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세계는 부시에게 매를 들었다

등록 2004-01-29 00:00 수정 2020-05-02 04:23

뭄바이 세계사회포럼은 무엇을 외쳤나… 반전 · 반미 분위기 속 한국쪽 부시 낙선운동 제안에 호응

브라질에서 인도 뭄바이로 장소를 옮긴 올해 세계사회포럼 르포. 세계 시민들의 반전·반미 구호가 드높은 가운데 한국 참가단의 부시 낙선운동 제안이 큰 호응을 얻었다. 기자의 좌충우돌 참관기도 함께.

‘전쟁 없는 세상은 가능하다’(Another world without war is possible).
영국식민지의 아픈 역사와 인도 노동자의 저항의 역사가 공존하는 인도 최대의 상업도시 뭄바이(전 봄베이)가, 제4회 세계사회포럼(WSF)이 열린 지난 1월16일부터 21일까지 반전과 반미, 평화의 ‘아이콘’으로 다시 태어났다.

132개국 10만여명의 참가자들이 신자유주의 문제와 이라크 전쟁, 물의 사유화 문제, 차별 등 저마다의 주제를 안고 뭄바이를 찾았지만, 이라크 전쟁 이후 처음 열린 포럼의 분위기를 압도한 것은 역시 ‘반전’과 ‘반미’였다. 자본의 세계화에 반대하며 2001년 브라질 포르투알레그레에서 열렸던 세계사회포럼은, 올해 군사주의와 경제적 세계화가 결합된 ‘무장한 세계화’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제기됐다.

특히 미국은 이라크 점령부터 유전자 조작 식품 문제까지 이번 세계사회포럼에서 다뤄진 대부분의 주제에서 ‘주적’으로 지목됐다.

‘또 다른 세계는 가능하다’(Another World is Possible)는 세계사회포럼의 공식 표어는 ‘부시 없는 세상은 가능하다’(Another World without Bush is Possible), ‘제국주의 없는 세상은 가능하다’(Another World without Imperialism is Possible) 등으로 변형되어 널리 쓰였으며, 각국에서 모인 반전 운동가 등은 소리 높여 미군의 이라크 철수와 제국주의 철폐를 주장하였다.

“이라크 점령 반대 전략 세우라”

올 세계사회포럼의 반전 분위기는 16일 개막식 연설에서부터 예고됐다. 세계사회포럼 사무국쪽은 으로 영국 부커상을 받은 유명작가이자 반미 성향으로 이름 높은 아룬다티 로이와 영국 노동당 의원이자 평화운동가인 제레미 코빈, 팔레스타인의 ‘국민정치이니셔티브’를 이끌고 있는 무스타파 바르구티, 이라크 활동가인 아미르 알 레카비 등 개막식 연사 대부분을 반전 운동가들에게 할애했다. 아룬다티 로이는 이날 개막식에서 “이라크 전쟁으로 이익을 본 두개의 미국 기업을 찍어 그들의 사무실과 프로젝트를 방해해 끝내 문을 닫게 하자”고 주장해 열띤 박수를 받았다. 영국 노동당의 제레미 코빈 의원도 “영국 시민 50만명이 반전 시위에 나선 것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영국의 반전 분위기를 소개하고 “전 세계의 민중과 세계화의 피해자들이 힘을 합해 제국주의에 맞서야 한다”고 소리 높였다.

미국의 점령지인 이라크 현지에서 날아온 아미르 알 레카비는 “이라크 점령에 반대하는 명확한 전략이 필요하다”며 이번 세계사회포럼에서 이라크에 대한 미국의 점령을 종식시킬 수 있는 계획을 마련해줄 것을 참가자들에게 호소하기도 했다.

미국기업 불매운동도 제안

특히 ‘공공의 적’으로 지목된 부시 미국 대통령에 대한 반감은 다양하고 ‘집요’했다. 우선 한국의 시민운동가들이 제안한 ‘부시 낙선운동’(Defeat Bush Campaign)은 소재의 시의성과 ‘참신성’ 덕에 세계사회포럼 참가자들의 많은 관심을 끌었다. 이날 발제에 나선 말레이시아의 찬드라 무자파 ‘정의로운 세계를 위한 국제행동’ 대표는 “미국인들에게 부시가 미국의 안보와 전 세계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는 것을 알려야 한다”며 “미국 역사상 가장 일방주의 정책을 펴는 부시 정부 덕에 역설적으로 전 세계 시민사회가 단결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반면, 미국의 평화운동가인 조지프 거슨은 “부시의 낙선을 주장하는 모습이 내정 간섭으로 비춰져 미국 우익쪽의 공격을 받을 여지가 있다”며 우려했지만, “미국으로 돌아가 여러 반전회의에서 부시 낙선의 필요성을 제기하겠다”고 밝혔다.

미국기업에 대한 불매운동을 주장하고 나선 곳도 있다. 벨기에와 캐나다, 브라질, 일본, 스페인, 그리스 등 전 세계 40여개국 200여개 비정부기구로 구성된 ‘보이콧 부시’는 ‘작은 행동이 큰 변화를 만든다’는 표어 아래 미국 행정부와 관계를 맺고 있는 기업들의 상품을 ‘타격 대상’으로 삼고, 전 세계적인 불매운동을 벌이겠다고 밝혔다.

