축우라늄 보유를 시인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2차 북핵 위기가 시작됐지만 당시 후진타오 체제는 2차 북핵 위기를 심각하게 보지 않았다. 미국의 대북 압박에 대해 북한이 협상 카드를 사용하는 것으로 보았다.
북핵 위기를 심각하게 보지 않는데도 후진타오 지도부는 북-중 관계를 재검토했다. 혈맹 관계라는 북-중 관계의 특수성에서 벗어나 국가 관계라는 정상 외교 관계를 강조했다. 북-중 관계에 찬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후진타오 체제가 출범하며 북-중 관계를 재검토한 것처럼 시진핑 체제도 북-중 관계의 재검토를 시도할까? 중국의 거듭된 반대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강행한 북한에 대해 새로 출범하는 시진핑 체제는 어떤 정책을 펼칠 것인가?
북한의 거듭된 핵실험 강행은 중국에 딜레마를 안겨주었다. 북한이 중국에 ‘전략적 자산’인가 ‘부담’인가 하는 문제로 표출됐다.
중국은 2002년 16차 당대회에서 ‘2020년까지 소강사회를 건설하는 것’을 핵심 국가목표로 설정했다. 골고루 잘사는 나라를 건설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평화롭고 안정적인 주변 환경이 필수적이다. 북한은 중국과 1300km 국경선을 접하고 있다. 역사적으로 이 국경선은 해양 세력이 중국을 위협하는 통로가 되기도 했다. 중국으로서는 북한의 존재가 중국 국경을 안정시키는 완충지대가 되는 셈이다. 마오쩌둥은 이를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말로 표현했다.
안보리 결의안 찬성하고도 북과 경제협력 계속
북한이 중국의 국가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전략적 자산이라는 생각은 군부와 공산당 중앙대외연락부를 중심으로 강하게 자리잡고 있다. 왕자루이 대외연락부장과 류훙차이 부부장이 대표적인 인물이다. 왕자루이는 지난해 8월 북한을 방문해 김정은 제1위원장을 면담했다. 김정은의 국제 무대 첫 등장이었다. 류훙차이 부부장은 평양주재 중국대사 시절에 김정일·김정은 부자와 친분을 다졌다.
하지만 북한 핵실험에 대한 중국의 고뇌는 뿌리가 깊다. 중국은 ‘책임대국론’을 외교목표의 하나로 내세우고 있다. 미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와 관계를 개선하며 국제질서의 평화와 안전을 유지하는 책임 있는 국제사회의 성원으로 중국의 국가 이미지를 만들고 싶어 하는 것이다. 중국이 북한의 핵실험을 지지할 경우 중국이 희망하는 외교목표를 달성하기 어렵게 된다.
북한은 핵실험을 통해 국가 이익을 확대하려고 한다. 따라서 중국과 북한의 전략적 이해관계에 충돌이 생긴다. 국제사회는 북한의 핵실험 같은 세계 평화를 파괴하는 행위를 용인하는 중국에 비난의 화살을 퍼부을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 2011년 1월 후진타오 주석이 미국을 방문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기 전까지 미국은 이를 약점으로 삼아 중국을 비난해야 한다고 노골적으로 밝혔다.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은 중국이 북한의 불법행위를 묵인할 경우 이를 비난해야 한다고 앞장서서 주장했다.
중국은 북한이 핵실험을 할 때마다 강력히 비판했다. 2006년 10월 북한이 1차 핵실험을 하자 중국은 북한이 ‘제멋대로’ 핵실험을 단행했다며 강하게 규탄했다. ‘제멋대로’라는 표현은 중국 정부가 냉전시대에 적대국가에 사용하던 용어다. 중국과 북한의 정부 수립 이후 중국이 북한에 표시한 가장 강도 높은 말이다. 그리고 중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 결의 1718호에 찬성했다.
다른 한편으로는, 1차 핵실험 뒤 열흘 만에 중국은 북한에 특사를 파견해 사태 악화를 방지하기 위한 중재에 나섰다. 2007년 1월 북-미 간 접촉이 재개되고, 2월에는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실무적 로드맵을 만든 2·13 합의에 도달한다.
중국의 노력으로 북-미 접촉을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중국으로서는 중요한 교훈을 얻었다. 북한과의 관계 악화를 무릅쓰고 북한의 유엔 안보리 결의안에 찬성한 것은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와의 관계 때문이었다. 그런데 2006년 11월 미국 중간선거 결과 공화당이 패하고 네오콘이 물러나자 미국은 유엔 대북 제재 결의안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북한과 접촉에 나섰다. 이런 경험이 북한 핵실험에 대한 안보리 결의안에 찬성하고도 북한과 경제협력을 계속하는 중국의 패턴이 만들어지게 했다.
2009년 5월 북한의 2차 핵실험 직후에도 중국은 어느 나라보다 먼저 외교부 성명을 발표하고 강도 높게 북한을 비판했다. 하지만 중국의 기본 입장은 ‘징벌을 제재의 목적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중국은 대화와 협상을 주장했다.
2009년 7월 후진타오 주석이 주재하는 ‘중앙외사영도소조회의’가 열렸다. 미국의 국가안보회의(NSC)라고 할 수 있다. 이 회의에서 북-중 관계는 전략적 부담이 아닌 전략적 자산이라는 가치를 부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전략적 자산이기 때문에 핵실험 이후인 10월에 원자바오 총리가 방북해 김정일 위원장을 면담했다.
2009년 중앙외사영도소조회의에는 시진핑 당시 부주석도 참석했다.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는 오는 3월 국가주석에 취임한 뒤 중국 중앙외사공작영도소조 첫 회의를 소집할 것이다. 이 회의에서 중국 외교정책의 기조와 함께 대북정책이 다시 검토될 것이다.
경제제재 강도, 향후 북-중 관계의 시금석
시진핑 체제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지금으로서는 분명하지 않다. 중국은 이란의 핵개발에 대해서도 제재 결의에는 동참했지만 강력한 독자적인 제재는 하지 않았다. 이란의 석유 채굴 가능 기간은 앞으로 86년으로 세계에서 가장 길다. 중국은 서방의 대이란 제재 이후 이란에 투자를 가장 많이 하는 나라다. 그래서 중국은 이란 문제와 이란 핵문제를 분리해서 접근한다.
이란에서 경제적 이익을 얻는다면 북한에서는 안보 이익을 얻을 수 있다. 북한 문제와 북핵 문제를 분리하는 정책을 유지하리라는 판단의 근거다. 중국이 대미 관계 때문에 대북한 경제제재에 참여한다면 그 강도가 앞으로 북-중 관계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
김창수 한반도평화포럼 기획위원장 peacekore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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