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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상급식, 복지가 아니라 교육이다

건강·문화·예절·환경 문제 배우는 생명의 교재인 급식, 당연히 의무교육의 무상 원칙에 따라야
등록 2010-02-24 14:38 수정 2020-05-03 04:26

학생들은 보육시설 기간을 포함해 15년 동안 매일 한 끼 이상 학교 급식을 먹는다. 자라나는 아이들의 건전한 심신 발달을 도모하고 국민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나 학교 급식비는 수익자 부담의 원칙에 따라 학부모 등 학생의 보호자가 부담하고 있다.

‘교육복지’라는 표현은 명백한 오류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급식을 먹고있다. 이렇게 친구들끼리 함께 모여 밥을 먹는 일도 하나의 '교육 과정'이다. 한겨레 이종찬 기자

경기도의 한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이 점심시간에 급식을 먹고있다. 이렇게 친구들끼리 함께 모여 밥을 먹는 일도 하나의 '교육 과정'이다. 한겨레 이종찬 기자

현재와 같은 학교급식제도가 실시된 지 올해로 30년이다. 학교 급식은 아이들에게 한 끼의 식사를 제공하는 것을 넘어 교육의 일환으로 시작됐고, 그렇게 실시돼야 한다. 자신의 건강을 위해 식품을 올바르게 선택하고 적정량의 음식을 섭취할 수 있는 능력이 학교 급식을 통해 배양된다. 식사 예절을 배우는 한편, 한국의 전통 음식을 접함으로써 문화 정체성을 확립할 수도 있다. 한 끼의 식사가 제공되기까지 노고를 아끼지 않은 수많은 이웃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교육도 이뤄질 수 있다. 더 나아가 학교 급식은 음식의 근원인 생명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을 기르고, 환경 문제에 대한 인식의 지평까지 넓힐 수 있다.

이와 같이 학교 급식을 통해 영양학적 측면만이 아니라 문화·정서·도덕 면에서 다양한 교육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실무 주체인 영양교사가 느끼는 학교 급식의 운영은 결코 교육적이지 못하다. 교과 교육을 중심으로 하는 오늘의 학교 현장에서 학교 급식은 한 끼의 식사를 해결하는 도시락 대체재 역할에 머물고 있다.

학교 현장이 교과 교육 중심으로 이뤄진다는 점 외에도 ‘교육급식’의 자리매김을 어렵게 하는 원인이 또 있다. 수익자 부담 운영 원칙이다. 저소득층 학생의 급식비 지원제도가 보건복지가족부의 소관 업무인 것만 보더라도 학교 급식은 교육의 일환으로 운영된다고 보기 어렵다. 저소득층을 구분해 급식비를 지원하려면 해당 학생은 담임 교사와 학생복지심사위원회 위원, 담당자(대개 영양교사) 등에게 증빙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학생은 학부모(보호자)·담임 교사와 갈등을 겪거나 수치심을 느낄 수 있다. 특히 감정이 예민한 초등학교 고학년이나 중·고등학생은 급식비를 지원받는다는 사실이 친구들에게 노출될 경우 심한 마음의 상처를 입는 경우가 많다. 이는 근본적 원인을 명확히 알지 못 한 채 막연히 가정에 대한 불만, 사회에 대한 적대감을 키우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최근 무상 급식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논란을 다루는 여러 언론 매체에 ‘교육복지’라는 말이 자주 눈에 띈다. 그러나 영양교사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복지’라는 말은 학교 급식의 본질을 ‘교육’에 두지 않고 있음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이다. 학교에서 먹는 급식을 복지로 이해한다면 ‘교육급식’은 이룰 수 없다. 이는 학교 급식에 담을 수 있는 교육 내용을 간과하는 것이다. 학교 급식은 단순한 ‘복지’가 아니다. 그러므로 ‘교육복지’라고 표현하면서 무상 급식을 논한다는 것은 명백한 오류라고 할 수 있다.

학교 급식은 ‘교육’이다. 먹을거리와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고 자연의 귀함을 가르칠 수 있으며, 우주의 섭리를 깨닫게 할 수 있는 훌륭한 교과서가 바로 급식으로 제공되는 ‘음식’인 것이다. 교사와 학생이 먹을거리를 나누면서 ‘우리가 먹는 것이 곧 우리 몸이 된다’는 사실을 함께 깨달아갈 때 살아 있는 교육이 이뤄질 수 있다. 글자로 이뤄진 교과서가 아니라 생명으로 이뤄진 생명의 교재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의무교육의 무상 원칙에 따라 무상 급식이 필요한 것이다.

교육의 수혜자인 국가가 부담해야

무상 급식의 원천은 헌법의 의무교육 내용에 있다. 헌법 31조 3항은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고 밝히고 있다. 중학교까지 의무교육을 하면서 수업료, 교과서 대금 등을 무상으로 제공하듯 교육의 일환인 급식비도 국가가 부담해야 한다. 현 제도를 보더라도 학교급식법 9조 1항 ‘급식에 관한 경비의 지원’에서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는 학교급식법 8조에 의하여 보호자가 부담할 경비의 전부 및 일부를 지원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무상 급식을 할 수 있는 법적 근거는 충분하다. 학교 급식비를 수익자가 부담해야 한다면 당연히 국가가 부담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교육의 최종 수혜자는 학생 개인의 차원을 넘어 우리 사회, 곧 국가이기 때문이다.

정명옥 경기 안양 삼성초 영양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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