“길에 전시된 이라크 민중들의 참혹한 사진에 마음 아파하더라도, 집에 돌아와 부시 정부를 지원하는 말보로 담배를 꺼내 문다면 이는 모순입니다.” ‘보이콧 부시’의 폴 휴비트는 “엑슨모빌이나 제너럴 모터스, 아메리칸 항공 등 이라크의 경제적 이익과 직결된 기업들이 지난 2000년 대선 당시 공화당에 대규모 정치자금을 지원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라며 “소비자로서 우리의 돈이 석유전쟁과 환경파괴, 인권침해에 쓰이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표현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이콧 부시’와 ‘부시 낙선운동’은 함께 네트워크를 만들어 연대할 뜻을 밝혔다.

아시아 지역 미국 군사주의 비판

미국 내 단체들의 부시 ‘타격’ 움직임도 강화되고 있다. 미국 내 600여개 단체의 반전 연대조직인 ‘평화와 정의를 위한 연대’(www.unitedforpeace.org)는 오는 8월29일로 예정된 공화당의 뉴욕 전당대회를 겨냥해 대규모 집회를 계획 중이다. 전통적인 민주당 텃밭인 뉴욕에서 공화당이 전당대회를 강행하는 것은, 9·11 테러 3주기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 한다는 혐의가 짙기 때문이다. 평화와 정의를 위한 연대 관계자는 “부시 행정부는 환경문제부터 노동자와 시민의 권리, 자유 등을 희생시켜 일부 기업과 잘사는 지지자들의 배를 불려가고 있다”며 “이제 국제사회가 부시에게 ‘NO’라고 말할 시점”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 밖에도 아시아 지역에서 고조되는 미국의 군사주의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이소형 사회진보연대 활동가는 ‘한반도에서의 미국 군사주의에 대한 비판과 아시아 평화’라는 세미나에서 “한반도가 위치한 동아시아는 동아시아 경제통합이라는 구상 아래 신자유주의 금융세계화가 진행되는 신흥시장인데다, 잠재적으로 중국의 부상을 제어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국의 군사적 요충지”라며 “미국의 군사주의에 반대하는 반전운동과 신자유주의 세계화에 반대하는 생존권 투쟁이 함께 연대해 통합적인 사고와 전략을 구상해야 할 시점”이라고 주장했다.

반미의 목소리는 세미나와 포럼장을 넘어 곳곳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부시 대통령을 피흘리는 뱀파이어나 범죄자, 악마로 묘사한 사진은 행사장 구석구석을 장식했고, 심지어 엎드려 있는 부시 대통령의 항문에 펜을 꽂도록 한 이른바 ‘부시 똥침 펜꽂이’는 행사기간 내내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부시 대통령을 성토하는 퍼포먼스가 곳곳에서 벌어졌고, 부시 가면을 쓴 주인공이 참가자들로부터 ‘애교’ 섞인 뭇매를 맞기도 해 참가자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세계사회포럼 조직위쪽은 다국적기업의 행사장 내 광고·판매를 공식적으로 금지했다. 미디어센터에 설치된 20여대의 컴퓨터에는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컴퓨터 운영체계인 윈도 대신 무료공개 소프트웨어인 리눅스가 깔렸고, 1998년 인도 남부 플라치마다 마을에 공장을 세운 이후 이 마을의 지하수를 고갈시키고 있다는 혐의를 받고 있는 코카콜라사와 펩시, 맥도날드 등과 같은 다국적기업의 홍보·판매도 금지됐다.

샨티 파텔 세계사회포럼 대변인은 “세계화는 개발도상국에 손해를 입히고 가난한 사람은 더 가난하게, 부국은 훨씬 더 풍요롭게 만든다”며 “이번 회의는 다국적기업의 통제와 제국주의적 세계화에 맞서 전 세계에 우리의 목소리를 내는 연단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라크전 1년, 국제 공동행동의 날

세계사회포럼의 반전·반미 분위기는 올해 반전운동의 구체적인 조직화로 이어졌다. 우선 세계사회포럼에 참가한 각 나라의 반전운동단체는 행사 기간 중 이틀간 전체 총회를 열어 이라크 전쟁 발발 1년이 되는 3월20일을 ‘국제 공동행동의 날’로 잡고 대규모 반전 시위를 조직하기로 했다. 이에 앞선 3월8일 여성의 날에는 전쟁의 최대 피해자인 여성들이 주도하는 시위가 제안됐으며, 이 밖에도 각 나라의 사정에 따른 운동이 제안됐다. 지난 3차례의 세계사회포럼을 주도했던 브라질 치코 위태커는 “지난해부터 전개해온 이라크 전쟁 반대와 부시 반대 연대는 올해에도 계속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아시아에서 처음 열린 세계사회포럼은 2005년에 브라질의 포르투알레그레로 돌아간 뒤, 오는 2006년 ‘세계’라는 이름에 걸맞게 아프리카 대륙으로 개최지를 옮겨간다. “세계에는 두 가지의 슈퍼 파워가 존재한다. 하나는 미국이고 하나는 거리의 민중들이다”라고 지목한 의 칼럼처럼, 전 세계 민중은 소통과 연대를 무기로 거대한 권력에 저항하고 있다.

뭄바이= 최혜정 기자 idun@hani.co.kr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